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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에 컵슬리브 끼기까지 86년 걸려

편집자 주
도로를 비롯해 자동차, 엘리베이터처럼 오늘날 문명을 이끈 명발명품은 아주 작은 동기에서 시작됐다. 바로 불편함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다. 과학동아는 이달부터 4회에 걸쳐 일상생활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세계 최고의 발명품으로 성공시킨 숨은 비결과 전략을 알기 쉽게 설명한 ‘톡톡 튀는 발명 이야기’를 연재한다.

종이컵에 컵슬리브 끼기까지 86년 걸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분명 아버지, 어머니의 시절보다 편리하고, 더 살기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살던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우리의 아침 일상이 마치 태초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그다지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이유는 세상을 끊임없이 살기 좋게 만들고 있는 수많은 발명품이 이제 더는 새롭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산소 같으면서도, 만에 하나 지금이라도 사라진다면 상당히 불편할 발명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사실 우리 일상을 차지하는 거의 모든 사물은 실제로는 누군가 일상에서 느낀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미국 카우보이 몰락시킨 주역은 철조망

매일 아침 한 잔의 커피를 마시려면 바닐라 시럽과 뜨거운 우유거품, 그리고 근사하게 볶은 원두에서 뽑은 에스프레소와 캐러멜 시럽 외에도 종이컵이 꼭 필요하다. 종이컵은 한 평범한 대학생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1907년 미국 하버드대를 다니던 휴 무어는 때마침 인기를 끌고 있던 생수 자판기의 문제점에 주목하게 됐다. 당시 자판기는 자기로 만든 컵을 사용하는 까닭에 비용도 많이 들고 하루에 컵이 여러 개 깨지는 문제가 있었다. 무어는 가볍고 싼 종이로 컵을 만든다면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물에 젖지 않는 종이를 찾아내 컵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종이컵은 여러 사람이 컵을 나눠 쓰면서 생기는 위생 문제까지도 말끔하게 해결하며 전 세계에서 100년 넘게 애용되고 있다. 종이컵의 발명 이후 거리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는 일은 현대인의 일상이 됐다.


하지만 무어의 종이컵은 문제가 있었다. 종이컵은 열을 잘 전달하고 아주 얇아서, 뜨거운 음료를 마시는 사람이 손을 데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사람들은 뜨거운 커피를 마실 때는 종이컵 두 개를 포개어 사용하며 나름의 대처법을 내놓기도 했다. 휴 무어가 설립한 회사인 딕시컵은 뜨거운 음료를 마시기 적당하도록 가운데 빈 공간이 있는 2중 종이컵을 내놨지만, 종이컵 제조 단가가 올라가고 뜨거운 음료를 마시는 전용 컵을 별도로 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 문제는 종이컵이 탄생한 지 86년이 흐른 1993년 미국의 또 다른 발명가가 해결했다. 제이 소렌슨이라는 이 발명가는 두툼한 골판지를 둥글게 말아서 뜨거운 종이컵 을 끼울 수 있는 ‘컵슬리브(cup sleeve, 미국특허 5,425,497)’를 만들었고 이는 '자바재킷(Java Jacket™)’이란 상표명으로 더 알려져 이제는 거의 모든 커피전문점에서 볼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퍼진 발명품은 1873년 조세프 파월 글리든이라는 미국의 한 농부가 만든 것이다. 글리든이 살던 때만 하더라도 미국 목장의 울타리는 길게 줄지어 세운 기둥에 철사만 둘러친 형태였다. 하지만 이런 울타리는 철사를 아무리 촘촘히 해놓아도 간혹 벌어진 틈 사이로 가축들이 쉽게 빠져 나가는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어느 날 글리든은 가축들이 가시가 있는 장미넝쿨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철사를 새끼처럼 꼬아 군데군데에 철사 도막을 넣어보기로 했다. 지금도 군대와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는 철조망은 이렇게 탄생했다.

