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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가 말하는 과학의 가치

|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제임스 왓슨 지음 | 김명남 옮김 | 이레 |
486쪽 | 2만 5000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혔던 영국 캐번디시연구소는 새 건물로 이사를 갔고 그 자리는 사회과학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쓰고 있다.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은 왓슨이 크릭과 매일 점심을 먹었던 선술집, ‘이글’이다.

DNA 구조 발견 50주년을 기념해서 왓슨이 다시 이글을 찾았을 때, 그를 처음 봤다. 크릭은 건강이 좋지 않아 함께 자리를 하지 못했다. 이 책의 표지에 나온 젊은 시절의 왓슨의 모습을 노학자의 모습에선 찾을 수가 없었다. 둥글어진 얼굴과 눈매에서 세월이 그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했으리라 생각했다. 맥주 한 잔에 불콰해진 그의 얼굴은 맘씨 좋은 할아버지 같았다.

이 책은 내가 그때 받은 인상을 여지없이 뭉개 버린다. 꺼리는 것이 없는, 재치 있는 독설가 왓슨은 여전하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솔직한 감정과 평가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노벨상 수상자의 실험실은 엄숙하고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한 진지한 사람들만 득실댈 것이라는 상상을 여지없이 날려 버린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과학에 대한 편견, 혹은 선입견을 버리도록 만드는 일이다. 과학사나 과학사회학의 연구 성과들이 논리적으로 진리만을 추구하는 과학, 인간이나 사회적 편견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과학의 이미지가 틀렸다는 것을 이야기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과학자 스스로의 목소리로 그 현장을 이렇게 생생하게 보고하는 글은 드물다.

과학의 세계 안에서도 정치 논리와 경제·경영의 논리로 가치가 평가되고 패러다임과 패권의 향배도 그 결과에 따른다는 것이 반세기 이상 연구에 매진해온 일급 과학자의 견해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지 마라’‘지원금 요청을 거부당해도 우아하게 받아들여라’‘제발 머리카락 염색은 하지 마라’‘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와 같은 조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자서전이나 전기는 논리적으로 재구성된 과학의 역사나 발견에 대한 보고서와 또 다른 가치를 갖는다. 과학이 실제로 행해지는 현장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장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과학자들에 대한 이만큼 진지한 전기적 보고를 찾기는 쉽지 않다. 과학의 내용을 대중적으로 풀어서 개론의 형태로 나열한 책이나 선정적인 주제에 대한 책들은 넘쳐나지만 진지한, 그리고 독창적인 탐구의 결과를 과학자들 스스로 풀어 쓴 이야기나 과학 현장에 대한, 혹은 과학자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은 책이 돼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 과학자의 전기를 쓸 수 있는 작가도 별로 없다. 이 책을 ‘이달의 과학책’으로 선정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도 이런 책들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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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와 문지문화원 ‘사이’(www.saii.or.kr)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책 가운데 매달 한 권을 선정해 서평을 싣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올해 12월에 시상할 ‘올해의 과학책’ 후보가 됩니다.

과학동아에 실릴 책은 6명의 선정위원들이 오랜 시간 난상토론을 벌인 뒤 선정하며
선정일 기준으로 2달 전까지 출간된 신간 중에서 1권을 고릅니다. 선정 기준은 다음 3가지입니다.

첫째, 현재 과학적인 진보를 잘 반영하면서 정확한 정보가 실린 책
둘째, 담긴 내용이 미래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
셋째,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술된 책

선정위원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오동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조사분석실장
전용훈 일본 교토산교대 객원연구원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최정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눈길이 머무는 이달의 책

| 우리 몸 산책 |
권오길 지음 | 이치사이언스 |
357쪽 | 1만 3000원


서점에서 번역판이 아니라 국내 과학자가 직접 쓴 책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연륜 있는 국내 생물학자가 직접 쓴 이 책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사실 책 내용은 그렇게 특별하진 않다. 우리 몸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세부 구조와 생리적인 기능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세포, 감각기관, 호흡, 배설, 혈액 및 순환, 이렇게 이어지는 목차도 어찌 보면 생물학 교과서가 연상된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지식과 관계있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와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상식을 곁들였다. 예를 들어 암을 영어로는
‘캔서(cancer)’라고 한다. 라틴어로‘게(crab)’라는 뜻이다. 게는 바닷가에 구덩이를 여러 개 파놓고 그 안을 헤집으며 다닌다. 암세포가 옆 조직으로 파고들어 가는 모습이나 혈관을 타고 먼 조직까지 헤집고 다니며 암을 전이시키는 현상은 게와 많이 닮았다.

교과서로 배우는 생물학이 지루하거나 신문의 의학과 과학기사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눈길이 갈 만한 책이다.

글 임소형 기자 sohyung@donga.com

새책BOOKS



책 읽는 뇌
매리언 울프 지음 | 이희수 옮김 | 살림 | 377쪽 | 1만 4000원

인지신경과학 전문가인 저자는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ㅇ낳았다"고 주장한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인류의 '발명품'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역사가 낳은 천재들의 이야기와 최신 뇌과학 성과를 통해 조목조목 설득하고 있다.

수학의 재미
박종하, 송명진 지음 | 랜덤하우스 | 290쪽 | 1만 2000원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계산의 도구’로 여긴다. 하지만 KAIST 출신 부부 수학자인 저자들은 ‘생각의 도구’라고 강조한다. 수학을 싫어하는 딸을 위해 딱딱한 공식과 법칙을 말랑말랑한 그림으로 바꾸고, 복잡한 기호나 계산이 아니라 정말 단순한 사실로 수학 명제를 증명해냈다. 딸뿐 아니라 수학을 싫어하던 독자들이 수학과 친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우주 엘리베이터
아닐리르 세르칸 지음 | 홍성민 옮김 | 윌북 | 215쪽 | 1만 2000원


엘리베이터 꼭대기 층 버튼 위에 또 하나의 버튼 ‘우주’가 있다면 어떨까.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타는 엘리베이터를 일부‘변형’하면 우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터키인 최초의 우주비행사 후보에 선발된 저자는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독자를 우주와 4차원 공간, 미래 세계로 이끈다.



산사의 숲, 초록에 젖다
김재일 지음 | 지성사 | 224쪽 | 1만 7000원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요즘,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책. ‘빨리빨리’가 일상화된 현대인에게 정적(靜的)인 미학을 깨닫게 해준다. 연예인보다 우리 식물 이름을, 외국 커피전문점보다 우리 산과 사찰의 위치를 더 궁금해하는 독자라면 금방 빠져들 만하다.

우주 생명 오디세이
크리스 임피 지음 | 전대호 옮김 | 까지 | 476쪽 | 2만 원


천문학자인 저자는 스스럼없이 "천문학의 역사는 부끄러움의 행진이었다"고 밝힌다. 엄ㅊ어나게 크고 오래된 은하들과 그 안에 있는 무수한 별 사이에서 인간은 너무나 작고 미약한 존재라는 게 점점 더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현대 우주생물학은 한술 더 떠 우리와 빗스한 다른 생명체까지 찾으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이 위대한 건 이렇게 끊임없이 지식을 넓혀갈 수 있는 원동력인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물, 기적의 물질
윤실 지음 | 저나과학사 | 256쪽 | 1만 1000원


나라님과 정치인은 예부터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저자는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강조한다. 이 책이 소개하는 물 관련 상식은 150여 가지나 된다. 그만큼 많이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환경오염과 식량위기,
신산업 창출 같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핵심 물질이 바로 물이기 때문이다.

200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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