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기인 ‘플라이어 1호’로 세운 기록은 소박했다. 12초 동안 36m 비행. 하지만 이 사건은 인류 역사에서 길이 기억된다. 날개 없는 생물인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가를 수 있게 한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라이트 형제의 세계 최초 비행 이후 비행기 발달을 가속시킨 건 양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비행기 발달은 곧 속도의 향상을 뜻했다. 미사일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투기들은 근거리에서 서로 뒤엉켜 적기에 기관총을 쏘아대는, 이른바 ‘도그 파이팅’(Dog fighting)을 했다. 더 빨리 나는 비행기는 적보다 더 좋은 자리를 잡아 더 정확히 총알을 퍼부을 수 있었다. 꼬리 날개를 노리는 적기를 따돌리는 데에도 빠른 비행 속도는 큰 역할을 했다.
1914년 시작된 1차 세계대전에 등장했던 전투기들이 최고 시속 200km 수준이었던 데 비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유럽 하늘을 가른 미군의 P-51 무스탕이 시속 700km까지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당시 최강 전투기로 군림하던 P-51도 마냥 여유를 즐기기는 어려웠다. 바로 1944년 독일이 실전 투입한 ‘메사슈미트252’(Me252) 때문이었다. 최고 시속은 무려 870km. 눈 깜짝할 사이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Me252 앞에 연합군 조종사들은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었다. Me252가 보여 준 놀라운 속도의 비밀은 어디에 있었을까. 제트 엔진이었다. 제트 엔진을 단 비행기의 뛰어난 성능은 2차 세계대전 종전 5년 뒤 터진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주력 전투기 F-86, 북한의 주력 전투기 미그-15가 모두 제트 엔진을 장착한 데에서 잘 나타난다.
이처럼 프로펠러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를 지닌 제트기가 민수용으로 활용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구촌 시대가 개막된 것과 제트기는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었던 셈이다. 음속(초속 340m) 턱밑까지 비행하는 보잉 747기가 1969년 등장해 각국을 순식간에 잇지 않았다면 지구촌의 정치, 경제, 사회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최근 세계는 이전과 전혀 다른 제트기를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가지 목표는 극초음속 비행기다. 마하 3(초음속) 정도가 한계인 현재의 터보제트 엔진 대신에 비행기를 마하 6(극초음속) 이상 가속할 수 있는 ‘스크램제트’ 엔진을 개발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 엔진을 단 제트기는 인천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한 두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최근 제트기 개발의 또 따른 축은 ‘소닉붐’(sonic boom) 감소다. 극초음속기처럼 엄청난 속도에 욕심을 내기보다 마하 1.5 내외의 속도에서 조용한 비행을 실현하는 게 목표다. 음속을 돌파할 때 나타나는 폭음인 소닉붐은 사람과 동물에게 큰 고통을 안긴다. 미국 등에 있는 각국 항공기 제조사는 소닉붐을 대폭 줄인 비행기를 수 년 내에 실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소닉붐을 줄이려고 동체의 형태를 바꾸는 등 2003년 콩코드 퇴역 이후 대가 끊긴 초음속기 시대를 잇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압축기와 터빈 없는 램제트 엔진
터보제트 엔진은 공기를 압축해 연료와 섞어 연소시킨 뒤 만든 가스로 터빈을 돌린다. 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비행기를 추진시킨다. 생산한 에너지의 많은 부분이 정작 비행기를 날리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실용화된 유일한 초음속 여객기였던 콩코드가 터보제트 엔진을 달고 있다. 승객 100명을 태우고 마하 2로 비행할 수 있었다. 현존하는 제트 엔진 대부분이 이 같은 터보제트 엔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터보제트 엔진의 근본 문제는 바로 이런 구조에서 시작된다. 비행 속도가 마하 3에 가까워지면 굳이 압축기로 공기를 압축하지 않아도 충분히 고압 상태가 되지만 터보제트 엔진의 구조는 그 같은 초고속 상황을 감안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압축기와 압축기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터빈이 비행기의 가속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는 얘기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정인석 교수는 “압축기와 터빈을 엔진에 설치하려면 많은 부품이 필요하다”며 “극초음속 비행을 위해서는 적합하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터보제트 엔진의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나온 대안이 램제트 엔진이다. 램제트 엔진은 초음속 상태로 날아드는 공기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공기 덕에 굳이 압축기가 필요 없다. 당연히 압축기를 돌리기 위한 터빈도 존재하지 않는다. 엔진에서 생산하는 에너지가 압축기나 터빈에서 소모되지 않고 비행 속도를 올리는 데 집중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엔진에서 연소 작용을 제대로 일으키기 위해서는 엔진 내부로 들어오는 공기 속도를 초음속에서 아음속(음속보다 약간 느린 속도)으로 낮춰야 한다. 공기가 너무 빨리 흐르면 미처 연소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기가 엔진 뒤로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램제트 엔진으로 속도를 무한정 높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론상 마하 15 가능한 스크램제트 엔진
과학기술자들이 주목하는 스크램제트 엔진은 램제트 엔진과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지만 몸체 안으로 흘러드는 공기의 흐름을 초음속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다르다. 스크램제트 엔진은 렘제트 엔진의 한계 속도인 마하 6은 물론 이론적으로 마하 15 속도도 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연구 붐이 일고 있다.
