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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여곡절로 점철된 신약개발의 드라마

성기능 강화제 비아그라의 탄생과정

비아그라가 탄생하기까지 20여년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연구자들의 집념어린 노력은 물론이고 갖가지 우연과 웃지 못할 해프닝을 수없이 거친 후에야 하나의 신약이 세상에서 빛을 볼 수 있었다. 고혈압치료제에서 탈바꿈해 발기부전 치료제로 최종 개발된 비아그라의 탄생 드라마를 들여다보자.


비아그라를 개발한 연구원 중 한사람인 비락 박사가 쓴 비아그라 소개 책자.


‘바늘 구멍에 낙타 들어가기’ ‘심마니가 산삼 캐기’. 엄청난 노력과 행운이 따르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비유할 때 곧잘 쓰는 말이다. 새로운 약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바로 이런 비유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고지난’ 그 자체다. 수많은 과학적 탐구는 말할 것도 없고 생각치도 않던 우연과 행운, 그리고 좌절이 엎치락 뒤치락 해대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개발된 과정을 통해 신약이 개발되는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만 해도 발기부전을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발기부전이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게 통념이었다.

1980년대 초 이런 일반적인 믿음을 깨트린 ‘깜짝쇼’가 벌어졌다. 쇼를 연출한 화제의 주인공은 영국 의사 자일즈 브린들리였다. 그는 미국의 한 비뇨기학회 강연에서 “음경에 혈관 이완제(정확히 말해 혈관을 구성하는 평활근 이완제)를 주사해 발기부전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수백명의 청중은 그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브리들리는 이를 예상이나 한 듯 “20분 전에 고혈압치료제 페녹시벤자민을 주사했다”고 말하고는 그 자리에서 바지를 내려 발기한 음경을 보여주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임을 말해주는 브린들리의 일화는 비아그라의 개발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비아그라가 상품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이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였다. 1998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의 화이자사는 식품의약국(FDA)로부터 비아그라를 시판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이 긴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과감한 깜짝쇼

흔히 놀라거나 화가 났을 때 ‘혈압이 오른다’고 말한다. 신장 옆에 붙은 부신에서 정상보다 많은 호르몬 아드레날린이 분비된 탓이다. 아드레날린은 심장의 박동을 촉진하고 혈관을 수축시키는 기능을 가졌다. 심장에서 뿜어내는 피가 증가한 상태에서 혈관 구멍이 좁아지니 혈압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백명의 청중 앞에서 깜짝쇼를 벌인 브리들리가 사용한 페녹시벤자민은 바로 아드레날린의 작용을 차단하는 고혈압치료제다. 즉 심장 박동수를 줄이고 혈관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한가지 가설이 성립된다. 만일 페녹시벤자민과 같은 혈관 이완제를 음경에 직접 주사하면 그곳의 혈류량은 증가할 것이고, 그 결과 발기가 일어난다. 모든 신약 개발은 이와 같이 학문적으로 타당한 가설로부터 시작된다.

이제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적절한 ‘약물 후보’를 찾아야 한다. 흔히 약과 관련된 광고에서 ‘생약 성분’이나 ‘천연 추출’이란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자연의 생물에서 약물 성분을 얻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신약 개발에서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 대부분의 신약 성분은 실험실에서 화학적으로 합성된다. 즉 기존에 개발된 약물질의 구조를 약간 바꾸거나, 이미 화학적 구조가 알려진 인체의 생리물질과 유사한 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부작용이 심했던 진통제 살리실산의 구조를 바꾼 결과물이 우리에게 익숙한 아스피린이다. 또 고혈압치료제 페녹시벤자민은 1950년대 인체 호르몬 아드레날린의 구조를 살짝 바꾸어 만들었다. 페녹시벤자민은 몸 속에서 마치 아드레날린처럼 행세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드레날린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비아그라를 상품화시킨 화이자사는 발기부전 치료제의 약물 후보로 실데나필을 지목했다. 페녹시벤자민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혈관을 이완시키는 물질이었다. 그런데 화이자사가 처음부터 발기부전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실데나필의 원래 임무는 고혈압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신약개발의 마지막 관문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부작용 때문에 많은 신약후보 물질이 여기서 탈락하고 만다.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해 실데나필은 아무래도 고혈압 치료제로는 부적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막대한 연구비가 투자된 상황이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그냥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는 연구 성과를 ‘살리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이때 브리들리의 깜짝쇼에 관한 자료가 진지하게 검토되기 시작했다. 페녹시벤자민과 마찬가지로 실데나필이 성기의 혈관을 이완시켜 발기부전을 치료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1980년대 화이자 소속 영국 샌드위치 연구소는 세포 내 시클릭구아노신모노인산(cGMP)을 증가시키는 물질에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cGMP는 어떤 세포에서 작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콩팥에서는 근육을 이완시켜 소변이 배출되는 일을 돕는다. 또 혈액에서는 응고를 일으키는 주범인 혈소판의 기능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혈액이 혈관 내에서 뭉치지 않도록 만든다. 혈관에 작용하면 혈관을 이완시켜 혈압을 낮춘다.

