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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참 세상이 달라졌구나 하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이란 걸 볼 때다. 예전 같으면 숨기기에 바빴을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심지어 병원을 찾아가 자신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공개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일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행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문제를 억압하고 숨기고 회피하는 것이 수많은 신체적, 정신적 질환의 원인이란 사실이 현대의학에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케이블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정신과 진찰을 받는 장면이 큰 화제를 모았다. 출연자 중 한 사람이 ‘가면우울’ 이란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평소 지나치다 싶을 만큼 밝은 성격으로 여러 프로그램에 등장해온 그녀였기에 아마 더 충격으로 다가온 듯하다.

그러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던 성장과정이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며 오랜 무명생활을 견뎌야 했던 일 등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우울증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그것을 억압하고 지나치게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포장하다 보니 시청자들이나 어쩌면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우울증상을 믿지 않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마도 깊은 밤 홀로 깨어서 자신과 마주할 때면 그녀 역시 자신의 내면에 얼마나 깊은 우울의 심연이 자리하고 있는지 깨닫는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녀는 그때마다 급히 그 우물의 뚜껑을 닫아 버리곤 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이면 거의 누구나 그렇게 하듯이. 그러나 아주 짧게, 힐끗이라도 심연을 본 이상 누구도 그것을 아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로 인해 그녀 역시 우울증이 더 깊어졌을 수도 있다.

할리우드의 잘나가는 코미디 배우 짐 캐리 역시 우울증이란 사실이 밝혀져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 역시 대중을 웃기고(그것도 대개는 좌충우돌하는 과장된 몸 연기로) 인터뷰에서도 심하게 밝은 이미지를 유지해 온 터였다. 그 역시 가면 우울의 단계를 거쳐서 결국 증상이 악화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가 몹시 어두운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의 우울증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직시해야

우울증은 정신과에서 흔한 병이다. 보통 유병율, 즉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걸릴 확률을 20~25%로 보고 있다. 우울증 가운데 하나인 가면우울이란 말 그대로 우울한 기분이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상태를 말한다. 가면을 쓰고 있으면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스스로에게도 자기가 우울하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우울하다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우울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모든 것이 귀찮고 인생에 즐거운 일이 없고 몸이 마르고 잠을 못 자고 입맛이 없고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등등. 그와 같은 증상이 최소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병원에서는 우울증이란 진단을 내린다. 그런데 그런 증상들이 심하게 억압돼 내면에 갇혀 있는 경우 가면우울이란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가면우울은 앞서 예를 든 두 사람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밝고 명랑한 태도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 도박, 신체화증상 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이별불안, 학교공포증, 행동과잉을 보이기도 한다. 사춘기에는 가출, 무단결석, 알코올이나 약물 남용, 성적 문란, 과격한 행동 등으로 나타나며 노인들에게는 가성치매라고 하는, 얼핏 보면 치매와 비슷한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기의 감정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심리적으로 우울감은 ‘자기 자신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릴 때 느껴지는 기분’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누군가에 대해 분노하는 대신

자기를 자책하는 것이 깊어지면 그것이 우울감으로 나타난다. 가면우울의 증상들이 대부분 자기를 파괴하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물론 가면우울의 증상이 항상 심각한 것은 아니다. 일부에게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말이 많아지며 행동도 과장이 심하고 쇼핑에 중독되는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신체화증상
복통이나 마비 같은 신체증상을 호소하지만 내과적으로 진단했을 때 원인을 찾지 못하는 증상. 대부분 스트레스 같은 심리적 요인인 경우가 많다.
 

가장 중요한 해결방법은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는 일이다. 요즘 현대의학에서 감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프로이트는 ‘생각이 엔진이라면 감정은 가솔린’이라고 역설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조차 감정이 적자생존의 열쇠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대의학은 감정이 우리 몸과 마음을 연결시켜주는 고리라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우울은 분노, 피해의식, 불안, 공포 등의 감정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우울감을 은폐하지 말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린 흔히 불안하기 때문에 더 불안해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더 우울해한다.

그럴 때는 객관적으로 감정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세상을 다르게 보는 연습을 할 필요도 있다. 그런 노력만으로도 우울감은 많이 줄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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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양창순신경정신과 원장, 대인관계 연구소 소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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