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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꽃을 우리 땅에"

한국자생식물연구회

10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우리 산하의 터줏대감인 자생식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릴 생각이다.

태백시에서 고한을 넘어가는 싸리재 주변은 여름이면 온통 벌개미취꽃으로 뒤덮인다. 우리의 자생식물을 그처럼 잘 가꾼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해발 1천m가 넘는 고갯길에 핀 벌개미취의 파란 꽃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런 고지대에 자생식물이 아닌 어떤 도입식물이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반면 한강 강변공원에 대량으로 심은 개불알꽃은 강한 햇살에 견디지 못하고 죽어갔다. 모두 자생지에서 캐다 심은 것들일텐데 살리지 못하고 죽였다. -중략-

등산객들의 실수로 산불이 나고, 약초꾼에 의해 숙근초들이 뽑히고, 골프장 스키장 건설로 산야가 파헤쳐지고 있다. 우리의 금수강산은 점점 황폐해져 간다. 언제까지 이짓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의 국토에 있는 돌 한개, 흙 한줌도 제자리에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위 글은 한국자생식물연구회(회장 김용현)에서 발행하는 25번째 회보의 맨 앞에 실린 시론 '우리땅에 우리꽃을'에서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교수 교사 기자 사업가와 화훼농사 짓는 사람 등이 모여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모임이 자생식물연구회다. 회원들 중에는 식물학자도 있고 꽃농사 짓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많은 회원은 우리나라 산천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자생식물에 대한 순수한 관심으로 출발한 아마추어들이다.

아마추어 10년

올해로 10년을 맞은 자생식물연구회는 이제까지의 모습을 탈피해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려고 한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식물 이름 하나 제대로 모른 채 시작한 아마추어라도 풍월을 세번이나 읊을 수 있는 기간을 풀과 나무만을 좇으면서 전국을 누볐는데, 이제는 어디가서 풍월이 아니라 제대로된 시조를 읊조릴 수 있게 됐다. 이를 기반으로 '제2출발'을 다짐하게 된 것이다. 우선 이름을 동호회에서 연구회로 바꾸고 회원 각자의 성과물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하기로 했다. 그동안 "아직 배우는 중인데 어떻게 책을..." "아마추어가 즐기면 됐지 무슨 교육을..."하는 사고방식이 모임의 분위기를 지배했다. 한달에 한번씩 탐사를 다녀와서(특공대라 불리는 열성파는 1년에 20-30회씩 현지탐사를 실시) 슬라이드 시사회를 가질 때 스스로 지식이 느는 기쁨에 만족은 느껴도 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창복(서울대 명예교수)박사를 비롯해 식물을 전공한 회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기도 했다.

간혹 신입회원들이 들어와 같이 탐사를 가도 이름조차 생소한 각양각색의 식물들을 알기 쉽게 안내하기 보다는 이미 기존 회원들의 귀에 익어버린 학명과 그 식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폐쇄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유는 기존회원들이 그랬듯이 스스로 깨닫고 따라와야 열심히 한다는 사고방식 때문. 신입 회원들은 어느 정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지식이 쌓이기도 전에 중도에서 처져버리는 사태가 다반사였다. 그 결과 80년대초 창립 당시 동호회의 주축 멤버가 30대 후반 였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멤버가 그대로 40대 후반의 '고인물'이 돼버렸다.
 

이질에 특효약인 둥근이질풀


'제비꽃 박사'를 목표로

자생식물연구회의 정회원수는 39명이며 준회원이 60여명. 이 숫자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 준회원으로 1년 동안 활동하다가 열심히 하면 정회원이 되는데 정회원 숫자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물론 전시회를 하다보면 그동안 개인적으로 활동하던, 이미 식물에 조예가 깊은 회원들이 합류하는 경우가 가끔 있으나 스스로 회원을 키워나가지는 못했다는 반성이 내부에서 부터 일었다. "10년을 결산하면서 두가지 방향에서 회의 운영을 바꾸어보렵니다. 하나는 그동안 쌓았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좀더 깊이 있는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간 소홀히 했던 대중화 작업을 체계적으로 시도해보려 합니다." 올해 회장으로 선출된 김용현(48)씨의 말이다.

