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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가운데에 당당히 앉으세요” 5G 표준 만드는 통신공학자

김현숙 LG전자 C&M표준연구소 책임연구원

◇ 보통난이도 

ㅁ┃서울 동덕여고
┃덕성여대 컴퓨터과학과 학사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석사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

 

“표준이요? 그게 정확히 뭔지 사실 저도 입사 후에 알았어요.”


2월 3일 서울 서초구 LG전자 서초R&D캠퍼스에서 만난 김현숙 LG전자 C&M표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5년 전 아무것도 모른 채 표준을 연구하게 됐을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연세대에서 컴퓨터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2005년 LG전자에 입사했다. 


컴퓨터과학 중에서도 통신 분야를 깊이 공부했던 만큼 이동통신 네트워크 기술 개발이라면 분명 자신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맡겨진 일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동통신 네트워크 ‘표준’ 연구였다.

 

표준이 있기에 세상은 통한다 


과거에는 해외에 나가면 그 나라에서 통신이 되는 휴대전화를 새로 사거나 빌려야 했다. 그러나 현재는 외국에 간다고 휴대전화를 새로 사는 사람은 없다. 국내에서 쓰던 휴대전화에서 간단하게 로밍 신청만 하면 번호까지 그대로 어느 나라에서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전 세계가 이동통신 네트워크의 국제 표준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친구에게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그 짧은 순간에도 데이터 신호는 수많은 연결 지점을 거친다. 내 단말기에 입력된 메시지가 숫자 0과 1로 이뤄진 이진법의 통신 신호로 변환되고, 이 신호는 기지국으로 전송된다. 전송된 신호는 구름처럼 복잡한 네트워크 노드를 지나며 친구가 속한 기지국까지 전달된다. 그러면 비로소 친구가 메시지를 받는다. 


이때 통신사별로 혹은 국가별로 신호를 변환하는 체계나 전송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 통신이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이에 대비해 언제 어디서나 같은 통신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약속을 맺은 것이 바로 표준이다. 


LG전자는 과거 단말기 개발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개발되면서 무선인터넷과 같은 통신 네트워크 연구가 중요해졌다. 이때 김 책임연구원이 적임자로 뽑혔고, 이동통신 네트워크 표준 분야 연구원이 됐다.


“처음에는 들어본 적 없는 분야라서 막막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해보니 전체 통신 시스템을 보는 일이 저에게 잘 맞아 어느덧 15년째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5세대(5G) 이동통신 표준 연구를 하고 있어요.”


5G 기술은 스마트 팩토리, 자율주행차 등을 구현하는 핵심 기술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 팩토리에서는 로봇들이 실시간으로 통신하며 완벽하게 상호작용해야만 생산 오류를 막을 수 있다. 자율주행차는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는 속도가 사람이 인지하는 것보다 빨라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테이블 가운데 자리에 앉아라 


김 책임연구원을 비롯한 이동통신 네트워크 표준 분야 연구원들은 이동 통신 관련 국제 표준을 제정하기 위해 창설된 표준화 기술협력기구인 ‘3GPP’에 모여 4세대(4G) LTE, 5G 같은 통신 기술의 표준을 만든다. 서비스를 상용화하는 데 더 적합한 기술을 제안하고 논의하는 동시에 각국은 자국의 기술이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신경전을 벌인다. 


“처음에는 회의장에서 의견을 내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어요.”


김 책임연구원은 3GPP를 비롯한 국제회의에 연간 10~12회 참석한다. LG전자에서 개발한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시키기 위해, 혹은 동의하지 않는 기술이 채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표준 분야 전문가들 앞에서 손을 들고 의견을 제시한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당당히 손을 들지 못하고 쭈뼛거리기 일쑤였다. 무리와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 그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견딜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을 들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우연히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강연한 영상을 봤어요. 당당하게 테이블 가운데에 앉으라고 말하더군요. 이후 의도적으로 테이블 가운데 앉으려고 했어요. 자리 하나 바꿨을 뿐인데 회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많은 의견을 내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주목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공식 회의 석상이 아닌 자리에서도 다른 나라, 다른 기업의 사람들과 활발하게 기술에 대한 논의를 나누는 ‘인싸’가 됐다. 

 

 

포기만 않는다면 길은 있다


물론 그의 인생이 생각대로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통신 표준 분야에서만큼은 가장 능숙하고 경험도 많다고 자부했지만, 다른 부서에서 온 직원이 먼저 진급하는 일도 겪었다. 입사 때부터 맡아온 한 그룹의 리더 역할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을 때는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일을 그만둘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오기가 생겼다. 이참에 능력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하루 저녁 안에 논문 한 편을 쓸 정도로 일에 욕심을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진급했고, 본인이 맡던 리더 자리로도 복귀했다.


결혼과 육아 문제로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좋아한 김 책임연구원은 컴퓨터를 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컴퓨터과학을 선택했다. 공부를 많이 하면 기회가 많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박사과정까지 밟았다. 그런 그의 인생에 결혼이라는 중대 이벤트가 닥쳤다. 결혼이 박사학위를 받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잠시 고민이 됐다. 하지만 금방 결론을 내렸다. 공부와 결혼, 둘 다 하기로 말이다. 


그는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곧바로 박사과정을 밟으며 공부를 이어나갔다.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 결혼도 했다. 학위를 받은 후에는 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했다. 


물론 결혼을 했기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것들도 분명 있었다. 한때 대전에 있는 연구소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남편과 아이가 서울에 거주해 마음을 접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어요. 제약도 있고 타협해야 할 부분도 많죠. 그러나 무조건 희생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포기만 하지 않으면 결국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이나 육아 때문에 유학이나 학위 과정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끝까지 용기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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