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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 가운데 한 가지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눈을 감으면 칠흑 같은 어둠이, 귀를 막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이 찾아올 것이다. 후각과 미각을 잃으면 꽃향기를 맡을 수 없고 꿀맛을 모르는 무미건조한 세상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느 한 감각이 아니라, 우리 몸 전체의 촉각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엄마나 연인의 포근한 품을 느낄 수 없는 메마른 세상 정도쯤일까.



1972년 19세의 이안 워터맨이란 영국인은 목 아래의 촉각을 대부분 잃었다. 몸의 감각을 중추신경계로 전달하는 신경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손상됐기 때문이다. 그는 걸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근육과 운동신경은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팔과 다리는 움직일 수 있지만 보지 않고는 자신의 팔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자기팔이 자기 몸을 공격하는 불상사도 종종 벌어졌다. 애석하게도 통증 감각은 살아 있어서 아픔은 그대로 느꼈다.



누워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조차도 그에겐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다는 감각을 전혀 느낄 수 없어 그저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안락함은커녕 불안감만 더했다.

당시 의사들은 워터맨이 단순히 촉각이란 감각을 상실했는데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불구의 지경에 이른 데에 몹시 곤혹스러워했다. 워터맨의 사례는 촉각이 우리에게 얼마나 귀중한 감각인지 드러냈다.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촉각을 연구한 결과 촉각이 종종 착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치 우리 눈이 가끔씩 사물을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 해석하는 착시현상처럼 말이다. 촉각에 빠지는 이유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적어도 예상하지 못
했던 우리 몸의 반응들은 촉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 몸의 촉각은 어떤 착오를 일으키는 것일까. 촉각의 착각, 촉각 일루전의 세계에 빠져보자.

사례1. X자로 꼰 손가락의 비밀

검지와 중지를 X자로 꼰 다음, 콩이나 연필 끝 또는 코끝처럼 동그랗고 작은 물체를 두 손가락 끝으로 만져보자. 꼬지 않고 만졌을 때랑 뭔가 다르지 않는가. 분명히 만지는 물체는 하나이다. 하지만 마치 두 개의 다른 물체를 각각 만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현상은 우리보다 약 2300년이나 앞서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촉각 일루전이다. 이 같은 착각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 뇌가 물체를 만지는 상황에서 손가락을 꽜다는 사실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평소에 거의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두 손가락을 꼰 뒤 둥근 물체를 만지는 경우에도 뇌는‘같은 물체가 아니라 두 개의 물체를 각각 만진다’라고 판단을 내린다. 이런 현상은‘지각분리’라는 일루전에 속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손가락을 꼬고도 제대로 느낀다. 이는 하나의 사물을 만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눈으로 손가락을 꼰 것을 본 이후에는 손가락이 물체를 두 개라고 느껴도 뇌가 이를 부정한다”며 “이는 촉각보다 시각이
더 지배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변형된 실험을 하나 더 해보자. 앞의 경우처럼 두 손가락을 꼬고 눈을 감는다. 한 손가락에는 마른 콩, 다른 손가락에는 콩과 비슷한 크기의 마른 고무찰흙을 각각 대본다. 눈을 감고 있으므로 물체를 만지는 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도록 한다. 이제 어느 손가락으로 콩을 만지는지, 고무찰흙을 만지는지를 얘기해보자. 촉각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콩을 만지는 손가락과 고무찰흙을 만지는 손가락을 뒤바꿔 말할 것이다. 이 역시 우리 뇌가 손가락을 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1년 일본의 과학도시 쓰쿠바에 위치한 선진과학기술연구소의 뇌과학 연구팀이 발견한 사례도 시도해볼 만하다. 손바닥을 아래로 한 채 두 손을 앞으로 내민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두 손등을 가볍게 치라고 해보자. 이때 두 손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차이를 두고 한 손씩 치도록 한다. 어느 손을 먼저 맞았는지를 대답할 수 있는가. 이 실험은 누구든 쉽게 답을 맞힌다.

