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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정보통신 사회 구현하는 광양자컴퓨터

광양자정보처리연구단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를 검색해 내려받고 다른 사람과 대용량의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는 유비쿼터스 정보통신 사회. 최근 전 세계에는 유비쿼터스 통신 환경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일고 있다. 유비쿼터스 사회를 구현하려면 지금보다 수백 배 더 빠르게 정보를 처리할 수있는 컴퓨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1947년 반도체 소자인 트랜지스터가 발명되며 시작된 전자문명은 이미 그 한계에 도달했다.‘컴퓨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 속도를 더 높이려면 반도체 소자의 회로 선폭을 계속 줄여야만 한다. 인텔사는 나노기술 발전에 힘입어 현재 반도체 회로의 선폭을 100nm(나노미터, 1nm=10-9m) 이하로 줄였고 CPU 속도를 4GHz(기가헤르츠,1GHz=109Hz)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회로 선폭이 분자 하나 크기와 비슷한 10nm에 이르려면 현재 방식의 컴퓨터로는 불가능하다. 인텔사는 이 시기를 CPU 속도가 10GHz가 되는 2012년으로 내다봤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CPU의 발전 속도가 정체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으며, 현재 방식으로는 CPU 속도가 지금의 4GHz 벽을 넘기도 쉽지 않다고 예측한다. 반도체 소자 폭이 줄어들수록 전류가 줄줄 새는 현상 같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하대 정보통신대학원 함병승 교수가 이끄는 광양자정보처리연구단은 빛의 특성과 양자역학을 이용해 디지털 방식의 CPU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즉 지금의 디지털 전자컴퓨터를 능가하는 디지털 광양자컴퓨터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펜티엄4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현재 우리가 쓰는 디지털 전자컴퓨터의 정보처리속도는 정보를 전달하는 전자가 게이트라는 차단벽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인텔이 CPU 속도를 4GHz까지 향상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회로의 선폭을 계속 줄여 게이트를 점차 얇게 만들었고 그 결과 전자가 게이트를 통과하는 시간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광양자컴퓨터는 같은 디지털 방식이라도 전혀 다른 원리에 기초한다. 광양자컴퓨터는 원자에 희토류 금속을 첨가해서 나오는 빛의 위상을 변화시키고, 이렇게 생긴 빛을 광신호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위상변화가 나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빛의 세기에 따라 결정된다. 빛의 세기를 크게 할수록 위상변화가 나타나는 시간이 짧아져 더 빠르게 신호를 처리할 수 있다.

일반적인 원자를 사용한 매질에서는 빛의 세기에 비례하는 진동수가 1GHz도 안 되지만 반도체 화합물에서는 그 진동수가 1THz(테라헤르츠, 1THz=1012Hz)까지 커진다. 즉 현재 전자에 기초한 디지털 정보처리 방식을 위상변화를 이용하는 광신호 방식으로 대체할 경우 CPU 속도를GHz 수준에서 1000배 이상 빠른 THz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셈이다.

올해 3월 함 교수는 이 같은 광논리회로의 가능성을 증명한 논문을 응용물리분야의 권위지인‘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APL)’에 발표했다. 함 교수는 “이 기술을 이용해 광양자 CPU를 개발하면 현재의 펜티엄4 컴퓨터보다 최소 100배 이상 빠른 디지털 광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빛의 속도 늦춰 정보처리 신호로 쓴다

광양자컴퓨터는 전자 대신 빛을 이용해 정보를 저장, 연산, 처리, 제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빛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빛을 제어하기 위한 핵심기술 중 하나는 1990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발견한 ‘전자기유도투과효과(EIT)’다.

EIT란 강한 세기의 빛을 어떤 물질에 쬐면 물질의 굴절률이 변해 바로 뒤이어 약한 세기의 빛을 쪼여줄 경우 흡수되지 않고 물질을 그대로 통과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EIT가 일어날 때 물질의 굴절률이 커져 빛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는 사실이다. 함 교수는 “EIT를 이용하면 빛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며 “이런 ‘느린 빛’을 활용하면 광신호를 기존 방식을 대체하는 정보처리 신호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99년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는 EIT를

이용해 빛의 속도를 초속 30만km에서 초속 17m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 연구팀은 빛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극저온의 냉각기체를 이용했기 때문에 실제 산업에 응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2002년 당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재직하던 함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텍사스A&M대와 공동으로 고체물질(희토류 금속인 프레시오디뮴(Pr)을 첨가한 이트륨실리케이트(YSO)란 물질)을 이용해 빛의 속도를 초속45m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또한 공동연구팀은 이 물질 안에 빛을 잠시 동안 가두는 데도 성공했다. 이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은 그해 1월 물리학 분야의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RL)’에 실렸으며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도 소개됐다. 학계에서는 EIT를 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
련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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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광CPU 실현할 광논리소자 개발

