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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한스 셀리에 박사의 스트레스 현상 발견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현재 상태에 꼭 맞는 한 단어를 얘기해보라고 하면 아마도 아래의 단어가 1등을 차지하지 않을까.
스. 트. 레. 스. 출근 시간에 늦을까 봐 지하철 안에서 조급해할 때도, 시험을 앞두고 마음을 졸일 때도,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도 우리는 ‘스트레스’를 느낀다. 물론 이 단어는 사람에게만 쓰지는 않는다. 부부가 직장을 다녀 낮에 집에 아무도 없는 경우에는 개를 키워서는 안 된다. 왜? 개는 사교적인 동물이라 혼자 남으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선인장은 1주일에 한 번꼴로 물을 줘야 한다. 왜? 물을 자주 주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오늘날 일상용어가 돼버린 이 ‘스트레스’란 말의 기원은 1930년대 새로운 호르몬을 발견하려던 야심 찬 젊은 과학자의 어설픈 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실험 실패에서 영감 얻어

1907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이던 빈에서 태어난 한스 셀리에는 1929년 프라하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2년 뒤 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1년 미국 록펠러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1934년 캐나다 맥길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셀리에 교수는 당시 핫 토픽이었던 호르몬 연구, 즉 내분비학에 뛰어들었다.

마침 옆 실험실의 생화학자가 동물의 난소에서 어떤 물질을 분리했는데, 내분비학자였던 셀리에는 자신이 그 물질의 역할을 규명해보고자 했다. 그는 그 물질이 새로운 호르몬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매일 이 물질을 쥐에게 주사하며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쥐들의 부신(신장 바로 위에 붙어 있는 분비샘)이 커졌고 면역 조직은 위축된 데다 위에는 궤양이 생겼던 것이다.

자신이 새로운 여성 호르몬(난소 추출물이었으므로)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셀리에 교수는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추출물 대신 식염수를 주사한 대조군 실험을 병행해 난소 추출물이 정말 이런 변화를 일으킨다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사실 실망스럽게도) 대조군인 쥐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묽은 소금물 주사를 맞고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실험동물이 보인 변화가 난소 추출물과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두 집단이 공통으로 경험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쥐를 다루는 데 서툴렀던 셀리에 교수는 난소 추출물이나 식염수를 주사할 때마다 쥐들과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 일쑤였다. 쥐들은 그의 손을 빠져나갔고 실험실을 뒤집어놓다시피 했다. 또 꿈틀거리는 쥐에게 주사를 놓는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는 실험 과정에서 쥐들이 매일 이런 불쾌한 경험을 한 결과 위와 같은 신체 변화가 나타났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를 증명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한겨울에 쥐들을 연구소 건물 지붕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못 견디게 더운 보일러실에 두기도 했다. 또 일부러 상처를 낸 뒤 치료하기도 했다. 그의 예상대로 이렇게 시달린 쥐들 역시 비슷한 신체 변화를 보였다. 1936년 셀리에 교수는 자신의 발견을 과학저널 ‘네이처’에 한 페이지짜리 짤막한 논문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논문의 제목은 ‘다양한 유해 자극으로 생긴 증후군’으로 여기서 그는 “손상을 입히는 자극의 유형에 무관하게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난다”며 이를 ‘일반적응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 줄여서 GAS)’이라고 명명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셀리에 교수는 이 증상을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불렀다.


논문에서 셀리에 교수는 일반적응증후군이 세 단계에 걸쳐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최초의 자극을 받은 지 6~48시간 뒤에 나타나는 경보단계로 흉선과 비장, 임파선이 수축하고 체온이 떨어지며 소화기가 손상된다. 자극을 받는 시간이 48시간이 넘어가면 두번째로 저항단계로 들어서는데, 부신이 커지고 몸의 성장이 멈추고 생식선이 위축된다. 젖을 먹이는 동물은 젖 분비가 멈춘다. 몸의 자원을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데 투자하기 위해서다. 자극이 1~3개월 정도 지속되면 세 번째인 소진단계로 넘어가는데, 이때는 몸이 스트레스로 손상을 입어 궤양, 우울, 소화계 장애, 심혈관계 장애 등이 나타난다.

