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암흑시기가 끝나고 서양 문명을 다시금 꽃피운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이탈리아 북부 해안의 도시국가들은 모직물 공업을 중심으로 극심한 경쟁을 벌였다. 이들 국가는 자기네 나라의 모직물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름난 기술자를 영입하고 경쟁국의 기술을 알아내기 위해 염탐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기술자들도 자기만의 노하우가 알려질 경우 행여 몸값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기술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이처럼 기술을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의 암투가 극에 달하던 1474년 여러 도시국가 중 하나인 베니스 공화국은 새 제도를 발표했다. 새롭고 쓸 만한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누구도 그 기술을 베끼지 못하게 하는 독점권을 보장해준 것이다.
대신 기술이 새로운지, 또 쓸 만한지 평가를 내리기 위해 기술자는 자신의 기술을 알기 쉽게 설명해 공개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리고 베니스 공화국은 비밀스런 노하우를 만천하에 공개한 대가로 공개한 사람에게만 해당 기술로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는 권리를 줬다. 이는 오늘날 많은 발명가와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는 특허 제도가 탄생한 배경이다.
기술 공개, 중복 투자와 시간 낭비 막아
최근 세계 대다수 나라들이 운영하고 있는 특허제도는 창의적인 사람이 땀 흘려 개발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누군가 공개한 기술이나 시행착오를, 누구나 찾아볼 수 있게 해서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도록 하고, 비슷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다.
만일 태양전지를 연구하는 기술자가 자신의 기술을 숨기기에만 급급하다면, 결국 비슷한 수준의 태양전지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심지어는 다른 기술자의 연구실을 염탐하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술자 한 사람이 자신의 기술을 공개하면 다른 기술자들은 이를 보고 더 좋은 효율을 내는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다. 더 좋은 기술을 만드는 면에서나 중복 투자 방지 면에서 효과가 크다. 이 때문에 실제 특허를 낼 때는 자신이 아는 모든 노하우를 다른 사람도 보기 쉽게 그림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적어서 내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기술을 공개해버린다면 기술자 자신에겐 남는 게 없지 않을까. 특허제도는 응당 창의적 사람에게 세상에 기여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고 있다. 일단 공개된 기술이 정말 새롭고 유용한 것으로 판명된 경우 기술을 공개한 기술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권리를 준 것이다.
만일 누군가 기술을 베낀다면 정부가 직접 나서 감옥에 보내기도 하고, 사용료를 대신 받아내기도 한다. 땅 주인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놓은 땅문서(등기)가 있듯이, 새 기술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이름과 주소는 특허 등록원부에 기록된다. 특허권은 특허를 출원한 날로부터 20년만 유지된다. 이는 20년이 지난 기술은 신기술이라고 보기 힘들고, 그 정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처음 기술을 공개한 기술자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허가 출원된 지 20년이 훨씬 넘은 이태리타올과 종이컵은 지금은 누구나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똑같은 기술을 서로 다른 사람이 동시에 개발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누구에게 특허를 줘야 하는 걸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있다. 1876년 2월 14일 미국의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훗날 통신 혁명을 이끈 역사적인 전화 기술을 특허로 신청했다. 그로부터 2시간 뒤. 또 다른 미국의 발명가 엘리샤 그레이도 자신이 직접 발명한 전화 기술을 특허로 내게 된다. 같은 발명을 두고 한참을 고심을 하던 미국 특허청은 결국 먼저 특허를 신청한 벨에게 특허권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 덕분에 벨은 전화가 전 세계인의 필수품이 되면서 돈방석에 앉았지만, 그레이는 평생을 안타까움에 시달리면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레이 역시 위대한 발명가이지만 특허의 목적이 새로운 기술을 숨겨진 노하우로 남겨두지 않고 최대한 빨리 세상에 공개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하는 데 있는 만큼 그의 비극적 운명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발명 아이디어 있으면 서둘러 출원해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는 기술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사람이 낸 기술도 포함되지만, 자기가 세상에 내놓은 기술도 포함된다. 발명대회에 출품해서 세상에 공개된 아이디어나, 신문이나 TV에 소개된 아이디어는 특허 출원을 해도 거절될 수 있다. 자신이 낸 아이디어를 본인 스스로 직접 출품하거나 소개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아이디어가 완성되면 즉시 특허를 출원한 뒤 대회에 출품하거나 잡지에 소개하는 것이 좋다.
특허를 출원해서 등록하려면 법에서 정하고 있는 까다로운 요건을 만족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변리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하지만 며칠 안에 대회에 출품해야 하거나 불가피하게 아이디어를 공개할 필요가 있는 경우 임시로 직접 특허를 출원하는 방법도 있다. 무엇보다 특허명세서의 설명은 도면을 포함해서 가급적 알기 쉬워야 한다. 또 자신이 어떤 권리를 갖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써야 한다. 하지만 발명대회에 제출하는 발명설명서 수준의 설명만으로 충분히 효과적으로 특허를 출원할 수 있다.
변리사의 도움을 받으려면 특허사무소를 방문해 상담하면 된다. 비용이 부담되면 대한변리사회나 공익변리사 특허상담센터에서 무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대한변리사회(kpaa.or.kr/www/mp11.php)에서는 대한변리사회 소속 변리사 1인을 지정해 특허명세서를 작성하고 출원 절차까지 모두 무료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특허청 소속의 공익변리사 특허상담센터(www.pcc.or.kr)에서는 특허 명세서 무료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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