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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마샤 맥클린톡의 월경 동기화 현상 발견


과학저널 ‘네이처’는 1971년 1월 22일자에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학원생인 마샤 맥클린톡이 단독 저자로 이름을 올린 2쪽짜리 논문을 실었다. 웬만한 과학자들은 평생 한 번 논문을 싣기도 어렵다는 저널에 불과 23살짜리 대학원생이 논문을 실었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을까.

논문의 제목은 ‘월경 동기화와 억제’로 얼핏 봐서는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 본문을 읽어보면 여대 기숙사에 함께 지내는 여학생들의 월경주기가 같아지고(동기화) 한 주기의 기간이 길어진다(억제)는 내용이다. 이 논문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이런 현상의 배후에 인간 페로몬이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페로몬은 생물체가 몸 밖으로 내는 생체분자로, 같은 종일 경우 다른 개체의 생리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파브르 곤충기’를 보면 어느 날 파브르가 서재 책상 위에서 갓 부화한 암컷 산누에나방을 보고 철망으로 덮고 나갔다가 그날 밤에 되돌아와 수컷 나방 수백 마리가 서재를 뒤덮은 광경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파브르는 암컷 한 마리가 그 많은 수컷을 끌어들인 비밀을 밝히려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페터 칼손 박사와 독일 베른대 마틴 뤼셔 교수는 1959년 ‘네이처’에 발표한 짤막한 논문에서 ‘페로몬(pheromone)’이라는 신조어를 소개했다. 페로몬은 ‘옮기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pherein’과 ‘흥분시키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hormon’을 조합한 단어다. 이들은 논문에서 “혈액에 녹아 몸을 순환하는 호르몬과 달리 페로몬은 몸 밖으로 분비돼 개체 사이의 의사소통에 관여한다”고 설명했다. 파브르가 관찰한 불가사의한 현상은 암컷 나방이 분비한 페로몬 때문이었던 셈이다.

우연히 참석한 강연에서 실험 아이디어 얻어

1947년 태어난 마샤 맥클린톡은 1965년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여대인 웰즐리대에 입학했다. 이 대학은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다닌 학교라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하다. 1968년 여름 맥클린톡은 친구들과 한 컨퍼런스에 초대됐는데, 그곳에서 어떤 연구자가 암컷 쥐들을 함께 키우면 배란 시기가 같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참석자들은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페로몬이 관여할 거라고 얘기했다.

어깨너머로 얘기를 듣던 맥클린톡은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갑작스럽게 끼어든 여학생의 말에 당황했지만 곧 “자네가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라고 물었고 맥클린톡은 자신이 있는 기숙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전부 남자였던 과학자들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면 증거는 무가치하다”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4학년(미국은 가을 학기에 새 학년이 시작된다)이 된 맥클린톡은 졸업논문의 주제로 기숙사에 사는 여학생들의 월경 동기화 연구를 정하고 135명을 대상으로 상세한 기록을 시작한다. 9월 말에서 이듬해 4월 초까지 행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맥클린톡이 짐작했던 대로 여학생들 사이에서 월경 동조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학기가 시작돼 서로 만난 지 얼마 안 된 10월에 두 사람이 월경을 시작하는 시기의 평균 차이는 7~10일인 반면, 이듬해 3월에는 3~7일로 크게 줄어들었다.

또 다른 흥미로운 관찰은 남자와의 접촉 빈도수가 월경주기에 미치는 영향이다. 남자를 만나는 빈도가 일주일에 2회 이하인 여학생은 월경주기가 평균 30일인 데 비해 3회 이상인 경우는 28.5일로 나타났던 것. 보통 여성의 월경주기는 28일이므로 여자들끼리 지낸 결과 월경진행이 억제된 셈이다.

졸업 후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맥클린톡은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강력한 권고로 졸업논문을 정리해 ‘네이처’에 투고했다. 저명한 개미 연구가였던 윌슨 교수는 개미가 의사소통하는 수단인 페로몬에 관심을 두면서 맥클린톡의 연구를 알게 됐다. 맥클린톡은 논문에서 “이 현상의 배후에 있는 메커니즘이 페로몬 때문인지, (상대방의 월경주기에 대한) 의식 때문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과정 때문인지는 좀 더 연구해봐야 한다”고 쓰고 있다. 그럼에도 논문이 나간 뒤 대중매체들은 ‘인간 페로몬’이라는 자극적인 주제를 놓치지 않았고 이 연구결과는 ‘맥클린톡 효과(McClintock effect)’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인간 페로몬의 실체는 여전히 불확실

그 뒤 많은 사람들이 인간 페로몬 ‘사냥’에 뛰어들었고 인간 페로몬이 들어 있다는 향수가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 페로몬이 발견된 것은 아니었다. 페로몬 향수에 즐겨 쓰이는 ‘인간 페로몬’ 가운데 하나는 사실 ‘돼지 페로몬’인 안드로스테논(androstenone)이다. 안드로스테논은 수퇘지의 침에 고농도로 존재하는데, 돼지 농장에서 짝짓기 작업을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암컷 주변에 안드로스테논을 뿌려준다. 냄새를 맡은 암컷이 흥분해 짝짓기 포즈를 취하기 때문이다.