하지만 팔을 X자로 한 다음, 다시 해보면 결과는 다르다. 일본 연구팀에 따르면 0.3초 이하의 짧은 시간 차를 둘 경우 한참 동안 우리 뇌는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알아맞히지 못한다. 손을 맞는 순간 뇌는 팔을 X자로 한 상태라고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일본 연구팀은 2005년에 더욱 재미있는 현상을 발표했다. 팔이 아닌 막대나 스푼을 갖고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내용이다. 2개의 스푼을 한 개씩 각각 손에 쥐고 앞으로 쭉 뻗은 뒤 스푼을 X자로 겹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스푼을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건드려 달라고 하자. 이 경우도 손을 교차한 실험처럼 먼저 건드린 스푼을 맞추기가 어렵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손과 스푼을 각각 꽈서 이중으로 교차하면 꼰 효과가 사라져 어느 쪽
이 먼저인지 쉽게 맞출 수 있다.



사례2. 애매모호한 상황에선 촉각도 갈팡질팡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한 지각 분리와 달리 대부분의 촉각 일루전은 최근에서야 밝혀지고 있다. 착시 현상은 연필과 종이와 같은 간단한 도구로도 쉽게 보일 수 있지만 촉각의 착각 현상을 확인하는 방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뇌과학 연구팀이 발견한 경우가 그렇다. 이 연구팀은 촉각 시뮬레이터라는 특별한 도구를 개발해 착시와 비슷한 현상을 촉각에서도 찾아냈다.

착시의 대표적인 예로 ‘지각 경쟁’이 있다. 종이에 3차원 정육면체를 그림처럼 간단한 선으로 그린다. 이 그림은 ‘넥커의 정육면체’라고 하는데, 약간 위에서 본 모습과 아래에서 본 모습 두 가지가 모두 나타난다. 이 정육면체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약간 위에서 내려다본 상자와 약간 아래에서 올려다본 상자가 번갈아 보일 것이다. 이렇게 이도 저도분명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우리 뇌는 어느 한쪽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두 가지 해석을 왔다 갔다 한다.

이와 같은 착시의 지각 경쟁은 동영상에서도 나타난다. 사각형이 있고 그 안에 대각선 방향으로 구석에 점을 각각 그려 넣는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그림은 2가지가 나온다. 이 두 그림을 짧은 시간 차를 두고 번갈아 나타나게 하면 어떨까. 점이 좌우, 또는 상하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도 좌우로만 또는 상하로만의 움직임이 아니라 이 두 움직임이 번갈아 보인다.

MIT 연구팀은 바로 이 사례를 촉각에 적용했다. 점을 그려 보여주는 대신 손가락 끝에 자극을 주는 촉각 시뮬레이터를 이용했다. 그러자 실험참가자들은 착시에서처럼 손가락 끝 자극이 좌우 또는 상하로 이동하는 것처럼 느꼈다. 약 1분의 시간 차를 두고 좌우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던 자극은 상하 자극으로, 상하 자극은 좌우 자극으로 느껴졌다. 이는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우리 뇌는 ‘딱 이거야’ 라는 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례3. 작은 게 더 무겁다?

이번에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친구나 가족과 함께 실험을 진행해 보자. 먼저 크기가 다른 페트병 또는 물병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안에 물 또는 모래를 넣어 두 병의 무게를 같게 하고 친구나 가족에게 이 둘을 들어보라고 하자. 자, 이제 어느 게 무거운지를 물어보자.

대다수 사람들은 작은 게 더 무겁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무리 여러 번 들어보고 심지어 안의 내용물이 보여도 사람들은 작은 게 더 무겁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오거스틴 샤르팡티에라는 프랑스 의사가 1891년에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래서 이 현상은 ‘샤르팡티에 일루전’ 또는 ‘크기-무게 일루전’이라고 불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아쉽게도 아직까지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물체가 클수록 더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해 큰 물체를 들 때 애초에 어깨에 힘을 더 주기 때문이라 예상할 뿐이다. 실제로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은 작은 것보다 큰 것을 들 때 애초부터 더 많은 힘을 준다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이 실험을 반복할 경우는 달랐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두 개에 동일한 힘을 줬다. 우리 몸은 분명 무게가 같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안다. 하지만 우리 뇌는 여전히 작은 상자가 더 무겁다고 판단했다.

