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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우주 항해하는 '종이 돛단배'

접었다, 폈다 무한변신





인류는 언제부터 종이를 접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1900년 전, 중국에서 종이가 탄생했던 그 시대부터 종이접기가 시작됐을 것이다. 쉽게 휘고 구겨지는 특성 덕분이다. 어쩌면 문맹이 흔했던 과거 시대에는 글을 쓰는 것보다 접어서 작품을 만드는 데 종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종이접기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일본에 종이가 전파됐던 6세기였다. 서양에 종이접기를 전한 것도 일본이었다. 당시 유럽의 마술사들은 종이를 쓱쓱 접어 조형물을 만드는 일을 대중에게 마술처럼 소개했다. 그래서 지금도 서양에서는 종이접기(folding paper)대신 오리가미(折紙, 일본어로 ‘종이접기’)라는 말로 더 알려져 있다.



자연을 흉내 내려다 정교하게 발전해



그렇다면 언제부터 ‘종이접기’가 있었을까. 사람이 종이를 접기 훨씬 전부터 종이접기는 존재했다. 바로 자연에 말이다.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식물이 사실은 종이를 접어놓은 듯 일정한 법칙에 따라 포개져 있는 경우가 많다. 꽃봉오리가 꽃잎을 서로 꼬이지 않게 활짝 벌리는 것이나, 번데기 안에 뭉쳐 있던 곤충의 날개가 바깥에 나와 마르면서 빳빳하게 펼쳐지는 것, 실타래처럼 뭉친 염색체에서 DNA사슬이 절대 엉키지 않는 것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숙주의 몸속에서 바이러스가 단백질 조각을 만들고 그것들을 접거나 이어 껍데기(캡슐)를 완성시키는 것도 종이접기와 비슷하다.



이것들은 한 덩어리처럼 탄탄하게 뭉쳐 있으며 전체적인 구조가 안정적이다. 그런데 특별히 접착제를 바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펼칠 수 있다. 종이 한 장만 있으면 풀이나 테이프 없이도 조형물 하나를 완성할 수 있는 종이접기와 비슷하다.



종이로 만드는 조형물이 점점 복잡하고 화려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종이접기가 자연과 닮았기 때문이다. 종이를 접으면 곡선이 아니라 직선이 생긴다. 하지만 동물이나 식물은 물론, 우리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자연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이뤄져 있다. 종이로 새나 강아지, 장미꽃잎 등을 정교하게 흉내 내려니 삐죽삐죽한 직선이 골칫거리였다. 사람들은 작은 직선을 여러 개 만드는 방식으로 곡선을 흉내 냈다. 예로 축구공을 들 수 있다. 축구공은 엄밀히 말해 둥글지 않다. 정오각형과 정육각형을 여러 개 이어 붙이기 때문에 수십 개의 직선이 생긴다. 짧은 직선이 여러 개가 이어져 곡선처럼 보일 뿐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위해 아디다스가 제작한 공인구 ‘자블라니’는 역대 축구공 중 가장 둥글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까지 만들어진 축구공들에 비해 구형에 가장 가까운 것일 뿐, 완벽한 구는 아니다. 공을 구성하는 조각을 8개로 줄여 직선을 줄인데다, 조각 자체를 평면이 아닌 곡면으로 제작했다. 이처럼 곡선으로 이뤄진 자연을 모방하다보니 기하학이 발전했고, 이에 따라 종이접기도 훨씬 정교해졌다.
 














 

자연과 비슷하게 연출할 수 있다는 점, 어떤 연결 장치 없이도 삼차원의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는 점, 완성된 조형물을 자르지 않고도 다시 원래 상태로 펼 수 있다는 점…. 종이접기가 과학과 공학에 활용되는 일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첫 만남이 마술처럼 이뤄졌기 때문일까. 서양에서는 종이접기를 일찍부터 단순한 교육용 재료나 장난감을 넘어 어떠한 한계를 해결하는 하나의 기술처럼 활용했다.



우주범선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종이접기를 과학에 활용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자연물이 접히는 모습을 따라한 생체모방이 많았다. 생명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단백질 조각을 접어 캡슐을 만들고 그 안에 유전정보를 넣는 것을 흉내 내 체내에서 약물이나 나노입자를 운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단백질보다 더 작은 분자를 접기도 한다. 2010년 6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와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연구팀은 단일가닥으로 합성한 DNA를 접어 두 가닥으로 꼬인 모양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공학 분야에서는 단순히 접는 것이 아니라 종이접기처럼 정교하게 구부리고 접는 방식을 응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종이접기의 대가로 불리는 로버트 랭 박사는 가상으로 종이를 접을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트리메이커(Treemaker)’를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종이를 만지지 않고도 원하는 모양을 접는 방법을 구상할 수 있다. 만약 종이 한 장을 주고 하늘소를 접으라고 주문한다면, 누구나 넓적한 등딱지와 다리 몇 개를 만드는 것에서 멈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종이 한 장으로 접은 하늘소는 다리와 더듬이, 집게가 모두 있었다. 다리 끝부분은 마치 실제처럼 둘로 갈라져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로버트 랭 박사의 홈페이지(www.langorigami.com)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2001년 미국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과학자들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다. 우주에서 태양계 바깥 행성을 관찰할 망원경을 개발했는데, 어떻게 우주까지 운반하느냐가 문제였다. 너무 거대해서 로켓에 실을 수가 없었다. 이 망원경의 크기는 당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기술로 우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한계의 10배나 됐다. 그들은 랭 박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랭 박사는 망원경을 72개 조각으로 만든 뒤 종이처럼 접어서 로켓에 실으면 된다는 답을 내놨다. 우주에서 다시 원래 모습대로 펼치면 된다는 것이다.
 






