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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RNA 조각으로 불치병 해결한다

마이크로RNA연구단

부모 중 한 사람이 당뇨병을 앓고 있으면 자녀의 15%에게, 부모가 모두 당뇨병 환자이면 자녀의 30%에게 당뇨병이 유전된다고 한다. 당뇨병뿐 아니라 암과 고혈압 같은 대부분의 성인병은 잘못된 식습관이나 불규칙적인 생활습관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환자의 자녀가 같은 질환을 앓을 확률이 높다는 의미에서 유전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은 평소에 바로잡으면 되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몸속에 지닌 유전자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유전자란 부모가 자녀에게 특징을 물려주는 인자인데, DNA 상에서는 염기서열로 나타난다. 하지만 DNA를 직접 조작해 유전자를 바꿔 질환을 예방하는 방법은 다른 유전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위험할 뿐만 아니라 현재 기술로는 실행하기 어렵다.

원본인 DNA를 바꾸는 방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원본이 가진 정보를 복사해 실질적으로
유전자를 발현시키는 물질을 조절해 질환을 치료할 수 있진 않을까. 서울대에서 마이크로RNA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는 “DNA에서 만들어지는 RNA가 유전자를 발현시키는 일을 억제해 유전자를 조절할 수 있다”며“RNA 사슬에 붙일 수 있는 마이크로RNA가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RNA는 이중나선구조인 DNA의 두 가닥 중 하나에서 만들어지는데, DNA가 가진 유전정보도
고스란히 복사한다. ‘유전자가 발현된다’는 말은 RNA가 복사된 유전정보를 갖고 세포 내에서 여러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생산한다는 뜻이다. 결국 특정 RNA가 특정 단백질을 생산하는 일을 막으면 그 유전자가 발현되지 못하는 셈이다.



예쁜꼬마선충에서 처음 발견된 마이크로RNA

마이크로RNA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주 작은’ RNA를 말한다. RNA, DNA 사슬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뉴클레오티드 20~22개가 항상 두 가닥으로 어긋나게 붙어 있는 마이크로RNA는 한쪽 끝에 뉴클레오티드가 2개씩 튀어나와 있다.

마이크로RNA는 염기 4개(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우라실)로 이뤄져 있지만 단백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단백질을 못 만드는 RNA는 지금까지 사람 몸속에서만 1만 1665종 이상 발견됐고 그가운데 마이크로RNA는 700종쯤 된다.

1993년 미국 다트머스대 의대 빅터 앰브로스 박사는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에서 배아 발생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찾다가 마이크로RNA를 처음 발견했다.앰브로스 박사가 발견한 작은 RNA 조각은 2001년에야 ‘마이크로RNA’라는 이름이 붙었으
며 조금씩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이때부터 마이크로RNA에 대해 연구했고 그가 이끄는 연구단은 현재 세계적인 마이크로RNA 연구팀이 됐다.

단백질을 만들지 못해 유전자를 발현시키지 못하는 마이크로RNA에 전 세계 생명과학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마이크로 RNA는 크기는 아주 작지만 세포 내에서 유전자를 조절해 여러 역할을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이크로RNA는 세포가 성장하고 분화하는 데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세포분열을 조절하며 대부분의 생명 현상에 관여한다. 그는“염기서열이 같은 마이크로RNA라도 위치한 세포와 조직의 특징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근육 안에 들어 있는 마이크로RNA는 세포가 근육 세포로 분화되도록 돕고, 신경 안에 들어 있는 마이크로RNA는 세포가 신경 세포로 분화되도록 돕는다.



마이크로RNA 성숙하는 비밀 밝혀 마이크로RNA가 세포 내에서 맡은 역할을 해내려면 먼저 단백질을 만나야 한다. 단백질과 짝을 이뤄 복합체가 돼야만 염기서열이 들어맞는 특정 mRNA 의 특정 부위에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로RNA가 세포 핵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과정을 자세히 풀어 하나의 모델로 제시한 연구팀이 바로 김 교수의 마이크로RNA연구단이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RNA도 다른 RNA와 마찬가지로 DNA로부터 전사 되며 덜 성숙한 형태로
핵에서 세포질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DNA에서 전사된 덜 성숙한 마이크로RNA는 머리카락에 꽂는 가느다란 핀과 닮았다. 핵 안에서 드로셔(Drosha)라는 효소에 의해 잘려 머리핀 구조만 남은 채 핵을 빠져나와 세포질로 이동한다. 그 뒤 다이서(Dicer)라는 효소에 의해 머리핀 구조의 고리 부분이 잘려나가고 짧은 두 가닥만 남는다.

두 가닥은 서로 갈라지면서 그 중 한 가닥이 단백질과 결합해 복합체를 형성하는데, 이것이 바로 성숙한 마이크로RNA다. 연구단은 실험을 통해 실제로 마이크로RNA가 연구단이 제시한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이크로RNA와 단백질 복합체는 세포질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염기서열이 꼭 맞는 부위를 가진 mRNA를 만나면 염기 사이의 수소결합으로 들러붙는다. 복합체가 붙어버린 mRNA는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고 작은 조각으로 부서져 없어진다. 따라서 마이크로RNA는 불필요한 RNA를 없애는 청소부인 셈이다.

