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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척 전파에서 노다지 캔다

3차원밀리미터파연구단

2006년 10월 3일 서해대교. 화물차가 앞서가던 다른 화물차와 부딪힌 뒤 차선을 가로지르며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뒤따라오던 차가 트럭에 부딪히면서 시작된 연쇄 추돌은 총 28대의 차가 부딪힌 뒤에야 끝났다.

사고를 당한 운전자들은 “앞차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이미 늦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도로공사가 밝힌 이날 서해대교의 가시거리는 60~80m. 안개 때문에 극히 짧아진 가시거리가 사고를 키운 원인이었다는 말이다.

제 2의 서해대교 사건을 막기 위해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서해대교에 끼는 안개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밀리미터파’가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전파에 정보를 담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무선통신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은 다루기 쉬운 낮은 진동수의 전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상용화된 AM라디오는 중파(0.3~3MHz)의 진폭을 변조해 정보를 싣지만, 좀더 나중에 나온 FM라디오는 초단파(30~300MHz)의 진동수를 변조해 정보를 싣는다. TV는 FM라디오가 개발된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진동수 대역 싸움을 벌였는데, 결국 승리해 FM라디오보다 조금 낮은 진동수의 초단파를 차지했다.

1990년대 등장한 휴대전화는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진동수보다 더 높은 진동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셀룰러 휴대전화는 0.8GHz, PCS 휴대전화는 1.8GHz의 진동수를 사용한다. 이렇게 무선통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기존에 주로 사용하던 진동수는 포화상태가 됐다. 그래서 더 높은 진동수의 전파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졌다.
 

밀리미터파로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탐침.


전파 고갈의 해법을 찾아라!

밀리미터파는 파장이 1~10mm이기 때문에 밀리미터파라고 부른다. 이를 진동수로 환산하면 30~300GHz가 된다. 밀리미터파는 출력을 높이기 어렵고, 공기 중의 수증기와 만나면 쉽게 출력이 줄어드는 성질이 있어 그동안 우주관측과 군사용 레이더 같은 특수한 경우에만 쓰였다. 출력을 높이기 위해 장비를 크게 만들어야 했고, 이에 따라 가격도 매우 비싸 상용화하기 어려웠다.

3차원 밀리미터파 연구단은 반도체칩을 사용해 작고 값싼 밀리미터파 송수신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전파 송수신 장치는 전자회로와 같은 능동소자와 안테나, 필터 같은 수동소자로 구성된다. 능동소자는 집적하기 쉽지만 안테나 같은 수동소자는 파장이 길수록 커져야만 하므로 집적하기 어렵다. 그러나 밀리미터파처럼 파장이 짧아지면 ‘3차원’으로 회로를 구성하는 ‘마이크로머시닝기술’을 사용해 반도체칩 형태로 집적할 수 있다. 연구단의 이름이 ‘3차원 밀리미터파 연구단’인 이유다.

밀리미터파의 상용화라는 면에서 연구단이 보유한 기술은 세계에서도 독보적이다. 연구단장인 서울대 권영우 교수는 “밀리미터파 기술은 무선통신 진동수가 더 높아져야할 때를 대비한 기반기술”이라며 “이를 사용하면 무궁무진한 분야에 응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송수신장치 실험은 다른 전파가 완전히 차단된 ‘전자파무향실’에서 실시한다.


안개를 뚫고 달리는 자동차 레이더

현재 밀리미터파가 가장 먼저 상용화된 분야는 자동차 레이더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의 고급차는 밀리미터파를 사용한 레이더가 장착돼 안전 운전을 돕는다. 밀리미터파 레이더가 미치는 반경은 주변 150m까지이며, 해상도가 높아 감지한 피사체가 차인지 도로 구조물인지, 내 차와 같은 차선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또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다. 안개가 짙게 끼거나 눈이 많이 내리면 운전자의 가시거리는 줄어들지만, 밀리미터파는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다.

자동차 레이더를 응용하면 재미있고 편리한 전자기기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꽉 막힌 시내에서 ‘스톱 앤 고’(Stop & Go)라는 운전시스템을 사용하면 운전자가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앞차를 따라간다. 밀리미터파는 정교한 해상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차를 놓치지 않고 추적할 수 있다. 모르는 길을 갈 때 안내하는 차를 쫓아가느라 애쓸 필요도 없다. 차만 지정해 두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동으로 따라간다.

