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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미있는 과학은 진지하다

인터넷 과학매체 사이언스온

2월 9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독특한 형태의 인터넷 과학 매체가 창간됐다. ‘과학자와 기자가 함께 만드는 뉴스와 비평’이 이들이 내건 콘셉트. 과학을 단순 재미나 흥밋거리의 소재로만 다루려는 기존 매체와 선을 긋고 과학이 우리 시대 소중한 문화적 가치이자 지식 자산임을 독자들과 공유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한겨레신문 과학담당 기자들과 패기 넘치는 젊은 과학자, 만화를 그리는 의학자, 수다쟁이 아줌마들이 함께 만드는 ‘사이언스온(scienceon.hani.co.kr)’이 주인공이다.

부지런한 과학자, 수다쟁이 아줌마가 만드는 과학 저널리즘

‘과학자와 기자가 만드는 뉴스와 비평’을 모토로 내걸고 과학을 ‘홍보’하지 않고 보도하는 저널리즘을 추구하겠다는 사이언스온의 창간은 한국 과학저널리즘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광우병 사태’를 비롯해 ‘나로호 발사 실패’, ‘4대강 사업’처럼 과학과 사회가 맞닿은 접촉면이 넓어지고 있는 데 비해 과학 보도의 신뢰성이나 정확성은 점점 의심 받기 시작했다. 과학을 홍보 수단으로만 생각하면서 과학 보도에서 엄밀함은 사라지고, 선정적이고 단편적인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다양한 입장을 두루 전달하기보다는 일방통행식 보도 행태나 단순 흥밋거리 위주의 정보 제공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유전자재조합작물(GMO)이나 광우병 위험성 문제처럼 파급력이 큰 과학 현안이 사회적으로 꾸준한 시간을 갖고 논의되지 못한 채 급격히 수면 위로 올랐다가 가라앉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과학 언론들이 감시자 역할에 소홀해지고 있다는 지적은 해외에서도 나온다. 2009년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협회총회’에서는 과학적 신뢰성과 엄밀성을 떨어뜨리고 홍보 수단으로 전락한 과학 매체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국제 과학저널 ‘네이처’는 당시 특별판 사설을 통해 과학매체가 정부와 일부 과학자들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감시자(watchdog)’ 역할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한 오철우 한겨레신문 과학담당 기자가 과학자를 포함해 누구나 과학 글쓰기 주체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매체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즈음이다.

“정치부나 사회부처럼 기자 경력이나 명성을 바탕으로 해도 문제가 없지만 과학 분야는 신뢰성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무궁무진한 소재를 가진 과학에서 아무개 기자 이름을 달고 나가 봤자 의미가 없지요. 그래서 전문가 여러 명이 각자 블로그를 운영하는 방식의 블로그 연합체를 생각해냈어요.”

계속해서 전문가들을 가입시켜 전문적인 글을 생산하는 방식에선 이 생각은 맞았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운영진을 따로 둬야 하고, 무엇보다 과학 쪽에서 글쓰기 취미를 가진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지금의 웹진 형태로 축소됐지만 원래 취지는 가급적 그대로 살리려고 했다. 그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필진들을 만난 때도 지난해 초여름경이었다. 이공계 출신의 평범한 가정주부부터 연구원과 대학교수까지, 주로 30~40대로 이뤄진 젊은 필진 13명의 면면은 개성만점이다. 주요 필진 중 한 명인 이종필 건국대 물리학과 연구원은 “만남부터가 독특했다”며 웃는다.

“한 번은 한겨레신문에서 거대강입자가속기(LHC)와 초대칭성에 관한 글을 하나 청탁 받은 적이 있어요. 글을 써서 보냈는데, 너무 어렵고 난해했는지 몇 번이나 글이 오고 갔습니다. 너무 어려웠는지 결국 실리지는 않았어요. 그 뒤에 생각해보니 왠지 글쓰기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이 연구원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과학 분야에서 전문가 글쓰기의 중요성을 새삼 체감하게 됐다고 했다.

과학의 참 재미에 도전

사이언스온은 필진 구성부터가 하나의 실험이다. 각자 기자, 박사, 교수, 아줌마라는 나름의 직업적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사이언스온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필진이다. 2~3주에 한 차례씩 각자 자신의 영역과 관심 분야에서 쓴 기사를 보내면 편집 담당이 약간 손질하고(거의 그대로) 사이트에 올린다. 기사 비중에 따라 톱기사, 서브기사, 일반기사로 나누는 기존 매체들처럼 임의로 경중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만큼 각 분야를 맡고 있는 필진의 전문성과 비평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뉴스와 기획 기사의 발굴은 직업 기자들이 맡고 있다. 교수나 학자들에게 1주일에 한두 번 지면을 할애하는 수준인 신문이나 다른 인터넷 매체와는 운영 방식 자체가 다르다. 현직 과학자와 연구자로 활동하는 7명의 전문 필진이 만드는 지식 창고는 선정성을 배격하는 편집 방침을 뚜렷이 대변한다. 과학기술정책학으로 학위를 받은 박상욱 박사의 ‘과학자 vs. 과학자’ 코너는 서로 관점이 다른 사회과학자와 자연과학자의 가상 대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패권주의와 과학 만능 풍토에 경종을 제시한다.

