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장소라고 하면 폐교나 지하실처럼 어두컴컴하고 추운 곳이 떠오른다. 실제로 사람들이 귀신을 목격했다고 하는 장소가 대부분 그런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어둡고, 온도가 낮고, 좁은 공간을 지목한다. 밝고, 따뜻하고, 넓은 곳에서 귀신을 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쯤 되면 으스스한 환경 때문에 괜히 귀신을 봤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생긴다.
공포영화의 배경은 왜 음침할까
2003년 영국 허트퍼드셔대 심리학과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팀은 귀신 체험과 관련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와이즈먼 교수팀은 참가자 462명에게 귀신이 출몰하는 것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햄프턴 궁전에서 이상한 존재가 느껴지는지, 느껴진다면 어디서 그런지 물었다. 그 결과 참가자의 46.5%인 215명이 이상한 존재를 느꼈다고 대답했고, 그들이 지목한 장소는 옛날부터 사람들이 귀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지점과 대부분 일치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지목한 장소의 온도, 조명 밝기, 방 크기, 자기장 등을 직접 측정해봤다. 실제로 지목된 장소는 온도가 낮으며 어둡고 협소했다. 자기장이 급변하는 양상도 나타났다. 자기장이 변하면 뇌파나 심장박동 같은 인체의 생리적 리듬이 일시적으로 깨질 수 있다. 이 같은 주변 조건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갖게 만든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연구 결과는 공포영화의 배경이 왜 항상 음침할 수밖에 없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고도로 집중한 뇌의 비밀
하지만 장소에 관계없이 귀신을 본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접신(接神)’을 하는 무속인들이다. 가톨릭대 의대 정신과학과 채정호 교수는 접신으로 귀신을 본다는 무속인 2
명의 뇌를 단일광자방출컴퓨터단층촬영술(SPECT)로 분석했다. 접신을 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
분석 결과 채 교수는 “이들의 뇌에서 공통적으로 대뇌 앞부분인 전두엽과 가장자리 부분인 측두엽이 활성화됐다”며“이는 보통 사람이 고도로 집중했을 때의 뇌 상태와 비슷하
다”고 말했다. 전두엽은 논리적 사고 같은 고등 정신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측두엽은 청각과 후각을 관장하는 부위로 알려져 있다. 채 교수의 연구결과는 2002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 발표됐다.
무언가에 골똘히 집중하는 일과 귀신을 보는 현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앤드류 뉴버그 교수팀은 티베트 불교 명상가들의 뇌를 분석해 ‘뇌가 고도로 집중한 상태’를 연구했다. 연구팀은 명상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의 뇌를 SPECT로 촬영했다. 그 결과 대뇌 한가운데의 꼭대기(정수리 부분)에 있는 두정엽의 활동은 급격히 약해지는 반면, 전두엽의 활동은 활발해지는 것이 관찰됐다. 두정엽은 물리적인 외부 자극을 지각하는 부위다.
뉴버그 교수는 2002년 발간한 자신의 책 ‘왜 신은 사라지지 않는가’에서“고도의 집중 상태에서는 두정엽의 활동이 약해져 외부의 자극과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머릿속에서 상상한 장면을 실제로 보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외부에서 오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주장은 채정호 교수의 실험결과, 즉 접신 상태의 뇌가 고도로 집중한 뇌와 유사하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
‘죄와 벌’‘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쓴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작품으로 친숙한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둘의 공통점은 생전에 간질을 앓았다는 사실이다. 간질은 뇌의 신경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거나 또는 너무 활성화되지 않아 일어나는 병이다. 일반적인 간질은 뇌의 한 부위에 이상이 생겨 거기서 발생한 비정상 뇌파가 뇌 전체로 퍼진다. 간질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와 고흐가 앓은 간질은 일반 간질과 증상이 조금 다르다. 이들의 정확한 병명은 측두엽 간질. 측두엽 간질 환자는 간혹 실제로 나지 않는 냄새를 맡거나, 실제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맛이 난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한 경우 환청을 듣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측두엽과 이런 환상 체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특히 1980년 캐나다 로렌티안대 신경과학자 마이클 퍼신저 교수는 측두엽과 귀신을 보는 현상의 상관 관계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측두엽을 전기로 자극하면 귀신을 봤다고 느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5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헬멧을 씌우고 약한 자기장을 가했다. 실험 결과 참가자 5명 중 4명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실험은 밀폐된 공간에서 두 눈을 가리고 진행됐으며, 측두엽을 자극하는 자기장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자기장과 비슷한 세기였다.