전체적인 식물 이름 아는데 10년이 걸렸으니 이제는 세부 전공을 정해 좀더 깊이 연구 해보자는 것이다. 양치류라든가, 벼과식물이라든가, 아니면 제비꽃류를 분과별로 나누어 철저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제비꽃만도 수십종이 있으므로 분과활동이 강화된다면 학문발전에도 조그만 도움이 될 수 있다. 1년중 개화기가 20일 밖에 안되는 왕제비꽃은 경기도 유명산에 가면 자세히 관찰할 수 있으며 알록제비꽃과 태백제비꽃은 어디에 가면 볼 수 있으며 그 생태는 어떠하다는 지식을 정리하고 발전시켜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꼈다. 아마추어 활동이 활성화된 일본만해도 둥굴레회 제비꽃회 등이 상당수 존재하며 아마추어가 둥굴레 하나를 좇아 학위를 받기도 한다.

또하나 중요한 측면은 자성식물에 대한 이해나 보호가 회원 몇사람이 뛰어다닌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동안 쌓은 지식과 자료를 어떤 형태로든 일반에게 공개하고 많은 사람들이 식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있는 대중서를 펴내고 자체내에서 신입회원을 교육시킬 수 있는 체제를 만들 예정이다. 중고교 교사들을 위한 설명회나 기타 교육 강연회도 참석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자생식물연구회 회원들이 이제까지 찍어 놓은 슬라이드만 해도 수만 컷. 한번 탐사를 나갈 때 촬영장비만 해도 무게가 30-40㎏이나 나간다고 한다. 이들을 그냥 사장시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들이 찍은 사진은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꽃에 물 뿌리고' 연출한 사진이 아니고 자연 생태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 때문에 교육용으로는 매우 소중한 자료다.
 

꽃과 잎이 같이 있지 않아 「화엽불상견 」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백암꽃


알아야 자연보호가 가능

이들이 삼천리 방방곡곡을 섭렵하면서 가장 절실히 깨닫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이해. 한마디로 자연을 모르기 때문에 자연을 보호 하지 않고 파괴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은 3천2백여종이 있는데 이들 중에 우리의 특산종은 4백6종. 어떤 종은 사람들에게 밟히고 뽑혀도 잘 견디고 번식이 잘 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종은 한번 밟히고 뽑히면 살아날 수 없는 것도 많다. 이를 알고서도 어떻게 식물을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경우도 예외는 있다. 몇년전 동호회 시절 경기도 청평의 화학산에서 정신안정제로 쓰이는 미치광이풀의 집단 군락을 발견하고 이를 발표했더니, 얼마 안 있어 약초꾼들이 씨를 말려버릴 정도로 뽑아간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은 60% 이상이 약초인 데다 약성 또한 좋아 항상 약초꾼들에게 시달린다. 국립공원 안에서도 잘 번식되지 않는 종을 쏙쏙 뽑아간다고 한다.

자생식물연구회 정회원쯤 되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줄기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 보고 맛을 보고서 종을 구분할 줄 안다. 족도리꽃이 왜 땅에 붙어 피며 색깔이 흙색인지 그 이유를 이해하면서(땅에서 기어다니는 야행성 곤충들이 수정을 해주기 때문) 자연계의 종들이 번식하기 위해 얼마나 처절히 노력하는지를 깨닫는다. 수정을 하기 위해 냄새를 풍기며 벌과 나비들이 날아들기 편하게 안내표시(백합꽃의 점)도 해준다.

자생식물연구회(전화 780-1755)에서는 87년 신종(칠갑나리)도 발견해 학회에 등록, 학명을 획득했으며 멸종돼 가는 큰제비고깔의 군락지역도 발견해 환경연구원에 보호요청을 했다. 90년에는 12명이 백두산 식물생태계를 집중 탐사하기도 했다(5일 동안 백두산에서만 머물며 북방계식물의 생태를 사진에 담았다). 사진과 표본 씨앗 등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부족한 정보를 보충하기도 한다. 회원들 중에는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 수목원을 만들어(도로공사 전주지부 박선홍씨) 적극적으로 자생식물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이 있으며 겨울 동화(凍花, 잎이 다 떨어지고 눈만 남은 것)를 집중적으로 추적하는 회원도 있다.

이러한 개별적인 노력들을 모아 좀더 체계적인 지식으로 정리하며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자생식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10년을 맞은 자생식물연구회의 목표다.
 

제두도 탐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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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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