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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길을 묻다] IT의 미래

1940년대 '애니악'이라는 컴퓨터가 처음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세계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은 정보기술(IT)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 뉴욕주식시장의 시가 총액 윗자리는 대부분 IT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등이 대표하는 한국시장 역시 다르지 않다.



IT는 다른 산업과 달리 변화 속도와 주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농업이 최소 수백 년 이상의 변혁기를 거쳤고, 산업혁명이 수십 년 단위로 변해왔던 데 비해, IT산업은 매년 어떻게 변할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2년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2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과 좀 더 극단적인 집적도 발전을 제시했던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의 ‘황의 법칙’은 IT기기가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는지 매년 어떻게 변할지 보여 준다.



IT산업과 IT기기의 가장 큰 특징은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IT산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모든 제품은 실생활과 직결된다. 제품이 개발되면 짧은 시간에 시장에 선보이고, 소비자들의 평가를 통해 시장을 주도하고, 아무리 첨단 기술이 들어간 제품이라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수천 개의 진공관으로 구성돼 건물 한 층으로도 모자랐던 초기 컴퓨터는 불과 반세기만에 개인용컴퓨터(PC)와 노트북 컴퓨터를 거쳐 울트라모바일까지 발전했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성능은 수천 배 이상 좋아졌다. 처음에는 100KB 수준이던 소형 USB 플래시메모리는 이제 수년 전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용량을 뛰어넘은 32GB 제품이 양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애플과 삼성의 전쟁으로 번져가고 있는 스마트폰 열풍은 IT의 미래에 대해 끝을 알 수 없는 기대를 갖게 한다. 10년 전 휴대전화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크고 불안정하던 휴대전화는 이제 성능이 노트북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정보의 양과 검색 기능만이 중요하던 인터넷 서비스는 이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이 대표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2차원 영상이 모두이던 게임 역시 3D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IT가 열어갈 미래는 어떤 것일까.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은 어떤 제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어떤 생활을 가져다 줄까. 국내외 IT전문가와 철학자, 관계자들의 비전을 통해 IT의 미래상을 살펴봤다.







불과 20년도 되지 않은 1991년 8월.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 표지에는 두 사람의 젊은이가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촌스러운 표정으로 계단에 앉아 있는 이들이 추후 어떤 위치에 오를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포천의 헤드라인은 ‘개인용컴퓨터(PC)의 미래’였고 부제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미래에 대해 말하다’였다.



플라톤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시절이 아닌 오늘날, 더 이상 한 사람이 세계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게이츠와 잡스가 보여준 지난 25년간의 행적은 놀랍다. '제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물론 두 사람이 만들어낸 MS와 애플이 승승장구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애플이 실적 부진으로 폐업 위기에 처했을 때 게이츠는 1억 5000만 달러를 들여 애플을 도왔다. 그 후 15년이 지난 올해 뉴욕증권시장에서 애플은 MS를 제치고 세계 IT기업 중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게이츠와 잡스가 보여준 신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매년 수십만 개의 벤처기업이 이들의 신화를 꿈꾸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25년간 보여준 IT의 힘은 향후 어떤 방식으로 발전할까.



IT의 발전은 우리 사회를 얼마나 더 바꿀까?



▶니컬라스 네크로폰테 MIT 교수는 “IT의 발전은 그 끝을 알 수 없고, 실제로 과거 산업 전체를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로 종이책과 종이신문이 전자책과 전자신문의 공격을 받고 있는 사례를 들었다. MIT 미디어랩을 창설하며 ‘디지털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그는 여러 차례 ‘종이의 종말’을 예언한바 있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빠르면 5년 이내에 종이책과 종이신문이 사라질 것”이라며 “실제로 일부 인터넷 서점에서는 전자책의 판매량이 종이책의 판매량을 넘어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5년이라는 근거에 대해서는 “과거 카메라용 필름이나 음반시장의 LP판과 CD가 지금처럼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기술의 발전이 시대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별로 놀라운 얘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소 이기태 소장은 “제각각 발전하던 IT가 하나로 융합되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면서 “바야흐로 융합의 시대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별개의 기술이 발전하던 과거와 달리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선과 무선, 통신과 방송 등이 결합하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통신 및 IT기기가 하나로 융합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소장은 “어떤 기술 하나를 여러 기기에 적용하는 방식은 단순한 기술 추가에서 멈추지 않고, MP3플레이어,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는 물론 가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기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종용 한국공학한림원장은 “현대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면서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2050년, 2100년과 같은 먼 미래의 일은 물론이고 5~10년 뒤의 일조차 확실하게 방향을 정하기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부터 2050년까지 일어날 변화는 산업혁명 후 이뤄진 모든 변화를 합친 것보다 더 클 가능성이 높다”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답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코펜하겐 미래학연구소장을 역임한 롤프 옌센 드림소사이어티 대표는 “IT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될지를 지켜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IT기술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만큼 일일이 다음 기술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보다는 긴 안목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옌센 대표는 “컴퓨터가 점차 작아지고, 어디서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가 됐지만 아직까지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면서 “다만 IT 기술이 과거처럼 기술 위주로 발전하게 될지는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더욱 많은 정보를 담는 것보다는 더 정확한 정보를 담는 것이 중요해지고, 길거나 용량이 큰 글보다는 오히려 더 짧은 글을 담는 서비스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으로만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한은경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IT기업이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한 교수가 거론한 대표적인 예가 1984년 1월 22일 방송된 전미 미식축구(NFL) 결승전 슈퍼볼 하프타임의 광고다. 당시 워싱턴 레드스킨스와 LA 레이더스가 벌인 경기 도중이었다. TV 화면에 거대한 흑백 화면 앞에 모여앉아 화면 속의 한 인물의 말에 빠져있는 군중의 모습이 비춰졌다. 이어 어디선가 커다란 망치를 든 한 여성이 힘차게 뛰어들어와 화면을 향해 망치를 집어 던졌다.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하나의 존재에 의해 모두가 통제받는 미래상을 그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이 광고 속의 여성이자 광고주가 바로 ‘애플’이었다.