안드로스테논이 인간 페로몬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사람(남녀 모두)의 땀과 오줌에 이 물질이 미량으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증명할 만한 과학적인 실험결과는 거의 없다. 페로몬은 같은 종에만 작용하는 분자이기 때문에 돼지에서는 즉각적인 성적 행동을 유발하는 강력한 페로몬일지라도 사람에서는 별다른 작용을 하지 않을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은 안드로스테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개인에 따라 그 냄새를 역겨운 기름 냄새에서 은은한 꽃향기까지 다양하게 느낀다는 점이다.

인간 페로몬의 실체를 둘러싼 학계와 산업계의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첫 논문이 나간 지 27년이 지난 1998년 맥클린톡은 인간 페로몬의 존재를 강력히 뒷받침하는 두 번째 논문을 ‘네이처’에 실었다. 논문 제목도 ‘인간 페로몬에 의한 배란 조절’이다. 맥클린톡은 1976년부터 시카고대 심리학과에 재직했는데, 그동안 주로 쥐를 대상으로 페로몬 연구를 진행했다.

맥클린톡은 월경 동조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이런 현상이 일어나려면 두 가지 페로몬이 관여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하나는 주변 암컷의 월경주기를 단축시키는 작용을 하고 다른 하나는 연장시키는 작용을 해야 한다. 두 개체가 이 두 페로몬의 작용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월경 동기화가 일어난다는 것.

맥클린톡과 대학원생 캐슬린 스턴은 이 모델을 입증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고안했다. * 난포기의 여성 겨드랑이에 면 패드를 넣어 분비물질을 채집한 뒤 하루에 한 차례 참가자들의 윗입술에 문질러준 뒤 적어도 6시간은 씻지 않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윗입술에서 어떤 냄새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월경주기가 평균 1.7일 단축됐다.

다음으로 * 배란기의 여성에게서 얻은 분비물질로 똑같은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월경주기가 평균 1.4일 늘어났다. 두 가지 페로몬을 가정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와 동일한 패턴을 얻은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 연구는 배란 시기가 조절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교한 실험을 통해 인간 페로몬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 난포기, 배란기여성의 월경주기는 다섯 단계, 즉 난포기, 배란기, 황체기, 허혈기, 월경기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난포기는 자궁 내막이 두터워지고 난소에서 난포가 성숙하는 시기다. 배란기는 성숙한 난포가 난소에서 방출돼 나팔관으로 들어가는 시기다.

맥클린톡의 집요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인간 페론몬의 실체는 여전히 안개 속에 싸여 있다. 곤충 실험결과를 보면 페로몬 분자 몇 개만 있어도 작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생명체는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분석기기는 이런 농도의 물질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실험동물에게 하듯 살아 있는 사람을 페로몬에 대한 생리적, 분자생물학적 반응을 측정하기 위해 해부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주변 ‘정황’은 풍부한데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셈이다.

사실 인간 페로몬 후보물질이 없는 건 아니다. 현재 가장 강력한 후보는 ‘안드로스타디에논(androstadienone)’이란 분자이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물질로 남성의 땀(특히 겨드랑이)이나 침, 정액에 들어 있다. 이 물질은 여성 이성애자와 남성 동성애자에게만 효과를 보이는데, 기분을 좋게 하고 성적으로 고양시킨다는 연구결과가 2000년대 들어 여럿 나왔다.

2007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클레어 위아트 박사팀은 안드로스타디에논이 여성 침 속의 코티솔 수치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해 ‘신경과학저널’에 발표했다. 코티솔은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이다. 결국 이 실험은 인체에서 발견된 물질이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돼지 페로몬처럼 강력한 효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지는 못했다. 아무튼 최근 나오는 페로몬 향수 가운데 다수가 안드로스타디에논을 포함하고 있다.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천재 조향사 장 그르누이는 아름다운 소녀 25명을 살해해 그 피부에서 페로몬을 ‘추출’해 향수를 만들지만 결국 체포된다. 그르누이가 자신의 사형집행일에 향수병의 뚜껑을 열어 모여든 군중을 성적 광란 상태로 만드는 장면은 이 소설의 압권이다. 소설에서 그려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효과가 강력한 인간 페로몬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 덕에 인간 페로몬이 확실한 물증으로 밝혀진다면 맥클린톡의 선구적인 업적은 노벨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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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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