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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오보 바로잡을 파란 눈의 ‘구원투수’ 나섰다!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 켄 크로포드 단장



삼고초려의 재현이었다. 기상청 문을 두드린 지 세 번째 만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기자는 지난 4월 미국 오클라호마대의 켄 크로포드 석좌교수가 기상예보의 정확도를 향상시켜줄‘그’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기상청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불발. 기상청은 “외국 전문가를 영입할 계획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올지는 확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넉 달이 흘러 8월 중순 드디어 크로포드 교수가 기상선진화추진단장으로 확정됐다. 다시 기상청에 전화를 했지만 기상청은 아직 크로포드 단장이 업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또 거절했다. ‘10월쯤 언젠가’ 진행하자는 말과 함께.

초조해졌다. 모든 언론에서 주시하고 있는 그를 누구보다 먼저 인터뷰하고 싶었다. 크로포드 단장은 지난해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국가공무원법이 개정된 이후 임용된 첫 외국인 고위 공무원이다. 그의 연봉은 공무원 중 가장 많은 대통령(1억 6867만 원)의 약 두 배인 26만 달러(약 3억 2500만 원)에 이른다. 무엇보다 그는 잦은 오보로 국민들의 신임을 잃은 기상청에서 자구책으로 모신 ‘구원투수’이다.

다행히 인터뷰는 생각보다 빨리 잡혔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기상 예보실에서 만난 그는 젊진 않지만 매우 젠틀했다. 누구든 낯선 상황에서 밝게 웃기란 쉽지 않은데, 다행히 이 예의바른 노신사는 “Show me your smile(웃어주세요)”이라는 말에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12시간 이내 실황예보가 최우선

본격적인 인터뷰는 크로포드 단장의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진행됐다. 앞으로 3년간 ‘기상선진화추진단장’으로서 기상청에서 일하는 그는 자신의 역할을 ‘일종의 자문가 겸 정책결정자’라고 소개했다. 기상선진화추진단은 기상청의 예보기술을 높이고 기상서비스를 선진화하기 위해 그동안 기상청과 기상서비스에 내재돼 있던 문제점을 찾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과 계획을 세우는 조직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 중에는 비교적 쉽게 해결할 일도 있지만,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고된 일도 있어요. (10까지 번호가 적힌 두 장의 프린트물을 주며) 그래서 이런 계획들을 모아 ‘기상청 선진화방안 최우선 10과제’를 만들었습니다.”

크로포드 단장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이라도 하듯 재빨리 기자가 원하는 답을 내놨다. 리스트에는 레이더 자료의 품질 향상, 예보관의 역할 재정립 등 갖가지 현안들이 정리돼 있었다. 이 중에서 단장이 가장 먼저 이루고자 하는 항목은 어느 것일까.

“리스트에서 앞의 항목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해요. 모두 태풍이나 돌풍 같은 위험 기상을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예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이죠. 현재는 일주일 단위 예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앞으로는 0~12시간 단위의 실시간 예보에 관심을 두려고 해요. 이는 뛰어난 성능을 갖춘 수치예보보다, 빠르게 계산하는 컴퓨터보다 사람의 역할이 더 크게 발휘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위험 기상에만 대처하는 예보관 별도 마련

사실 지난해에는 기상 오보가 많았다. 단장에게 특별히 한국에서 단기예보가 맞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기자가 대기과학 전공이라고 했으니 좀 더 전문적인 얘기를 할게요(웃음). 보통 대부분은 날씨가 이렇게 좋죠(인터뷰를 하던 날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가을 날씨였다). 이런 날은 종관규모의 모델로 쉽게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신문에 대서특필될 만한 위험 기상은 종관규모 현상보다 중규모미규모 현상이 더 큰 원인이 돼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관규모, 중규모, 미규모

기상학에서 종관규모는 수평으로 1000km, 연직 방향으로 10km 정도의 크기를 말하며 이동성고기압이나 저기압이 대표적인 예다. 중규모는 2∼2000㎞, 미규모는 2㎞ 이하의 기상현상을 다룬다.



단장은 미규모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었다. 우리가 부산을 간다고 할 때 평균 5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5시간 전에 출발하면 충분하다. 하지만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는 수도 있다. 사고가 날 거라는 건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데 말이다. 단장은 “바로 이런 사고가 미규모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삼면의 바다에서 습한 공기가 전해지는 우리나라는 급작스럽게 기상조건이 변하기가 쉽다. 여름철에 형성된 뭉게구름은 서울 하늘의 1/4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날씨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급작스러운 반응은 모델에서 잡아내기 힘들다. 이런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일은 추측을 할 뿐 어느 세계적인 기상학자도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예보관이 위험 기상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물론 한계가 있지만, 가능한 한 위험 기상을 예보하는 전문 예보관은 항상 관심 지역에서 나타나는 미규모 현상을 주시해야 해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추석 날 부산에 가려고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 아니라 일주일 전부터 인터넷이나 뉴스를 보고 빠르게 가는 법을 연구하는 사람이 돼야죠. 그래서 위험 기상 예보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통역과 해설에 도움을 준 기상선진화담당관실의 장근일 기상사무관에 따르면 크로포드 단장은 위험 기상에만 집중하는 예보관을 별도로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매일 날씨를 예보하는 사람과 호우 같은 위험 기상 현상을 주로 예보하는 예보관을 따로 둬 전문성을 높이자는 뜻이다. 현재 캐나다가 이 방법을 적용해 위험 기상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6개 레이더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크로포드 단장은 레이더 관측의 전문가답게 기상관측 자료의 품질 향상을 강조한다. 특히 최우선 과제 항목 중에서 맨 윗줄에 오른 일은 레이더 자료의 품질 향상과 표준화이다.

“레이더는 위험 기상과 미규모 기상 현상을 관측하기에 가장 좋은 장비 중 하나에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더군요. 총 26개의 레이더를 공군, 국토해양부, 기상청 등에서 나눠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 장비가 각각 다른 목적과 다른 수준에서 유지, 보수되고 있어요. 그러면 자료의 형식이 동일하지 않으니 자료를 공유하거나 이용하기 쉽지 않죠. 레이더를 관리하는 기관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자료도 표준화하는 다기관 레이더운영센터가 필요합니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이와 같은 기관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데, 성과가 좋아요.”

크로포드 단장에게 ‘자신이 한국에 온 이유가 무엇인 것 같냐’고 물었다. 단장은 쑥쓰러운 듯 옆에 있는 장 사무관에게 답변을 들으라고 했다. 장 사무관은 “단장이 가장 높이 평가받는 부분은 그가 미국 기상청과 대학, 두 곳 모두에서 근무한 경력”이라며 “교수는 학문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을지 몰라도 조직을 이해하기 어렵고, 반면 현장에만 있으면 다른 기관과 접촉하기 힘든데, 그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보기 드문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저명한 기상학자이지만 그에게도 한국에서의 경력은 중요하다. 그의 이력의 종착역이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크로아티아에서 1년간 기상청 현대화 계획의 컨설팅 책임자로 있었다. “자신의 경력을 빛낼 사람들은 이곳에서 함께 일할 동료들”이라고 말하는 크로포드 단장은 이미 또 다른 경력을 만들어낼 채비를 모두 끝마친 듯 보였다.
 

200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 사진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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