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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파도’로 모양 구분해 신약 효능 분석한다

비행기에서 키와 몸무게가 똑같은 사람 2명이 똑같은 낙하산을 메고 바다로 뛰어내린다. 다소 위험한 상상이지만 1명은 낙하산을 활짝 펴고 다른 1명은 낙하산을 펴지 않고 뛰어내린다면? 당연히 낙하산을 편 사람은 공기저항을 받는 표면적이 넓기 때문에 낙하산을 펴지 않은 사람보다 천천히 떨어질 것이다. 사람과 낙하산을 한 물체로 생각할 때 질량이 같은 두 물체가 모양에 따라 떨어지는 속도가 다른 셈이다.

이를 응용한다면 질량이 같은 미세한 물질도 모양에 따라 분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신약으로 개발 중인 단백질이나 천연물, 합성물질 등은 모양이 조금만 달라도 몸속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질량뿐만 아니라 물질의 모양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질량을 질량분석기로 측정한 뒤 모양을 파악하려면 다른 장비로 옮겨서 실험을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광주센터의 분석연구부 질량분석팀 권요셉 박사는 “시냅 고화질 질량분석기(Synapt High Definition Mass Spectrometry, 이하 시냅 HDMS)는 기존 질량분석기처럼 질량을 측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질량이 같지만 모양이 다른 물질도 구별한다”고 말했다.

기존 질량분석기에 ‘이온 이동 분리칸’ 더한 장비

질량을 분석하려는 물질이 들어 있는 용액에 전기를 걸어 이 물질을 이온화시킨다. 이온이 포함된 용액은 시냅 HDMS의 스프레이팁을 거쳐 분무되면서 액체방울은 떨어지고 가벼운 이온만 분석기로 들어간다. 분무 효율을 높여 이온이 원활하게 흐르게 하기 위해 스프레이팁의 지름은 고작 10㎛(마이크로미터, 1㎛=10-6m)밖에 되지 않는다.

질량만 측정하는 기존 질량분석기로는 모양이 다른 물질을 구분할 수 없다. 질량이 같은 물질을 모양에 따라 분리하려면 이동하는 동안 간격이 벌어져야 한다. 검출기에 도착하는 시간에 따라 어떤 물질의 표면적이 더 넓은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권 박사는 “기존 질량분석기에 ‘이온 이동 분리칸’(Ion Mobility Separation Cell, 이하 IMS셀)을 더한 ‘시냅 HDMS’가 해답”이라고 말했다. 시냅 HDMS는 50~8만Da(돌턴, 1Da=1.67×10-24g(수소 원자의 질량))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다.

IMS셀 안에 들어간 이온은 일정하게 진동하는 공기파도를 타고 흐른다. 공기파도는 1분에 350~400nL(나노리터, 1nL=10-9L)씩 검출기 방향으로 흐르며 절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공기가 압력 차에 의해 흐르도록 검출기 부분을 초진공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온은 공기파도를 타고 흐르면서 모양에 따라 서로 간격이 벌어진다. 그래서 질량이 같더라도 모양이 다르다면 검출기에 도착하는 시간이 다르다. 낙하산을 멘 두 사람처럼 표면적이 작을수록 먼저 도착하며 표면적이 넓을수록 늦게 도착한다. 물질이 검출기에 순서대로 도착하면 구체적인 질량값이 측정된다.

하지만 시냅 HDMS가 물질의 모양까지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권 박사는 “모양을 정확히 알고 있는 물질을 표준으로 삼아 분석하려는 물질과 비교하면 그 물질이 원래 모양에서 어떻게 변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백질 의약품은 중간에 소화되지 않도록 단백질 주변을 투명한 폴리에틸렌글리콜(PEG)로 감싼다. PEG를 감는 정도에 따라 약품이 몸속에서 발휘되는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PEG가 어떤 모양으로 얼마나 단단하게 감겨 있는지 알아야 한다. 최근 종근당 바이오는 PEG가 칭칭 감긴 정도를 분석해달라고 권 박사팀에게 의뢰했다.

모든 약품은 질량이 같고 주변을 감는 PEG 양도 같기 때문에 결국 전체 질량이 같다. 권 박사팀은 시냅 HDMS를 이용해 꼼꼼하게 감긴 약품보다 느슨하게 감긴 약품이 더 늦게 검출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양에 따라 분리했다.

올해 1월 권 박사는 전북대 정윤조 박사와 경북대 김성환 박사와 공동으로 시냅 HDMS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품을 개발해 ‘미국질량분석학회저널’(JASMS)에 발표했다. 권 박사가 개발한 부품은 ‘백금와이어 스프레이팁’으로 기존 스프레이팁을 응용한 것이다. 기존 스프레이팁은 실수로 공기 방울이 들어갈 경우 전도성이 떨어져 이온이 지나가지 못하게 방해했지만, 백금와이어는 전도성이 우수해 공기가 막고 있더라도 이온이 이동할 수 있다.

권 박사는 “아무리 다른 장비보다 기능이 많고 정확한 분석을 하는 첨단 장비라도 그 특징을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잘 활용하는 법”이라며 “앞으로도 장비의 연구 역량을 100% 활용해 단백질 바이오 마커를 찾고 신약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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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광주=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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