 

랭 박사는 자동차 에어백도 설계했다. 에어백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접혀 있다가 자동차에 ‘사람이 다칠 만한’ 충격이 가해지면 기체가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에어백을 아무렇게나 구겨 넣으면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



세계에 종이접기를 알린 일본도 종이접기를 우주에 보냈다. 1995년 태양전지판을 곱게 접어서 우주에 띄운 다음 원래 모습으로 펼치는 작업에 성공했다. 태양전지판도 우주망원경과 마찬가지로 크기가 매우 커서 로켓에 넣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일본 도쿄대 코료 미우라 교수였다. 미우라 교수는 종이의 특이한 성질을 응용했다. 종이는 압력을 받으면 그 크기에 비례해 조금씩 변형되는데, 압력이 일정한 수치를 넘어가면 갑자기 큰 변형을 일으킨다(좌굴). 그가 종이접기를 공학에 접목시킨 기술을 미우라-오리(折)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이 방식을 이용해 거대 안테나를 우산 모양으로 만들어 마음대로 펴거나 접을 수 있도록 설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태양빛을 동력 삼아 영원히 날 수 있는 우주범선을 띄우는 데 종이접기를 활용하기도 했다. 일본이 지난해 6월에 띄운 ‘이카로스’다. 이카로스는 대각선의 길이가 20m이며, 두께가 머리카락보다 얇은(0.0075mm) 돛이 달려 있다.



이 돛을 고정 축에 감는 방식으로 고이 접어서 우주까지 쏘아 올렸다. 지난해 7월 이카로스는 우주에서 원심력으로 돛을 펼쳤다.



또 2010년 12월 6일 NASA가 지구 궤도에 올린 초소형인공위성 ‘나노세일 D’는 가로 30cm, 세로 10cm, 높이 10cm 밖에 안 되지만 그 안에는 가로, 세로 길이가 10m나 되는 거대한 돛이 접혀 있다.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나간 이 인공위성은 두께가 약 0.0075mm인 돛을 방패연처럼 펼치고 다닌다. 우주쓰레기를 대기로 떨어뜨려 저절로 불타 없어지게 하는 일이 가능한지 보기 위해 띄운 나노세일 D는 태양빛으로 움직여 스스로 궤도를 이탈할 예정이다.



종이접기는 공학 분야뿐 아니라 의학에서도 활용된다. 막힌 혈관을 뚫는 수술을 보자. 동맥이나 정맥 같은 혈관이 핏덩어리 또는 콜레스테롤 등으로 좁아지거나 막히면, 이곳에 원기둥 모양으로 짠 금속 그물(스텐트)을 끼우는 수술을 하게 된다. 혈관을 넓혀 피가 원활하게 흐르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스텐트를 미세한 혈관에 넣어 원하는 부위까지 옮기는 것이 문제였다. 혈관 통로를 넓힐 만큼 커다란 스텐트는 혈관 안에서 움직이기가 어렵고, 스텐트를 작게 만들면 혈관을 넓힐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스텐트를 작게 접어 혈관에서 넓혀야 할 부위까지 옮긴 다음, 다시 원래 크기로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스텐트는 그물을 이루는 사각형이 찌그러지면서 접힌다.



변신 로봇의 시작은 스스로 접히는 종이



종이 자체를 새롭게 개발해 접기에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2009년 7월 인하대 기계공학과 김재환 교수팀은 세계 최초로 ‘종이 반도체’를 개발해 국제학술지인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에 발표했다. 종이의 성분인 셀룰로오스에 탄소나노튜브를 층층이 섞으면 전도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김 교수팀은 이미 2000년대 초반, 종이에 전류를 흘려주면 파르르 떤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것은 어떤 물질을 누르거나 구부리면 전기가 생기는 압전효과의 반대 현상이다. 그 뒤 NASA와 함께 원격 조종할 수 있는 종이 로봇을 연구해 왔다.
 






 

종이 반도체는 전기전도성이 높을 뿐 아니라 종이처럼 잘 휘어진다. 또 친환경적인 소재이므로 폐기할 때도 문제가 없다. 종이 반도체에 종이접기를 접목시킨다면 뇌처럼 복잡한 구조로 효율이 높은 컴퓨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전류를 흘려주면 스스로 배나 비행기 모양으로 접히는 ‘종이로봇’이 탄생했다. 2010년 6월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종이로봇은 평면 형태로 누워 있다가 전기를 통하면 벌떡 일어나 구부러지면서 접힌다. 그들은 종이로봇이 배와 비행기로 접히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공개했다.



이 종이로봇은 어떻게 접힐까. 종이에 접힘선을 미리 많이 만들어두면 큰 힘을 가하지 않고도 쉽게 접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종이로봇의 표면에는 접힘선이 가득하다. 접힘선의 위와 아래에는 형상기억합금이 붙어 있어, 전류가 흐르면 일정 길이만큼 종이가 접힌다. 종이 안쪽은 물론, 바깥쪽으로도 접을 수 있다. 접힘선마다 전류를 순서대로 흘려보내면 원하는 순서대로 종이로봇을 접을 수 있다. 연구팀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종이로봇이 어떤 순서로 접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원리를 응용해 기기를 정교하게 만들면, 미래에는 평면이 입체가 되는 수준을 넘어 입체가 또 다른 입체로 변신하는 로봇도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주공간이나 심해처럼 사람이 가지 못하는 장소에서도 기계의 모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미래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본 애니메이션처럼 자유자재로 비행기나 배, 자동차로 변신하는 로봇을 만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꿈은 고이 접어 이룰레라] Part1. 접으면 한강도 건넌다
Part2. 우주 항해하는 '종이 돛단배'




 

201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충남대 환경소재공학과 서영범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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