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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가 보약이네

즐겁고 맛있는 보약 찾아 나선 ‘현대판 심청전’

#1 ‘건강한 색깔’ 넣은 기능성 과일
 



청이, 경기 수원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앞에 서 있다. ‘보약’을 찾으러 여기저기 헤맨 탓에 몹시 지친 표정. 터덜터덜 과학원 정문을 들어서는데, 양옆으로 커다란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나무마다 어린아이 머리만 한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청이   여기가 ‘빛 좋은 보약’이 있다는 곳이구나. 휴~, 지금껏 보약이 있다는 곳을 다

가봤지만 내가 찾는 건 하나도 없었어. 즐겁고 맛있는 보약은 없을까?



김 박사   그렇다면 잘 오셨습니다. 이곳에 있는 보약은 전혀 보약 같이 생기지 않았거

든요.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청이  (갸우뚱하며) 아, 정말요? 그런데 여기는 꼭 과수원 같네요.



김 박사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네, 그 이유는 바로 ‘빛 좋은 보약’이 이렇게 생겼

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소쿠리를 내민다) 어때요? 이름대로 색깔이 훌륭하죠?



청이  흑흑, 이번에도 잘못 찾아온 것 같군요. 박사님, 이것들은 그냥 과일이잖아요.

사과와 배, 자두, 포도…. 이런 것들은 저희 집에도 잔뜩 있다고요.



김 박사  이 과일들은 보통 과일이 아닙니다. 건강에 훨씬 좋답니다.



청이  (의심하는 눈으로) 박사님 말을 어떻게 믿죠?



김 박사  과일에 쓰여 있지 않습니까, ‘보약’이라고. 자세히 보세요!



청이, 과일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청이  어머나, 배는 배인데 껍질이 붉은 색이네요? 저는 처음엔 사과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이 과일은 자두인가요, 살구인가요?



김 박사  (웃으면서) 뭐, 대강 맞추셨습니다. 혹시 이 과일은 어떠세요? 놀라셨죠?



청이  (덤덤하게) 이건 그냥 사과 아닌가요?



김 박사  (사과를 쪼개며) 안쪽을 보세요. 이래도 그냥 사과 같아요?



청이  (사과 안을 보고 깜짝 놀란다) 헉, 속이 빨간 사과군요! 어디까지가 껍질이고 어디서부터 속인지 자세히 봐야겠네요. (자세히 살펴본다) 그런데 색깔이 특이하다고 과일이 보약이라는 말은 좀 이해가 안 가요. (주먹을 불끈 쥐고) 저는 과학동아 열혈독자로서 육종 기술을 이용하면 식물의 특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답니다. 지난해 8월호에 육종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고요.  

 

김 박사  하하, 우리는 색깔만 바꾼 게 아닙니다. 과일의 색 성분이 몸에 좋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요? 그 말은 과일의 색을 바꾸면 눈이 즐거워질 뿐 아니라 효능도 배로 늘어난다는 얘기입니다. 전문가들은 기능성 과일’이라고 불러요. 이제 ‘빛 좋은 개살구’는 잘못된 옛말이 됐죠.


 



#2 빨간색과 달콤한 맛, 동시에 잡아라



청이
  과일 색깔을 바꿔서 효능을 높인다고요?



김 박사  예, 그렇습니다. 토마토가 몸에 좋다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와인을 적당히 마시면 몸에 좋다는 이야기도요. 그게 다 토마토의 붉은 색과 포도의 보랏빛 덕분이거든요.   



청이  아~, 들은 적 있어요. 토마토의 붉은 빛은 라이코펜이라는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내죠?



김 박사  네, 사과와 딸기, 체리, 수박이 빨간 이유도 라이코펜 때문이랍니다. 라이코펜에는 항암효과와  항산화효과 , 노화방지효과가 있습니다. 암세포를 키우는 작은 단백질(IGF-1)을 억제시키거든요. 최근에는 라이코펜이 몸에 안 좋은 콜레스테롤(LDL)이 혈관 안에 쌓이거나 산화하는 현상을 방해해 심혈관질환을 예방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답니다.  



청이  그럼 겉과 속이 모두 빨간 토마토만 먹어도 되지 않나요?



김 박사  토마토만 먹으면 쉽게 질리지 않나요? 다른 영양분을 섭취하기도 어렵고요. 게다가 토마토를 소스로 만들어 각종 요리에 넣는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사과나 배를 더 많이 먹습니다. 문제는 사과 껍질을 깎아서 버리는 사람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항산화물질이 많이 함유된, 속까지 붉은 사과를 개발하고 있죠.



청이  아까 봤던 그 사과 말이에요?



김 박사  사과마다 껍질이 푸르거나 빨갛거나, 노란 것이 있듯이 원래 속이 빨간 품종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품종인 ‘레드필드’가 그런데요. 문제는 과실이 너무 작은데다 쓰고 시어서 아무도 먹지 않는답니다. 지난해 국내 과학자들은 이 사과와 달콤한 사과 ‘홍옥’ 사이에서 과육이 붉고도 단 맛이 나는 사과 ‘진홍’을 얻었죠.



