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바다체험단으로 선발된 친구들이 인천공항에 속속 모였다. 한창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체험단을 선발했는데 어느덧 낙엽이 지고 쌀쌀해졌다. 아직은 서로의 얼굴이 낯설고 서먹서먹하다.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니 다들 이번 체험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제주도, 대구, 대전,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모였지만, 열대바다에서의 새로운 추억을 기대하는 바람은 일치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신나는 괌 문화체험
우리의 목적지는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축(Chuuk)주다. 그곳에 있는 한·남태평양해양연구센터를 방문한다. 미크로네시아에 가려면 괌을 경유해야 한다. 괌에 도착하자 이미 한국에서 많이 떠나온 듯, 푹푹 찌는듯한 무더운 날씨가 우리를 반겼다. 처음 체험하는 괌의 모습은 몇몇 관광지를 통해 신선한 인상을 줬다. 바닷가를 둘러보다가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뛰어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사랑의 절벽에 갔다. 전설이 그려진 벽화를 보고 전망대에 올랐다. 뜨거운 햇살을 잠시 잊게 해주는 시원한 바람이 먼 바다에서부터 불어왔다.
‘피시아이(fish eye)’도 독특한 곳이었다. 바다로 향한 긴 다리를 건너가 나선형으로 이어진 계단을 뱅글뱅글 돌며 내려가니 마치 잠수함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창밖으로 물고기가 보였다. 미크로네시아에 가면 이런 물속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니 무척 기대된다.
오후가 되자 괌 공항에 가서 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약 2시간 후에 드디어 축에 도착했다. 활주로에서 몇 걸음만에 바로 실내로 연결되는 조그마한 공항, 괌보다 훨씬 습하고 더운 공기가 축의 첫인상이다. 한·남태평양연구센터의 연구원들이 마중 나와 체험단을 환영했다. 승합차를 타고 연구센터로 갔다. 축의 길은 모두 비포장도로다. 요 며칠 비가 와서 군데군데 큰 물웅덩이가 파였단다.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로 험난한 길을 30분 가량 달려 센터에 도착했다. 도시를 벗어난 이곳의 밤은 깜깜하고 적막하다. 일단 아침이 오길 기다려야겠다.
축에서 만난 에메랄드 빛 바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화창한 햇살에 절로 눈이 떠졌다. 짙푸른 하늘과 에메랄드 빛 바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키 큰 야자수까지 더하니 그림이 따로 없다. 비로소 축에 와 있는 게 실감났다. 아침을 먹고 센터를 둘러봤다. 센터는 리조트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객실을 포함해 배양장, 실험실, 다이빙 락커, 발전실 등 다양한 용도의 공간이 있다. 배양장에 가니 파란 수조마다 각종 바다생물이 자라고 있다. 한 수조에는 거북이 여러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거북을 안아봤다. 네 다리로 팔딱팔딱 바동거리니 기분이 이상했다.
➊ 상어를 직접 보기 위해 샤크섬에 들렀다.
➋ 스노클(숨대롱)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물속을 구경하는 스노클링.
➌ 야자수에서 딴 코코넛 열매로 목을 축였다.
➍ 무인도 수풀에는 독특한 모양의 나무와 밀림이 우거져 있다.
본격적인 바다 일정이 시작됐다. 이곳은 적도와 가까워서 햇볕이 무척 뜨겁다. 다들 선크림과 긴소매 옷, 챙 넓은 모자로 무장하고 나섰다. 보트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에 다다르니 ‘와’ 하는 탄성만 나왔다. 체험단이 도착한 곳은 ‘오사쿠라’라는 작은 무인도.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섬 주변의 낮은 물부터 적응하는 연습을 했다.
스노클링에 익숙해지자 잘피밭으로 이동했다. ‘밭’이라고 해서 잘피가 육지에 있는 식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닷속에서 자라는 조류의 일종이다. 우리가 다다른 곳은 수심이 3m에 달하는 잘피밭이었다. 잘피라 불리우는 매우 큰 조류 사이로 해삼이 보였다.
오후 5시쯤 되자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하루종일 맑은 날씨여서 노을이 멋지게 물들었다. 모두들 앞마당에 의자를 놓고 앉아 붉은 노을을 구경했다. 완전히 해가 떨어진 후에 다시 센터 앞에 모여 플랑크톤을 관찰했다. 바다를 향해 큰 조명을 비추니, 투명하던 바닷물이 뿌옇게 변했다. 플랑크톤이 모여든 것이다. 플랑크톤을 망으로 채집해 실험실로 이동했다.
