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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九雲夢)은 ‘홍길동전’과 함께 조선 중기의 소설 양식을 확립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불교 교리를 공부하던 성진은 우연히 마주친 여덟 선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속세로 추방당한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용맹과 재주, 늠름한 자태를 지닌 양소유로 환생해 여덟 명의 미인을 차례로 만나 사랑하게 된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던 양소유는 문득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한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양소유로 살았던 삶은 모두 성진이 꾼 꿈이었다. 인생의 덧없음이 한바탕 꿈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빛의 산란이 만들어낸 마술
앞에 인용한 구운몽의 두 단락에서는 고전 소설에서 복되고 상서로운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대표적 상징인‘오색 구름’이 묘사돼 있다. 고전 소설에서는 흔히 영웅적인 주인공이 태어나는 장면에서‘오색 구름이 영롱하다’는 표현이 나온다. 구운몽에서 오색 구름은 두 번 나타나는데, 첫 번째 단락에서는 양소유의 퉁소 소리가 아름답고 신묘하다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양소유가 헤어진 뒤 그리워하던 정경패와 재회하기 직전에 오색 구름이 나타나 앞으로 경사롭고 신비로운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한다. 채운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희귀한 현상인데다가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예로부터 큰 경사가 있을 징조라고 일컬어져 왔다.
오색 구름을 가리키는 다른 말로‘채운(彩雲)’이 있다. 채운은 태양 부근을 지나는 구름이 적색과 청록색을 띤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영어로는 glowing clouds(빛나는 구름) 또는 iride scent clouds(무지갯빛 구름)라 불리는 채운은 비가 내린 뒤 나타나는 무지개와 달리, 맑고 화창한 날에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채운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이유는 권층운이나 고적운, 권적운과 같이 높은 고도의 구름에서 작은 얼음 알갱이나 물방울과 같은 구름입자가 태양빛과 부딪혀 산란되기 때문이다. 구름 입자가 햇빛을 일관되게 산란시키면서 특유의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지는데, 관측자의 위치나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나타난다.
지난 3월 8일, 서울 상공에 약 30분간 무지갯빛이 선명한 채운(사진)이 나타나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채운은 아래쪽이 둥근 모양이고, 맨 위쪽이 보라색, 맨 아래쪽이 빨강색으로 마치 무지개가 거꾸로 뒤집힌 것처럼 보여 더 특별했다. 이 같은‘거꾸로 무지개’는 햇빛이 산란되거나 굴절되기 쉬운 남극과 북극 같은 고위도 지역에서는 가끔 발견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중위도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2009년 5월 서울, 2004년 4월 제주도 상공에도 채운이 나타나 햇무리를 동반한 크고 아름다운 빛을 뽐낸 적이 있다. 햇무리는 햇빛이 대기 속 수증기에 반사돼 해의 둘레에 둥글게 나타나는 빛의 테두리를 말한다. 햇무리는 권층운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으며, 달무리와 같은 원리로 생긴다. 최근 10년간 채운이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횟수는 총 4회인데, 채운을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들다는 말은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채운은 관측할 수 있는 장소가 한정돼 있으며 유지 시간이 30~40분 정도로 짧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상서로운 기운으로 여길 만큼 신비로운 자연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