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매우 많은 양이 잡히며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물고기가 있다. 바로 고등어다. 고등어는 밥반찬으로 가장 인기 있는 생선 중 하나로, 어떤 가수는 고등어를 주인공으로 한 노래까지 내놓았다. 고등어의 인기 비결은 간단하다. 값이 싼 데다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보기에도 몸집이 푸짐해 입맛을 돋우기 때문이다.
특히 월동을 앞둔 초가을부터 늦가을 사이에 잡히는 고등어를 가을고등어라고 부르는데, 살이 통통하게 올라 그 맛이 일품이다. ‘가을배와 가을고등어는 며느리에게 주지 않는다’라는 말도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과거 대학가 주변에는 학생들의 주머니사정을 고려해 값이 싸고 배부른 요리들이 여럿 개발됐는데, ‘고갈비’는 그 대표 격인 음식이다. 고등어를 구워 갈비처럼 먹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고등어를 구울 때 진동하는 구수한 냄새는 상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한다.
바닷속‘쾌속선’
고등어(Scomber japonicus)는 농어목 고등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우리나라 전 연안과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 온대 및 아열대 해역에 분포하고, 같은 고등어과에 속하는 친척으로는 삼치나 다랑어 등이 있다. 몸은 긴 방추형이며 40cm 정도까지 자란다. 등쪽은 암청색, 배쪽은 은백색을 띠고, 등쪽에서부터 옆줄 아래까지 검은색의 물결무늬가 퍼져 있다. 등지느러미 2개가 멀리 떨어져 있고,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 뒤쪽으로 토막지느러미가 5개씩 늘어서 있다는 점도 다른 물고기와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다.
밥반찬으로 나온 생선이 고등어인지 삼치인지 헷갈린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주의해서 살펴보면 된다. 삼치는 고등어에 비해 눈이 작고, 몸 옆면의 무늬가 흐리며, 길고 납작한 몸에 살이 희고 부드러운 편이다. 고등어와 전갱이가 혼동되는 경우에는 몸빛깔이 옅고 물결무늬가 없으며, 옆줄을 따라 날카로운 모비늘이 돋아 있는 쪽이 전갱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전은 ‘현산어보’에서 고등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고등어는 낮 동안 매우 빠른 속도로 헤엄쳐 다니므로 잡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밝은 곳을 좋아하는 성질을 이용해 횃불을 밝혀 놓고 밤에 낚는다.”
정약전의 말처럼 고등어는 매우 빠른 속도로 헤엄치는 물고기로, 시속 60~70km를 낼 수 있다. 얇게 퇴화한 비늘과 방추형의 몸꼴 덕분에 물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고, 몸에서 붉은색을 띠는 근육인 적색근의 비율이 높아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헤엄칠 수 있다. 고등어가 불빛을 좋아해 오래전부터 주광성을 이용한 어법이 성행했다는 사실은 ‘한해통어지침’, ‘조선통어사정’ 등 다른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목포로 갈까, 부산으로 갈까
고등어는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다. 큰 무리를 이뤄 수면 가까운 곳을 이리저리 헤엄치며 플랑크톤이나 검물벼룩과 같은 요각류, 갑각류, 어류, 오징어류 등의 먹이를 쫓는다. ‘현산어보’에는 고등어가 떼를 지어 먼 거리를 회유한다는 사실을 추측하게 하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
“추자도 여러 섬에서는 음력 5월에 낚시에 걸리기 시작해 7월에 자취를 감추며, 8~9월에 다시 나타난다. 흑산 바다에서는 음력 6월에 낚시에 걸리기 시작해 9월에 자취를 감춘다. (중략) 섬사람들은 이 물고기가 1750년에 많이 잡히기 시작했고, 1805년에 이르기까지 풍흉은 있어도 잡히지 않는 해는 없었는데, 1806년 이후에는 해마다 줄어들어 근래에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고 말한다. 요즈음 영남 지방의 바다에서 새로이 이 물고기가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그 이치를 알 수가 없다.”
정약전은 고등어의 산출량이 시간을 두고 변동한다는 사실을 자세히 묘사했다. 그리고 영남과 호남에서 고등어잡이의 풍흉이 교대되는 이유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정약전의 궁금증은 고등어가 회유하는 속성을 통해 풀어야 한다. 고등어는 따뜻한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수온이 올라가고 먹이가 풍부해지는 봄이 되면 대규모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2~3월경 제주도 성산포 연안에 몰려든 고등어 무리는 점차 북상해 동해나 남해에서 여름을 보낸다. 그 후 북상하는 무리는 둘로 갈라지는데, 한 무리는 동해로, 다른 무리는 서해로 올라간다. 이때 동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많다면 서해 쪽이 흉어가 되고, 서해 쪽이 많다면 동해 쪽이 흉어가 될 것이다.
