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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한국의 귀화식물

과학동아-문지문화원 ‘사이’ 선정 ‘이달의 과학책’

|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한국의 귀화식물 |
박수현 지음 | 일조각 | 576쪽 | 6만 원


귀화식물에 대해 내가 들은 첫 소문은 불편했다. 미국에서 온 ‘자리공’이란 식물이 여기저기 자리 잡아 우리나라 생태계를 망가트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자리공의 적자색 줄기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까지 겹치며, 우리나라 들판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들었다. 작은 민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민물을 점령한다고 소동을 일으켰던 큰입배스, 황소개구리 그리고 최근에 비호감 곤충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주홍날개꽃매미 등을 떠올리면 다른 땅에서 이리로 옮겨 온 생명들이 처음에는 대부분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밀화와 사진으로 보는 한국의 귀화식물’을 읽으면서 배움도 많았고 놀라움도 컸다. 귀화식물은 외국의 자생지에서 인간에 의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옮겨져 여러 세대를 반복하면서 야생화가 되거나 토착화가 된 식물을 말한다. 이렇게 옮겨와 터를 잡은 식물 수가 1876년 개항 이후에만 300여 종에 이른다는 것은 놀랍다. 돌피, 강피, 물달개비, 마디꽃, 바람하늘지기와 같이 벼가 들어 올 때 함께 들어 온 남방 식물이나 수영, 냉이, 벼룩이자리, 쇠별꽃 같이 중국을 통해 들어 온 유럽 식물은 자리 잡은 지 오래되어 이제 귀화식물로 분류하지도 않는다.

흥미롭게도 귀화식물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개항 이전에는 털여뀌, 쪽, 자리공, 갓, 큰꿩의비름, 자운영, 전동싸리 같은 이용 가치가 있는 식물이 주로 중국에서 들어왔는데, 개항 이후에는 일본과 미국의 영향으로 애기수영, 소리쟁이, 말냉이, 잔개자리, 토끼풀, 실망초 따위가 밀려 왔다. 태평양전쟁이나 한국전쟁이 있던 시기에는 사람들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아서 식물의 귀화도 주춤했다. 하지만 1960년대 산업화와 함께 귀화식물의 원산지도 다양해지고 종수도 많아졌다. 저자가 발로 뛰고 연구한 귀화식물에 대한 설명을 하나씩 읽으며 사진과 그림을 보고 있으면 책이 사전식으로 구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다만 식물이 들어 온 경로나 그 과정에서 있었을 다양한 이야기가 덧붙여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좋은 과학책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다른 이들이 만들어 낸 지식을 가로 세로로 잘 짜 맞춰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일반인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과학에 접근하기 쉽도록 만드는 책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저자 스스로 찾고 연구해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리는 책이다. 다행히 첫 번째 유형에 속하는 책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 책들, 과학자들의 땀이 배어 있으면서도 읽기에 즐거운 책들은 드물게 만난다. 그래서 ‘세밀화와 사진으로 보는 한국의 귀화식물’은 귀하다.

● 알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과학동아와 문지문화원 ‘사이’(www.saii.or.kr)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책 가운데 매달 한 권을 선정해 서평을 싣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올해 12월에 시상할 ‘올해의 과학책’ 후보가 됩니다.

과학동아에 실릴 책은 6명의 선정위원들이 오랜 시간 난상토론을 벌인 뒤 선정하며
선정일 기준으로 2달 전까지 출간된 신간 중에서 1권을 고릅니다. 선정 기준은 다음 3가지입니다.

