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암은 발암유전자에 몇 단계에 걸친 변이가 일어나 긍극적으로 암세포를 만들게 되는 다단계 발암설로 설명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암은 5천년 전 이집트 미이라에서 발견된 뼈에 생긴 암으로 기록되고 있다. 1억3천만년 전에 살던 공룡에서도 암의 증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암의 기원은 그 보다 훨씬 이전일 것이다. 그러나 암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하고 치료를 위해 수술, 항암제, 방사선요법 등이 개발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현재의 의학기술로는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50% 정도가 완치를 기대할 수 있으나 각종 사망원인 중 암이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암발생 빈도가 높다. 한 사람이 일생을 사는 중 암에 걸릴 확률이 30% 이상이라는 통계 등을 고려할 때, 암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돼야 할 상황이다.
최근 20년 동안 생명과학분야의 발전은 괄목할만 했다. 이중 암에 대한 연구가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암 자체의 중요성과 더불어 암 연구가 곧 생명현상의 근본을 파헤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암 관련 과학자들의 1차적 관심은 암세포와 정상세포의 차이가 무엇이며, 이런 차이를 초래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암세포는 기본적으로 네가지의 특성을 지닌다. 첫째로 암세포는 하나의 정상세포에서 유래하며(clonality) 둘째로 정상적인 생체의 조절기능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성장하며(autonomy) 셋째로 암 발생 조직의 세포는 정상적인 세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며(anaplasia) 넷째로 궁극적으로는 다른 조직으로 침범하는 이른바 전이를 일으킨다(metastasis).
이와 같이 암세포의 악성 형질이 나타나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다가 쥐나 닭 같은 동물에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암을 발생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한 육종 바이러스(Rous sarcoma virus)가 닭에서 생기는 암의 일종인 육종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최초로 밝혀진 이후 암의 원인으로서의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계속됐다.
발암유전자는 정상세포에도 존재한다
1970년 그 육종바이러스(Rous sarcoma virus)의 유전자중에 src라는 발암유전자(oncogene)가 존재한다는 사살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1975년에는 비숍(Bishop)과 바머스(Varmus)가 src 발암유전자가 정상적인 세포에도 존재하는 유전자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로써 발암유전자의 근원이 정상세포에 있음이 증명됐고 두 사람은 이 공로로 1989년 노벨의학·생리학상을 수상했다. 그후 발암유전자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의 대가로 70 여가지에 이르는 많은 발암유전자가 밝혀졌다.
당초 예상했던 대로 바이러스가 암의 한 원인이라는 것은 증명됐으나 발암유전자중에는 바이러스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사람의 경우, 암의 원인으로서 바이러스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B형 간염바이러스나 파필로마바이러스(Papilloma virus)가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간암이나 자궁경부암과 같은 일부 암을 제외하면 당초의 예측보다는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암발생 사례가 적었다. 그 보다는 오히려 환경에 존재하는 발암물질들 때문에 세포의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고 이것이 더 많은 암의 원인일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이런 발암 유전자의 역할과 더불어 종양억제유전자(tumor suppresor gene)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종양억제유전자도 발암유전자와 같이 정상세포에 존재하면서 평시에는 암 발생을 억제하는 인체내의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하다가 이 기능이 상실되는 경우 암 발생에 기여하게 된다.
대부분의 암은 발암유전자와 종양억제유전자의 변이(mutation)가 5-8 단계에 걸쳐 일어나 궁극적으로 암세포를 만들게 되는 다단계 발암설(multistep carcinogenesis)로 설명되고 있다. 이런 다단계 변이의 원인으로는 유전적 소인, 담배, 오염된 공기에 존재하는 발암물질, 바이러스, 방사선조사, 자연발생적 변이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발암물질들이 유전자에 변화를 축적시킨 결과가 암의 발생으로 나타나므로 지금은 암을 유전자적 질환(genetic disease)으로 정의하고 있다.
암환자될 소지 큰 사람 찾아내
발암유전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정상세포에 존재하는 유전자가 어떻게 발암유전자로 작용해 암을 일으키게 되는가, 또 이들 발암유전자의 평상시의 기능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당연히 떠오르게 된다. 대부분의 발암유전자는 변이가 일어나기 전에는 세포의 정상적인 증식을 촉진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역할이 발암유전자의 정량적 혹은 정성적 변이로 인해 과도한 활성화 상태에 빠질 때 세포의 항상성(homeostasis)이 깨어지면서 암세포가 생겨나는 것이다. 발암유전자를 활성화하는 변화는 점돌연변이(point mutation), 염색체의 증폭(amplification)이나 전위(translocation) 등이 있다. 사람의 암조직에서 발암유전자의 변이를 연구한 보고에 따르면 ras 발암유전자는 특이한 부위에 점돌연변이를 일으키며, myc 발암유전자는 유전자의 수를 증폭시킴으로써 변이를 일으킨다고 한다.