플랑크톤은 바다 생태계의 근간이 된다. 양분이 많은 흙에서 식물이 잘 자라듯이, 플랑크톤이 많은 바다에서는 많은 바다생물이 살아간다. 축이 열대생물의 보물창고라 불리우는 이유는 풍부한 플랑크톤 때문이다. 센터에서는 식물 플랑크톤과 같은 미세조류를 배양해 바이오디젤을 개발하고 있다. 존재조차 몰랐던 플랑크톤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니 놀랍다.
무인도 생생 체험에 나서다
축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오늘 간 곳은 ‘팬룩’섬이다. 어제 스노클링을 열심히 연습한 덕에 이제는 바다에서 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물안경을 통해 바라본 바닷속은 더없이 맑고 투명하다. 형형색색의 산호와 물고기들이 보인다. 산호가 식물인 줄 알았는데, 식물의 기능을 가진 동물이라고 한다. 해파리, 말미잘과 같은 자포동물에 속하며, 동물 플랑크톤을 촉수로 잡아먹는다. 산호초는 산호의 분비물이나 유해인 탄산칼슘이 퇴적해 만들어진 암초다. 축의 산호초는 수많은 어류의 서식 환경을 제공할 뿐더러 단위 면적당 광합성 능력이 열대우림보다도 높다. 더없이 아름다운 관광거리도 제공한다.
한참 동안 물속에서 산호초와 물고기를 관찰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센터에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바비큐를 해먹고 야자수에서 바로 딴 코코넛 열매를 마셨다. 힘들 것 같은 무인도 체험이 즐겁기만 하다. 팬룩섬을 나와서 상어가 많이 서식한다는 ‘샤크’섬에도 잠시 들렀다. 준비해간 참치를 바다에 던지니 수족관에서만 보던 상어떼가 물살을 가르며 나타났다.
이곳에서 체험한 무인도의 바닷속도 흥미롭지만, 육지에는 야자수 외에도 열대밀림의 독특한 나무들이 자유분방하게 자라나고 있다. 일정을 따라 이동한 맹그로브 숲에서는 더욱 기괴한 모습의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허리까지 차는 바닷속에 정신없이 뻗어난 가근(헛뿌리)이 땅에 박혀 있다. 바닥에 끈끈한 흙과 맹그로브 가근이 섞여 걷기가 힘들었다. 맹그로브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펄 해안에서 자라는 열대나무다. 맹그로브는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잎으로 염분을 내보낸다. 잎을 따서 혓바닥에 갖다대니 짭짤한 소금기가 느껴졌다.
저녁에는 실험실에 모여 축의 물고기를 해부해봤다. 축은 열대해양성 기후로 연중 수온이 27~32℃로 따뜻하다. 또 산호초, 잘피밭, 맹그로브 숲처럼 어류들이 잘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에 1085종의 어류가 있는데 반해 축은 3600여 종의 어류가 있다. 해부한 물고기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빛깔의 비늘을 갖고 있는 것도 있었다. 실험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달빛이 유난히 밝다. 그리고 무수히 은 별들이 또렷하게 반짝인다. 서쪽을 향하는 센터 앞 하늘을 바라보니 큼지막한 백조자리가 보인다. 직녀성과 견우성을 이은 여름철 대삼각형이 쉽게 그려진다.
바닷속 형형색색의 세계
아침 일찍 일어나 센터 뒷산에 올랐다. 축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해군기지가 있던 곳이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축에 머물렀던 일본군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바닷속에도 전쟁 당시의 유해가 발견되기도 한다. 센터 뒷산에 있는 등대도 그때 세워진 곳이다. 우거진 수풀을 지나 20여 분 올라가니 하늘 위로 솟은 작은 등대가 나타났다. 검게 그을린 등대 안팎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마지막 해상일정으로 다이빙 체험에 도전했다. ‘스몰 아일랜드’섬 주변에 가서 보트를 정박시켰다. 미크로네시아는 말레이시아, 이집트와 더불어 세계 3대 스킨스쿠버다이빙 지역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산호초가 잘 발달된 미크로네시아의 물속 풍경은 으뜸이다. 무거운 산소통과 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교육을 받은대로 귀에 느껴지는 압력을 조정해가며 조금씩 내려갔다. 10m 정도 내려가니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말랑말랑한 산호가 살아서 움직인다. 그 사이로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이방인을 맞이한다. 그중에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물고기도 있었다.
