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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3면의 바다에서 들어오는 습기를 알지 못하면 강설량과 장마를 알기 힘들다. 새해부턴 배를 타고 바다로 직접 나가 위험 기상을 조기에 진단한다. 이때 타고 갈 배가 해양기상관측 전용선박 ‘기상1호’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건조되는 기상1호를 미리 만나보자.







“현재 위치 동경 130˚, 북위 20˚, 수온은 30.1℃이고 염분은 34.6 psu , 해류는 북서향류 초속 1.2m입니다.”



“오~케이! 자,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우리도 파도에 쓸려가겠어. 서둘러 돌아갑시다. 좌현 30˚로”



성난 파도 위에서 출렁대던 해양기상관측선 ‘기상1호’가 방향을 틀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쪽에서 몰려온 비구름이 어느새 뱃머리까지 성큼 다가와 있다. 오늘 기상1호는 우리나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태풍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남중국해까지 관측을 나왔다. 12시간 이내에 풍랑특보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곳에는 대부분의 선박들이 안전한 항구로 피항하고 있다. 500톤 규모의 기상1호는 파고 3m 내외에서도 운항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래서 위험기상현상이 발생하거나 이동이 예상되는 해역으로 미리 이동해 관측할 수 있다.



“혼합층이 꽤 깊고, 수온이 평년에 비해 높아졌군. 아무래도 우리나라 근해로 올라올 때쯤엔 태풍이 2급으로 성장할 수 있겠어. 자료는 모두 본부로 보내고 우리는 태풍의 예상 경로를 따라 다음 관측지로 이동합니다.” 선장의 말이 떨어지자 기상1호가 비구름을 뚫고 빠르게 헤쳐 나간다. 기상1호가 지나간 자리 위로 성난 파도가 출렁거렸다.





 치고 빠지는 해양기상관측선의 전략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위 상황이 우리나라 배 위에서 일어난다. 바로 해양과 대기 환경을 종합적으로 관측하는 해양기상관측선 ‘기상 1호’다. 위험기상을 조기에 감지하고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새해부터 해양기상관측선이 운영된다. 10여 가지의 첨단 관측 장비들을 채운 배가 하늘 위 20km의 대기 정보와 바닷속 3km의 해양 정보를 수집한다. 기상청이 현재 건조 중인 기상1호는 풍랑주의보(파도 높이가 3m 이상)에서도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최대 시속 33km의 속력으로 연속해서 25일 이상 약 7400km 거리를 항해할 수 있다. 위험기상 현상을 한반도 주변해역에서 장기간 연속 관측할 수 있고, 필요할 때는 북서태평양 해역까지 이동해 특별관측을 할 수 있다. 기상1호가 1년 중 바다 위에 떠 있는 시간은 200일 정도. 그래서 기상1호의 또 다른 별명은 ‘바다 위의 기상대’다.



우리나라는 해양에서의 기상관측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기상변화가 서해, 남해, 동해를 경유한 대기를 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수치예보에 사용할 만큼 쓸모 있는 관측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기상청에서 운영하는 해양기상관측망은 해양기상관측 부이 8개소와 등표 등 항로표지시설에 설치된 해양기상관측장비 9개소 등 주로 연안과 도서 지역에 있었다. 먼 바다에서 발달해 육상으로 이동해오는 위험기상현상을 조기에 감지할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기상1호가 등장하면 해양에서의 기상관측이 어떻게 바뀔까. 서장원 기상청 해양기상과장은 “고정된 장소에서 수동적으로 관측하던 방식에서 적극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따라 이동하며 관측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상1호의 관측 전략은 이름 하여 ‘타겟 관측’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태풍이 있으면 남중국해처럼 먼 바다에까지 나가 태풍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며 상태를 파악한다.



무엇이든 가까이 들여다봐야 실체를 알 수 있는 법. 태풍도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근접해서 현재의 모습을 관측해야 한다. 서 과장은 “기상1호는 태풍의 눈까지는 들어갈 순 없어도(사실 어떤 배도 그런 일은 하지 못한다!) 최대한 근접한 거리에서 해양과 기상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근해에 태풍이 접근했을 때 얻는 정보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관측값을 얻는 셈이다. 바닷물 속으로 직접 관측장비를 내려 수온을 측정하기 때문에 인공위성 값보다 오차가 적다. 천리안 기상위성도 수온을 측정하지만 구름이 있으면 관측이 불가능하고 표층온도만 측정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관측한 자료는 기상청 수치예보관리관실로 보내 수치모델에 입력한다. 입력값의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모델 결과의 오차가 줄어든다.