글리든의 발명품은 농장을 빠져나간 가축이 이웃 농장을 망가뜨려 고민하던 아내의 걱정을 덜어줬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목장주들이 더 이상 카우보이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무엇보다 남들이 자신의 드넓은 땅에 침입하는 것을 우려하던 미국의 부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글리든은 공기만큼 가볍고, 위스키보다 세며, 먼지만큼 값싼 철조망 ‘위너’라는 이름으로 특허(미국특허 157,124)를 받고 회사도 설립했다. 철조망을 팔아 돈방석에 앉은 글리든은 호텔과 신문사를 비롯해 1360km2 땅을 소유한 미국에서 가장 큰 부자 중 한 명이 됐다. 물론 제1차 세계대전 중 전 세계로 퍼져나면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와 더불어 전쟁과 갈등의 상징물이 됐지만,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공한 발명품임에는 분명하다.


한국에도 일등 발명품 있다

인류에게 편리함을 준 발명은 동네목욕탕에서도 볼 수 있다. 1960년대 부산 창곡시장에 있었던 한일직물은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생산하고 있었다. 당시 한일직물의 직원들은 손톱 밑에 자주 끼던 때를 벗겨내기 위해 공장에서 생산된 폴리에스테르 원단의 자투리를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때를 벗길 때마다 마찰로 정전기가 일어나면서 불편함이 많았다. 당시 한일직물 김원조 사장의 친척이던 김필곤 씨는 그 모습을 보고 궁리 끝에 비스코스 레이온 소재를 이용하면 정전기가 생기지 않으면서도 피부에 찌든 때를 말끔하게 벗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김 씨는 1965년 이후 초록색 비스코스 레이온 원단을 손에 맞는 다양한 형태로 재단했고, 이는 오늘날‘이태리 타월’의 형태로 발전했다.

그는 이 초록색의 타월을 실용신안(목욕탕용접찰구 등록실용신안 20-0003785)에 등록했고 전 국민에게 시원하게 때를 벗겨낼 수 있는 발명품을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번 표창을 받기도 했다. 또 큰 부를 축적해 부산의 대형 호텔을 소유하게 됐다. 물론 실용신안 수명이 10년밖에 되지 않아 이태리 타월에 대한 김 씨의 독점권은 이제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우리 국민은 물론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 애호가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


한국이 만든 세계적 발명품은 또 있다. 1965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볼펜이 존재하지 않았다. 잉크를 찍어 쓰는 철필과 만년필만이 연필을 대체하는 유일한 필기구였다. 볼펜이라는 것은 소수의 외신기자 들만이 사용했기 때문에‘기자펜’으로 불렸다. 그 뒤로 많은 발명품이 쏟아지면서 이제 펜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됐다. 오늘날 필기구 분야는 발명의 각축장이라 할 만큼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들 이 특허로 등록돼 있다. 필기와 동시에 핵심부분에 표시형 테이프인 플래그를 부착할 수 있도록 고안된 플래그펜(등록특허10-0871941)과 펜촉 잉크가 마르지 않아 매번 뚜껑을 열고 닫을 필요가 없는 형광펜(등록특허10-0649611)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어두운 곳에서도 필기가 가능한 펜', 일명 ‘반디펜’으로 불리는 길라씨엔아이의 라이트펜은 단연 돋보인다. 1996년 제네바 국제발명전시회 은상과 미국 발명전시회 금상을 휩쓸었다. 경찰장비를 납품하는 회사를 운영하던 김동환 사장이 밤에 교통경찰관이 오른쪽 목과 어깨 사이에 플래시를 끼고 메모하는 불편한 모습을 보고 착상한 이 발명품은‘라이트’와‘펜’을 결합한 제품이다. 이 발명품은 세계 25개국에 600억 원어치 이상 팔려나갔고, 지금도 기숙사나 군대 내무반에서 편지로 사랑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발명은 일상의 사소한 불편함을 자양분처럼 먹고 큰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이 우유를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구부러지는 빨대를 비롯해 반찬냄새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이중밀폐장치를 붙인 밀폐용기, 숟가락과 포크가 결합된 숟가락포크, 아이들이 젓가락 사용법을 익힐 수 있게 손가락 고리를 덧붙인 에디슨젓가락, 선택한 층을 한 번 더 누르면 선택이 취소되는 엘리베이터 버튼, 복잡한 전선을 묶을 수 있는 케이블타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제품들은 1899년 미국의 특허청장 찰스 듀엘이 “발명될 수 있는 것은 이미 모두 발명됐다”고 말한 이후에 발명된 것들이다. 지금도 과연 “이미 필요한 모든 것들이 발명됐으니 더 이상 새로운 것은 필요하지 않아”라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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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송진영 변리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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