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합성세포, 인공생명체 시대 열었나

지난 5월 20일 미국 크레이그벤터연구소(JCVI)의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합성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해 인공생명체를 창조했다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JCVI-syn1.0’으로 명명된 합성세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이 기술이 생명과학 분야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최근 방한한 논문의 제1저자인 대니얼 깁슨 박사를 비롯해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Q1 합성세포는 인공생명체다?


이번 연구에 대해 많은 언론은 인류가 최초로 ‘인공생명체(artificial life)’를 창조했다며 대서특필했지만 사실 JCVI에서 만든 ‘합성세포(synthetic cell)’를 인공생명체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대다수는 ‘노(No)’라고 답한다. 저자들 역시 논문 어디에서도 인공생명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인공생명체란 말 그대로 무생물에서 만들어낸 생물이다. 미국 보스턴대 짐 콜린스 교수는 “언론은 흥분을 가라앉혀야 한다”며 “이들의 연구는 DNA를 합성했다는 의미에서 합성한 것이지 새로운 생명체를 합성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DNA 염기쌍 108만여 개로 이뤄진 박테리아의 게놈을 통째로 합성한 건 맞지만 이 합성게놈을 살아 있는 박테리아에 넣어 합성세포를 만들었다. 즉 이미 세포막이 완벽하게 세포를 감싸고 있고 각종 단백질과 영양소가 세포액을 채우고 있는 상태에서 합성게놈이 활동을 시작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갖춰진’ 조건에 합성게놈을 넣었으니 이게 작동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6월 13일부터 17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회 국제대사공학회에 참석차 방한한 JCVI의 대니얼 깁슨 박사(이번 논문의 제1저자)는 이런 의견에 대해 “물론 합성게놈뿐 아니라 세포를 이루는 모든 성분도 합성한 뒤 적당한 조건을 만들어줘 인공생명체로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지만 아직 먼 길”이라며 “사실 살아 있는 세포에 합성게놈을 넣어 합성세포를 만든 과정조차 매우 어렵고 그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깁슨 박사팀은 박테리아 가운데 가장 작은 게놈(약 58만 염기)을 갖고 있는마이코플라스마제니탈리움(Mycoplasma genitalium, 이하 M. 제니탈리움)의 인공게놈을 만든 뒤 이를 넣은 인공세포를 만들려고 했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2008년 M. 제니탈리움의 합성게놈을 만드는 데 성공해 ‘사이언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합성게놈을 먼 친척뻘인 마이코플라스마카프리콜룸(Mycoplasma capricolum, 이하 M. 카프리콜룸)의 세포에 넣어줘도 합성세포가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다만 M. 제니탈리움의 합성게놈이 M. 카프리콜룸의 세포 안에 존재하는 효소에 의해서 손상을 입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깁슨 박사팀은 M. 카프리콜룸과 가까운 친척인 마이코플라스마 마이코이데스(Mycoplasma mycoides, 이하 M. 마이코이데스)로 대상을 바꿨고 약 108만 염기인 M. 마이코이데스의 게놈을 합성해 M. 카프리콜룸의 세포에 집어넣어 합성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M. 카프리콜룸 게놈은 약 101만 염기로 이뤄져 있고 둘의 게놈은 서로 91.5%가 동일하다. 비유하자면 사람과 쥐의 차이 정도다.

Q2 합성게놈은 전부 합성됐나

연구자들은 합성게놈을 만들기 위해 먼저 M. 마이코이데스의 게놈을 해독했다. 그리고 이 순서대로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네 개의 염기를 이어 붙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무려 108만 개나 되는 염기를 중간에 끊어뜨리지도 않고 합성할 수 있었을까. 또 박테리아의 게놈은 목걸이처럼 생겼는데, 양 끝을 어떻게 이을 수 있었을까.

“기계가 합성게놈 자체를 만든 건 아닙니다. 순수하게 화학적으로 합성한 길이는 DNA 염기 50개 정도죠. 이 조각을 효소를 이용해 이어 붙여 약 1000개 정도 되는 길이로 만듭니다.”