화면 속의 ‘빅 브라더’는 당시 PC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며 ‘빅 블루’로 불리던 IBM을 상징한다. 한 교수는 “당시 애플이 IBM에 대항하기 위해 출시한 ‘맥킨토시’를 알리기 위해 만든 이 광고는 공식적으로는 딱 한 번만 방영됐지만 이 광고로 애플이 얻은 ‘혁신성’, ‘도전정신’, ‘소비자중심’의 이미지는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애플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애플이 지금은 빅브라더의 위치에 올랐다는 점이다. 올해 초 미국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은 1984년 슈퍼볼 광고를 풍자한 에피소드를 내보냈다. 주인공 리사 심슨이 아이팟의 애프터서비스를 받기 위해 용궁 속의 스티브 잡스를 찾아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잡스의 연설에 열광하는 모습이었다.







미래의 IT는 어떤 모습일까?



▶UN미래보고서 발간을 주도하고 있는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는 “IT는 사회전반적인 부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예측해야 한다”고 밝혔다. 입는 컴퓨터로 불리는 ‘웨어러블 컴퓨터’가 대표적이다. 웨어러블 컴퓨터는 단순히 IT 영역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박 대표의 지론이다. 웨어러블 컴퓨터를만들기 위해서는 섬유나 패션산업에서도 IT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결국 이는 IT가 미래에 개별 산업 전체를바꿀 수 있다는 근거라는 것이다.



▶휴머노이드 마루와 아라를 개발한 유범재 KIST 인지로봇연구단장은 IT의 미래에 대해 ‘너무나 많은 솔루션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기술이 미래를 주도하게 될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유 박사는 “IT기술이 접목된 로봇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하나의 시스템 안에 구현한 로봇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드웨어를 갖추고 네트워킹을 통해 작동과 정보를 책임지는 로봇일 수도 있다”면서 “두 가지 중에 어떤 쪽이 관심을 모으고 대세가 될지는 실제로 시도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홍구 피츠버그대 교수 겸 나노연구소장은 IT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과거 과학의 발전 방식과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IT는 페르마의 정리처럼 무언가가 확실히 해결이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던 전통적인 연구 방식과는 다르다”면서 “목표를 뚜렷하게 정하고 차례차례 진행하는 순차적인 절차가 별 의미가 없어졌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복잡한 기술 발전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IT의 미래를 살펴보는 데 결정적인 관전포인트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매진하는 것보다 개발된 제품이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면서 “애플의 아이팟이나 기존의 제품보다 기술적으로는 훨씬 뒤쳐진 아이팟 셔플 같은 제품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IT제품의 미래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미래의 IT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네그로폰테 MIT 교수는 “모두가 균등하게 IT의 혜택을 받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신조는 100달러 노트북 컴퓨터라는 비전을 통해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IT의 혜택이 세계 여러 나라 사이의 빈부격차나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별도로 적용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계급주의를 양산할뿐”이라며 “IT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이 보장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능성이 결정되는 시기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100달러 노트북은 세계 각국 기업과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고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정보를 균등하게 받을 수 있는 컴퓨터로, 네그로폰테 교수가 꿈꿔 오던 세상을 이뤄줄 수 있는 장비다. 실제로 100달러 노트북은 플라스틱과 값싼 패널로 만들어져 최소한의 기능은 충실하면서도 자가발전기를 갖추는 등 개도국의 사정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기술과 비전의 발전이 또 다른 차이를 낳고, 정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내는 것은 IT라는 산업이 만들어 낼 미래 중 가장 부정적인 모습”이라며 “세계 각국이 이런 부분에 더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예측분야 전문가인 미국 랜드연구소의 리처드 실버글릿 박사는 “시대가 처한 환경을 어떻게 분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느냐는 문제보다 환경에 적합한 기술을 개발하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실러글릿 박사는 “IT 전문가들은 일반인이 어떤 기술을 원하고 무엇을 쓰고 싶어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면서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친환경기술이나 의료기술과 같이 누구에게 언제나 꼭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IT의 미래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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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건형 과학칼럼니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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