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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성격으로 세상을 만난다

언젠가 지인의 초대를 받아 꽤 비싼 일식집에서 식사를 한 일이 있다. 옆 테이블에 앉은 한 중년 남성이 종업원에게 반찬 중에서 ‘나라스케’를 더 갖다달라고 했다. 그러자 종업원은 친절하고 공손하게 “아, 예, 나나스케요”라고 물었다. 그 순간 점잖게 차려입은 그 남자가 홀이 떠나갈 듯이 “나나스케가 뭐냐? 나라스케지”하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여전히 큰소리로 그 말의 어원까지 설명해 가면서 종업원을 야단쳤다.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무안해질 정도였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행동을 보고 사람들이 일식집에서 나오는 반찬의 어원까지 잘 아는 유식한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모두의 마음속은 한결같이 ‘성질 더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경우 대부분 ‘성질 더럽다’고 하지 ‘성격 나쁘다’고는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개 성격은 긍정적 표현에 많이 쓰고 성질은 부정적 표현에 많이 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성질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성격은 노력하면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필자가 상담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성격을 고칠 수 있는가’이다. 그때마다 나는 흔쾌히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사실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는 일어난 일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힘들어진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여기서 ‘그 일을 어떻게 보는가’가 바로 사람의 성격이다. 우린 자신의 성격에 따라 똑같은 사건에도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그 결과 행동도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성격은 단순히 한 사람의 특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세상과 어떻게 교감하고 관계를 맺는가와 관련이 있다. 대인관계에서 사람의 성격이 가장많이 드러난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의존적인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도와줄 것 같은 사람에게 순종적인 양상을 보인다. *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치외법권적인 예외를 적용한다. 아주 내성적인 사람은 세상과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어하면서도 거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자기가 먼저 관계맺기를 차단한다. 또 히스테리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향해 오도록 상대를 조종한다. 변심한 애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거짓으로 자살기도를 하는 경우가 그렇다.

* 자기애적 성격
나르시시즘과 자기애적 성격은 다르다. 나르시시즘이 인간 본연의 심리를 말한다면 자기애적 성격은 나르시시즘이 병적으로 커진 상태라고 보면 된다.


노력하면 성격 달라진다

독일 태생의 미국 정신분석학자 카렌 호나이는 개인이 대인관계를 맺는 방식에 따라 성격을 세 부류로 나눴다. 첫 번째가 사람에게 다가서는 타입으로 의존적인 성격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인간과 세상에서 멀어지는 타입’으로 회피적인 성격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반사회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인간과 세상에 반항하는 타입’이 있다.

임상에서도 성격은 크게 세 가지 타입으로 나타난다. A타입은 호나이의 첫 번째 타입과 연관되는 것으로 의존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의존적 관계가 잘 성립되지 못할 경우 우울증에 빠진다. B타입은 호나이의 세 번째 타입과 유사하며 반사회적 성향, 경계선, 히스테리, 자기애적 성격이 여기에 속한다. C타입은 호나이의 두 번째 타입과 관련이 있다. 회피적이고 심할 경우 정신분열증적인 성격을 보이며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히게 된다.

그렇다면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타고난 기질이나 성장과정에서 받은 영향과 습관, 교육, 사회적 환경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성격의 바탕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답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여러 타입의 성격들이 혼재해 있다. 다만 그중에서 자신을 좀 더 규정하는 틀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곧 자신을 대표하는 성격이 된다. 그리고 그 틀이 갖고 있는 단점이 고착화되면서 문제를 초래할 경우를 ‘성격장애’라고 말한다.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진 한 남자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어느 모임에서든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이 주목받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의 대화는 오로지 자기가 얼마나 뛰어난지에 집중한다. 그가 보기에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그가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핵심 신념은 “난 특별하므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만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특별함을 모른다면 그들은 무시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그와 같은 타입이 쓰는 핵심 전략은 ‘자신의 우월함을 보이는 것’ 하나에 집중된다. 돈과 명예, 지위와 미모, 특권들을 차지해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남들에게 보이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천만다행한 것은 그런 성격장애도 전문가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으로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방법은 자기가 스스로에게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 인간관계의 신념과 전략은 무엇이며 주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 단점과 장점은 무엇인지, 그중에서 어떤 면이 고착화돼 있는지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이해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성격이 달라진 자신과 만날 수 있다. 새로운 성격이라는 안경을 쓰면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 나아가 세상과의 관계가 새롭게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201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양창순신경정신과 원장, 대인관계 연구소 소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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