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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는 왜 애니메이션을 좋아할까

단순미와 순수함을 통한 인간성 찾기

TV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주제는 ‘신데렐라’류 멜로물이다. 우리의 ‘신데렐라’ 주인공이 피터팬 같은 능력을 갖은 남자 주인공의 그림자 안에서만 행동하게 되는 구태의연한 이야기. 우리는 왜 그런 이야기에 끊임없이 빠져들고, 재미있어 하는 것일까. 그것은 드라마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인간 감성의 본질은 자연이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의 합일점을 모색하는 휴머니즘이 멜로물의 직접적인 소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말 후기산업사회가 세기말적인 감상주의와 결합하면서, ‘인간’이라는 본질적인 물음은 퇴색되어 가는 느낌이다.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도 뒷자리로 밀려나고 있다. 자본론의 기본은 인간의 노동력이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로 기계화가 증가되면서 인간의 노동력보다는 인간 자체가 자본으로 뒤바뀌게 된다. 즉 미래 정보 사회에서는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갖게 된 인간이 하나의 자본으로 취급받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컴맹’이라는 테크놀러지문맹은 미래 사회에서는 불필요한 인력이기 때문에 불평등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게 될 미래 정보 사회에서의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대안으로 ‘포스트 휴머니즘’이 등장했다. 포스트 휴머니즘은 인본주의만큼 인간에게 집중된 인간중심적 사고를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방법론은 가장 인간답지 않은 형태로 접근하게 된다. 즉 사이보그나 사이버스페이스를 등장시켜 비인간화를 비판함으로써 가장 근본적인 인간성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결국 대중의 동의를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TV, 영화 등의 영상산업에 다양한 형태로 적용된다. 포스트 휴머니즘은 이미 할리우드 SF영화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단순한 것이 재미있다

현대사회의 기계문명은 인간성을 점점 사라지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니메이션은 인간이 가장 인간답기 위해 찾는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예전에 아동과 청소년들만이 즐기던 애니메이션을 이제 성인들도 좋아하고 있다. 또 신세대들의 독특한 문화취향으로 각광받는 PC통신에서도 애니메이션은 인기 주제가 된지 오래다.

치열한 경쟁과 파도처럼 밀려드는 정보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 항상 불안해 한다. 그래서 감성적으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된다. 이런 공간의 한복판에 만화영화를 필두로 한 애니메이션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은 항상 환상적인 주제를 다룬다. 또 비극이더라도 항상 재미있는 요소들이 가미돼 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어느 한자리에 오래 집중하지 못할뿐더러,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다. 4세 정도의 아이가 집중하는 시간은 2-3분에 불과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30분짜리 만화영화를 한 자리에 앉아 거뜬히 본다.

어린이들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든 단순하게 보려는 특성 때문이다. 이런 단순성은 선으로만 이루어진 애니메이션의 단순성과 맞물려 돌아간다. 애니메이션은 생략된 단순 그림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더 짙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또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배경의 탄력성을 내재하고 있다. 즉 실사 접근성이 높으면서도 다양한 효과의 배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공룡이 살아 움직이는 지구, 지옥이나 천당, 2천만년 떨어진 우주 등 상상 속의 세계 무엇이든 소화해낸다. 거기에다 단순화된 배경은 등장하는 캐릭터와 줄거리를 보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와 전혀 다른 장르로서 감상의 역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제작방식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셀 애니메이션 이외에 진흙애니메이션, 종이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제작 테크닉은 스토리의 다변화와 각 부분별 특성을 최대한 강화시킬 수 있으며, 시나리오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미 애니메이션은 익살 가득한 개그에서부터 난해한 철학 내용까지를 다루는 대중 예술로 발전했다. 표현 기법도 가장 원시적인 작업인 핸드메이드 애니메이션부터 컴퓨터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하다. 이제 애니메이션은 환등기 속에서 단순하게 움직이는 그림이 아닌 스크린과 TV 브라운관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 독특한 대중 예술인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늘어나는 피노키오. 애니메이션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거부감 없이 설득력을 갖는데 유리하다.