실제로 목포 서쪽 근해가 풍어일 때는 부산 동쪽 근해는 흉어이고, 부산이 풍어일 때는 목포에 흉어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러한 주기는 4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고등어는 어떤 기준에 따라 동서의 진로를 선택하는 것일까. 고등어가 회유하는 목적은 적당한 수온과 먹이를 찾기 위한 것이다. 동해와 서해 어군의 양적 변화도 이와 관련돼 있으리라 추측된다.
알레르기 vs. 생리활성
고등어는 조선시대부터 많이 소비됐으며, 주로 간고등어와 같이 손질해 염장한 형태로 유통됐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과 달리 고등어의 창자가 중요한 가공식품으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1611년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고등어의 창자젓이 가장 좋다고 밝혔다. 조선 후기 진상품에 관한 절차를 규정한 ‘공선정례’에도 고등어의 창자젓을 가리키는 ‘고도어장장해(古刀魚腸臟疫)’가 기록돼 있다.
그런데 고등어를 식용으로 할 때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고등어는 정어리와 함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고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고등어를 포함한 등 푸른 생선들은 히스티딘이라는 아미노산을 대량 함유하고 있다. 고등어가 죽으면 세균이 이 물질을 히스타민으로 변하게 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고등어는 상하기 쉬운 생선으로도 알려져 있다. 몸체에 강한 효소가 있어 죽음과 동시에 분해작용이 시작돼 금방 머리 쪽에 붉은색이 돌고 살이 흐느적거린다. 또 고등어가 변질되는 과정 중에 식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인 프토마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프토마인에 중독되면 귀가 울리고 열이 오르며, 얼굴과 눈이 충혈돼 고통을 느끼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해독 효과가 있는 미나리를 사용해 불상사에 대비하곤 했다.
최근 들어 등 푸른 생선의 영양학적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고등어의 가치도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고등어에 노화방지, 세포재생, 피부미용, 탈모방지, 면역력 증강 등 수많은 생리적 활성효과를 나타내는 핵산 성분과 뇌졸중에 효과가 있는 DHA, EPA 등의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이 밖에도 각종 영양성분의 새로운 기능에 대한 보고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창완의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에서처럼 언젠가 매일 아침 어머니가 고등어를 구워 주시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이태원 교사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세포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우리나라 전통 문헌에 나타난 과학 관련 내용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의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기행문식으로 정리한 ‘현산어보를 찾아서1~5(청어람미디어)’ 등이 있다.
순간적 힘 좋은 백색근 vs. 지구력의 적색근
고등어를 먹다 보면 고깃살이 두 종류로 구분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배쪽과 등쪽은 옅은 색인데 비해 옆구리 쪽은 짙은 색을 띠며, 맛과 육질도 다르다. 고깃살이 서로 다른 빛깔을 띠는 이유는 각각이 다른 근육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색이 옅은 쪽은 백색근을 포함한 부분이다.
백색근은 가로무늬근의 일종으로 혈액 속에서 산소를 저장하는 미오글로빈의 양이 적고, 혈관이 잘 발달하지 않아 옅은 색을 띤다. 백색근은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서 에너지를 저장하는 다당류인 글리코겐을 분해해 순간적으로 큰 힘을 낼 수 있지만 연속적으로 운동하면 젖산이 쌓여 쉽게 피로해지는 특성이 있다.
적색근 역시 가로무늬근의 일종이지만 미오글로빈을 많이 함유하고 혈관이 잘 발달해 붉은빛을 띤다. 백색근에 비해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데다 지질을 산화해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장시간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경우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흔히 생선을 흰 살 생선과 붉은 살 생선으로 구분하곤 한다. 이러한 구분은 물고기의 생태적 습성과 관계가 있다. 조피볼락(우럭), 아귀, 대구, 명태, 넙치, 가자미처럼 바닥층에 서식하거나 비교적 움직임이 적은 물고기는 백색근이 발달해 고깃살이 흰색을 띤다. 고등어, 참치, 방어, 꽁치, 정어리처럼 넓은 바다를 쉬지 않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적색근이 발달해 고깃살이 붉은색을 띤다.
적색근을 가진 물고기 중에는 백색근을 함께 가지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먼 거리를 헤엄치고 있는 동안에는 적색근을 주로 사용하다가 먹이를 추격하거나 도망을 가는 상황에서 급격한 움직임이 필요할 때는 백색근을 사용한다. 상황에 따라 두 근육을 적절하게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