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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책 남긴 역사 속 과학자

제임스 맥스웰의 전자기학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까지

흔히 과학자들의 능력은 실험실이나 현장에서만 발휘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그들의 진가는 글 속에서 더 빛난다. 과학자들에게 글이란 평생에 걸친 연구 그 자체이고, 연구를 알리는 좋은 수단이며, 용기와 신념의 표현이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과학자들이‘펜’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펜’으로 세상을 바꿔왔다.


맥스웰 방정식을 세상에 전한 책상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 2층 복도 한구석에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단아한 책상이 하나 놓여 있다.
이 책상의 주인은 제임스 맥스웰(James Clerk Maxwell,1831~1879). 캐번디시 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자, ‘맥스웰 방정식’이라는 방정식 4개로 전자기이론의 기초를 마련한 천재 물리학자다.

맥스웰의 책상은 나무 뼈대가 튼튼하고, 펜으로 종이를 부드럽게 눌러쓸 수 있도록 윗면은 초록색 가죽으로 마무리가 돼있다. 맥스웰은 과연 이 책상에 앉아 무슨 일을 했을까. 고단한 실험실에서 빠져나와 잠시 낮잠을 즐기거나 연구소의 중요한 결정 사항을 결재하기도 했겠지만, 펜을 꾹꾹 눌러가면서 자신이 발견한 세상의 비밀을 글로 옮기는 작업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을까.

맥스웰은 자신이 만든 전자기장 이론을 이용해 전기와 자기, 빛처럼 전혀 다르게 보이는 현상이 근본적으로 같은 현상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전기와 자기에 대한 저작집(전자기학)’에 물리학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자신의 생각이 수학적으로 어떻게 유도되는지, 식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에 대해 꼼꼼히 적었다. 그의 책은 동시대의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후대의 과학자들에게도 중요한 물리적 발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과학자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은 실험실에서, 혹은 현장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책상 앞에서 하는 활동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앞선 과학자들의 글을 읽고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글을 쓰는 작업은 연구 그 자체이다. 과거의 유명한 과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자신들의 ‘연구’를 하기 위해 ‘글’을 썼다.

미생물학을 탄생시킨 레이우엔훅의 편지

17세기의 현미경학자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 van Leeuwenhoek, 1632~1723)은 포목상이었다. 그는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딸에게 가게를 맡기고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라고 해봤자 가게 2층에 작은 자리를 마련해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포목상 시절 옷감의 재질을 검사하면서 렌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그는 본격적으로 주변의 모든 물건에 직접 깎은 렌즈를 들이댔다. 그의 현미경은 200~300배의 배율을 자랑했는데, 이는 200년은 지나야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의 열정은 아흔이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레이우엔훅은 자신의 현미경을 통해 인류 최초로 미생물의 ‘작은 세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델프트에 살았던 레이우엔훅은 상인으로 잔뼈가 굵었고 외국어는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열정적으로 편지에 써서 영국의 왕립학회에 알렸다. 친구들에게 부탁해 영어로 번역을 하고, 화가들을 고용해 관찰한 것을 그림으로 그려 덧붙이기도 했다.

당시 영국왕립학회는 서기였던 헨리 올덴버그를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 퍼져 있는 과학자들의 새로운 연구 내용을 편지로 주고받고 있었다. 잘 발달한 영국의 우편시스템이 근대 과학을 설립한 일등공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학자들은 아침 식사 전에 어김없이 도착하는 편지를 이용해 서로의 생각을 교환했다. 그중 하나가 레이우엔훅의 편지였다.

영국왕립학회 회원들은 레이우엔훅의 편지를 낭독하고 편지 내용에 대해 토론하면서 미생물학, 해부학, 생리학 같은 새로운 학문 분야를 열었다. 그가 편지를 쓰지 않았더라면, 또 영국왕립학회 회원들이 그의 글을 무시하고 읽지 않았더라면 레이우엔훅이라는 이름과 그의 작은 세상은 훨씬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20년간 수집한 자료로 쓴 다윈의 논문

1858년,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은 말레이시아에 있던 영국인 생물학자 알프레드 월러스한테서 온 편지를 읽고 경악했다. 자신이 수십 년간 생각하고 있던 자연선택의 핵심이 편지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월러스는 편지에서 정중하게 자신의 생각이 일리가 있는지, 또 일리가 있다면 논문으로 낼 수 있는지 상의하고 있었다. 그동안 자연선택의 비밀을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믿던 다윈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윈은 평생 지구상의 생명이 한 뿌리에서 시작했고, 다양한 생명은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의 증거 자료를 수집해왔다. 하지만 그는 굉장히 신중한 성격이었다. 22세 때 비글호를 타고 5년 동안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로, 무려 20여 년 동안 자료만 모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인을 고백하는 심정’이라고 할 정도로 자
신의 생각을 글로 써 세상에 내놓기를 주저했다. 그런데 너무 오랜 시간 망설이다가 월러스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된 것이다.

다윈은 결국 마음을 돌려 월러스와 함께 진화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다. 그는 또 논문을 발표한 지 1년 만인 1859년에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원래 구상으로는 세 권짜리 두툼한 책을 쓸 예정이었지만 다윈은 한 권짜리 축약본으로 책을 냈다.

다윈이 자신의 과학적 발견과 이론을 글로 쓰는 것을 오랜 세월 동안 망설인 이유는 그것의 사회적 파장이 너무나 클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한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증거와 자료들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내용이 혁명적이고 파괴적이나, 문체는 부드럽고 설득적이다. 책 내용 외의 부분에 대해 쓸데없이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다윈의 전략이 돋보인다.

