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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사무엘 웨이스 박사의 성체 신경세포 생성 발견

〃어른의 뇌에서는 신경세포(뉴런)가 죽어갈 뿐 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지금까지도 상당수 사람들이 믿고 있는 이 도그마는 19세기 신경해부학자들의 관찰 결과를 토대로 한다. 뇌에서 기억이 ‘온전하게’ 보존되려면 신경세포와 그 연결망인 시냅스가 안정돼야 한다는 생각과 맞물려 이런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다. 게다가 뇌출혈이나 사고로 뇌나 척수의 신경세포가 망가질 경우 회복이 안 되는 현상(마비나 언어장애) 역시 이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1960년대 성인의 뇌세포도 새로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긴 했지만 이런 도그마를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1983년 다 자란 암컷 카나리아의 뇌에서 신경세포가 만들어지고 분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도그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류에서 신경생성(neurogenesis)이 일어난다면 사람이 속한 포유류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992년 캐나다 캘거리대 사무엘 웨이스교수팀은 마침내 생쥐의 뇌세포를 배양접시에서 분열시키는 데 성공했다.







과학 분야의 많은 획기적인 발견이 그랬듯이 웨이스 교수팀의 발견 역시 처음부터 의도한 결과는 아니었다. 1989년 웨이스 교수와 대학원생 브렌트 레이놀즈는 원래 표피성장인자(EGF)라는 생체분자가 생쥐 태아 뇌의 미분화 세포에 미치는 효과를 알아보기로 했다. 실험 결과 EGF는 배양접시 속의 태아 뇌세포가 분열해 신경세포와 교세포(신경계에서 신경세포를 지지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세포)로 분화하게 했다.



혹시나 해본 실험이 성공해



EGF는 조직배양시 세포가 생존을 유지하고 분열할 수 있게 해주는 물질로 쓰였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태아의 뇌에는 신경세포와 교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왠지 모를 ‘예감’에 똑같은 실험을 성체 생쥐의 뇌세포를 대상으로 해보기로 했다. “성체의 뇌에도 EGF 수용체가 있다”고 주장한 논문을 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성체 뇌세포에 EGF의 신호를 받는 수용체가 있다는 건 EGF가 어떤 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아니면 말고’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놀랍게도 태아 뇌세포 때와 비슷하게 성체 뇌세포가 분열해 신경세포와 교세포가 만들어지는 현상을 관찰했다. 웨이스 교수는 “믿을 수 없는 발견이었다. 내가 학생 때 배운 모든 지식에 도전하는 결과였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게 할지 난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고 연구자들은 확신 속에 논문을 ‘사이언스’에 투고했다.


 



물론 이들의 발견이 성체 생쥐의 뇌에서 신경세포가 생성됨을 입증한 건 아니다. 뇌에서 꺼낸 뇌세포에 고농도의 EGF를 넣어 배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이스 교수는 이런 결과가 뇌세포 덩어리에 포함돼 있는 줄기세포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그 뒤 신경줄기세포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연구가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성체 포유류의 뇌 속에서도 신경세포가 만들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푸는 ‘기초연구’는 미국 소크연구소의 프레드 게이지 박사팀과 미국 프린스턴대의 엘리자베스 굴드 박사팀이 떠맡았다. 1996년 게이지 박사팀은 성체 쥐의 치상회에서 신경생성이 일어남을 확인했다. 치상회는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고 있는 직인 해마의 한 부분으로, 이 결과는 신경세포가 만들어지는 게 기억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굴드박사팀은 1998년 사람과 좀 더 가까운 원숭이의 치상회에서도 신경세포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같은 해 게이지 박사팀은 마침내 사람의 치상회에서도 세포분열이 일어남을 확인해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했다. 게다가 평균나이 64세인 5명의 뇌에서 관찰한 결과였기 때문에 신경생성이 노인에게서도 일어난다는놀라운 사실을 알려줬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사람의 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까.