밀리미터파는 앞으로 ‘개인용 근거리 무선통신’의 주된 수단으로 쓰일 전망이다. 현재 쓰이는 개인용 무선통신 블루투스는 대역폭이 좁고 속도가 느려 대용량 정보를 전달하는데 사용하기 어렵다. 밀리미터파를 사용하면 허리에 찬 고화질 DVD플레이어의 영상을 안경 안에 장착된 소형 디스플레이에서 재생할 수 있다. 권 교수는 “밀리미터파가 멀리까지 퍼지지 않는다는 점은 개인용 통신에서는 보안을 생각할 때 오히려 장점”이라며 “국내 대기업에서 밀리미터파를 이용한 전자제품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밀리미터파 송신기의 발전^우주관측과 군사용으로 쓰인 초기 밀리미터파 송신기(01)는 매우 크고 비쌌다. 그 뒤 여러 전자칩을 사용한 송신기(02)도 휴대하기 힘든 크기였지만, 시제품(03)을 거쳐 밀리미터파 송신에 필요한 모든 기능이 하나의 전자칩에 들어간 지능형 집적 송신기(04)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밀리미터파를 만들어 정보를 담고, 필터로 걸러 증폭하는 기능이 한 개 칩 위에 구현됐다.


암세포만 죽이는 밀리미터파

밀리미터파의 활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특정 진동수의 전자파는 특이한 성질을 갖는데, 물 분자를 진동시켜 열을 내는 전자레인지의 2450MHz 전자파가 대표적인 예다. 연구팀은 밀리미터파 중에서 이런 특이한 성질을 갖는 진동수가 없는지 조사하던 중 암세포에 반응하는 진동수를 찾아냈다.

암세포는 일반세포와 다른 구성성분을 갖고 있어 밀리미터파를 쪼였을 때 다르게 반응한다. 보통 암 판정을 할 때 쓰는 조직검사는 약 1주일 걸리지만, 밀리미터파를 이용하면 수술하는 도중에도 암이 전이됐는지 여부를 바로 알아낼 수 있다.

연구팀은 작년에 밀리미터파로 암을 진단할 뿐 아니라 암세포를 제거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밀리미터파는 피부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연구팀은 주사처럼 찔러 밀리미터파를 쏘는 탐침을 사용한다. 현재 쓰이는 저주파 치료기의 100분의 1 전력으로도 작동이 가능해 주변 세포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태울 수 있다. 연구팀은 사람의 유방암 세포를 주입한 생쥐의 암을 밀리미터파 탐침으로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암 진단과 치료용 밀리미터파 소형장비를 임상실험을 통해 상용화할 예정이다. 쓰임새 많은 밀리미터파의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패트리어트 미사일 레이더에도 쓰여

권영우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과정 중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와 마이크로미터파(마이크로미터, 1μm=${10}^{-6}$m)로 우주와 천체를 관측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권 교수는 “프로젝트의 일부로 밀리미터파를 송수신하는 반도체 칩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밀리미터파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나니 갈 수 있는 회사가 없었다. 마이크로미터파 연구를 필요로 하는 기업은 당시 군수업체뿐이었는데, 미국의 군수업체는 시민권이 있는 사람만 뽑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예상 외로 여러 군수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권 교수가 가진 기술과 경험이 군사 레이더 장비를 개발하는데 필수였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록웰사이언스센터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미사일을 요격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레이더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레이더는 바로 밀리미터파를 사용한다.

“그곳의 연구원들은 보안 등급에 따라 다른 색의 배지를 착용하고, 착용한 배지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구역도 제한됩니다. 그의 가족과 주변사람을 철저히 조사해 A, B, C로 등급을 나눈 거죠. 우습게도 전 창사 이래 첫 외국인이라 등급 외로 분류돼 흰색 배지를 차고 다녔어요.”
10년 전인 1996년 권 교수는 미국 생활을 마치고 모교인 서울대로 돌아왔다. 1999년 창의연구단에 선정되고, 올해 초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하기까지 그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학생들이 보는 권 교수는 어떤 사람일까.

연구단이 처음 생길 당시부터 함께 해 온 이상효씨(박사과정)는 권 교수를 공과 사가 분명해 딱딱해 보이지만 제자들을 동생처럼 여기는 형님 같은 분, 그리고 ‘탁월한 교육자’로 평가했다. 권 교수의 강의 과목은 가장 먼저 정원이 찰 정도로 인기가 많다. 해마다 실험실이 정해지는 봄이면 그의 명강의에 매료된 지원자가 줄을 잇는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 ‘학부 최우수 강의 교수상’도 수상했다. 그가 키운 제자들이 그의 뒤를 이어 어떤 과학자가 될지 기대된다.
 

밀리미터파를 송수신하는 반도체칩과 의료장비를 연구하는 3차원 밀리미터파 연구단의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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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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