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세상을 꿰뚫는 ‘촌철살인’ 정신

과학자는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하나의 논문으로 발표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은 과학 이론의 혁명적 전환을 이룬다. 아마도 현대 과학에서 가장 급속히 발전하고 많은 연구자가 참여하고 있는 연구 분야가 생물학, 특히 분자생물학 분야일 것이다. 분자생물학의 주 연구 대상은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핵산이라는 물질이다. 지금부터 약 60년 전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은 ‘네이처’에 DNA 이중나선 구조에 관한 짧은 논문을 하나 발표함으로써 현대 과학의 전기를 마련했다.

세상을 바꾼 혁명적인 글

1953년 4월 25일에 왓슨과 크릭이 발표한, 한 페이지를 겨우 넘은 이 논문은 그림 하나와 참고문헌 6개가 달려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후 인류의 과학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철학적 이해까지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물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E=mc2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처음 실린 논문은 겨우 세 쪽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과학자에게 글쓰기는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복잡한 장비 앞에서, 또는 컴퓨터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짜 ‘실험’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과학이나 수학 실력은 중요해도 글쓰기를 포함한 어문 실력은 그리 중요치 않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특히 중고등학생 시기에 그런 오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수학을 잘하지만 글쓰기가 서툰 학생들은 이과로 지원해 자연대나 공대로 진학하라고 추천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거꾸로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학생에게는 과학이나 수학에 관심이 있더라도 문과로 진학해 어문 계열을 공부하라고 충고하기 일쑤다.

글쓰기, 과학자도 예외 아니다

대학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국내 공대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을 보면,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90% 이상이 “그렇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글쓰기 훈련을 시킬 필요가 있는가”라는 추가 질문에 약 1/4만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과학자에게 글쓰기는 다른 과학 활동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능력이며 요구 조건이다. 연구 중심 대학 교수들의 주요 업무를 분석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공계 교수들이 하는 주 업무는 강의와 면담, 연구계획서와 보고서 작성, 실험과 조사, 논문 작성과 학회 발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업무 내용을 분석해 보면 절반 이상이 글 쓰는 일이다. 또 기초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뿐 아니라 실무에서 활동하는 엔지니어의 경우에도 글쓰기는 매우 중요한 업무다.

이공계 글은 무엇이 다른가

이처럼 이공계 글쓰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는 논문, 보고서 같은 전문적인 글을 포함해, 읽는 사람에게 정확한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글쓰기를 말한다. 잘 쓴 글이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같은 기준을 제시할 수 있지만, 특히 이공계 글에 필요한 조건으로 다음의 항목을 들 수 있다.

① 읽는 대상을 고려한 글

읽는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해야 한다. 독자의 눈높이와 관심사, 교육 정도, 글을 읽는 목적, 배경 지식에 맞춰 설명한 글이 좋은 글이다. 일반적으로이공계 글은 과학자가 읽을 것이라 단정 짓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학술 논문의 경우에는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소수의 전문가가 읽지만, 신문이나 잡지에 과학 관련 글을 게재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의무교육만 받은 대중이 읽기 때문에 평이한 용어와 비유를 사용해 설명해야 한다. 반대로 관련 전문가를 위한 글이라면 일반적인 서론은 줄이고 전문적인 용어를 통해 핵심 내용을 기술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 어떤 독자는 정보의 명확함에 관심이 있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글의 새로움에 집중하기도 한다. 같은 독자라도 글의 종류에 따라 읽는 목적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수가 논문을 읽을 때는 그 글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이 주목적이겠지만, 학생이 제출한 보고서를 읽을 때는 필자를 평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② 간략하고 명확한 문장

문장은 간략하고 명확하게 작성해야 한다. 글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문장을 길게 쓰면 수준 높은 글이 된다는 것이다. 인문학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전통과 맞물려서 이러한 오해가 생긴 듯도 싶다. 길게 문장을 쓰고 어려운 단어를 나열해야 권위가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좋은 글은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쓴 글이다. 글을 길고 복잡하게 쓰면 여러 문제점이 나타난다. 가장 큰 문제는 읽는 사람이 글의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전문용어나 과학자 사이에 통용되는 특수용어(jargon)가 많이 들어가는 이공계 글에서는 문장의 구조가 복잡하면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또 다른 문제로는 비문(非文)의 위험성을 들 수 있다. 문장이 복잡하고 긴 경우,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비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간략한 문장이 쓰기도 쉽고 정리하기도 좋다. 즉, 문장이나 문단을 간략하게 작성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을 명확하게 기술하는 좋은 방법이다. 수필이나 소설 같은 글에서는 하나의 단어가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공계 글은 하나의 단어, 특히 전문용어를 사용할 때는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정의해 사용하도록 한다. 꾸며주는 단어는 여러 변형된 표현을 사용해 글의 딱딱함을 줄일 수 있지만, 핵심어의 경우에는 이유 없이 단어를 바꿔 사용하면 안 된다.

③ 일관성 있는 논지

일관성 있는 논지가 드러나야 한다. 글의 처음에서 끝까지 특정 사안에 대한 자기의 주장을 일관되게 펴는 것이 중요하다. 이공계인이 작성하는 글의 대부분은 특정 현상을 정확히 기술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의 주장 또는 객관적 관점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글이다. 서론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결과가 갑자기 제시되거나, 이전에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이 말미에 등장한다면 논지의 일관성이 결여된 글이다. 좋은 이공계 글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장이 일관돼야 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다른 가능성을 부정하는 증거(실험 결과, 문헌조사 등)를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 글, 반전이나 암시의 내용이 담긴 글은 과학 글로 적절하지 못한 글이다.

④ 형식에 맞춘 글

형식에 잘 맞춘 글이어야 한다. 과학 논문이나, 연구 보고서와 같은 이공계 글은 형식이 대부분 정해져 있다. 과학 논문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서론(Introduction), 재료 및 방법(Materials and Methods), 결과(Results), 토의(Discussion)로 구성되는 ‘IMRAD(Introduction, Materials and methods, Results And Discussion)’ 형식이다. 일반적으로 여기에 참고문헌이 포함된다. 꼭 이 IMRAD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이공계 글은 관행적으로 형식에 맞추는 편이다. 따라서 주어진 분량과 형식에 맞춰 균형 있는 글을 작성해야 한다.

또 인문학적 글과 다른 이공계 글의 큰 특징은 그림이나 표, 삽화 같은 자료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즉 자세히 묘사하며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잘 정리된 그래프, 표, 개념도 등을 활용하면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있다. 따라서 좋은 글을 작성하려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그래프나 표를 적절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재능보다는 ‘노력’

글쓰기는 과학자를 포함해 이공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기술이자 의무다. 이공계인의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가가 되려면 재능을 타고나야 하지만, 이공계 글쓰기는 연습을 통해 개선하고 습득할 수 있다. 이공계 학생이나 종사자는 좋은 글을 쓰는 능력이 꾸준한 노력에 달려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강호정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