엄청난 속도 때문에 스크램제트 엔진을 로켓 엔진과 비견하기도 한다. 두 엔진의 가장 큰 차이는 연료를 태우기 위한 산화제를 기체 내부에 갖고 있느냐다. 로켓 엔진은 산화제를 내부에 갖고 있지만 스크램제트 엔진은 대기 중에서 산소를 흡입한다. 로켓보다 몸체 안에 더 많은 적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까지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처럼 대단한 효과가 기대되는 스크램제트 엔진이 아직까지 실용화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엔진 내부를 초음속으로 흐르는 공기 가운데에서 연소 작용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스크램제트 엔진의 연소를 강풍 가운데에서 성냥을 켜는 데에 비유한다. 서울대 정인석 교수는 “초음속 상태에서 엔진으로 들어오는 공기에 직각 방향으로 연료를 분사하는 방법 등이 논의되고 있다”며 “개발 국가 모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의 진행 상황을 비밀에 붙일 만큼 스크램제트 엔진 실용화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스크램제트 엔진은 속도 ‘0’에서 연소를 시작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보통 비행기처럼 활주로에 멈춘 상태에서 서서히 가속해 속도를 높일 수 없다는 얘기다. 엔진 앞에서 날아드는 공기가 초음속 상태여야만 연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다른 항공기에 업혀서 비행을 시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은 스크램제트 엔진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역시 이유는 엄청난 속도가 가진 매력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04년 스크램제트 엔진을 단 X-43이라는 극초음속 비행기를 마하 9까지 가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고도 12km까지 B-52 폭격기에 실려 올라간 뒤 방출된 X-43은 비행을 돕는 보조 부스터와 기체에 장착된 스크램제트 엔진의 힘으로 고도 33.5km까지 상승했다. 스크램제트 엔진 작동 시간은 10여 초 정도였다.
최근 X-43은 달 유인 우주탐사 계획에 정책 우선 순위가 쏠리면서 NASA의 후속 연구가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미국 공군 등이 이 엔진에 관심을 갖고 있어 향후 연구 방향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민간 상용화 시점은 20년 이후가 거론되지만 군용으로는 이보다 빨리 선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크램제트 엔진을 활용한 비행기나 미사일이 나오면 군사력을 지금보다 훨씬 빨리 전 세계에 전개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소닉붐 감소가 상용화의 핵심
초음속기 연구 개발의 또 다른 흐름은 소닉붐을 줄이는 것이다. 각 업체들이 상용화의 마지막 관문으로 보고 도전 중인 과제다. 유일한 민항 초음속기였던 콩코드가 2003년 퇴역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통제할 수 없는 소닉붐이었다. 콩코드는 소닉붐으로 인해 사람과 동물이 사는 지상이 아닌 대서양 횡단 노선에서만 운용됐다.

소닉붐은 비행기가 초속 340m인 음속을 돌파하는 순간 생기는 현상이다. 풍선 안에 있던 제트기가 풍선(소리 벽)을 찢고 앞으로 나오면서 생기는 ‘뻥’ 소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행기는 날아갈 때 주변 공기를 밀어낸다. 이때 생긴 압력을 전달하는 파동은 음속으로 퍼진다. 만약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하면 주변으로 퍼지던 파동이 뭉쳐 V자 모양을 만드는 데 이게 소닉붐이다. 잔잔한 호수 위에서 물결을 만들며 항해하던 배가 갑자기 속도를 내 물결 위에 올라타면 뱃머리와 꼬리 부위에 V자 형태의 새 물결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보통 고도 6100m에서는 14.3kg/m2, 1만 2200m에서는 4.4kg/m2의 압력이 지상에 가해진다. 4.4kg/m2의 경우 멀리서 들리는 천둥 소리 정도이지만 14.3kg/m2는 가까이서 친 천둥 소리와 비슷하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소닉붐의 위력이 17.6kg/m2을 넘으면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는 바다에서 요트를 타던 관광객들이 콩코드의 소닉붐에 크게 놀라는 30초 짜리 영상이 올라와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민간 항공기 제조사들은 이 같은 문제를 비행기의 형태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소닉붐은 기수, 날개, 기체 후방 등 다른 곳보다 튀어나온 부분에서 형성되는데 이 부위에 다른 비행기에 없는 구조물을 붙여 충격파를 상쇄하는 것이다. 미국 SAI사가 만들고 있는 15인승 내외의 사업용 비행기인 ‘QSST’가 대표적이다.
