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세제가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부터 오히려 국내에서는 「경성세제 전성시대」가 열렸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합성세제가 우리의 강을 오염시키고 있다. 최근에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낙동강 페놀오염사건을 계기로 합성세제 등 공해물질에 대한 일반의 경각심은 크게 높아졌지만 안타깝게도 개선된 것은 별로 없다.
품 명 : 의류용 합성세제
종 류 : 약 알칼리성 제1종
계 면 활 성 제 상당분 : 25~30%
규산염 : 2% 이상
생 분 해 도 : 90% 이상
사용상 주의
1. 어린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십시오.
2. 비누풍선놀이 등 어린이 장난에 주의하십시오.
3. 세탁용 장갑을 사용하여 손이나 피부를 보호하십시오.
4. 사용 후에는 피부를 잘 씻어 피부의 거칠어짐을 방지하십시오.
5. 만일 마셨을 때는 응급조치를 취하십시오(의사의 지시를 받으십시오).
6. 용도 이외에는 사용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안 읽는 글
아마 이런 주의사항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냥 세제니까 쓰는 것이고 편리하기 때문에 누구나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용기에 적힌 주의사항을 읽었느냐고 물으면 "그건 뭐하러 읽느냐"고 반문하기 십상이다. 또 단순히 형식적으로 용기에 인쇄해 놓은 것으로 가볍게 취급하기 일쑤다.
그러나 여기에는 실로 대단한 내용이 들어 있다.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곰곰히 음미해 보자.
왜 그렇게 주의를 해야 하나. 그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합성세제가 상당히 독하기 때문이다. 독성이 있으니 합성세제는 쓸 때마다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옷을 입고 산다. 그러니 그 옷이 더러워지게 마련이고 빨아 입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빨래의 탄생배경이다. 몸도 씻지 않으면 더러워지므로 세수나 목욕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냥 물로만 씻으면 때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때를 잘 씻어내는 세제의 등장을 불렀다.
우리 조상들은 빨래할 때 잿물을 받아 사용했다. 각종 유기물을 태운 재가 물에 녹아 알칼리성 용액이 되면 이 알칼리 용액이 때를 분해하게 된다. 이때 물은 분해를 촉진한다. 옛 조상들은 씻을 때 녹두나 팥을 갈아 이용했고 밀가루를 쓰기도 했다.
조선 말에 이르러 나라의 문호를 개방하면서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때 비누와 양잿물도 함께 들어왔다. 비누는 기름과 가성소다(양잿물)를 섞어 끓인 것으로 거품이 나면서 때를 분해시킨다. 가성소다 즉 양잿물은 종래의 잿물을 개선시킨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잿물속의 알칼리성을 순수결정으로 뽑은 것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탁월했다.
그후 모직물 견직물이 크게 유행함에 따라 새로운 세탁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벤젠 시너 등 휘발성 용제로 세탁하는 드라이클리닝이 행해졌고 가정에서는 약 알칼리성 세제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알다시피 비누는 그 원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세면용과 세탁용으로 구분된다. 콩기름 등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비누는 세수나 목욕을 할 때 쓰였고 쇠기름으로 만든 비누는 주로 빨래를 할 때 사용했다. 한때 쇠기름의 수입이 막혔을 때 그 대용품으로 등장했던 정어리기름으로 만든 검은 색의 빨래비누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다가 1950년대 말 석유화학공업의 발전에 힘입어 계면활성제라는 물질이 석유화학공정에서 뽑아지게 되었고 곧 이것이 우수한 세척력을 가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것이 곧 중성세제의 시작이다. 이 계면활성제를 이용한 이른바 합성세제가 60년대 초, 더 정확히 말하면 1962년부터 우리의 생활속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합성세제는 경성과 연성, 두가지가 있다. 경성세제는 때를 분해하는 능력이 무척 우수하다. 그 가운데 유기인이 함유돼 있는데 거품이 잘 나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일단 물에 녹은 뒤에도 성분이 그대로 남게 돼 물을 오염시키는 결점이 있다. 또 피부를 자극하고 거칠게 한다.
이런 결점을 개량한 것이 연성세제다. 이 세제는 인의 함량을 줄이거나 빼고 계면활성제의 함량을 극도로 줄인 것이다.
합성세제는 다시 여러 종류로 분화돼 나간다. 예컨대 과일이나 식기를 씻는 중성세제도 등장한다. 이것으로 설겆이를 해 본 주부들은 이제 주방용 세제가 없으면 설겆이를 아예 하지 못할 지경이다. 또 머리를 감는데 쓰이는 샴푸가 나와 비누의 역할을 일부 대체했다.
병주고 약주고
샴푸로 머리를 감았더니 머리카락이 퍼석퍼석해진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자 이번에는 린스가 개발되었다. 린스는 머리칼의 결을 부드럽게 해 주는 약이다.
빨래용 합성세제에 대해서도 유사한 불평이 터져 나왔다. 때를 빼는 능력은 아주 우수하나 정전기가 줄지 않고 섬유의 결을 망친다는 흠이 지적되었다. 결국 여기에도 린스에 해당하는 헹굼제가 등장했다. 헹굼제에는 형광염료와 중화제가 들어 있다.
합성세제는 종전대로 팔면서 그 피해를 막기 위해 또 다시 린스나 헹굼제를 써야 한다니, 그야말로 병주고 약주는 격이다.
