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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으로 얼음이 가라앉네?

온도 따라 변신하는 괴기한 물


지천에 널린 물을 보고 신기해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은 과학자들이 그렇다. 물은 대단히 특이한 성질들로 가득한 신비로운 물질이다.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생화학자인 미국 하버드대의 로렌스 헨더슨 교수는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물의 기이한 특징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과 친한 여름, 특정한 온도에서 나타나는 물의 신비로움을 살펴보자.

수소 분자 2개와 산소 분자 1개가 만나면 물 분자 2개가 만들어지는 화학식이다. 그런데이 화학변화를 전후로 물질들의 어는점과 끓는점은 어떻게 달라질까. 어는점은 수소가 영하 259℃(14K)이고, 산소는 영하 219℃(54K)이다. 반면 두 기체가 만난 물의 어는점은0℃(273K)다. 끓는점은 수소가 영하 253℃(20K)이고, 산소는 영하 183℃(90K)다. 물은 이보다 훨씬 높은 100℃에서 끓는다.

이처럼 수소와 산소와 비교했을 때 물은 어는점과 끓는점 모두 월등히 높다. 물을 비슷한 구조를 가진 다른 분자와 비교해보자. 산소와 비슷하게 생긴 황(S)이 수소 원자 2개와 결합한 황화수소(H2S)는 어는점이 영하 82℃고, 끓는점은 영하 60℃밖에 안 된다. 주기율표의 주기성을 따랐다면, 물은 지금보다 어는점이 100℃ 정도, 끓는점은 150℃ 정도나 낮아야 한다.


왜 이렇게 다른 걸까. 물 분자 하나를 놓고 보면 V자 모양을 하고 있다. V자 아래는 산소 원자, V의 양팔은 두 개의 수소 원자가 있다. 이 V자 모양 때문에 물 분자는 전체적으로는 중성이지만 전자가 몰려 있는 V자 바닥의 산소 원자 쪽은 마이너스(-) 전하를, 양팔의 수소 원자 쪽은 플러스(+) 전하를 띤다. 이 때문에 물 분자는 주변의 다른 물 분자들과 결합할 수 있다. 하나의 물 분자에서 -를 띠는 산소 원자가 다른 물 분자의 +를 띠는 수소 원자와 붙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물 분자의 작용을 ‘수소결합’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물 전문가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화학자 리차드 세이칼리 교수는 이런 물 분자를 두고 “팔 두 개와 발 하나를 갖고 있다”고 표현한다. +를 띠는 수소 원자 두 개가 팔이고 -를 띠는 산소 원자가 발이다. 팔끼리, 다리끼리는 서로 잡을 수 없지만 팔은 다리를 붙잡을 수 있다.

수소결합은 높은 어는점과 끓는점뿐 아니라 밀도처럼 물만이 가진 신비로운 특징의 핵심적인 이유다. 수소결합을 하는 다른 물질도 어는점과 끓는점이 높다. 수소결합을 하는 물질로는 플루오린화수소(HF)와 암모니아(NH3)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과 비교해도 물은 어는점과 끓는점이 월등히 높다. 산소 원자 때문이다. 산소가 워낙 전자에 대한 욕심이 많아 다른 분자들보다 수소결합이 세다. 어는점과 끓는점이 이렇게 높은 덕분에 물은 지구상에서 고체, 액체, 기체 3가지 상태를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물질이다.

물의 신비라고 하면 우리가 몰랐던 뭔가 새로운 것이겠지 싶지만 사실은 전혀 반대다. 오히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점들이다. 두 번째 물의 특징은 물의 밀도가 4℃에서 가장 높다는 점이다.

보통 물질은 온도가 높아지면 부피가 팽창하고 밀도는 줄어든다. 온도가 떨어지면 부피는 줄어들고 밀도는 커진다. 4℃ 이상에서는 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온도가 4℃ 이하로 떨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4℃ 아래부터는 온도가 떨어지면 부피가 늘어난다. 결국 4℃는 물의 부피는 가장 작고 밀도는 가장 큰 온도다.단지 0∼4℃에서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물은 녹는점인 0℃ 아래로 떨어져도 얼지 않는 과포화 상태가 잘 된다. 이 경우에도 온도가 떨어지면 부피는 오히려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밀도는 떨어진다.


이 점은 수중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강이나 호수, 바다 속에서 생물이 살 수 있는 것은 물의 괴상한 성질 덕분이다. 우선 물의 이러한 성질은 바다나 호수의 깊은 곳까지 산소를 공급해준다. 바닷물의 표면이 차가워지면 밀도가 높아진 표면의 물은 아래로 내려간다. 아래의 따뜻하고 밀도가 낮은 물은 위로 올라온다. 덕분에 바깥과 맞닿아 산소를 많이 머금은 물이 깊은 곳까지 산소를 전달한다.

중요한 것은 4℃ 아래로 온도가 더 떨어지면서부터다. 4℃ 이하로 떨어지면 표면의 물은 오히려 밀도가 떨어진다. 때문에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표면에 머물려고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일 물이 4℃ 이하로 온도가 떨어져도 계속 밀도가 높아지면 차가운 물이 아래로 내려가 바깥의 찬기가 아래로 전달된다. 물속에 사는 생물들이 더 차가운 물 때문에 점점 살기가 어렵게 된다.


