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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층, 제3세계 구하는 제품 개발해요”

한밭대 공학설계 동아리 ‘어프로텍’

“1960~19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옛날 기술과 최근 기술이 뒤섞여 편리한 듯 보이는데 불편한 점이 많죠. 휴대전화는 사용하는데 집에 난방은 잘 안 되는 식이에요.” (정미진, 한밭대 2년)

“처음 공항에 내리는 순간 매연 때문에 목이 턱 막혔어요. 오염 물질이 배출되는 유연탄을 연료로 쓰기 때문이죠.”(이승진, 한밭대 2년)

“일교차가 커서 새벽엔 정말 추워요. 중앙에 난로가 있어도 열효율이 낮아서 금방 기온이 내려가더라고요. 최근엔 추위 때문에 신종플루에 걸리는 사람도 급증하고 있대요.” (최지나, 한밭대 4년)

“겨울이 되면 여름철 애써 농사지은 채소가 얼어 버려요.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다는 게 안타깝죠.”(윤선경, 한밭대 3년)

“물에 석회질이 많이 녹아 있어서 색깔이 뿌예요. 석회성분이 인체에 쌓이면 담석이나 질병을 유발한다는데 걱정이죠.”(김대현, 한밭대 3년)



먹고 버린 게 껍질로 오염된 물 정화해

여름에 몽골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더니 걱정부터 늘어놓는 사람들. 몽골의 수려한 자연경관보다는 주민들의 소외된 삶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이들은 한밭대 공학설계 동아리 ‘어프로텍(approtech)’의 팀원들이다. 이들은 지난 8월 27일 몽골을 방문해 3박 4일 동안 생활하면서 ‘진짜 몽골’의 모습을 보고 돌아왔다. 현실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과는 참 많이 달랐다. 팀원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몽골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인연은 지난 6월 18일 한밭대에서 열린 ‘제1회 소외된 90%를 위한 창의적 공학설계 경진대회’부터 시작됐다. 크리스천과학기술포럼과 한동대가 공동 주최한 이 경진대회에는 전국의 공학도들 82명이 14개 팀을 이뤄 출전했다. 당시 최지나 씨와 정미진 씨가 속해 있던 ‘F-일리미네이터(F-eliminator)’ 팀은 게 껍질을 이용해 물속의 불소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장치를 개발해 대상을 차지했다.

김대현 씨와 이승진 씨가 속해 있던 ‘에프오알(FOR, Find O Route)’ 팀은 뱀이나 독충에 물린 상처를 응급 처치하는 주사기를 개발해 은상을 수상했다. 윤선경 씨는 수상자 명단엔 오르지 못했지만 UF여과막으로 물을 정수하는 필터를 개발해 대회에 참가했다.



이들이 경진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김대현 씨는 평소 소외된 지역의 복지와 의료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미진 씨는 단순히 ‘소외된 90%를 위한 공학설계 아카데미’라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대회까지 준비하게 됐다. 대상을 차지한 ‘불소제거장치’ 아이디어도 이 아카데미에서 얻었다. 이번 대회에서 실무 책임을 맡은 한밭대 화학공학과 홍성욱 교수는 “실제로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보면 전체의 절반은 우연한 계기에 대회 준비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대회에서 보여준 가능성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중에는 당장 제품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성능이 뛰어난 디자인도 있었다. 대상을 수상한 ‘불소제거장치’는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되는 게 껍질을 빻아서 물속 불소 이온을 거르는 흡착제로 이용했다.