유아 회귀 본능과 인간성

특수효과(SFX)영화를 살펴보면 컴퓨터 그래픽부분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 배우가 등장하는 부분과 컴퓨터 그래픽이 합성되는 합성기술이 발달함으로써 어느 부분이 실사이고 어느 부분이 가상 세계인지 관객들은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웅장한 세트와 ‘트위스터’의 속도감, 그리고 ‘단테스 피크’의 화산폭발, 최근 재개봉된 ‘스타워즈’까지 할리우드의 새로운 흥행보증수표는 컴퓨터 그래픽 합성이다. 이 부분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컴퓨터 그래픽의 기본이 모두 애니메이션의 이상적 실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하는가’라는 영화는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의 합성영화이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제작되면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합성기술은 끊임없이 발달하게 됐고, 컴퓨터 그래픽과의 합성도 무난하게 달성됐다.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만화영화가 아니다.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이 없는 영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총칭한다. 그러므로 컴퓨터 그래픽의 환상적인 영상은 결국 정지영상의 디자인으로부터 시작해 한 장면 한 장면에 속도감과 방향성을 적용한 애니메이션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청소년들과 성인들의 유아 회귀 본능은 월트디즈니가 만들어낸 ‘신데렐라 콤플렉스’나 ‘피터팬 신드롬‘을 넘어서, ‘온달 콤플렉스’와 ‘팥쥐 콤플렉스’와 같은 우리의 전통적인 감성구조까지 적용되고 있다.

결국 애니메이션은 가장 통속적인 주제를 사용하지만, 그림이라는 순수성과 결합하면서, 직접적인 의사소통의 채널을 형성한다. 누구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또한 애니메이션의 작품이 우리에게 재미를 제공해주는 동안, 우리 주위에 잊혀져가는 인간성의 기억들은 하나둘씩 새롭게 생겨날 것으로 믿는다.

둘리, 망치, 오돌또기, 한국 토종이 뜬다

복고풍이 유행인 요즘 TV드라마도 복고풍이 유행이다. 1970년대를 그린 어느 드라마에는 만화영화 ‘황금박쥐‘를 보기 위해 어린이들이 10원을 들고 문구점 앞에 줄을 서는 장면이 나온다. 그 동네에서 텔레비젼을 유일하게 갖고 있는 문방구 아저씨가 야박하게도 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텔레비젼을 보여주는 것이다.

20여년전 문방구 앞에 서있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엿한 기성세대로 성장했다. 옛 추억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애니메이션 보기를 즐긴다.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개봉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화를 구해 감상하고, 자녀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기도 한다.

더 이상 만화영화는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 PC통신의 중고품매매 보드에서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사고 팔겠다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또 천리안의 애니메이트(ani), 하이텔의 만창동(ccc), 나우누리의 만화와 애니를 사랑하는 동네(anico) 등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이 모이는 통신모임도 가지 각색이고 회원수는 족히 8만명에 달한다.

애니메이션은 도깨비 방망이로 통한다. 애니메이션을 끊임없이 봐주는 관객들이 영화는 물론이고, 영화의 캐릭터를 이용해 만든 책가방부터 인형, 손톱만한 스티커까지 각종 팬시물들을 끊임없이 사재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한 애니메이션은 대대 손손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된다. 1928년 증기선 윌리로 탄생한 미키마우스가 70살이라는 나이에도 전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올해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대부분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일뿐 한국판 애니메이션의 자리는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사람들은 애국심으로 만화영화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명쾌한 세태풍자부터 심오한 철학까지 우리의 환상을 실현해주는 움직이는 그림이라면 ‘어느 나라 산(産)’이든 개의치 않는다.

다행히 88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만의 만화영화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 갈길은 멀기만 하다. 빠듯한 예산으로 참신한 아이디어와 빈틈없는 기획이 밑받침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은 탄생하기 힘들다. 전세계팬은 고사하고 우리나라 팬을 매료시킬만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도 쉽지 않을 듯 하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 하청 제작에 관한 한 수주량 세계 1위라는 잠재력을 바탕으로 한국산 애니메이션은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다. 제이콤은 올 겨울 개봉 예정으로 제작했던 허영만 원작의 ‘망치’를 약간의 캐릭터 수정작업을 위해 내년 여름으로 개봉을 미뤘다. 박재동 만화가의 ‘오돌또기’는 재원마련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미 기획이 끝난 상태이다.

그래도 한국 애니메이션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는 것은 김수정씨의 ‘둘리’. 14살이나 먹은 둘리는 원래 만화로 연재됐다가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둘리는 미국의 워너 브라더스사와 TV용 애니메이션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애니메이션이 전세계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을 열광시킬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곽수진 기자)
 

만화주인공에서 영화주인공으로 전격발탁된 망치.
 

199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한창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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