DNA합성 서비스를 하는 생명공학회사 바이오니아 박한오 사장의 설명이다. JCVI의 경우 블루헤론이라는 DNA합성 회사에 염기 1080개 길이의 조각(이를 ‘카세트’라고 부른다)을 1078개 주문해 공급받았다. 이 가운데는 항생제 저항성을 갖는 유전자와 배양했을 때 파란색을 내는 유전자, 그리고 합성게놈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표식이 있는 조각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합성게놈의 염기서열이 M. 마이코이데스의 게놈과 똑같은 건 아니지만 유전자 부분은 100% 동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1078개 조각을 이어 붙여 목걸이처럼 생긴 박테리아의 게놈을 만들었을까.

“각 조각은 서로 이웃한 것끼리 끝 부분이 겹치게 설계돼 있습니다. 단세포 진핵생물인 효모의 세포 안에 이 조각을 넣어주면 효모는 자신의 게놈이 손상된 걸로 착각해 이를 복구하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킵니다. 그 결과 끝 부분이 겹치는 조각이 연결되면서 합성게놈이 완성된 것이죠.”

이 과정은 3단계로 진행됐는데, 먼저 카세트를 10개씩 효모에 집어넣어 염기 1만 80개 길이의 게놈 조각 109개를 얻었다. 다음으로 염기 1만 80개짜리를 10개씩 묶어 효모에 넣어 염기 10만 개의 게놈 조각 11개를 얻었다. 끝으로 이 11조각을 효모에 넣어 염기 108만 개의 합성게놈을 얻었다.

깁슨 박사팀이 2008년 개발한 이 방법은 합성게놈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염기가 수십만~수백만 개인 박테리아 게놈을 합성하는 일은 여전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합성게놈을 만드는 일 자체도 생명체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깁슨 박사는 “물론 그렇지만 합성게놈의 의미는 게놈의 염기서열을 사람이 디자인한 대로 합성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기술이 좀 더 발달하면 5~10년 뒤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합성게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Q3 합성세포, 어떻게 확인했나

합성게놈을 박테리아 세포에 집어넣어 합성세포를 만드는 과정은 ‘체세포핵이식’과 비슷하다. 체세포핵이식은 핵이 제거된 난자에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기술로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방식이다. 연구자들은 두 박테리아를 대상으로 게놈을 이식한 실험을 한 셈이다. 참고로 원핵생물인 박테리아는 핵이 없다.

체세포핵이식과의 차이는 박테리아의 게놈을 빼내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합성게놈을 집어넣었다는 점이다. 핵이 없다 보니 세포질에 퍼져 있는 염색체를 세포를 손상시키지 않은 채 빼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지붕 두 가족, 즉 한 세포에 두 개의 게놈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큰 문제는 없다. M. 카프리콜룸은 조건만 맞으면 수 시간 만에 세포분열을 하는데, 두 게놈 가운데 하나가 복제되고 세포가 갈라지기 시작할 때 게놈 숫자대로 쪼개진다. 따라서 세포 하나가 세 개로 갈라진다.

합성게놈에는 항생제 테트라사이클린을 분해하는 효소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따라서 테트라사이클린을 넣은 배지에 박테리아를 키우면 M. 카프리콜룸의 게놈이 들어 있는 세포는 죽고 합성게놈이 들어 있는 세포는 살아남는다. 물론 이때까지 세포에 들어 있는 단백질 대부분이 원래 게놈의 유전자가 발현돼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합성게놈이 있더라도 세포는 여전히 M. 카프리콜룸의 특징을 보인다. 그렇다면 세포의 구성분자까지 물갈이 되는 건 어느 시점에서부터일까.

마이코플라스마는 박테리아 중에서도 작은 종류로 크기가 약 0.5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이고 세포 하나의 질량은10-13g에 불과하다. 박테리아 10조 마리가 있어야 겨우 1g이다. 세포가 워낙 작다 보니 세포 하나에 들어 있는 총 단백질 숫자도 30만 개 남짓이다. 박테리아 하나가 20번 세포분열을 하면 약 100만 개(≒220)의 세포로 늘어나므로 이때쯤은 원래 세포에 있던 단백질은 세포 하나당 한 개꼴도 안 된다. 즉 30만 개 단백질 대부분이 합성게놈의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때가 되면 세포는 합성게놈의 원본인 M. 마이코이데스의 특징을 보인다.

