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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공유 내건 학술지, 온라인 오픈”

IBC 초대 편집장 남홍길 교수



지난 3월 31일 창간한 온라인 과학저널 IBC는 값비싼 저널 구독료와 논문의 저작권 정책에 반대하며 누구나 저널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오픈 액세스’(열린 접근)를 지향한다. IBC는 ‘Interdisciplinary Bio Central’의 약자로 생명과학과 융합 분야를 다루는 저널이라는 뜻이다.

초대 편집장은 포스텍 시스템생명공학부 남홍길 교수가 맡았다. 남 교수는 3대 과학저널(NSC)인 ‘사이언스’(1999년), ‘셀’(2005년), ‘네이처’(2008년)에 모두 논문을 게재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전 세계 과학자들 중에서도 이룬 이가 흔치 않은 성과다. 이처럼 기존 논문 출판 체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남 교수가 새로운 형태의 저널을 창간한 배경은 무엇일까.

국내 첫 ‘오픈 액세스’ 저널

6월 초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360km를 내달려 찾아간 포항은 이미 한여름이었다.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이자 시스템생명공학부 학부장을 맡고 있는 남 교수는 IBC 편집장 업무까지 맡으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과학자의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이 특정 출판사에 귀속되는 현재의 출판 체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논문을 작성한 과학자가 저작권을 갖고 이를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공유하고 비판해야 과학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습니다.”



남 교수는 학술지 IBC를 창간한 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신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이 지금처럼 상업적 목적에 묶여 ‘출판사의 상품’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온라인 저널 IBC는 영문 국제 학술지로 1년에 5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할 계획이다. IBC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한국생물정보시스템생물학회와 국가핵심연구센터(NCRC),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모여 창간했다. 편집위원으로는 노벨상 심사위원인 올로프 베리그렌 박사를 비롯해 외국인 과학자 6명, 국내 과학자 11명을 포함해 모두 17명이 참여했다.

그동안 과학계 일각에서는 과학저널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을 발행하는 출판사들의 값비싼 구독료 정책에 반대해, 과학논문을 공개하고 자유롭게 공유하자는 ‘오픈 액세스’ 운동을 벌여 왔다. 그 영향으로 생물학이나 유전학을 다루는 ‘플로스’(PLoS), 언어와 화학, 수학 등을 다루는 ‘DOAJ’, 생물학과 의학 분야의 ‘바이오메드 센트럴’(Biomed Central) 같은 국제 학술지들이 창간됐다. 국내에선 IBC가 이런 흐름에 처음 동참한 셈이다.

IBC는 기존 학술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운영된다. 우선 논문 제출에서 심사, 출판, 토론까지 모든 과정이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남 교수는 “피드백을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온라인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텍스트 방식의 문서뿐 아니라 동영상이나 그림 등 다양한 형태의 연구 결과물을 축적할 수 있다.

논문심사자 직접 선택해 심사 받는다

논문심사에는 ‘오픈 피어 리뷰’라는 파격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논문 제출자가 자신의 논문을 심사할 해당 분야의 전문가(박사 학위 이상의 소지자) 2명을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다. 남 교수는 “논문 심사자를 개방하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공정한 논문 심사를 받을 수 있다”며 “이 방식은 기존 논문 심사 체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일부 저널에서는 심사위원들이 학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진 연구자의 논문이나 학계의 기존 연구와 다른 결과를 담은 논문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논문을 출간하는 과정도 대폭 개선해 간단해진다. 보통 국제학술지의 경우 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이 1달 이상 걸리며, 아무런 이유 없이 논문심사가 2~3달 지연되는 일도 많다. 하지만 IBC는 논문 투고에서 심사, 게재까지 총 7일 안에 이뤄진다. 이런 의지는 홈페이지 주소(www.ibc7.org)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참여와 공유, 개방을 지향하는 IBC는 논문이 출간된 뒤에도 활발히 토론할 수 있는 장을 활짝 연다. 예를 들어 누구나 해당 논문을 읽고 댓글을 달 수 있다.

IBC의 색다른 점 중 하나는 실험과정에서 원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실패한 논문이라도 게재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얼토당토않은 논문까지 모두 게재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남 교수는 “논리적으로나 실험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없지만 예상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 가설이 증명되지 않은 경우도 논문을 게재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이 같은 실험을 반복하지 않고 이를 디딤돌 삼아 한 단계 더 발전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다.

과학계 새바람 일으킬 IBC

남 교수는 “우선 올해 회원 2000명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며 “가장 빠르게 IBC를 널리 알리는 길은 좋은 논문을 많이 게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영향력이 큰 네이처나 셀, 사이언스 같은 저널을 선호하는 연구자들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저널에 선뜻 우수한 논문을 게재하겠다고 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다양한 홍보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각 학회에서 발표되는 논문 중 우수 논문을 발굴해 게재하거나 특정 주제를 정해 좋은 논문을 실을 계획이다. 또한 IBC를 아시아시스템생물학연합학회의 공식적인 학술지로 만드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럴 경우 아시아권 학자들이 우수한 논문을 정기적으로 게재할 가능성이 크다.

“2년 이내에 IBC를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에 등재시키고 영향력지수(IF)도 크게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영향력지수는 2년 동안 학술저널에 실린 논문이 이듬해에 평균 몇 번이나 다른 논문에 인용됐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지수가 높을수록 논문과 저널의 영향력이 크다는 뜻이다.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세계 최고 저널의 경우 영향력지수가 30에 이른다.

남 교수는 “아직까지 학계 전반에 IBC를 창간한 의도나 운영 방안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보수적인 학계를 설득하는 일에 편집장으로서 많은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과학저널에 새바람을 몰고 올 IBC와 편집장 남 교수의 행보가 주목된다.
 
과학계 그랜드슬램 달성한 비결

“시골에서 자라 어릴 적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식물이 성장하는 데 빛이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늘 신기하게 생각했죠.”

이런 관심 덕분에 남 교수는 학문의 미개척지였던 식물 유전자 연구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는 1988년부터 식물을 분자 유전학으로 연구해 왔다.

1999년 9월에는 식물에서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자이겐티아(GI) 유전자를 발견하고 이 유전자가 식물 내의 생체시계와 연동돼 작동함을 밝혀, 식물의 생체시계와 개화시기 조절 분야에 큰 획을 그었다.

2005년에는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빛의 양이나 밝기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알아내 생물학 분야 권위지인 ‘셀’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에는 속씨식물이 중복수정을 하는 데 필요한 ‘쌍둥이 정자’를 만드는 과정을 규명하고 ‘네이처’에 발표해 세계 3대 과학저널에 모두 논문을 싣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쌍둥이 정자를 만들 때 단백질 복합체(SCFFBL17)가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이 연구는 식물이 진화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남 교수는 2000년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2006년 ‘한국과학상’을, 지난 3월 ‘2009 포스코 청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남 교수는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는다.“지금까지 생명체를 연구해 온 분자 생물학이나 분자 유전학의 방법론과 생명현상 인식법에 한계를 느껴 앞으로는 시스템 생물학이나 분자 영상기법, 화학 유전학, 생물 정보학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생명체의 생명활동은 단순히 몇 개 유전자나 단백질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시스템 생물학을 도입하면 생명활동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다양한 요인이 모여 생기는 시스템적인 특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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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글 포항= 이준덕 기자, 사진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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