대중의 열정과 전문가의 냉정 사이

셀리에 교수의 논문은 즉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부정적인 현상들을 ‘스트레스’란 이름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전문가들은 그의 가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스트레스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며 평가절하했다. 영국 런던대 루셀 비너 교수는 한스 셀리에를 회고한 한 글에서 “그의 주장은 단순히 사적이고 직관적인 이유로 지지되거나 반대됐다”고 썼다.

학계의 거리두기와는 별도로 산업계는 셀리에 교수의 스트레스 이론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군대는 스트레스에 주목했는데, 군인들의 스트레스 관리가 군사작전 성공여부에 매우 중요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부상을 입은 군인들의 회복과정에서도 스트레스가 변수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임상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실 197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스트레스 연구자의 3분의 1 이상이 미군 소속 연구소에 근무했다.

개업의들 역시 진료에 스트레스 개념을 적극 도입했다. 셀리에 교수의 스트레스 가설은 심혈관질환과 류머티즘 같은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료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찾는 데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셀리에 교수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강연을 하면서 “건강과 행복의 비밀은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데 있다”며 “이 적응 과정에서 실패한 대가가 바로 질병과 불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내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런 주장에 관심을 보여 1971년부터 1976년까지 매년 ‘사회, 스트레스, 질병’이란 제목의 대형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학계에서도 본격적으로 스트레스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심리학 분야에서 적극적이었다. 또 스트레스 생리학에 대한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오늘날 스트레스 반응 메커니즘이 많이 밝혀졌다.

930년대 셀리에 교수가 발견한 현상은 ‘싸움 또는 도망반응’과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으로 알려진 일련의 스트레스 반응 과정으로 명확히 설명된다. 스트레스를 감지한 직후, 즉 경보단계에서 나타나는 ‘싸움 또는 도망 반응’은 자율신경의 교감신경이 활성화된 결과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이, 신경 말단에서는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된 결과다. 이런 호르몬은 심박수, 혈압, 호흡량을 증가시켜 몸을 민첩하게 만든다. 한편 스트레스를 받은 개체는 뇌의 시상하부에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CRH)’을 분비한다. CRH는 15초 만에 시상하부 아래에 있는 뇌하수체로 이동해 ‘부신피질자극호르몬(ACTH)’의 분비를 촉진한다. ACTH는 혈관을 타고 수분 내에 부신에 도착해 코티솔을 비롯한 일련의 호르몬(이를 통칭해 당질코르티코이드라고 부른다)을 분비하게 촉진한다. 당질코르티코이드는 몸 전체로 퍼져 다양한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한다.


셀리에 교수가 발견한 부신의 확대는 스트레스에 반응해 당질코르티코이드를 많이 만들어내기 위한 신체변화이고 면역조직이나 생식기관이 위축된 건 한정된 자원을 스트레스 반응에 집중하기 위한 몸의 선택이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난관에 부딪쳤을 때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면역력이 튼튼하거나 번식력이 왕성해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스트레스 반응은 위기에 처한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몸의 자원을 재배치하는 과정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가 심신의 건강을 위협할까.

스트레스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로버트 새폴스키 교수는 그의 저서 ‘스트레스: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2004년 3판 나옴)’에서 “지속적인 정신적 스트레스는 최근에 나타난 것으로, 대개는 인간과 그 밖의 사회적 영장류에만 한정된다”며 “우리는 단순히 생각만으로도 격렬하고 강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뇌가 실제 세계의 위험과 머릿속 상상의 위험을 구분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런데 현대인의 머릿속은 늘 이런저런 걱정거리로 편안할 날이 없다. 그 결과 셀리에 교수가 실험에서 보여줬듯이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우리 몸 곳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한스 셀리에 교수는 1982년 75세를 일기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사망했다. 그는 15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40여 권의 과학서적과 대중서적을 냈다. 1956년 출간한, 그의 대중서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인 ‘일상의 스트레스(The Stress of Life)’에서 그는 “과학자는 과학과 씨름해야 할 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인, 자신이 발견한 걸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그 자신은 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셈이다. 물론 오늘날 이 분야의 연구자가 아니면 한스 셀리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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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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