또 경성세제가 공해를 일으키는 물질로 밝혀지면서 연성세제가 그 대안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일반인은 연성세제를 무해한 것으로 믿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앞에서 예시한 성분표를 보면 연성세제에는 계면활성제가 25~30% 함유돼 있으며 생분해도(生分解度)는 90%다. 결과적으로 10%는 분해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10% 정도야 허용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전국에서 하루도 안 쓰는 날이 없는 합성세제의 양을 생각해 보라. 완전분해가 되어도 걱정인데 10%가 분해되지 않고 남는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경성에서 연성으로 바뀌었지만 수질오염의 주범으로서의 위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앞에서 예로 든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 보자.
첫째로 어린이들이 합성세제를 가지고 비누방울놀이를 하지 않도록 하고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데 두라고 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어린이들이 합성세제로 비누방울놀이를 하다가 큰 변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만 합성세제를 삼켜버려 어린이가 사망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합성세제는 독성이 강한 물질이기 때문에 그것을 먹게 되면 큰일이 난다.
둘째로 세탁용 장갑을 끼어야 하고 빨래한 뒤에는 손이나 피부를 잘 씻도록 주의하고 있다. 합성세제를 녹인 물에 손을 담그면 피부가 상하는 일은 이제 상식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필수품이 된 부엌용 고무장갑은 합성세제가 나온데 따른 부산물이다. 이것도 병주고 약주는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정말 선전대로 연성세제가 무해한 것이라면 굳이 장갑을 낄 필요도 없고 빨래한 뒤 손을 씻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주의사항을 적어 놓은 것 자체가 연성세제도 완전히 무해한 물질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또 만일 합성세제나 합성세제가 녹아 있는 물을 마신 경우에는 즉시 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받고 의사의 지시에 따르라고 쓰여 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에서 합성세제가 든 물을 마셔 죽은 어린이의 부모가 합성세제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을 때 제조회사측은 어린이의 사인이 합성세제 탓만은 아니라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었다.
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번에는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한 한 남자가 밤중에 부엌에 들어가 중성세제를 타 놓은 물을 모르고 마셔 버렸다. 그는 심한 구토와 복통을 일으켜 병원의 응급실에 실려 갔다. 병원에서는 위세척 등 응급조치를 했으나 하루종일 입으로 거품을 토하고 거품똥을 배설했다.
간신히 죽지는 않았지만 거품이 완전히 없어지는데 사흘이 걸렸다고 한다. 이 뜻밖의 사건을 통해 어린이의 사인이 합성세제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합성세제가 인체에 해로운 것은 분명하다는 게 밝혀졌다. 그래서 합성세제 제조회사가 상당한 위자료를 물고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 뒤부터 합성세제에는 이런 주의사항을 반드시 명기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과거에는 이런 주의사항을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표기했으나 지금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큰 글자로 명기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지금 쓰고 있는 합성세제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대강 짐작했을 것이다.
개울물은 거품투성이로
최근에 판매되고 있는 합성세제에는 효소를 첨가하고 있다. 두시간 이상 담가두기만 해도 때가 분해되도록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품도 종전보다 훨씬 적어졌다. 머리 감는 샴푸와 린스를 한데 합친 신제품도 나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효소를 첨가하고 성분을 농축, 적은 양으로도 빨래가 되는 신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러한 세제들이 석유화학 제조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독성이나 그밖의 부작용이 약간 줄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인체나 환경에 무해하도록 개량된 것은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개울물에서는 거품이 피어 오르고 있다. 특히 마을에서 나오는 실개천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그것이 모두 합성세제에서 나오는 거품이다. 이렇게 거품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물속의 여러가지 생물은 숨이 막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그 때문에 실개천에서는 실지렁이가 없어졌고 거머리도 사라졌다. 그만큼 물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공장에서 흘러 나오는 폐수도 문제지만 합성세제가 녹아 있는 생활하수는 더 심각한 문제다. 공장폐수는 각 공장마다 정화시설을 갖추고 일단 정화해서 방류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법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문제가 생길 리 없지만 생활하수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합성세제가 그렇게 나쁘면 그 생산을 중단시키고 모든 국민이 쓰지 않게 홍보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합성세제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값싸고 효력있는 세제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 세제도 있긴 있다. 빨래비누를 가루로 만든 가루비누가 그것이다. 이 가루비누는 쇠기름 등 기름을 원료로 해서 비누를 만들었던 시절에 이미 등장했다. 가루로 만들면 세탁기에 적용하기 쉽기 때문에 가루비누를 고안한 것이다. 하지만 원가가 많이 들고 냉수와 함께 사용하면 때가 빠지는 효율이 줄어든다는 결점이 있다. 사실 값싸고 때 잘 지는 것만 놓고 보면 합성세제가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무공해 세제 개발에 매진해야
사실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경성세제의 국내도입이 선진국의 공해수출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1962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합성세제가 생산될 당시, 이미 선진국에서는 경성세제가 공해유발물질로 배척당하고 대신 연성세제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었다. 그래서 '하이타이'라는 상표명의 경성세제를 만드는 시설을 비교적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물질이 물을 오염시키는 줄 뻔히 알면서 마구잡이로 만들어 팔았다는 것이다.
지금 선진각국에서는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 합성세제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용수도 한 곳에 모아 일단 정수한 뒤에 방류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수질보전에 힘쓰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몇 군데에 종합하수처리장을 설치하고 있을 뿐이다. 생활하수는 그대로 버려지고 있으며 공장폐수마저도 관계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단속에 걸려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세제를 만드는 공장들도 무공해세제를 개발하는데 별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공해 유발이 적은 세제를 만들도록 정부관련부처에서 유도해도 공장설비에 막대한 돈이 든다는 이유로 차일피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깨끗한 빨래, 깨끗한 목욕을 안심하고 할 수 있을 때는 언제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