화이자사는 cGMP가 혈압을 떨어뜨리는 기능에 주목했다. 만일 cGMP의 농도를 높이는 물질만 개발하면 훌륭한 고혈압 치료제가 탄생할 수 있지 않겠는가. cGMP를 분해시키는 효소(PDE)의 작용을 차단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화이자사는 수많은 혈관 가운데 먼저 심장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관심을 모았다. 관상동맥이 막히면 격렬한 통증을 유발하는 협심증이 발생한다. 만일 관상동맥 부위의 PDE 기능을 떨어뜨리는 물질을 찾으면 관상동맥이 확장될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개발된 약물이 바로 실데나필이었다.

남은 문제는 실데나필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보이는지, 그리고 부작용은 없는지 검사하는 일이었다. 동물 실험에서는 일단 합격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문제가 생겼다.

임상시험의 첫단계에서는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약이 투여된다. 그런데 시험 결과 협심증 치료제로 오래 전에 개발된 니트로글리세린에 비해 훨씬 작용이 약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심장 부위의 근육에는 PDE가 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2년 내약성 실험(최대 용량을 투여해 부작용을 관찰하는 실험)에서 흥미로운 ‘부작용’이 발견됐다. 8시간마다 50mg을 10일간 복용한 사람에게서 다른 부작용과 함께 성기가 발기된다는 점이 보고된 것이다.

화이자사는 연구 방향을 발기부전에 맞추기 시작했다. 특히 1991년 일산화질소(NO)가 발기를 일으키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점이 보고돼 연구를 고무시켰다. 일산화질소는 궁극적으로 cGMP의 생성을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cGMP의 분해를 막는 실데나필은 발기부전을 치료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 않겠는가.

1994년 5월 화이자사는 발기부전증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하루에 한차례 실데나필을 투여한 결과 10명에게서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소식은 비뇨기학회에 전해졌고, 의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이후 화이자사는 몇차례에 걸친 철저한 임상시험을 거쳐 1998년 3월 27일 마침내 식품의약국으로부터 비아그라의 상표명을 달고 신약허가를 얻었다.

비아그라는 신약개발의 과정에서 상당히 운이 좋은 사례로 통한다. 이미 같은 성분을 가지고 ‘협심증 치료제’로서 동물실험과 임상 첫단계 시험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실험 속도가 빨랐다. 신약개발의 경제성 측면에서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평할 정도다.


비아그라


효험 본 환자수 50% 정도

하지만 신약허가가 났다고 해서 만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의 위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1950년대 개발된 진정수면제 탈리도마이드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는 여성과학자 프랜시스 켈시가 실험 과정이 엉성했다는 점을 발견해 약으로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약으로 복용한 유럽과 일본의 산모들이 무려 1만여명의 기형아를 출산했다.

비아그라는 발기부전증 환자의 50%에서만 확실한 효과가 나타났다고 임상시험에서 보고됐다. 그런데도 만일 누군가 영리의 목적으로 ‘100% 효과를 보인다’고 내용을 부풀릴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다.

최근에는 비아그라를 복용한 환자 가운데 사망자까지 생겼다는 보도가 무성하다. 한국의 경우 약국에서 비아그라를 팔 때 ‘심순환계 질환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필수적이다. 고혈압이나 협심증 치료제를 복용중인 환자의 경우 비아그라를 먹으면 복합적인 혈압 저하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아그라가 망막에 도달하면 일시적인 시각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비아그라가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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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강건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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