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듯 전어는 가을에 제철을 맞는 대표적인 생선이다. TV를 켜면 온통 전어 얘기뿐이고, 서남해안 곳곳에는 전어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린다. 바야흐로 전어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맛이 약간 비리고 잔가시가 많아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남해안 지방에서는 값비싼 고급어종을 마다하고 전어회만 찾는 골수팬들이 지천이다. 가을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전어를 뼈째 잘게 썰어 오랫동안 씹다 보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깊게 우러나 전어를 깨에 비유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어는 구워 먹어도 맛이 좋다. 지글거리는 소리도 미각을 자극한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속담은 전어구이의 풍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어를 굽다 보면 이 물고기가 기름이 많은 생선임을 알게 된다. 전어의 기름은 불포화지방산을 많이 함유해 성인병을 예방하고, 한방에서는 오줌을 잘 나오게 하고 위와 장의 기능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등에 가느다란 털 달려
전어는 청어목, 청어과의 바닷물고기다. 우리나라 전 연안, 일본과 중국 해안 등에 분포한다. 같은 청어과에 속하는 친척으로는 청어, 준치, 밴댕이, 정어리 등을 들 수 있다. 몸은 납작하고 긴 타원형이며,15~30cm까지 자란다. 등쪽은 청색, 배쪽은 은백색을 띠고, 꼬리지느러미는 진한 노란색이다.
등쪽의 비늘에는 작고 까만 점이 있어 세로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가미 뒤쪽에도 커다란 반점이 있는데, 물 위에서도 뚜렷이 보일 만큼 검은빛이 선명하다. 등지느러미 맨 뒤쪽에 가느다란 지느러미줄기가 실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는 점도 다른 물고기와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전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서남해에서 난다. 몸이 납작하고 배와 등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이 붕어를 닮았다. 비늘은 푸른색이다. 가느다란 털이 등에서 나와 꼬리에 이르기까지 늘어져 있다. 해마다 입하 전후에 물가에 와서 진흙을 먹는데, 어부들은 그물을 쳐서 이를 잡는다.”
등지느러미에 나 있는 털, 작은 플랑크톤과 유기물을 개흙과 함께 먹는 식성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은 전어를 잡는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서유구는 입하를 전후해서 전어가 몰려올 때 그물을 쳐서 잡는다고 했다. 입하면 양력으로 5월 5일 전후가 된다.
전어는 일반적으로 여름 동안에는 먼바다에 머물다가 가을부터 이듬해 봄에 걸쳐 얕은 바다로 몰려든다. 떼를 지어 몰려든 전어들은 3∼6월경에 산란하는데, 이때가 바로 입하를 전후한 시점이 된다. 옛날 사람들은 산란기에 몰려든 전어를 잡았던 것이다. 전어의 맛이 가장 좋아지는 가을철에 그물을 던지는 요즘과 차이가 있다.
돈무늬가 있어 전어일까, 화살 닮아 전어일까
우리나라의 옛문헌에 전어는 錢魚, 全魚, 剪魚, 箭魚 등으로 표기돼 있다. 중국에 따로 제(), 반제(斑) 등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봐 전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전어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전어라는 이름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살이 통통하고 기름져서 맛이 좋다. 상인들은 절여서 서울에 팔아넘기는데, 귀천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진기하게 여긴다. 맛이 좋아서 사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돈을 따지지 않으므로 전어(錢魚)라고 한다.”
그러나 서유구의 설명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민간어원인 듯한 느낌이 강하다. 선조들은 둥글고 까만 점을 돈무늬라고 표현하곤 했다. 돈모양으로 둥글게 썰어 말린 호박고지를 돈고지라 하고, 동전무늬를 가진 말이나 표범을 각각 돈점박이, 돈범으로 부른다. 그렇다면 아가미 뒤쪽에 돈무늬가 있다고 해서 전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닐까.
또 다른 추측도 가능하다. 전어는 살치를 한자로 옮겨 놓은 말일지도 모른다. 전어(箭魚)에서 ‘전(箭)’은 ‘살’로 풀이된다. 실제로 납작하고 유선형으로 생긴 전어의 몸꼴은 화살촉을 떠올리게 한다. 다음은 ‘난호어목지’의 살치 항목의 일부를 옮긴 내용이다.
“매년 여름 큰비로 물이 불어 넘치면 물밑으로부터 무리를 이뤄 올라오는데,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매우 급히 내닫기 때문에 화살과 같이 빠른 물고기라는 뜻에서 전어(箭魚)라고 부른다.”
역시 전어의 몸꼴을 화살에 비유하고 있다. 비슷한 몸꼴을 가진 살치나 준치 역시 전어(箭魚)라고 불린다는 점도 의미심장한 사례이다.