측두엽과 환청, 그리고 자기장
과학자들이 이처럼 귀신을 보는 현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런 연구 결과들이 정신과 질환을 진단, 치료하는 데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귀신을 느끼는 장소에서 자기장이 급변한다는 사실과, 자기장이 측두엽을 활성화시켜 귀신 느낌을 준다는 연구 결과는 실제로 정신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두개자기자극(TMS) 장치의 작용과 매우 유사하다.
TMS 장치는 머리 표면에 자기장을 유도해 두뇌 피질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도록 개발됐다. 이때 자기장은 지구 자기장의 2만~4만 배에 해당하는 2T(테슬라) 정도이며, 자기장의 진동을 달리 해서 자극하는 부위의 뇌 활성도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TMS 장치는 지각, 기억, 집중, 정서와 같은 다양한 두뇌 기능을 연구하는 데도 사용된다. 채 교수는 “TMS 장치로 시각중추가 있는 후두엽을 자극하면 대상자는 눈앞에서 번쩍이는 불빛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환청을 듣는 환자의 측두엽 청각피질을 자극하면 환청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2005년 신경정신과학 분야의 국제저널인 ‘뉴로사이언스 레터’에 실렸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환시나 환청처럼 지금까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적 근거가 되고 있다.
현재 TMS 장치는 우울증 치료에도 응용되고 있다. 뇌의 전두엽을 자극해 활성도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기분의 균형을 맞춰주는 방법이다. TMS 장치를 활용한 우울증 치료는
지난해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공인받았다.
귀신을 보는 ‘능력’은 단순히 특별한 각막을 이식받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 같지 않다. 현대 과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뇌를 가진 사람이 보통 사람과 다른 존재를 느낀다는 것.
하지만 일식이나 태풍 같은 자연현상도 과거에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귀신을 보는 현상도 좀 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이 기대되지만 한편으론 그때는 무엇으로 이 더운 여름을 버틸지 고민이다.
공포영화의 배경은 왜 음침할까
2003년 영국 허트퍼드셔대 심리학과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팀은 귀신 체험과 관련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와이즈먼 교수팀은 참가자 462명에게 귀신이 출몰하는 것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햄프턴 궁전에서 이상한 존재가 느껴지는지, 느껴진다면 어디서 그런지 물었다. 그 결과 참가자의 46.5%인 215명이 이상한 존재를 느꼈다고 대답했고, 그들이 지목한 장소는 옛날부터 사람들이 귀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지점과 대부분 일치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지목한 장소의 온도, 조명 밝기, 방 크기, 자기장 등을 직접 측정해봤다. 실제로 지목된 장소는 온도가 낮으며 어둡고 협소했다. 자기장이 급변하는 양상도 나타났다. 자기장이 변하면 뇌파나 심장박동 같은 인체의 생리적 리듬이 일시적으로 깨질 수 있다. 이 같은 주변 조건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갖게 만든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연구 결과는 공포영화의 배경이 왜 항상 음침할 수밖에 없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고도로 집중한 뇌의 비밀
하지만 장소에 관계없이 귀신을 본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접신(接神)’을 하는 무속인들이다. 가톨릭대 의대 정신과학과 채정호 교수는 접신으로 귀신을 본다는 무속인 2
명의 뇌를 단일광자방출컴퓨터단층촬영술(SPECT)로 분석했다. 접신을 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
분석 결과 채 교수는 “이들의 뇌에서 공통적으로 대뇌 앞부분인 전두엽과 가장자리 부분인 측두엽이 활성화됐다”며“이는 보통 사람이 고도로 집중했을 때의 뇌 상태와 비슷하
다”고 말했다. 전두엽은 논리적 사고 같은 고등 정신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측두엽은 청각과 후각을 관장하는 부위로 알려져 있다. 채 교수의 연구결과는 2002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 발표됐다.