유전자조작농산물(GMO)이나 지구온난화, 광우병처럼 과학은 때때로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건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오랜 세월 망설이다 말할 기회를 잃는 것은 어리석지만, 파급력이 큰 발견을 글로 세상에 알릴 때는 다윈처럼 신중하고 또 신중할 일이다. 과학자들이 쓴 글은 단순히 관찰한 사실을 보고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진화론과 같은 철학적인 의미까지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왓슨의 재치 있는 입담

DNA 이중나선구조를 규명해 노벨상을 받고 유명해진 제임스 왓슨(James Dewey Watson, 1928~ )이 얼마 전 수십 년간 봉직하던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의 의장직을 사임했다. 그가 자서전‘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에서 10년 또는 15년 뒤면 개인의 지능 차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쓴 내용에 대해 인터뷰를 하던 중, 인종 간의 DNA 차이에 대해 얘기하다가 그만“흑인을 고용해 본 사람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라는 실언을 했기 때문이다. 다윈이 너무 말을 아껴서 문제였다면 왓슨은 그 반대였던 셈이다.

왓슨은 ‘이중나선’을 쓸 때부터 솔직한 독설로 유명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연구한 DNA 구조에 대한 내용 외에도, DNA 구조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회고했다. 그 과정에서 X선 회절실험으로 결정적 증거를 제공했던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폄하했고 경쟁자들을 희화화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런 점들이 더 재미있었던지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왓슨처럼 재치 있는 이야기를 매개로 일반인들을 탐구의 과정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과학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과학자와 일반인 사이에 드리운 어려운 수식과 복잡한 기계라는 벽을 거두는 데는, 왓슨처럼 재치 있고 솔직한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과유불급, 재치가 지나쳐 필화로 번져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왓슨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더라도 탐구의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글쓰기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돌려보는 글(논문)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즘처럼 과학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상황에서는 연구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잘 설명하는 일이 진리를 탐구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단적인 예로 나로호 발사가 실패하면서 잃은 것들이 결국에는 모두 우리나라 우주 과학기술을 진보시키는 데 밑거름이 될 거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큰 예산이 들어가는 나로호 발사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불편한 진실 파헤치는 카슨의 펜

과학자에게는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용기가 없었다면 우리가 진실에 다가가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또 다윈이 신중하기만 하고 용기가 없었다면 진화론은 훨씬 뒤에 밝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DDT의 무분별한 살포를 막기 위해 과학계와 공학계에 맞서 펜을 든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의 용기는 눈길을 끈다.

1950년대 중반 DDT는 기적의 물질이었다. DDT는 병충해를 없애 농작물의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살충제로서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데 기여했다. 사람들은 DDT의 장점만 알고, 치명적인 단점은 알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이것을 남용했다. 그 결과 곤충을 죽이기 위해 뿌린 DDT가 새나 물고기를 오염시키고, 또 먹이 사슬을 거치면서 사람의 목숨까지도 위협하게 됐다.

이것을 보고 카슨은 자신의 책 ‘침묵의 봄’에 DDT 중독으로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봄이 와도 새들이 노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한다.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새들이 울지 않는 마을을 배경으로 DDT라는 유독한 화학물질이 어떤 피해를 가져왔는지, 과학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쓴 그의 글은 읽는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는다. 카슨의 ‘침묵의 봄’은 그 이후로 환경 운동이 시작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962년 카슨이 ‘침묵의 봄’을 처음 발간했을 때 미국 농무부를 비롯해 화학회사나 농장주인처럼 DDT로 큰 이득을 본 사람들은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서 카슨이 책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려 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진실을 거스르진 못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 자세한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카슨이 책에 적은 것보다 실상이 훨씬 더 참혹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카슨은 유방암으로 투병을 하면서도 과학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펜을 들었다.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적인 진실을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과학자들이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과학자의 용기 있는 글쓰기가 진실을 밝히고, 그 용기가 개인 또는 인류의 목숨을 지켜낸 경우는 역사적으로 꽤 많다.

베스트셀러가 전하는 세이건의 꿈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의 전공 분야는 태양계 행성이다. 그는 전파 망원경을 이용해 금성 표면의 온도가 500℃까지 높아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전까지는 금성의 표면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세이건은 TV시리즈였던 ‘코스모스’에 출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코스모스’라는 베스트셀러 책을쓴 것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그는 전문가답게 우주 현상에 대해 정확하게 서술하면서도, 틈틈이 신기한 사례를 곁들여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책에서 외계 생명체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세이건 덕분에, 존재하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존재를 알아내는 것이 당장에 아무런 쓰임새가 없는 ‘외계인 탐사 프로그램’이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코스모스’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과 사람들이 눈앞에 아무런 이득도 주지 않는 우주 탐사를 지지하는 것은 무슨 관계일까. 아마도 세이건의 글이 일반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우주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일 것이다. 책 속에 담긴 과학자들의 꿈과 그 꿈을 향한 열정은 읽는 사람에게도 쉽게 전염된다. 전염된 다른 과학자들은 그 꿈을 바탕으로 또 다른 성취를 이루고 전염된 예술가들은 새로운 상상력을 선보인다. 고달픈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과학자들의 꿈에 감염돼 하늘을 보면서 고단함을 잊는다. 과학자의 꿈이 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고, 그들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만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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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주일우 과학저술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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