센터로 돌아와서는 흑진주 양식을 체험했다. 살아있는 조개(흑접패)를 조금 벌려서, 생식소 안에 담수조개로 만든 핵(구슬)을 넣었다. 그리고 양식장으로 돌려보냈다. 만약 핵 삽입이 성공했으면 1년 뒤에는 진주를 얻을 수 있다. 흑진주는 지름 1cm 짜리가 보통 40~50만 원이 넘는다. 무지개빛 광채가 숨어 있는 오묘한 빛깔의 흑진주가 더욱 신비롭게 다가왔다. 실험을 끝내고 식당에 모여 이번 체험의 기념품을 직접 만들었다. 축에서 딴 코코넛 열매 껍질을 다듬어 양초를 만들었다. 축에서의 추억을 그림으로 그려넣었다.
시장, 학교, 축 원주민의 삶
머무는 내내 날씨가 맑다가 돌아오는 날이 되자, 하늘이 흐려지고 소나기가 퍼부었다. 축의 빗물은 매우 깨끗해서 마실 수 있다. 대체로 하루에 한번은 큰 비가 내리는 미크로네시아 주변 바다는 사실 태풍이 생기는 곳이다. 이곳 바다에서 자라난 태풍이 동아시아로 올라오면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알고 보면 축의 바다는 한반도와 그리 먼 곳만은 아니다.
차를 타고 나가 축의 시내를 둘러봤다. 시장에서는 각종 먹을거리와 전통 의상,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을 판다. 학교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시내로 나왔다. 최신 게임기나 입시학원이 없는 축의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갈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의 까만 피부와 생김새는 우리와 다르다. 센터 뒷산에서 간혹 마주친 원주민들은 한국 TV드라마에서 보고 익혔는지 “안녕하세요”, “사랑해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센터에서 배운 축의 고유어로 “라난님(Rananim,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라 웃으며 답했다. 어느새 우리도 적도의 햇볕에 타서 축 원주민 못지 않게 까맣다.
이제 조그마한 축 공항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오를 때다. 괌에서 다시 남은 시간을 보낸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것이다. 이 곳에서 보낸 날들이 벌써 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에메랄드 빛 바다는 영원히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
‘잘 있어라. 열대바다.’
신나는 괌 문화체험
우리의 목적지는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축(Chuuk)주다. 그곳에 있는 한·남태평양해양연구센터를 방문한다. 미크로네시아에 가려면 괌을 경유해야 한다. 괌에 도착하자 이미 한국에서 많이 떠나온 듯, 푹푹 찌는듯한 무더운 날씨가 우리를 반겼다. 처음 체험하는 괌의 모습은 몇몇 관광지를 통해 신선한 인상을 줬다. 바닷가를 둘러보다가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뛰어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사랑의 절벽에 갔다. 전설이 그려진 벽화를 보고 전망대에 올랐다. 뜨거운 햇살을 잠시 잊게 해주는 시원한 바람이 먼 바다에서부터 불어왔다.
‘피시아이(fish eye)’도 독특한 곳이었다. 바다로 향한 긴 다리를 건너가 나선형으로 이어진 계단을 뱅글뱅글 돌며 내려가니 마치 잠수함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창밖으로 물고기가 보였다. 미크로네시아에 가면 이런 물속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니 무척 기대된다.
오후가 되자 괌 공항에 가서 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약 2시간 후에 드디어 축에 도착했다. 활주로에서 몇 걸음만에 바로 실내로 연결되는 조그마한 공항, 괌보다 훨씬 습하고 더운 공기가 축의 첫인상이다. 한·남태평양연구센터의 연구원들이 마중 나와 체험단을 환영했다. 승합차를 타고 연구센터로 갔다. 축의 길은 모두 비포장도로다. 요 며칠 비가 와서 군데군데 큰 물웅덩이가 파였단다.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로 험난한 길을 30분 가량 달려 센터에 도착했다. 도시를 벗어난 이곳의 밤은 깜깜하고 적막하다. 일단 아침이 오길 기다려야겠다.