빛을 이용한 양자스위칭 방식으로 광양자컴퓨터를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바로 함 교수다. 그는 2000년 EIT를 활용해 빛의 흐름을 스위치처럼 제어할 수 있는 양자 스위칭 방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연구 결과를‘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게재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4년 이를 실험에서 실제로 관측해 응용 물리분야의 권위지인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APL)’에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느린 빛
을 이용해 광양자스위칭 과정을 증명하는 논문을 미국 물리학회에서 출간하는 저널인 ‘피지컬 리뷰A(PRA)’에 실었다.

광양자컴퓨터를 실현시키기 위한 기초연구를 꾸준히 해온 연구단은 올해에는 광양자컴퓨터용 광논리소자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해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에 발표했다. 함 교수는 “논리소자는 광양자컴퓨터라는 집을 짓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블록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양자스위칭 연구는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연구한 방식으로는 광논리소자에서 광신호가 입력된 뒤 배출될 때 신호의 세기가 약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빛을 가뒀다 푸는 스위칭을 할 경우 빛이 물질에 흡수돼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도로 신호를 증폭하는 장치인 반도체광학증폭기(SOA)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SOA를 사용한다면 논리소자의 크기가 너무 커져서 지금 쓰는 디지털 방식의 CPU처럼 작은 크기로 광CPU를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CPU에 쓰이는 트랜지스터 1개의 크기는 50nm 수준인데 비해 기존 광논리소자로 트랜지스터를 만들 경우 1개 크기가 100만 배 정도 큰 mm 수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함 교수는 “우리 연구단이 개발한 광논리소자는 EIT 효과로 생긴 느린 빛을 이용하기 때문에 빛이 흡수되지 않아 신호를 증폭하는 과정이 필요 없다”며 “게다가 느린 빛을 이용하면 필요한 전력량을 100만 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단은 양자역학을 이용한 양자메모리 연구 분야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동안 양자메모리는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시간이 1000분의 1초에도 못 미쳤다. 연구단은 빛을 가두는 시간을 길게는 수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해 지난 8월 광학 분야의 최고 학술지인 ‘네이처 포토닉스’에 게재했다.

함 교수는 “현재의 양자메모리 방식은 저장시간이 너무 짧아 양자 통신에 쓸 수 없다”며 “양자메모리의 저장시간을 늘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양자메모리 연구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며 “빛이 이끄는 초고속 정보통신 사회를 이룩하는 데 앞장설 연구단을 지켜봐 달라”고 포부를 밝혔다.


 
광양자컴퓨팅 기술 개척하는 선구자

1986년 서강대 물리학과 학사
1993년 미국 웨인주립대 물리학 석사
1995년 미국 웨인주립대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1996년~1999년 미국 MIT 및 공군연구소 박사후연구원
1999년~2003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
2003년~현재 인하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 및 창의사업단장

함 단장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2003년 당시 미국 ‘마르퀴즈 후즈 후’사에서 발간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인명사전인 ‘후즈 후 인더월드’에 이름
을 올렸다. 그가 그동안 해온 광양자컴퓨팅 연구가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가 하는 일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요?” 함 단장은 “전 세계 과학계에서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인 광양자정보
처리 기술을 연구하며 보람과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쟁 연구팀인 미국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에서도 함 단장을 양자광학 분야의 전문가로 평가한다. 그러나 창의연구단으로 선정된 2006년 이전까지 함 단장은 연구에 어려움도 많았다. 제대로 된 장비가 없어 실험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창의연구단에 선정된 뒤에도 고가의 레이저 발생기와 계측장비 등을 완전히 갖추기까지는 2년이나 더 걸렸다. 지난해에나 필요한 장비를 모두 갖춘 셈이다. 이처럼 실험장비가 없는 상황에서도 연구단이 우수한 연구 성과와 논문을 많이 발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함 단장의 확고한 지도 방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 단장은 박사후과정 연구원들은 6개월 안에, 박사과정 학생들은 1년 이내에 가시적인 결과물을 제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반드시 논문이 아니더라도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연구단에서 퇴출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함 단장은 “연구란 스스로 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라며 “그만큼 학생들의 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함 단장은 학생들에게 연구 주제의 선택과 시간활용 등에 있어서는 학생들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재량권도 많이 준다.

함 단장은 “창의연구단에 선정된 뒤 지난 3년 동안은 광양자정보 기술의 기초연구에 몰입한 시기”라며 ”이제 연구단은 이를 밑거름으로 해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를 병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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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준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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