첫째, 현재 과학적인 진보를 잘 반영하면서 정확한 정보가 실린 책
둘째, 담긴 내용이 미래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
셋째,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술된 책

선정위원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오동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조사분석실장
전용훈 일본 교토산교대 객원연구원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최정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눈길이 머무는 이달의 책

| 시간의 심리학 |
사라 노게이트 지음 | 장근영·이양원 옮김 | 갤리온 | 260쪽 | 1만 2000원


미국 메릴랜드대 존 로빈슨과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제프리 가드비는 미국인들이 한 주에 얼마나 많은 여가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 평균 18시간의 여가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 한 일을 조목조목 적게 하자 실제 여가시간은 평균 40시간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나머지 22시간은 어디로 간 걸까. 이 실험은 시간 부족과 업무 과다로 피로를 호소하지만 정작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는 현대인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간의 심리학’의 저자 사라 노게이트는 여러 실험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우리의 시간을 재구성한다.

시간에 쫓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은 시간 절약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런 압박감은 삶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실제보다 시간을 부족하게 느끼게 만든다.

하기 싫은 일을 하거나 회사 업무를 할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이기 마련이지만 여가시간 같이 여유롭고 즐거운 상황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놓치고, 결국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적 시간을 제대로 누리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시간 절약에만 매달리면 내게 주어진 평생이라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말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고 싶다면 하루하루 일에 쫓기지 말고 전 생애를 기준으로 한 시간표를 작성하라고 귀띔한다.

글 이준덕 기자 cyrix99@donga.com


새책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데이비드 A. 시앙 지음 | 김승환 옮김 | 지와사랑 | 192쪽 | 1만 1000원


자연이 확률에 의존한다는 스티븐 호킹과 브라이언 그린, 진화론과 무신론의 대표주자 리처드 도킨스와 대니엘 데닛. 이들의 책은 전 세계에서 수백만 권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시앙은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진화론, 양자론에 대해 과학자들이 자부심의 근거로 삼는 증거, 검증, 논리, 실험을 동원해 맞선다.

세상의 비밀을 밝힌 위대한 실험
조지 존슨 지음 | 김정은 옮김 | 에코의서재 | 224쪽 | 1만 1000원


이 책은 세상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곰곰이 궁리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낙하하는 공에서 사물의 운동법칙을 알아낸 갈릴레오의 경사면 실험, 프리즘으로 빛의 정체를 밝힌 뉴턴의 빛분해 실험, 양자역학의 토대를 만든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에서 과학자들의 위대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손영운의 우리땅 과학답사기
손영운 지음 | 살림 | 414쪽 | 1만 4000원


17년 동안 과학교사로 근무했던 저자가 과학 전문 저술가로 나선 뒤 수년 동안 전국 곳곳을 답사하며 만든 책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역 100곳을 선정해 역사, 문화, 지리과학적 관점에서 우리 땅을 분석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각 지역의 전설과 설화, 지층에 담긴 자연사 이야기가 300여 장의 사진과 일러스트와 함께 생생하게 전해진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
리처드 포티 지음 | 박중서 옮김 | 까치 | 448쪽 | 2만 원


세계 최고의 자연사학자 가운데 한 명이며 ‘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의 저자로도 유명한 리처드 포티가 오랜 세월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이 책에 풀어 놓았다. 쿡 선장이 항해하며 수집한 식물 표본부터 찰스 다윈이 연구한 조개 등 수 많은 전시물을 간직한 런던 자연사 박물관을 속속들이 소개한다.

킬링 타임
파울 파이어아벤트 지음 | 정병훈·김성이 옮김 | 한겨레출판 | 324쪽 | 1만 5000원


이 책은 과학철학과 심리철학 분야에서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였던 저자가 1994년 사망하기 전 완성한 자서전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중산층에서 태어나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철학자로 성장하기까지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세기 과학철학계의 ‘악동’으로 불리던 저자의 사상을 기지 넘치고 감동 가득한 이야기로 만날 수 있다.

청소년을 위한 유쾌한 물리상식
김기태 지음 | 하늘아래 | 264쪽 | 1만 3000원

위대한 발명과 발견은 대부분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곳에서 나온 게 아니라 가까이 접하고 있는 사물과 여러 가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다. 저자는 이처럼 주변의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의문을 갖고 실험했던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곁들여 원자에서 우주까지 어려운 물리학을 쉽고 재밌게 설명한다.
 

200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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