무언가에 골똘히 집중하는 일과 귀신을 보는 현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앤드류 뉴버그 교수팀은 티베트 불교 명상가들의 뇌를 분석해 ‘뇌가 고도로 집중한 상태’를 연구했다. 연구팀은 명상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의 뇌를 SPECT로 촬영했다. 그 결과 대뇌 한가운데의 꼭대기(정수리 부분)에 있는 두정엽의 활동은 급격히 약해지는 반면, 전두엽의 활동은 활발해지는 것이 관찰됐다. 두정엽은 물리적인 외부 자극을 지각하는 부위다.
뉴버그 교수는 2002년 발간한 자신의 책 ‘왜 신은 사라지지 않는가’에서“고도의 집중 상태에서는 두정엽의 활동이 약해져 외부의 자극과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머릿속에서 상상한 장면을 실제로 보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외부에서 오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주장은 채정호 교수의 실험결과, 즉 접신 상태의 뇌가 고도로 집중한 뇌와 유사하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
‘죄와 벌’‘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쓴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작품으로 친숙한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둘의 공통점은 생전에 간질을 앓았다는 사실이다. 간질은 뇌의 신경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거나 또는 너무 활성화되지 않아 일어나는 병이다. 일반적인 간질은 뇌의 한 부위에 이상이 생겨 거기서 발생한 비정상 뇌파가 뇌 전체로 퍼진다. 간질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와 고흐가 앓은 간질은 일반 간질과 증상이 조금 다르다. 이들의 정확한 병명은 측두엽 간질. 측두엽 간질 환자는 간혹 실제로 나지 않는 냄새를 맡거나, 실제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맛이 난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한 경우 환청을 듣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측두엽과 이런 환상 체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특히 1980년 캐나다 로렌티안대 신경과학자 마이클 퍼신저 교수는 측두엽과 귀신을 보는 현상의 상관 관계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측두엽을 전기로 자극하면 귀신을 봤다고 느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5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헬멧을 씌우고 약한 자기장을 가했다. 실험 결과 참가자 5명 중 4명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실험은 밀폐된 공간에서 두 눈을 가리고 진행됐으며, 측두엽을 자극하는 자기장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자기장과 비슷한 세기였다.
측두엽과 환청, 그리고 자기장
과학자들이 이처럼 귀신을 보는 현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런 연구 결과들이 정신과 질환을 진단, 치료하는 데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귀신을 느끼는 장소에서 자기장이 급변한다는 사실과, 자기장이 측두엽을 활성화시켜 귀신 느낌을 준다는 연구 결과는 실제로 정신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두개자기자극(TMS) 장치의 작용과 매우 유사하다.
TMS 장치는 머리 표면에 자기장을 유도해 두뇌 피질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도록 개발됐다. 이때 자기장은 지구 자기장의 2만~4만 배에 해당하는 2T(테슬라) 정도이며, 자기장의 진동을 달리 해서 자극하는 부위의 뇌 활성도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TMS 장치는 지각, 기억, 집중, 정서와 같은 다양한 두뇌 기능을 연구하는 데도 사용된다. 채 교수는 “TMS 장치로 시각중추가 있는 후두엽을 자극하면 대상자는 눈앞에서 번쩍이는 불빛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환청을 듣는 환자의 측두엽 청각피질을 자극하면 환청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2005년 신경정신과학 분야의 국제저널인 ‘뉴로사이언스 레터’에 실렸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환시나 환청처럼 지금까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적 근거가 되고 있다.
현재 TMS 장치는 우울증 치료에도 응용되고 있다. 뇌의 전두엽을 자극해 활성도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기분의 균형을 맞춰주는 방법이다. TMS 장치를 활용한 우울증 치료는
지난해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공인받았다.
귀신을 보는 ‘능력’은 단순히 특별한 각막을 이식받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 같지 않다. 현대 과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뇌를 가진 사람이 보통 사람과 다른 존재를 느낀다는 것.
하지만 일식이나 태풍 같은 자연현상도 과거에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귀신을 보는 현상도 좀 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이 기대되지만 한편으론 그때는 무엇으로 이 더운 여름을 버틸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