그 결과 불소 이온이 10ppm(기준치 2ppm의 5배)이나 들어 있던 물은 불소 이온 농도가 0.28ppm인 물로 정화됐다. 이 장치를 공동개발한 정미진 씨는 “인도 아우랑가바드 지역 사람들은 불소 이온 농도가 높은 물을 마셔서 나이에 비해 몸이 빨리 늙는 길포드 증후군으로 고생한다”며 “이 장치가 그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독사·독충 응급처치기’도 간단한 듯 보이면서 활용도가 높다. 독사나 독충에 물리는 사고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응급 치료가 중요하다. ‘독사·독충 응급처치기’는 위급한 상황에서 혼자서도 독을 효과적으로 뽑아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모양은 일반 주사기와 비슷한데, 피스톤에 작은 지지대를 달아서 한 손으로도 주사기의 피스톤을 잡아당길 수 있다. 독이 퍼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상처 주변에 감는 붕대는 흔히 ‘찍찍이’라고 불리는 벨로크로 만들었다. 기존의 고무 제품이 압박 정도를 조절할 수 없었던 것과는 달리, 벨크로는 상처 부위에 따라 자유롭게 감았다 풀 수 있다. ‘독사·독충 응급처치기’에는 해독작용이 있는 앵두나무 수액을 묻힌 밴드까지 포함돼 한 세트로 구성돼 있다. 이 장치를 공동개발한 김대현 씨는 “쓰고 난 주사기를 재활용하면 붕대와 밴드까지 해도 전체 비용이 2000원밖에 안 든다”며 “부피가 작아 휴대하기도 편하다”고 설명했다.

현지인들에게 꼭 맞는 맞춤형 기술

이런 설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은 ‘현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적절한가’이다. 실제로 아무리 효과가 좋은 제품이라도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없거나 가격이 비싸면 무용지물이다. 또 쓰는 방법이 복잡하거나 고장이 났을 때 쉽게 고칠 수 없으면 제품의 활용도가 낮다. 따라서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신중해야 한다.

‘불소제거장치’도 처음 설계할 땐 게 껍질 대신 나뭇잎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뭇잎은 사용하기 전에 전처리 과정이 6단계로 복잡하고 이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게 껍질은 단순히 빻기만 해도 속에 들어 있는 키틴질 덕분에 불소 이온 흡착 효과가 높게 나타냈다. ‘F-일리미네이터’ 팀의 최지나 씨는 “흡착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게 껍질의 양, 흡착 시간을 바꿔가며 연구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소외된 지역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해왔다. 그중에는 이미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도 많은데, 대표적인 예가 ‘라이프 스트로(Life Straw)’라는 빨대다. 이것을 오염된 식수원에 바로 꽂아서 물을 마시면 물속에 들어 있는 박테리아를 99.99%까지 제거할 수 있다. 또 부피가 작고 목에 걸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격이 3달러(약 3400원)로 저렴해서 현재 가나, 우간다, 파키스탄처럼 물이 귀한 지역에서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장티푸스나 이질 같은 질병에 고통받는 어린아이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 밖에 저가의 고무로 만든 의족, 두 개의 항아리 사이에 모래를 채워 만든 간이 냉장고, 간단한 보조 장치를 덧대 운송량을 두 배로 늘린 자전거 같은 제품도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국에서도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제품을 설계하려는 움직임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내년 3월 19일에 는 ‘제2회 소외된 90%를 위한 창의적 공학설계 경진대회’가 열린다. ‘어프로텍’ 팀은 이번 대회에서 몽골에서 보고 느낀 어려움을 개선시킬 기술을 개발해 선보일 예정이다.

홍 교수는 “제품들이 주로 해외 사례에 맞춰 개발되는 이유는 한국은 더 이상 의식주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제3세계 사람들의 삶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배웠던 공학 지식을 활용해 직접 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대회를 통해 ‘소외된 90%를 위한 공학설계’를 처음 알게 됐다는 이승진 씨도 “항상 마음속에는 막연하게 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시험이나 취업 같은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대회를 통해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나름의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을 수 있게 돼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어프로텍(approtech)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줄임말이다. 여기에는 겉모양이 화려하지 않아도, 최첨단 기술이 사용되지 않았어도 소외 지역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는 팀원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 따듯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전하는 방식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 마음을 기술로 전하는 사람들, 마음은 나눌수록 더 뜨거워진다는 사실을 직접 느끼고 있는 이들이 있어 올겨울은 더 따듯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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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대전=이영혜 기자 · 사진 고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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