노인의 뇌에서도 신경세포 만들어져연구자들은 진단을 목적으로 브로모디옥시유리딘(BrdU)을 정맥에 투여한 암환자 가운데 사망한 사람의 뇌조직을 조사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BrdU는 DNA가 합성될 때 참여하는 뉴클레오시드 가운데 하나인 티미딘과 비슷한 분자다. 이 때문에 세포가 분열하는 과정에서 DNA가 복제될 때 티미딘 대신 DNA 사슬에 끼여 들어간다. 암세포의 경우 세포분열이 왕성하므로 DNA에 BrdU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BrdU의 항체를 처리했을 때 반응하는 세포가 많으면 암조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진단에 이용된다.



그런데 암환자의 뇌조직에서도 BrdU 항체가 반응하는 신경세포가 관찰됐다. 세포분열이 일어났다는 뜻이다.연구자들은 “이 결과는 사람의 해마가 평생동안 신경세포를 생성하는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한편 굴드 박사팀은 이듬해 원숭이의 대뇌 신피질에서도 신경생성이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있지만 아무튼 뇌에서 신경세포가 만들어진다는 건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



그런데 왜 어른이 돼서도 뇌세포는 분열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신경생성이 활발한 부분이 기억과 관련된 해마인 이유는 무엇일까. 주로 쥐를 대상으로 한 여러 실험은 해마의 신경생성이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시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만성적인 수면부족은 학습과 기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 경우 해마에서 신경생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상적인 수면을 확보할 경우 신경생성도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 아무튼 이 결과는 “하루 평균 6시간은 잤다”는 우등생들의 인터뷰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4당5락(4시간 자면 시험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신봉자들이 유념해봐야 할 내용이다.



한편 스트레스가 신경생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발견됐다. 만성적 스트레스는 해마의 신경생성 억제를 불러 결국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런데 해마에서 신경세포가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과 우울증이무슨 상관이 있을까.


 



미국 컬럼비아대 르네 헨 교수팀은 뇌에 X선을 쪼여 신경생성을 방해할 경우 항우울제를 먹어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는 항우울제가 신경생성을 촉진한다는 이전 연구 결과와도 부합하는 결과다. 연구자들은 새로 만들어진 해마의 ‘어린’ 신경세포가 해마와 가까이 있는 편도체(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뇌조직)의 활성을 억제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05년 케이지 박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 역시 무척 흥미롭다. 나이든 생쥐에게 운동을 시키자 학습능력이 향상됐는데 뇌를 조사해보니 해마에서 신경생성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운동이 근육세포 뿐 아니라 뇌세포도 늘리는 셈이다. 이런 결과 역시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관찰하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나이 들어서도계속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사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 모두 ‘정정한’ 경우가 많다.



나이 들어도 운동해야 하는 이유



또 단순한 환경에 홀로 놓아둔 생쥐의 경우 신경생성이 미미한 반면 다채로운 환경에서 동료들과 지낼 경우 신경생성이 촉진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퇴직한 후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경우 급격히 정신력도 쇠퇴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아무튼 이런 결과들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급증하고 있는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에 운동이나 사교생활이 중요한 치료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신경생성을 유도하는 약물을 써서 퇴행성 신경질환을 치료하려는 연구도 시작됐다. 미국 LA 캘리포니아대 연구자들은 최근 알로프레그나놀론이라는 스테로이드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동물의 인지능력을 회복시켜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알로프레그나놀론은 뇌에서 신경생성이 일어날 때 관여하는 물질이므로 신경생성을 통해 치매를 치료한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 물질이 치매를 예방하거나 늦추는 치료제로 쓰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1992년 세포배양을 통해 성체의 신경세포가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무엘 웨이스 교수는 현재까지도 신경줄기세포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보유한 특허만 30건이 넘고 그가 설립한 바이오벤처 스템셀테라뷰틱스 사는 뇌출혈을 비롯한 다양한 중추신경계 질환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그의 발견은 ‘신경세포는 생성되지 않는다’는 100년 된 도그마를 무너뜨렸을 뿐 아니라 미래 인류의 정신건강을 향상시키는 데 초석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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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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