축에서 만난 에메랄드 빛 바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화창한 햇살에 절로 눈이 떠졌다. 짙푸른 하늘과 에메랄드 빛 바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키 큰 야자수까지 더하니 그림이 따로 없다. 비로소 축에 와 있는 게 실감났다. 아침을 먹고 센터를 둘러봤다. 센터는 리조트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객실을 포함해 배양장, 실험실, 다이빙 락커, 발전실 등 다양한 용도의 공간이 있다. 배양장에 가니 파란 수조마다 각종 바다생물이 자라고 있다. 한 수조에는 거북이 여러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거북을 안아봤다. 네 다리로 팔딱팔딱 바동거리니 기분이 이상했다.
➊ 상어를 직접 보기 위해 샤크섬에 들렀다.
➋ 스노클(숨대롱)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물속을 구경하는 스노클링.
➌ 야자수에서 딴 코코넛 열매로 목을 축였다.
➍ 무인도 수풀에는 독특한 모양의 나무와 밀림이 우거져 있다.
본격적인 바다 일정이 시작됐다. 이곳은 적도와 가까워서 햇볕이 무척 뜨겁다. 다들 선크림과 긴소매 옷, 챙 넓은 모자로 무장하고 나섰다. 보트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에 다다르니 ‘와’ 하는 탄성만 나왔다. 체험단이 도착한 곳은 ‘오사쿠라’라는 작은 무인도.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섬 주변의 낮은 물부터 적응하는 연습을 했다.
스노클링에 익숙해지자 잘피밭으로 이동했다. ‘밭’이라고 해서 잘피가 육지에 있는 식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닷속에서 자라는 조류의 일종이다. 우리가 다다른 곳은 수심이 3m에 달하는 잘피밭이었다. 잘피라 불리우는 매우 큰 조류 사이로 해삼이 보였다.
오후 5시쯤 되자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하루종일 맑은 날씨여서 노을이 멋지게 물들었다. 모두들 앞마당에 의자를 놓고 앉아 붉은 노을을 구경했다. 완전히 해가 떨어진 후에 다시 센터 앞에 모여 플랑크톤을 관찰했다. 바다를 향해 큰 조명을 비추니, 투명하던 바닷물이 뿌옇게 변했다. 플랑크톤이 모여든 것이다. 플랑크톤을 망으로 채집해 실험실로 이동했다.
플랑크톤은 바다 생태계의 근간이 된다. 양분이 많은 흙에서 식물이 잘 자라듯이, 플랑크톤이 많은 바다에서는 많은 바다생물이 살아간다. 축이 열대생물의 보물창고라 불리우는 이유는 풍부한 플랑크톤 때문이다. 센터에서는 식물 플랑크톤과 같은 미세조류를 배양해 바이오디젤을 개발하고 있다. 존재조차 몰랐던 플랑크톤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니 놀랍다.
무인도 생생 체험에 나서다
축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오늘 간 곳은 ‘팬룩’섬이다. 어제 스노클링을 열심히 연습한 덕에 이제는 바다에서 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물안경을 통해 바라본 바닷속은 더없이 맑고 투명하다. 형형색색의 산호와 물고기들이 보인다. 산호가 식물인 줄 알았는데, 식물의 기능을 가진 동물이라고 한다. 해파리, 말미잘과 같은 자포동물에 속하며, 동물 플랑크톤을 촉수로 잡아먹는다. 산호초는 산호의 분비물이나 유해인 탄산칼슘이 퇴적해 만들어진 암초다. 축의 산호초는 수많은 어류의 서식 환경을 제공할 뿐더러 단위 면적당 광합성 능력이 열대우림보다도 높다. 더없이 아름다운 관광거리도 제공한다.
한참 동안 물속에서 산호초와 물고기를 관찰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센터에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바비큐를 해먹고 야자수에서 바로 딴 코코넛 열매를 마셨다. 힘들 것 같은 무인도 체험이 즐겁기만 하다. 팬룩섬을 나와서 상어가 많이 서식한다는 ‘샤크’섬에도 잠시 들렀다. 준비해간 참치를 바다에 던지니 수족관에서만 보던 상어떼가 물살을 가르며 나타났다.
이곳에서 체험한 무인도의 바닷속도 흥미롭지만, 육지에는 야자수 외에도 열대밀림의 독특한 나무들이 자유분방하게 자라나고 있다. 일정을 따라 이동한 맹그로브 숲에서는 더욱 기괴한 모습의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허리까지 차는 바닷속에 정신없이 뻗어난 가근(헛뿌리)이 땅에 박혀 있다. 바닥에 끈끈한 흙과 맹그로브 가근이 섞여 걷기가 힘들었다. 맹그로브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펄 해안에서 자라는 열대나무다. 맹그로브는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잎으로 염분을 내보낸다. 잎을 따서 혓바닥에 갖다대니 짭짤한 소금기가 느껴졌다.