일본에선 시체 타는 냄새 떠올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전어는 중요한 수산 자원 중 하나다. 크기에 따라 별명을 따로 지어 붙일 만큼 깊은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8월 하순부터 9월 초순에 걸쳐 잡은 전어의 맛을 높이 평가해 매우 비싼 값에 거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어의 맛을 즐기는 방식은 우리와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어를 주로 회나 구이로 즐기는 반면, 일본에서는 초밥 재료로만 쓸 뿐 회나 구이로 요리하는 일이 거의 없다. 특히 구이에는 혐오감을 나타내기까지 하는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어느 명문가의 처녀가 우연히 한 총각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갖게 됐다. 그런데 이 처녀에게는 이미 부모가 정해 놓은 약혼자가 있었다. 집안 간의 분쟁을 염려한 처녀의 부모는 궁리 끝에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 냈다. 자신의 딸이 병에 걸려 갑자기 죽어 버렸다는 소문을 퍼뜨린 뒤 관에다 전어를 가득 담아 화장을 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시체 타는 냄새를 맡았고, 처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총각과 처녀는 먼 곳으로 떠나 행복하게 살았다. 이때부터 전어는 자식을 대신한다는 뜻으로 ‘고노시로(子の代)’라고 불리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할 정도로 구미를 당기는 전어 굽는 냄새가 일본인들에게는 사람의 시체를 태우는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음식의 맛이나 냄새에 대한 취향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남들의 이목에 앞서 계절에 따른 자연의 선물을 즐길 줄 알고, 냄새를 피우는 대신 구운 전어 한 접시를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마음 또한 그냥 놓쳐 버리기엔 아까운 전통이 아닐까.
이태원 교사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세포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우리나라 전통 문헌에 나타난 과학 관련 내용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의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기행문식으로 정리한 ‘현산어보를 찾아서1~5’(청어람미디어) 등이 있다.
가을 전어 맛있는 이유는 지방 때문
시인이여, 저무는 가을 바다로 가서 듬뿍 썰어달라 하자
잔뼈를 넣어 듬성듬성한 크기로 썰어달라 하자
바다는 떼지어 헤엄치는 전어들로 하여 푸른 은빛으로 빛나고
그 바다를 그냥 떠와서 풀어놓으면 푸드득거리는 은빛 전어들
뼛속까지 스며드는 가을을 어찌하지 못해 속살 불그스레 익어
제 몸 가득 서 말의 깨를 담고 찾아올 것이니
조선 콩 된장에 푹 찍어 가을 바다를 즐기자
제철을 아는 것들만이 아름다운 맛이 되고 약이 되느니
가을 햇살에 뭍에서는 대추가 달게 익어 약이 되고
바다에서는 전어가 고소하게 익어 맛이 된다
사람의 몸에서도 가을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법이니
그 빈자리에 가을 전어의 탄력 있는 속살을 채우자
맑은 소주 몇 잔으로 우리의 저녁은 도도해질 수 있으니
밤이 깊어지면 연탄 피워 석쇠 발갛게 달구어 전어를 굽자
생소금 뿌리며 구수한 가을 바다를 통째로 굽자
한반도 남쪽 바다에 앉아 우라나라 가을 전어 굽는 내음을
아시아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즐겁게 피워 올리자
시인 정일근이 쓴 ‘가을전어’다. 이 시에서처럼 한국인의 정서가 담뿍 담긴 가을 전어는 입맛을 당기는 일등공신이다. ‘가을 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 말’ ‘가을 전어,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와 같은 속담을 들어 봐도 전어의 제철은 가을이다. 흔히 가을 전어가 맛있는 이유를 봄철 산란기 이후 여름 내내 왕성한 먹이활동으로 체내에 축적한 지방 때문으로 설명하곤 한다. 과연 이 말은 사실일까.
실제로 생선의 고소한 맛을 내는 성분은 지방이다. 그리고 계절별로 전어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가을 전어의 지방 함량이 가장 높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인 듯하다.
봄 전어와 가을 전어의 주요 성분의 차이 (식용으로 쓰이는 부위의 100g 당 함유량)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어의 크기별로도 지방 함량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전어의 몸 크기별 지방 함량을 조사한 자료이다.
전어의 몸 크기별 지방함량
이를 종합하면 가을에 잡히는 큰 전어가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그러나 맛은 항상 상대적이다. 자신의 입맛에 맞게 즐기는 것이 최고다. 기름기가 많은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면 가을에 잡은 커다란 전어로 구이를 해 먹고, 지나친 기름기가 부담스럽다면 작은 가을 전어나 고소한 맛은 덜하더라도 뼈가 연하고 적당한 기름기를 가진 여름 전어를 고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