발암유전자는 세포 내의 위치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발암유전자의 하나인 세포성장인자(growth factor)와 세포성장인자의 수용체(receptor)는 외부 환경과 세포가 접촉하는 1차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세포막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GTP 결합 단백질은 세포막내, 단백질 키나제(protein kinase)의 역할을 담당하는 일부 발암유전자는 원형질(cytoplsam)에 위치하며 핵단백질(nucleoprotein)들은 핵내에서 작용하게 된다(그림).
세포성장인자인 sis, hst 등은 지속적인 세포증식을 명령하는 신호를 보내어 암을 일으킨다. 세포성장인자의 수용체인 erbB, met, fms 등은 세포의 신호전달체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의 티로신(tyrosine), 세린(serine), 트레오닌(threonine)과 같은 아미노산을 인산화하는 키나제(kinase) 역할을 수행, '암세포의 증식을 지속시키라'는 신호를 세포내로 보내게 된다.
GTP 결합단백질인 H-ras, N-ras, K-ras 등은 세포의 정상적인 주기를 원활이 진행시키는데 필수적인 효소(GTPase)를 변이시켜 불필요한 증식(암)을 초래하게 된다. 원형질내 발암유전자로는 raf, mos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부활소의 역할을 수행, 암을 유발한다. 핵내 발암유전자로는 c-mys, c-fos, c-jun, 사이클린(cyclin) 등이 있다. 이들은 염색체에서 정상적인 세포증식이나 세포주기(cell cycle)에 관련된 유전자의 발현에 관계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쳐 암을 일으킨다.
여러 발암유전자들로 인해 생긴 암조직을 분석하면 발암유전자가 암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르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췌장암 환자의 암조직을 들여다 보면 K-ras 발암유전자의 약 90%가 변이돼 있으나 간암에서는 이 발암유전자의 변이를 찾기 어렵다. 이런 발암유전자의 변이와 특정 발암물질과의 연관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발암 원인마다 독특한 발암유전자의 변이를 보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수많은 발암유전자가 발견되고 이들이 사람의 암발생에 관여한다는 증거들도 계속 보고되고 있다. 실제 암환자의 예방이나 치료에 이 결과들을 응용하는 분야에서는 그동안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았으나 최근 이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암이 발병하기 이전에 발암유전자의 검색을 통해 발암 위험이 높은 사람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암과 관련된 유전자 중 발암유전자보다 종양억제유전자가 이 목적으로는 더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이는 발암유전자의 변이를 선천적으로 물려받았을 때는 제대로 출생하지 못하고 태아기에 사망하게 되지만 종양억제유전자의 경우 한 번의 변이를 겪어도 정상적으로 출생할 수 있기 때문(종양억제유전자는 두번 변이를 통해 불활화된다)이다.
유방암 대장암 등의 발생가능성을 알아보려면 BRCA1, BRCA2, MSH2/MLH1 등의 유전자를 미리 검색해 보는 것이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또 p53 종양억제유전자의 변이를 탐색하면 암발생 위험이 높은 사람을 미리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암관련 유전자들이 밝혀지면 유전자 은행을 통해 암의 위험도가 높은 사람을 골라내는 작업이 보편화되리라 예측된다. 그러나 이런 작업을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진전시키려면 사전에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한다.
암은 확진을 위해서는 조직검사를 통한 병리학적 진단이 매우 중요하다. 이 병리학적 진단이 애매한 경우도 있다. 이때는 발암유전자의 검색을 통해 발암유전자의 변이를 확인하는 것이 진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발암유전자의 검색은 장차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병변인 암전병변(preneoplastic lesion)의 조기 발견과 치료에도 이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종적인 발암유전자의 활용은 암환자의 치료에 응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ras 발암유전자를 이용해 만든 RAS 단백질은 암세포가 세포막에 붙어 계속적인 세포증식을 일으키는 과정을 차단함으로써 항암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 RAS 단백질은 현재 임상시험단계에 있다.
발암유전자 활성 억제하는 앤티센스
발암유전자의 중요한 이용처는 유전자 치료부문이다. 발암유전자가 활성화하면 암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발암유전자의 지나친 발현을 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이른바 앤티센스(antisense)를 투여하고 있다. 발암유전자에 부착되는 앤티센스는 발암유전자의 활성을 억제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폐암 유방암 등에서 K-ras, c-myc, c-fos에 대한 앤티센스를 이용한 유전자치료가 미국에서 승인받아 임상시험 단계에 있다.
최근 20여년 사이에 이뤄진 놀라운 생명과학의 발전은 암을 비롯한 난치병의 정복을 위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공동과제로 진행되고 있는 인간 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인간의 모든 유전자를 밝혀내기 위한 사업이다. 인간의 유전자가 낱낱이 드러나면 유전자적 질환에 대한 이해와 이를 이용한 예방 치료방법도 눈부신 발전을 하리라 생각된다. 또 발암유전자를 이용해 암을 정복하려는 노력도 결실을 보아 보다 확실한 임상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