또한 김우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원은 초파리 연구에서 시작된 현대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의 탄생 과정을 짚어낸다. 특히 현대물리학에 문외한인 직장인에게 난해한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이종필 연구원의 ‘샐러리맨 전 차장이 아인슈타인이 되기까지’와 고대 엔지니어 입장에서 신화를 탐색하는 맹성렬 우석대 교수의 ‘피라미드 문명의 코드’도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사이언스온이 기자와 과학자의 글 놀이터만은 아니다. 생활인의 눈에서 과학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공계 출신의 전업주부인 박문영, 신지원, 최동수, 이인숙 씨가 진행하는 ‘과학 수다’ 코너는 ‘아줌마’들의 일상과 교감을 시도한다. 과학기술 소외계층인 우리 사회의 아줌마를 뉴스의 단순 수용자가 아닌 뉴스 전달자, 생각하는 주체로 내세운 것이다. 글과 사진뿐 아니라 만화라는 새로운 장르적 실험도 돋보인다. 과학동아와 한겨레신문에 해부학 만화를 연재해 ‘해랑 선생’으로도 알려진 정민석 아주대 의대 교수의 4컷 만화인 ‘꽉 선생의 일기’는 과학계 안팎을 떠도는 오랜 관념과 편견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날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사를 보기 위해 현재 하루에 1500명이 ‘사이언스온’을 찾아오고 있다.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인터넷 포털 다음의 검색 순위에서는 인터넷 과학 매체인 ‘사이언스타임즈’와 ‘대덕넷’을 앞질렀다.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세계관의 변화

그렇다면 사이언스온은 앞으로 어떤 기사를 추구할까. 사이언스온의 촌장이자 편집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오철우 기자는 “무엇보다도 글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적 신문에서 내는 만큼 우리 사회에서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사회적 문제를 주로 다루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답변이 의아하다.

“그렇다고 선정적인 소재나 호기심 충족거리로는 재미를 느끼기 힘듭니다. 깊이 있으면서도 내용이 충분해야 진정한 재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이언스온이 추구하는 기사 방향에 대한 오 기자의 생각이다.

GMO나 광우병 문제처럼 민감한 주제일수록 더 자주, 그리고 다양한 관점을 담아 풍성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도 사이언스온이 추구하는 핵심적인 가치. 원자력이나 GMO, 광우병,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찬반양론을 다양한 각도와 견지에서 차분히 충분히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이 진보적 색채를 띠고 있다 보니 사이언스온도 특정한 성향이 있을 것이란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과학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관점이 존재합니다. 사이언스온이 추구하는 바는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를 보는 다양한 시선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요. 예민한 문제일수록 서둘러 논의를 끝내지 말고 충분히 다뤄야 합니다.”과학을 단순 지식이나 호기심 충족거리가 아니라 시대를 바라보는 세계관의 하나, 문화적 가치로 복원하는 것은 당면 과제이다.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 10위권에 올랐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서 과학적인 사고 풍토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 사회가 압축 성장하면서 과학은 수단과 도구로만 간주됐을 뿐 불합리한 현실을 헤치고 극복하는 세계관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종필 연구원은 “한국 사회는 과학적 ‘오리지널리티’가 거의 없다. 미국과 일본에서 들어온 용어나 사고체계의 틀로 세상만물을 바라본다”며 “과학기사에서 정확성과 엄밀함, 그리고 다양한 시선을 담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목표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사이언스온’이 넘어서야 할 벽은 있다. 무엇보다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생존기반인 수익모델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인터넷신문 ‘사이언스타임즈’는 관변지적 성격이 짙고, 대덕특구의 과학기술자들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대덕넷’ 역시 과학기술 관련 기관의 홍보성 사업을 주요 수익모델로 한다.

재미만이 아니라 공공적 가치와 비판적인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과학 매체에 조건 없이(차라리 광고 효과만 바라기라도 하면 좋겠다) 지갑을 열 기업이나 기관을 찾기 쉽지 않은 현실은 우울하기만 하다. 또 다른 한편에서 넘어야 할 벽은 더 있다. 우리 사회에서 글쓰기를 통해 소통하려는 과학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점도 어려움 중의 하나다. 사이언스온은 필자수를 30~50명 선으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연구를 주업으로 하는 연구자에게 글쓰기는 과외일이나 다름없다 보니 학교나 연구실에서 주위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패기 넘치는 젊은 과학자들이 선뜻 글쓰기를 통한 대중과 소통에 나서기 힘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종필 연구원은 “글을 쓰는 데 드는 시간을 배려해달라고 얘기할 수 없다. 본분은 과학 연구인만큼 연구 외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쪼개 글을 쓸 수밖에 없다”며 “결국 문제는 연구자의 의지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설명한다.

사이언스온이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는 매체 소유주가 아니라 여러 과학자들과 독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미래는 우울하지만은 않다. 인터넷 확산과 함께 글쓰기의 숨은 실력자들이 늘어나면서 과학 종사자들이 직접 과학 이슈를 제기하고 정확하게 알리는 노력에 이미 동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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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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