최근 이 일루전이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6년 캐나다 댈하우지대 연구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작은 상자를 큰 상자보다 조금 더 가볍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은 상자를 더 무겁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크기가 같은 상자라도 단순히 ‘무겁다’와 ‘가볍다’라는 라벨을 붙여놓으면 사람들은 ‘무겁다’는 라벨이 붙은 쪽을 더 무겁게 느꼈다.

지난해 캐나다 퀸스대 연구진은 더 복잡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실험참가자에게 크기가 다른 물체를 반복해서 들었다 놓도록 지시했다. 물체의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무게는 클수록 가벼웠다. 실험 결과 연구진은 크기-무게 일루전이 반대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험 막바지로 갈수록 실험참가자들은 무게가 같은 두 개의 물체 중 더 큰 것을 더 무겁다고 판단했다. 이는 짧지만 반복된 상황에 사람이 쉽게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례4. 변화 알아채지 못하는 둔한 몸

동일하지만 딱 한 부분만 확연하게 다른 두 그림이 있다. 컴퓨터 화면으로 이 두 그림을 연속해서 보여줄 때, 그림이 바뀌는 사이에 잠깐 동안 빈 화면을 보여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그림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느린 변화에도 적용된다. 어떤 그림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바꿔 아주 천천히 보여주면 우리 눈은 이를 눈치채
지 못한다. 심지어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데도 그렇다. 이와 같은 착시 현상을 ‘변화맹’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촉각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루전이 확인됐다. 2006년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자 찰스스펜스 교수는 실험참가자들 몸에 7개의 진동 장치를 널찍한 간격으로 붙였다. 확실히 어느 곳에서 자극을 느끼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7개의 진동 장치를 한꺼번에 울리게 했다. 그 다음엔 7개 중에서 3개의 진동 장치만 0.2초 동안 동시에 작동시켰다. 다시 7개의 진동 장치를 한꺼번에 울려 실험참가자들에게 진동의 위치를 파악하게 한 뒤 이번엔 아까 자극했던 3개의 자극 부위 중에서 한 곳을 몰래 바꿨다. 하지만 실험참가자의 약 30%는 자극의 위치가 바뀐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리 몸은 빈 화면을 봤을 때 바뀐 화면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처럼 7개의 자극을 받은 뒤에는 그 전에 받았던 자극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례 5. 자극 계속되면 촉각도 피곤해

폭포를 한참 쳐다보다가 다른 물체를 쳐다보면 그 물체가 마치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움직임에 반응하는 시각신경세포가 피로를 느끼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운동잔상 효과’라고 한다.

2006년 이 현상에 대한 촉각 버전이 확인됐다. 일본 도쿄대 연구팀은 손가락 끝에 진동을 주는 자극기를 고안했다. 연구팀은 이 자극기로 실험참가자들의 손가락 끝에서 시작해 첫 번째 마디까지 아래 방향으로 자극을 반복해서 줬다. 그런 다음 특정한 방향성 없이 손가락에 자극을 줬다. 그랬더니 실험참가자들은 자극이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느낀다고 보고했다.

이런 촉각 일루전은 자극기 없이도 간단하게 확인해볼 수 있다. 농구공처럼 둥근 물체를 20초 정도 손바닥으로 눌러보자. 그런 다음 평평한 바닥에 대보자. 어떤 느낌이 드는가. 볼록한 공과 반대로 움푹 들어간 느낌이 전해지지 않는가.

최근 촉각 일루전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속속 새로운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촉각 일루전 연구가 활발해진 이유는 무얼까. 촉각을 이용해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햅틱스(컴퓨터 촉각 기술)가 발전하는 데 촉각 일루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 분야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앞으로 촉각 일루전에 대한 연구가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자못 기대된다.
 

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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