청이  와~ 그렇군요. 교배는 어떻게 시키나요?



김 박사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은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옮겨서 수정을 시킵니다. 이런 방법으로 얻은 사과 중에는 빨간 속과 달콤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들도 있죠. 그것들을 골라내 키우면 우리가 원하는 품종을 얻을 수 있답니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개발한 ‘진홍’은 속이 불그스름한 정도예요. 스위스 과학자들이 개량한 ‘스위트라인’이나 지난 7월 영국 과학자들이 개량한 ‘레드러브’는 껍질만큼이나 속이 새빨갛답니다. 색이 붉으면 붉을수록 항산화물질이 풍부하다는 의미에요. 그만큼 항암효과도 뛰어나죠.


 
 



청이  정말 신기하네요. 그럼 껍질이 붉은 배는 어떤 배들을 교배시킨 건가요?   



김 박사  배 가운데 껍질이 붉은 품종과 달콤한 배를 교배하면 얻을 수 있죠. 미국에서는 ‘레드바틀릿’이라는 붉은 배를 생산하는 데 이미 성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붉은 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국산 배는 특히 물이 많고 달아서 맛있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까요.



청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를 먹을 때 껍질을 깎아 버리잖아요. 그럼 껍질이 아무리 빨개도 소용없는 것 아닌가요?



김 박사  그래서 과학자들은 껍질째 먹을 수 있는 배도 개발하고 있답니다. 일반 배에 비해 껍질이 얇고, 까슬까슬하거나 퍽퍽한 느낌이 없어야 하죠. 물론 과육처럼 껍질도 물기가 많아야 합니다. 우리 과학원에서도2007년 껍질째 먹는 배 ‘스위트스킨’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중국의 붉은 배 ‘대원홍’과 교배해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이  와~ 기대되네요. 붉은 배도 항산화물질이 들어 있으니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겠군요.



#3 서로 다른 품종끼리 교배도 가능해


 



청이  속이 빨간 사과와 껍질이 붉은 배라…. 그렇다면 빨간 과일이 몸에 좋은 건가요?



김 박사  빨간색 성분만이 아니라 노란색이나 보라색을 띠는 성분도 몸에 좋아요. 노란색을 내는 베타카로틴을 볼까요? 베타카로틴이 몸속에 들어오면 나중에 비타민A가 돼요. 비타민A는 면역력을 강화시켜 암이나 심장질환을 예방한답니다.



청이  노란색을 띠는 성분은 감이나 레몬, 오렌지, 망고 같은 과일에 많이 들어있겠죠?



김 박사  네, 그리고 보라색을 띠는 성분은 대표적으로 안토시아닌과 레스베라트롤이 있는데요. 안토시아닌은 로돕신을 만드는 과정을 도와 시력을 회복시키고, 레스베라트롤은 지방을 소화시키고 남은 노폐물이 혈관에 쌓이지 않도록 하거나 활성산소를 없애 암을 막아줍니다. 또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기로 유명하죠.  



청이  (고개 끄덕이며) 레스베라트롤은 많이 들어본 물질이에요. 저희 아버지가 저것을 핑계로 포도주를 많이 드시거든요. 휴우~.



김 박사  네, 이런 성분들은 포도에 많이 들어 있어요. 특히 과육보다는 껍질에 많이 들어 있답니다. 만약 껍질이 얇아 과육과 분리되지 않고, 씨가 없다면 포도 알을 통째로 먹어 레스베라트롤을 최대로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이미 2008년에 껍질째 먹을 수 있는 ‘타노 레드’ 품종과 씨가 없는 ‘루비 씨드레스’를 교배했고, 약 5년 뒤에는 열매를 수확할 예정입니다.



청이  그럼 원하는 과일이 열리는지 보려면 나무가 다 자라 열매를 맺을 때까지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김 박사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유전자에 ‘ 마커 ’를 달아주는 방법이 있거든요. 마커를 이용하면 유전자 검정을 통해 나중에 맺힐 과일이 원하는 특성을 가질지 미리 알 수 있습니다.



청이  아, 그렇군요. 혹시 다른 과일끼리 교배해 영양가를 배로 얻을 수도 있나요?



김 박사  아까 보여드린 과일 가운데 자두인지 살구인지 헷갈리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바로 ‘플럼코트(플루옷)’인데요. 서로 다른 두 과일, 즉 자두와 살구를 교배했죠. 자두의 붉은 껍질과 살구의 과육을 가졌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자두와 살구의 맛과 향이 동시에 난다는 거예요. 항산화작용과 항암작용을 하는 플라보노이드도 자두와 복숭아, 살구보다 플럼코트에 월등히 많이 들어 있죠.



청이  와~. 박사님 설명을 들으니 제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아요. 암을 예방할 수 있는 속 빨간 사과와 껍질이 붉은 배,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알맹이째 씹어 먹는 포도, 자두와 살구를 섞은 플럼코트까지! 훌륭한 ‘천연 보약’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 혹시, 한 개씩 다 가져가도 될까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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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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