세포분열 방해해 암 억제한다

마이크로RNA가 특정 RNA를 없앨 수 있다는 특징을 이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생명과학계에서는 마이크로RNA가 불치병을 치료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시작된 질환의 증상을 완화하거나 몸속에 있는 질병인자를 없애는 치료가 아니라 마이크로RNA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켜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드는 정도를 억제하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연구단은 마이크로RNA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이다. 연구단이 주목하고 있는 유전자는 암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인 let-7이다. 김 교수는 “let-7 마이크로RNA는 세포 분열을 방해해 증식하지 못하게 막는 방법으로 암을 억제한다”며 “만약 이 마이크로RNA가 적게 만들어진다면 세포 분열이 급격히 증가해 암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연구단은 줄기세포와 간암세포에서 let-7 유전자가 작용해 마이크로RNA가 만들어
지는 과정을 연구했다. 줄기세포와 암세포를 이용한 이유는 두 세포가 끊임없이 분열하는 방식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연구단은 간암세포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알려진 단백질 Lin28이 덜 성숙한 let-7 마이크로RNA와 복합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아내 ‘셀’의 자매지인 ‘세포분자학’ 그 해10월호에 실었다.

그뿐 아니다. 올해 여름 연구단은 마이크로 RNA 모양을 바꾸는 효소 TUT4를 발견하는 성
과도 올렸고, 연구 결과를 ‘셀’ 8월 21일자에 실었다. TUT4는 Lin28과 복합체를 이루고 있는 덜 성숙한 let-7 마이크로RNA로 인지해 그 끝부분에 우라실 약 14개를 꼬리처럼 달아준다. 모양이 바뀐 let-7 마이크로RNA는 핵산분해효소에 의해 잘린다. let-7이 감소하면 세포는 분열을 멈추지 못해 암세포처럼 끊임없이 증식한다. 연구단이 TUT4를 발견한 일은 마이크로RNA의 작용을 조절하는 새로운 단백질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로RNA를 인공적으로 만든 뒤 세포 안에 넣어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인공 마이크로RNA는 원래 몸속에 존재하는 마이크로RNA처럼 특정 RNA의 특정 부위에만 결합해 특정 유전자가 발현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인공 마이크로RNA를 이용한 치료 방법은 아직까지 실험 단계에 있기 때문에 상용화하려면 임상 시험을 거쳐야 한다.

인공 마이크로RNA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mR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뒤 그 중
뉴클레오티드 약 22개에 해당하는 염기서열과 결합할 수 있는 마이크로RNA를 인위적으로 합성하면 된다. 인공 마이크로RNA을 만들려면 원래세포 안에 존재하는 마이크로RNA의 염기서열대로 뉴클레오티드를 합성해야 할까.

“인공 마이크로RNA는 특정 유전자가 들어 있는 mRNA에 붙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기존 마이크로RNA와 염기서열이 똑같을 필요는 없죠. 다행히 마이크로RNA와 복합체를 이루려고 하는 단백질은 RNA 조각의 크기와 구조만 따져 결합합니다.”

김 교수가 인공 마이크로RNA를 만드는 원리를 설명하며 눈을 반짝였다. 연구단이 마이크로RNA를 이용해 불치병을 해결하는 데 한 걸음 나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마이크로RNA처럼 소박한 꿈으로 한국 과학에 기여할 터”

김빛내리 단장

1992년 서울대 미생물학 학사
1994년 서울대 미생물학 석사
1994년~1998년 영국 옥스퍼드대 생화학 박사
1999년~2001년 미국 펜실베니아대 RNA대사연구실 박사후연구원
2001년~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007년~현재 교육과학기술부 마이크로RNA창의연구단 단장

한 번만 들어도 기억이 날 만큼 특이한 이름 덕분에 인생에 있어서 뚜렷한 가치관이나 목표가 생기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빛내리 교수는 수줍게 웃었다.

“어려서부터 눈에 띄기보다는 조용하게 지내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특이한 이름이 부끄러울 때도 많았죠. 제 연구도 제 이름과 닮아 있어요. 당장 응용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연구보다는 기초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기초를 확실히 다져주면 응용 분야에 더 큰 효과가 날거라 생각해요.”

김 교수가 가진 첫 번째 꿈은‘가장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연구실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로RNA연구단은 석사과정 학생이나 박사후연구원부터 김 교수까지 모두가 동등하게 의견을 내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정도로 자유롭다. 그는 연구단에서 마이크로RNA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하게 예상한 성과도 이렇게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실험실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고 마이크로 RNA 연구를 세계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비결을 묻자 김교수는 “좋아하는 연구를 신나게 하는 것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즐겁게 연구하는 것이 두 번째꿈”이라고 밝혔다. 논문을 내기 위해 억지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면 최고 전문가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뉴클레오티드 22개 정도로 구성된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세포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마이크로RNA와 작고 소박한 꿈을 하나씩 이루면서 언젠가는 한국 과학에 기여하고 싶다는 김 교수는 어딘가 닮았다.

 

200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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