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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사회성의 천재, 붉은털원숭이


2016년은 ‘붉은 원숭이’의 해다. 이를 기념해 이름도 비슷한 붉은털원숭이를 보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를 다녀왔다. 사회성이 뛰어나고, 인류를 위해 수많은 실험을 대신해 준 고마운 존재를 그곳에서 만났다.


2016년 붉은 원숭이의 해가 밝았다.
올해는 십이지신 중 원숭이의 해이며, 동시에 오행을 가리키는 청, 적, 황, 백, 흑 중에 적(붉은색) 에 해당하는 해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실제로 원숭이 중엔 불그스름한 털을 가진 ‘붉은털원숭이(Macaca mulatta)’가 있다. 붉은털원숭이는 남부 아시아에 주로 살며 원숭이 중에서도 개체수가 많은 편에 속한다. 때문에 긴팔원숭이나 오랑우탄에 비해서 쉽게 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나 인도의 사원 등에 사는 원숭이가 이들이다. 충북 오창에 위치한 국가 영장류센터는 실험에 이용할 목적으로 400여 마리의 붉은털원숭이를 기르고 있다.

호전적이지만 규칙이 확실한 사회적 동물

12월 2일, 붉은털원숭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국가영장류센터를 찾았다. 허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국가영장류센터 선임연구원을 만나자마자 “지금 바로 붉은털원숭이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No”. 현재 센터 안에 있는 원숭이들은 생명과학 실험을 위해 기르고 있기 때문에 사람 손을 거의 타지 않은 ‘정서적 야생원숭이’에 가깝다. 갓 태어난 원숭이는 사람이 우유도 주고 직접적으로 보살펴줘야 하기때문에 사람을 잘 따르지만, 몇 달만 지나도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과 직접적인 접촉을 차단한다.

“일단 그 안에 들어가려면 샤워 다 하고 실험복을 갖춰 입고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도 문제예요. 걔네들 엄청 사나워요. 사진은 전문 사육사가 찍어다 줄 겁니다.” “붉은털원숭이, 사회성이 뛰어난 동물 아닌가요?” “사회성이 뛰어난 거지, 착한 건 아니에요.” 허 연구원의 말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취재본능이 일어났다. “그렇게 호전적인 동물이 어떻게 분쟁 없이 사회를 이루면서 살아가죠?” 허 연구원은 ‘빨리 싸우고 확실히 서열을 정하는 그들의 규칙’ 덕분이라고 답했다. 온순한 동물은 보통 자기들끼리 싸우는 일을 피해가며 살아가지만, 붉은털원숭이는 빨리 힘겨루기를 끝내고 확실히 서열을 정하는 것이 사회를 유지하는 비결인 것이다.
 


붉은털원숭이는 원숭이 중에서도 무리가 아주 큰 편에 속한다. 허 연구원은 “주로 사원에 사는 원숭이들이 무리가 큰 경향이 있다”며 “최대 250여 마리가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까지 발견됐다”고 말했다. 무리의 크기는 사회성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무리가 클수록 관계가 다양해지고, 서열을 정하는 규칙 문화도 생긴다. 허 연구원은 “센터에 있는 원숭이들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원숭이들은 각자 하나의 우리 안에 들어가 있어 서로 교류할 일이 없는데도, 목소리의 크기나 눈빛만 보고 서열을 정한다. 실험동물의 서열은 실험결과 분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서열이 높은 원숭이일수록 외부 자극에 잘 버팁니다. 이 말은 서열에 따라 실험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실험에 투입되는 원숭이는 키울 때부터 서열 관계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인류보다 한 발 앞서 미지의 세계를 가다

1. Rh 인자의 발견


붉은털원숭이는 우리가 수혈을 할 수 있도록 큰 공헌을 했다. 우리의 혈액은 적혈구 표면에 붙은 항원의 종류에 따라 A, B, O, AB형 네 가지로 나뉜다. AB형을 제외한 나머지 혈액에는 다른 타입의 혈액에 대한 항체가 들어있어, A형이 B형에게 혹은 O형에게 수혈할 경우 혈액이 응집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원리는 1901년 오스트리아 의사 카를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밝혀졌다. 하지만 이 원리가 밝혀졌음에도 수혈에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Rh인자다. 적혈구 표면에 Rh인자를 가지고 있으면 Rh+(Rh 양성), 없으면 Rh-(Rh 음성)로 분류한다. Rh-인 사람이 Rh+인 사람의 혈액을 두 번 이상 수혈 받게 되면 혈액 응집 문제가 발생한다. 란트슈타이너와 미국 의사 알렉산더 위너는 1937년 붉은털원숭이의 적혈구 표면에서 이 인자를 발견했다. 붉은털원숭이는 레서스원숭이(Rhesus macaque)라고도 불리므로 연구자들은 해당 인자에 레서스의 앞자를 따 Rh인자로 이름 붙였다.

