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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에서 단백질까지 살피며 질병 원인 한눈에 파악



만약 어떤 산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입구부터 정상까지 차근차근 오르면서 어떤 나무가 있고, 어디쯤에 계곡물이 흐르는지를 봐야 한다. 그러나 같은 산이라도 정상에 오르는 최적의 등산로를 찾아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산에 대한 세부 정보를 종합해 산을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계곡이 어디서 시작돼서 어디서 끝나는지, 어떤 나무가 많은지 등을 파악해 커다란 지도를 그릴 수 있어야 최적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생물학 연구도 마찬가지다. 어떤 생명 현상, 예를 들어 심장이 뛰는 원리 자체가 궁금하다면 세포, 단백질, 유전자, 조직 수준에서 각각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면 된다. 그런데 만약 특정한 심장 질환의 원인을 찾고 있다면 세포 수준부터 조직 수준까지 심장의 움직임을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으로 생각해야 한다. 세포, 조직, 단백질, 유전자 같은 생물체의 구성요소들이 그 자체만으로는 이상이 없어도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과학기술원 시스템생물학연구소에서는 이처럼 몸을 이루는 수많은 구성요소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곳에서는 나무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숲의 비밀을 캐고 있는 셈이다.

 



심장 수축·이완 과정의 신호전달 경로 담은 시스템지도

“단백질과 유전자는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따로 생각해서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무 한두 그루만 보고서는 숲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광주과학기술원 시스템생물학연구소 소장인 김도한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팀은 지금까지는 개별적으로 진행했던 유전자와 단백질에 관한 연구 결과를 종합해 2006년 세계 최초로 심장세포 유전자와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는 ‘심장세포 유전자 시스템지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심장근육세포 내 칼슘의 양이 많아지면 세포가 수축하고 적어지면 이완하는 칼슘의 신호전달 과정에 착안해 두 가지 연구를 진행했다. 즉 칼슘의 양에 따라 심장근육세포를 수축시키거나 이완시키는 근수축단백질 작용을 연구하고 동시에 그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의 작용을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심장 수축에 영향을 미치는 57개의 유전자 군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심장이 수축하거나 이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14가지 신호전달 경로를 지도로 완성했다.

 



연구팀은 시스템지도를 활용해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심장비대증을 연구했다. 연구의 목적은 똑같은 칼슘이 작용하는데 왜 특정 경우에만 심장이 병적으로 커지는지 이유를 밝히는 것. 김 교수팀이 2008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심장비대증 환자는 시스템지도에 나타난 14개의 신호전달 경로 중에서 7개 경로가 정상인과 달랐다. 이는 심장비대증 환자의 경우엔 똑같은 칼슘이 작용해도 단백질과 유전자가 상호작용하는 경로가 비정상적이라는 의미다. “시스템지도로 단백질과 유전자를 한꺼번에 보면 환자와 정상인의 다른 점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김 교수팀의 김태용 연구원은 말했다.

BT에 날개를 달아준 IT

“생명 현상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시스템생물학의 개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된 계기는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부터입니다.” 김도한 교수는 생물학적 데이터를 대량으로 처리하는 IT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시스템생물학이 불가능했을 것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심장세포 유전자 시스템지도’를 만드는 데도 IT를 적극 활용했다. 유전자와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를 변형시켜 그 결과로 만들어진 단백질의 특성을 살펴보는 실험이 필요했다. 그런데 세포 하나에 3만 여 개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보니 유전자가 만든 단백질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형질을 갖고 있는지 일일이 조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IT가 발전하면서 한 번에 400만 개의 염기서열을 읽어내는 ‘게놈 애널라이저’라는 장비가 개발됐다. 이 장비 덕분에 사람 1명의 DNA 염기서열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수년에서 3주로 단축됐다.

 


 

한편 연구팀은 올해 심장종합데이터관리시스템(CIDMS)을 구축했다. 유전자나 단백질 같은 심장세포와 관련 있는 모든 유효한 데이터를 종합해서 분석하는 이 시스템은 유전 정보가 얻어질 때마다 자동으로 업데이트될 수 있게 설계됐다. CIDMS는 심장을 대상으로 한 세계 최초의 종합데이터관리시스템으로 2008년 심장학 분야 권위지인 ‘분자·세포심장학저널’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김 교수팀은 CIDMS에 쌓여 있는 정보를 컴퓨터로 좀 더 효율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모델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런 프로그램이 더 발전하면 축적된 정보를 이용해 가상의 심장세포를 만들고 이를 임상시험에 활용할 수 있다”며 “심장병을 비롯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또 “BT와 IT처럼 학문 간 융합을 즐기는 사람에게 시스템생물학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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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광주=이영혜 기자,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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