저녁에는 실험실에 모여 축의 물고기를 해부해봤다. 축은 열대해양성 기후로 연중 수온이 27~32℃로 따뜻하다. 또 산호초, 잘피밭, 맹그로브 숲처럼 어류들이 잘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에 1085종의 어류가 있는데 반해 축은 3600여 종의 어류가 있다. 해부한 물고기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빛깔의 비늘을 갖고 있는 것도 있었다. 실험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달빛이 유난히 밝다. 그리고 무수히 은 별들이 또렷하게 반짝인다. 서쪽을 향하는 센터 앞 하늘을 바라보니 큼지막한 백조자리가 보인다. 직녀성과 견우성을 이은 여름철 대삼각형이 쉽게 그려진다.
바닷속 형형색색의 세계
아침 일찍 일어나 센터 뒷산에 올랐다. 축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해군기지가 있던 곳이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축에 머물렀던 일본군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바닷속에도 전쟁 당시의 유해가 발견되기도 한다. 센터 뒷산에 있는 등대도 그때 세워진 곳이다. 우거진 수풀을 지나 20여 분 올라가니 하늘 위로 솟은 작은 등대가 나타났다. 검게 그을린 등대 안팎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마지막 해상일정으로 다이빙 체험에 도전했다. ‘스몰 아일랜드’섬 주변에 가서 보트를 정박시켰다. 미크로네시아는 말레이시아, 이집트와 더불어 세계 3대 스킨스쿠버다이빙 지역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산호초가 잘 발달된 미크로네시아의 물속 풍경은 으뜸이다. 무거운 산소통과 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교육을 받은대로 귀에 느껴지는 압력을 조정해가며 조금씩 내려갔다. 10m 정도 내려가니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말랑말랑한 산호가 살아서 움직인다. 그 사이로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이방인을 맞이한다. 그중에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물고기도 있었다.
센터로 돌아와서는 흑진주 양식을 체험했다. 살아있는 조개(흑접패)를 조금 벌려서, 생식소 안에 담수조개로 만든 핵(구슬)을 넣었다. 그리고 양식장으로 돌려보냈다. 만약 핵 삽입이 성공했으면 1년 뒤에는 진주를 얻을 수 있다. 흑진주는 지름 1cm 짜리가 보통 40~50만 원이 넘는다. 무지개빛 광채가 숨어 있는 오묘한 빛깔의 흑진주가 더욱 신비롭게 다가왔다. 실험을 끝내고 식당에 모여 이번 체험의 기념품을 직접 만들었다. 축에서 딴 코코넛 열매 껍질을 다듬어 양초를 만들었다. 축에서의 추억을 그림으로 그려넣었다.
시장, 학교, 축 원주민의 삶
머무는 내내 날씨가 맑다가 돌아오는 날이 되자, 하늘이 흐려지고 소나기가 퍼부었다. 축의 빗물은 매우 깨끗해서 마실 수 있다. 대체로 하루에 한번은 큰 비가 내리는 미크로네시아 주변 바다는 사실 태풍이 생기는 곳이다. 이곳 바다에서 자라난 태풍이 동아시아로 올라오면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알고 보면 축의 바다는 한반도와 그리 먼 곳만은 아니다.
차를 타고 나가 축의 시내를 둘러봤다. 시장에서는 각종 먹을거리와 전통 의상,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을 판다. 학교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시내로 나왔다. 최신 게임기나 입시학원이 없는 축의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갈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의 까만 피부와 생김새는 우리와 다르다. 센터 뒷산에서 간혹 마주친 원주민들은 한국 TV드라마에서 보고 익혔는지 “안녕하세요”, “사랑해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센터에서 배운 축의 고유어로 “라난님(Rananim,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라 웃으며 답했다. 어느새 우리도 적도의 햇볕에 타서 축 원주민 못지 않게 까맣다.
이제 조그마한 축 공항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오를 때다. 괌에서 다시 남은 시간을 보낸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것이다. 이 곳에서 보낸 날들이 벌써 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에메랄드 빛 바다는 영원히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
‘잘 있어라. 열대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