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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토머스 체크 교수의 RNA 효소 발견

academia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두 사건의 앞뒤 관계가 애매할 때 즐겨 쓰는 비유다. 생명과학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DNA가 먼저냐 단백질이 먼저냐”하는 질문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안 나오는 궤변임을 알 수 있다. DNA는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정보를 갖고 있지만 단백질(효소) 없이는 DNA 복제나 전사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둘이 존재하지 않으면, 즉 어느 순간 둘이 동시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DNA나 단백질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이처럼 복잡한 생체분자가 같은 시기에 나타날 확률은 사실상 ‘0’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무튼 이 문제는 생명의 기원과도 관련된 근본적인 미스터리다.

여담이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오리지널 수수께끼는 이미 풀린 지 오래다. 달걀(알)이 닭(새)보다 먼저가 정답이다. 새의 조상인 공룡도 알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DNA가 먼저냐 단백질이 먼저냐는 어떻게 됐을까. 아직까지 정답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이 답을 찾는 일이 생명과학에서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닌 게 돼 버렸다. 이 질문보다 훨씬 심오한 통찰을 줄 수 있는 놀라운 발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결과 반복돼

1978년 미국 콜로라도대 화학과에 막 자리를 잡은 토머스 체크(Thomas Cech) 교수(당시 31세)는 테트라하이메나(Tetrahymena)라는 원생생물의 리보솜DNA(rDNA, rRNA의 유전자)의 전사과정을 연구하기로 했다. 전사는 DNA(유전자)의 정보(염기서열)를 그대로 담고 있는 전달RNA(mRNA)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 생명체는 특이하게도 게놈 위에 rDNA 사본이 1만 개나 존재해 전사가 대량으로 일어나 실험할 시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단백질을 암호화한 유전자는 mRNA로 전사된 뒤 리보솜에서 mRNA의 정보대로 아미노산을 연결, 단백질을 만들지만 rDNA의 경우는 전사되는 게 곧 최종산물인 rRNA다. 1979년 연구팀은 테트라하이메나의 26S DNA(S는 침강계수로 분자가 클수록 그 값도 크다)에 인트론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트론은 유전자에는 있지만 최종산물(이 경우 26S rRNA)에는 포함되지 않는 영역이다. 즉 rDNA 전사로 먼저 인트론이 포함된 전(前)-rRNA가 만들어진 뒤 인트론이 잘려나가야 한다. 이 과정을 ‘RNA 스플라이싱(splicing)’이라고 부른다.

체크 교수팀은 전사 연구를 일단 제쳐두고 RNA 스플라이싱에 관여하는 효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들은 먼저 전-rRNA를 분리한 뒤 세포핵 추출물을 넣어 RNA 스플라이싱이 일어나는지 확인했다. 전기영동에서 rRNA뿐 아니라 인트론에 해당하는 띠가 나타나면 스플라이싱이 제대로 일어난 것이다. 전기영동은 다공성 젤에 전압을 걸어 혼합물을 분리하는 방법으로 분자가 작을수록 멀리 이동한다.


다음 단계로 추출물을 크로마토그래피 같은 분리법으로 여러 분획으로 나눠 그 가운데 RNA 스플라이싱이 일어나는 분획을 찾는다. 세포핵 추출물은 여러 효소들이 들어 있는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몇 번 하다 보면 결국 스플라이싱 효소의 실체를 밝힐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포핵 추출물을 넣은 쪽뿐 아니라 넣지 않은 쪽(‘컨트롤’이라고 부른다)에서도 스플라이싱이 일어났다.

“음, 아르트(당시 실험을 한 대학원생 이름), 아주 고무적인 결과야. 자네가 컨트롤을 만들 때 실수를 한 걸 빼고는….”

체크 교수는 학생이 실수로 컨트롤에도 세포핵 추출물을 넣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실험에서도 여전히 컨트롤에서 스플라이싱이 일어났다. 시작부터 생각지도 않은 장애에 부딪친 연구팀은 스플라이싱으로 잘려나간 RNA 조각의 염기서열을 정확히 알아보기로 했다. 그 결과 염기서열은 ‘GAAAUAG…’(G: 구아닌, A: 아데닌, U: 우라실)로 시작됐다. 그런데 rDNA의 인트론은 ‘AAATAG…’로 시작된다(RNA의 U는 DNA의 T(티민)에 해당).

체크 교수는 테트라하이메나의 rDNA 염기서열을 보고한 연구팀에 전화를 걸어 인트론 맨 앞에 ‘G’ 하나를 빼먹었다고 알려줬다. 그러나 그들은 데이터가 깨끗하다며 체크 교수의 의견을 일축했다. 당황한 체크 교수는 여러 조건에서 실험을 했고 스플라이싱이 일어나려면 세포핵 추출액은 없어도 되지만 구아노신과 마그네슘 이온이 있어야 함을 발견했다. RNA 조각 맨 앞의 G가 첨가한 구아노신의 G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화학자답게 체크 교수는 여기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설명하는 식을 만들어 1981년 생명과학저널 ‘셀’에 발표했다.