해양기상관측선 한 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모든 위험기상의 징후들을 파악할 수는 없다. 따라서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기상1호가 1년간 다닐 곳은 미리 정해 놓았다. 주로 계절에 따라 다르다. 이동성 저기압이 다니는 봄철에는 서해와 남해, 장마와 집중호우가 있는 여름에는 서해, 풍랑과 너울이 심한 가을에는 동해와 남해, 폭설과 풍랑이 있는 겨울에는 서해와 남해에 배치한다. 특히 하절기에는 집중호우, 장마 등을 조기에 감시하기 위해 서해상에 약 3개월간 고정 배치할 계획이다.









 25일마다 상륙, 멀미는 피할 수 없어



기상1호에는 항해, 기관, 갑판, 관측 네 부분의 임무를 맡은 20명이 기본적으로 탑승한다. 기상청은 최근 기상관측선 전문 항해를 위해 선장을 공채로 뽑았다. 500t 이상 1급 항해사 자격증을 갖고, 3년 이상 항해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관측 대원도 뽑을 예정이다. 3인의 관측 대원은 1일 3교대로 근무한다.



기상1호는 최대 25일 동안 해상에서 체류가 가능하다. 관측을 마친 배는 연안으로 돌아와 연료와 물을 보충한다. 특이하게도 배에서 쓴 물은 버리지 않고 모아 놓는다. 배의 균형을 잡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의 무게로 배를 적당히 가라앉혀야 배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다.



하지만 500t급이면 흔들림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유상진 기상청 해양기상과 기상사무관은 “떠 있는 부분보다 가라앉은 부분이 3~4배는 더 큰, 유조선이나 컨테이너선보다 작은 배들은 해상에서 흔들리게 돼 있다”며 “경우에 따라 멀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상1호는 관광 목적의 여객선이 아니다. 위험기상을 쫓아 일반 배들은 다니지 않는 날씨에도 항해를 할 수 있다. 과연 그런 일을 자원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서장원 해양기상과장은 “바다와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물론 지상보다 근무환경이 편하지는 않겠죠. 집에 자주 못 들어 가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지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근무하는 재미가 있고, 연구 주제도 풍부합니다. 해양과 기상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려는 사람에게 기상1호가 훌륭한 연구 환경을 제공할 겁니다.”









민간 선박도 기상 관측 참여해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4차 보고서에 따르면 위험 기상 증가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수온 상승 등 해양의 변화다. 세계적으로 해양을 감시하고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해양기상관측선을 이용해 해양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3000t급 관측선을 포함해 총 43척의 배를 해양 관측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 기상청도 480t급 배 3척과 1000t이 넘는 배 2척으로 고층 대기, 해상, 해양을 종합관측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기상1호로 이 대열에 참여한다.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첫 번째 관측선이지만 규모로 볼 때 아쉬움이 많다. 톤수로 보면 일본의 가장 작은 관측선과 비슷하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에서 위험기상이 여러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다면 기상1호1척으로는 부족하다. 기상청은 “해역마다 1척의 관측선이 운영될 수 있도록 추가로 관측선을 건조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상1호와 같은 배 한 척을 건조하는 데 130억 원 이상의 많은 예산이 들고 배의 규모가 커질수록 비용이 더 올라간다. 무엇보다 해양은 지구 전체 면적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넓은 면적을 모두 해양기상관측선으로 관리하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민간 선박을 해양기상관측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활용하는 ‘자원관측선박(VOS) 제도’는 해양 자료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이 제도는 먼 바다를 오가는 대형 상선이 기온, 바람, 기압, 파고 등을 측정해 각국의 기상청 또는 세계기상기구(WMO)에 보내주는 자발적인 프로그램이다. 일본은 현재 약 500대 정도가 VOS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33대로 매우 미비하다. 하루에도 대형 상선이 수십 대씩 드나드는 세계 11위의 무역국으로서 부끄러운 참여율이다. 민간과 대형 상선이 VOS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VOS 활성화로 기상1호와 함께 조기에 위험기상을 알리고 한 단계 진보한 예보 시스템을 구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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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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