다행히도 4℃에서 물이 밀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가장 아래쪽은 4℃의 물이 차지하게 된다. 덕분에 영하 수십 도로 떨어지는 한겨울에도 호수나 바다의 바닥에는 얼지 않은 물이 고여 있어 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특이한 성질은 얼음의 밀도다. 대부분의 물질은 고체 상태가 액체 상태보다 밀도가 높다. 즉 액체에 고체를 넣으면 가라앉고 만다.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물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얼음이 물보다 가볍다는 사실을 안다. 물은 얼면 밀도가 오히려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낮아진다.

0℃의 얼음은 0℃의 물에 비해 부피가 무려 9%나 늘어난다. 압력을 가해 녹는점을 떨어뜨리면 물과 얼음의 부피 차는 더욱 벌어진다. 예를 들어 압력을 가해 어는점을 영하 20℃로 떨어뜨리면, 영하 20℃의 얼음은 영하 20℃의 물보다 부피가 무려 16.8%나 크다. 이렇게 얼음이 물보다 가벼운 덕분에 물과 공기가 맞닿는 곳에 얼음이 떠 있어 단열막이 생긴다. 외부의 찬기가 바다나 호수 아래로 유입되는 걸 막아 생명체들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다.

얼음이 물보다 밀도가 낮아서 생기는 특이한 자연현상도 있다. 겨울철 밖에 내놓은 물에서 송곳처럼 거꾸로 솟아있는 얼음, 아이스 스파이크(과학동아 2010년 1월호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의 비밀’ 참조)가 그 예다.

물에 가라앉는 얼음 종류가 더 많다

하지만 모든 얼음이 다 물보다 밀도가 낮은 건 아니다. 우리가 아는 얼음 말고도 여러 종류의 얼음이 있다. 얼음은 Ih부터 Ic, II, III, IV, V, IV, V… 등 모두 17가지가 있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얼음은 XV.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영하 143℃에서 무려 1
만 기압의 압력을 가해 만든 얼음이다.

우리가 잘 아는 얼음은 Ih이다. Ih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얼음으로, 물 분자가 육각구조를 이루고 있다. 육각구조의 얼음은 물보다 분자들 간의 빈 공간이 더 넓다. 그래서 얼음은 물보다 밀도가 낮아 물에 뜨는 것이다. 이름이 Ih인 이유는 육각(hexagon)구조의 첫 알파벳 h를 따온 것이다. Ih만 물에 뜨고, 나머지 얼음은 모두 물에 가라앉는다.

물과 수증기의 밀도가 크게 다른 것도 특이하다. 물은 비슷한 분자량이나 비슷한 분자구조를 가진 다른 물질과 비교했을 때 밀도가 꽤 높다. 반면 수증기 상태의 물은 하늘 높은 곳까지 잘 떠다닐 정도로 가볍다. 기압 상태에서 끓는점인 100℃에서 물이 수증기로 변할 때 부피는 무려 1604배로 늘어난다. 물의 부피가 이렇게 크게 늘어나는 덕분에 물을 끓여 수증기로 발전하는 증기기관이 탄생할 수 있었다.


무더위에 불쾌지수가 올라가면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낸다. 하지만 물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른 물질과 비교했을 때 물은 놀라울 정도로 열을 덜 받는다. 그 이유는 물의 비열용량이 큰 덕분이다. 비열용량은 어떤 물질의 온도를 1℃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이다. 비열용량이 크면 열을 가해도 쉽게 달아오르지 않는다. 물의 비열용량은 물질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 물처럼 수소결합을 하는 암모니아가 최고이고, 그 다음이 물이다. 25℃에서 물의 비열용량은 4.18J/gK다. 암모니아는 약간 더 높다.


물의 비열용량은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물질은 온도가 오를수록 비열용량도 점점 커진다. 하지만 물은 밀도가 4℃ 이하에서 정상이 아니듯 36℃ 이하에서 비열용량의 움직임이 거꾸로 간다. 즉 36℃ 이하가 되면 온도가 떨어질수록 비열용량이 커지는 것이다. 결국 36℃에서 물의 비열용량이 가장 낮다. 온도를 올리는데 가장 적은 에너지가 든다는 뜻이니 36℃에서 물은 가장 열을 잘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 보면 물은 사람을 닮은 것 같다.

왜 물은 36℃에서 비열용량이 가장 낮을까. 역시 수소결합 때문이다. 물은 수소결합 때문에 찌그러진 사면체 구조를 하고 한다. 하지만 수소결합은 일반적인 화학결합에 비해 10배나 약하다. 때문에 끊임없이 물 분자들이 결합됐다 깨졌다 한다. 어느 정도로 심하냐 하면 물의 수소결합은 1조분의 1초도 유지되지 않는다. 36℃ 이하에서 물은 열을 받으면 물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커지며 온도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수소결합이 깨진다. 때문에 물 분자가 쉽게 흥분하질 못한다. 하지만 36℃ 이상이 되면 물도 일반 액체와 비슷해진다. 이렇게 물의 비열용량이 큰 덕분에 지구는 온화한 기후를 유지할 수 있다.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도 쉽게 데워지거나 차가운 겨울이 되어도 쉽게 추워지지 않는 것이다. 비열이 크지 않았다면 지구는 급격한 기후변화를 겪어 지금처럼 다양한 생명체가 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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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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