 

구아노신  -  염기와 리보오스(당)가 결합된 분자를 뉴클레오시드라고 부르는데, 구아노신(guanosine)은 염기가 구아닌(G)인 뉴클레오시드다.


 

 


잘린 RNA 조각에 촉매활성 갖는 부분 있어

세포핵 추출물이 없이도 스플라이싱이 일어난다면 이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 즉 단백질은 어디서 온 것일까? 먼저 효소가 전-rRNA에 워낙 단단히 붙어 있어 분리과정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전-rRNA에 계면활성제와 단백질분해효소를 넣는 등 단백질을 없애는 온갖 처리를 해도 스플라이싱 반응은 여전히 일어났다. 1981년 논문 말미에서 체크 교수는 “단백질 효소의 개입 없이도 전-rRNA가 스플라이싱을 했다면, 이는 RNA 사슬의 일부가 화학결합을 끊고 잇는 반응을 촉매하는 구조로 접힐 수 있다는 의미”라고 ‘RNA 효소’의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체크 교수팀은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26S rDNA에서 인트론을 포함한 일부분을 잘라내 플라스미드(원형 DNA)에 집어넣은 뒤 대장균에서 플라스미드를 대량 복제했다. 그 뒤 시험관에 플라스미드와 대장균의 RNA중합효소(전사반응을 일으키는 효소)를 넣었다. 만일 여기에서도 스플라이싱이 일어난다면 이는 RNA 자체에 촉매활성이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예상대로 스플라이싱은 일어났고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1982년 ‘셀’에 발표하면서 ‘리보자임(ribozyme)’이란 신조어를 처음 사용했다.

“샴페인을 마시며 우리는 특정 생화학 반응을 촉매하는 RNA를 지칭하는 단어 후보 목록을 만들었다. 그 결과 리보핵산(ribonucleic acid)이면서 효소(enzyme) 같은 특성이 있다는 뜻의 리보자임이란 용어를 쓰기로 했다.”

추가 연구 결과, 잘린 RNA 조각에 촉매활성을 갖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단백질 효소처럼 특정 분자의 반응이 쉽게 일어나게 하는 정교한 입체구조를 갖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체크 교수팀의 논문은 생명과학자들 사이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 효소 활성이 있는 다양한 RNA 분자가 속속 보고됐고 RNA와 단백질의 복합체인 리보솜 자체가 거대한 리보자임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리보자임 발견은 워낙 놀라운 사건이었기 때문에 논문을 발표하고 불과 7년 뒤인 1989년 체크 교수는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리보자임 발견으로 ‘효소란 촉매 활성이 있는 단백질’이라는 정의 자체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생명의 기원에 관련해서도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다. 즉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기 위해 꼭 풀어야만 했던 ‘DNA(정보)가 먼저냐 단백질(촉매)이 먼저냐’하는 물음은 RNA 촉매의 등장으로 부수적인 문제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정보(염기서열)를 지닐뿐더러 반응도 촉매할 수 있는 생체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RNA가 DNA보다 먼저 나타난 분자라는 정황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DNA의 당인 디옥시리보스는 RNA의 당인 리보스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RNA 세계 가설로 이어져

DNA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해 198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월터 길버트 박사는 1986년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며 ‘RNA 세계(world)’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즉 자신의 염기서열을 스스로 복제하는 RNA 분자가 최초의 생명체였다는 가설이다. 체크 교수팀이 발견한 리보자임처럼 특정한 화학결합을 끊거나 만들 뿐 아니라 촉매로 작용해 자기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RNA 구조가 있었을 거란 추측이다.

놀랍게도 이와 비슷한 분자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제랄드 조이스 박사팀은 서로 상대방의 합성을 촉매하는 두 리보자임(E와 E´)을 만들었다고 지난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상대 분자를 만들면 결국 자기도 더 많이 만들어지므로 간접적 자기복제인 셈이다. 아쉽게도 뉴클레오티드 하나에서 출발해 리보자임을 만든 건 아니고 주어진 RNA 분자(A, B, A´, B´)를 붙여 리보자임 분자를 만드는 반응이었다(E는 A 를, E´는 A+B→E를 촉매한다). 그럼에도 이 결과는 RNA가 생명체처럼 스스로 증식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실험을 칠칠맞지 못하게 한다”며 대학원생을 꾸짖고 실험을 접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매달린 체크 교수의 집념은 개인에겐 노벨상을 안겨줬을 뿐 아니라 생명과학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린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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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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