합성게놈에는 특수한 배지에서 파란색을 띠게 하는 유전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콜로니(미생물 하나가 세포분열로 숫자가 늘어나 눈에 보이는 덩어리)의 색깔만 봐도 합성게놈이 있는지 다른 게놈인지 식별할 수 있다.




Q4 합성세포는 대사공학을 혁신시킬까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인공생명체를 만드는 여정에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도 의미가 있지만 친환경 바이오연료와 의약품 등 다양한 물질을 미생물이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혁신시킬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게놈을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으면 미생물 ‘공장’이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만들기가 훨씬 쉬울 거란 얘기다.

사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미생물의 대사과정을 이용해왔다. 예를 들어 효모(이스트)를 넣어 술을 빚는 건 녹말을 에탄올로 바꾸는 효모 본래의 대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효모가 셀룰로오스를 분해해 에탄올을 만들게 하거나 부탄올을 만들게 하는 건 효모의 대사과정을 변형시킨 결과다. 즉 효모에는 없는,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는 효소의 유전자를 효모에 집어넣거나 부탄올을 더 많이 만들도록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조작을 해야 한다. 이런 연구를 하는 분야를 대사공학(metabolic engineering)이라고 부른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교수는 “미생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주변 환경변화에 맞게 적응해왔다”며 “이런 결과물인 미생물 게놈을 두고 굳이 게놈 전체를 디자인해 합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합성세포를 만든 연구 자체는 대단하지만 이 연구가 대사공학에 미칠 영향은 당장은 그리 크지 않을 거란 얘기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약화학과 크리스토퍼 보이트 교수도 “개별 유전자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최적의 설계를 한 유전자 키트(특정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들의 모임)를 미생물에 도입해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생명체는 역동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는 길은 아직 멀다”고 말했다. 이미 염기서열이 알려진 게놈도 아직 그 작동방식을 제대로 모르는데, 사람이 완전히 새로 게놈을 설계한다는 건 아직 시기상조라는 설명이다.

미국 하버드대 유전학과 조지 처치 교수 역시 많은 유전자를 한꺼번에 조작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게놈 전체를 합성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고 있다. 처치 교수팀은 수십 개의 유전자를 게놈에서 원하는 위치에 손쉽게 끼워 넣을 수 있는 기법을 개발해 지난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처치 교수는 “고문서를 복사했다고 해서 고대 언어를 이해한 것은 아니다”라며 “DNA가 제대로 작동하게 도와주는 세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Q5 합성세포 기술은 위험한가

지난해 신종플루가 유행하자 백신회사들이 돈을 벌려고 신종 바이러스를 만들어 퍼뜨렸다는 괴담이 퍼졌다. 실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실 바이러스의 게놈이 합성된 건 이미 8년 전 일이다. 게놈 크기가 수천 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는 마음만 먹으면 신종플루 바이러스를 합성해 퍼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박테리아를 대상으로 한 인공세포 기술 역시 수년 뒤는 여러 실험실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탄저균처럼 인류에서 무시무시한 위협이 될 새로운 생명체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먼 얘기다. 그리고 굳이 게놈 전체를 합성하지 않고 몇몇 유전자를 넣고 빼거나 변형시키면 온순한 박테리아를 병원성으로바꿀 수도 있다.

한편 실험실에서 실수로 합성세포가 유출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JCVI 연구팀은 합성게놈에 특정한 염기서열로 된 표지(watermark)를 넣어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박테리아가 유출됐는지 여부를 즉각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런 걱정을 할 단계는 아니다. 이번 결과에서 박테리아 세포는 아무 게놈이나 받아들이지 않았고 게놈에 조금만 오류가 있어도(염기 100만 개 중에서 단 하나만 틀려도) 살아남지 못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마틴 푸쎈에거 교수는 “만일 합성세포가 자연생태계에 노출된다면 이들은 생태계에 적응된 적수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경쟁할 준비가 안된 합성세포가 패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이 기술에 대한 규제가 따라야겠지만 당장은 좀 더 융통성 있는 합성세포를 만드는 일이 먼저 아닐까.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