2. 세계 최초로 우주여행을 시도한 영장류, 알버트

인간이 우주선에 오르기까지 많은 동물들의 희생이 있었다. 인간이 우주의 환경을 잘 버틸 수 있을지, 우주선의 안정성은 어떤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인간보다 먼저 확인할 대상이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1961년 우주로 보낸 침팬지 ‘햄’을 최초의 영장류 비행사로 알고 있지만, 실은 붉은털원숭이 ‘알버트 1세’가 최초다.

미국은 1948년 초기 로켓 ‘V-2’에 원숭이를 실어 우주로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비행 도중 사망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51년, 미국은 ‘에어로비’ 로켓에 붉은털원숭이 ‘요릭’과 쥐 11마리를 태워 우주로 보냈다. 요릭의 우주여행은 성공적이었고, 최초로 우주에서 살아 돌아온 원숭이로 기록됐다.

3. 스킨십이 아이의 정서발달에 중요함을 밝힌 실험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는 1958년에 부모와 아이의 신체 접촉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그는 갓 태어난 새끼 붉은털원숭이를 어미로부터 떨어뜨려 우리에 가뒀다. 그리고 난 뒤 천으로 만든 가짜 어미와 철사로 만든 가짜 어미를 우리에 넣었다. 우유를 가진 건 철사로 만든 어미였다. 당시 학자들은 사랑은 식욕과 같은 원초적 본능이 충족돼야 발생하는 2차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끼 원숭이가 당연히 우유를 가진 철사 어미 쪽으로 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원숭이는 천으로 만든 어미에게 온종일 붙어있었으며, 어미를 우리 밖으로 빼자 며칠이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새끼 원숭이에게 어미와의 신체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아이에게 뽀뽀를 하거나 자주 안아주거나 하는 행동이 아이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할로는 비윤리적인 실험을 강행했다는 이유로 여전히 손가락질 받고 있지만, 그가 이 실험을 통해 얻어낸 연구 결과는 인간의 본질을 좀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인간과 93% 닮은 붉은털원숭이

허 연구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센터의 전문 사육사가 찍은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 속 원숭이의 손은 인간의 손과 아주 유사했다(56쪽 사진 참조). 다섯 개의 손가락과 손톱은 물론 손금까지 있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발간한 책 ‘인류의 가족, 인간의 동반자, 영장류’에 따르면 원숭이도 개체마다 고유한 지문을 가지고 있다. 사람처럼 개체를 분별하는 데 쓰지는 않지만 생존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 원숭이도 사람처럼 손바닥과 발바닥에 털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무를 탈 때 미끄러질 확률이 매우 높다. 지문은 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를 완성한 뒤, 침팬지, 오랑우탄, 붉은털원숭이 등 영장류의 DNA도 해독했다. 2015년 해독이 끝난 붉은털원숭이가 가장 최근의 연구 성과다. 미국 베일러 의대 리처드 깁스 박사 연구팀은 “붉은털 원숭이와 인간이 93%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고 ‘사이언스’ 2015년 4월 13일자에 발표했다. 때문에 붉은털원숭이는 본의 아니게 인간을 대신해 무수히 많은 실험의 대상이 돼야 했다. 생명과학 실험은 물론 심리학, 사회학 실험까지 도맡아 했다. 인간을 위해 희생된 원숭이를 생각하며 연구소에서 어려운 발걸음을 떼는데 연구 단지 한 켠에 위치한 ‘위령비’가 눈에 띄었다. 위령비에 는 이런 말이 써 있었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 고통을 대신하여 준 넋들이여! 그대들의 의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며, 희생을 줄일
수 있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대들의 의생을 기려 비를 세우고 영복을 비나니, 인간을 용서하고, 더 나은 세상에 태어나, 대자연을 벗 삼아 마음껏 나래 치며 뛰어 놀기를 소원합니다.’

2016년 붉은원숭이의 해를 맞아 기획된 이 기사가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다시 한번 떠올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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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충북 오창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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