2500만 달러(약 305억 원)를 들여 개발 중인 QSST는 마하 1.8로 운항할 예정이다. SAI사는 이 비행기의 수평 꼬리 날개를 크게 확장하는 대신 주날개는 기존 비행기의 꼬리 날개와 비슷할 정도로 축소했다. 소닉붐을 만드는 공기의 압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수직 꼬리 날개도 V자 형으로 만들고 기수도 넓게 제작했다. SAI사 측은 소닉붐이 콩코드의 10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형 항공기서 개발 방향 ‘턴’… 콩코드 후속작 나오나
이처럼 새 초음속 비행기가 향후 몇 년 사이 모습을 나타낼 예정이지만 일반 여행객의 관심은 조금 달라 보인다. 콩코드에 필적할 만한 속도를 내는 데다 소닉붐까지 줄이는 초음속기라도 10여 명 남짓 타는 자가용이라면 일반인에게는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100인승 항공기였던 콩코드의 뒤를 이를 초음속기가 나올 수 있느냐에 대중의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이 같은 요구에 특히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2009년 중점 육성할 과학기술 분야에 초음속기 개발을 천명했을 만큼 의지가 강하다. 실제 미국의 NASA 격인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2005년 10월 호주에서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 비행 실험에 성공했다. 전장 11.5m, 주날개 폭 4.7m인 이 비행기는 실제 초음속 여객기를 만들기 위한 데이터를 일본 기술진에 제공했다.
일본은 콩코드의 3배인 300명의 승객을 태우고 마하 2로 비행할 수 있는 중형 여객기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콩코드 개발 경험이 있는 프랑스와 공동 연구를 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콩코드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콩코드의 4분의 1로 줄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이 가운데 보잉사와 함께 세계 항공기 제조업계를 이끄는 유럽 에어버스사가 앞으로의 비행기 개발 방향을 ‘덩치’에서 ‘속도’로 바꿀 방침을 내비친 점은 주목된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인 르몽드는 2003년 “5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우는 세계 최대 여객기 A-380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에어버스사가 초음속 비행기 개발에 뛰어들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A-380이 지난해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가면서 이 같은 에어버스의 계획이 실행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콩코드는 퇴역 뒤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기체에 있던 다양한 부품이 애호가들의 손에서 애지중지 관리되고 있다. 유일한 초음속 여객기로 30여 년 동안 홀로 하늘을 지켰던 노병에 대한 추억이라는 해석이 많다. 2003년 콩코드의 퇴역 비행은 영국과 프랑스의 큰 이슈가 됐을 정도였다. 지구촌을 한 묶음으로 엮을 새로운 끈인 ‘네오 콩코드’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주목된다.
라이트 형제의 세계 최초 비행 이후 비행기 발달을 가속시킨 건 양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비행기 발달은 곧 속도의 향상을 뜻했다. 미사일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투기들은 근거리에서 서로 뒤엉켜 적기에 기관총을 쏘아대는, 이른바 ‘도그 파이팅’(Dog fighting)을 했다. 더 빨리 나는 비행기는 적보다 더 좋은 자리를 잡아 더 정확히 총알을 퍼부을 수 있었다. 꼬리 날개를 노리는 적기를 따돌리는 데에도 빠른 비행 속도는 큰 역할을 했다.
1914년 시작된 1차 세계대전에 등장했던 전투기들이 최고 시속 200km 수준이었던 데 비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유럽 하늘을 가른 미군의 P-51 무스탕이 시속 700km까지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당시 최강 전투기로 군림하던 P-51도 마냥 여유를 즐기기는 어려웠다. 바로 1944년 독일이 실전 투입한 ‘메사슈미트252’(Me252) 때문이었다. 최고 시속은 무려 870km. 눈 깜짝할 사이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Me252 앞에 연합군 조종사들은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었다. Me252가 보여 준 놀라운 속도의 비밀은 어디에 있었을까. 제트 엔진이었다. 제트 엔진을 단 비행기의 뛰어난 성능은 2차 세계대전 종전 5년 뒤 터진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주력 전투기 F-86, 북한의 주력 전투기 미그-15가 모두 제트 엔진을 장착한 데에서 잘 나타난다.
이처럼 프로펠러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를 지닌 제트기가 민수용으로 활용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구촌 시대가 개막된 것과 제트기는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었던 셈이다. 음속(초속 340m) 턱밑까지 비행하는 보잉 747기가 1969년 등장해 각국을 순식간에 잇지 않았다면 지구촌의 정치, 경제, 사회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최근 세계는 이전과 전혀 다른 제트기를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가지 목표는 극초음속 비행기다. 마하 3(초음속) 정도가 한계인 현재의 터보제트 엔진 대신에 비행기를 마하 6(극초음속) 이상 가속할 수 있는 ‘스크램제트’ 엔진을 개발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 엔진을 단 제트기는 인천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한 두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최근 제트기 개발의 또 따른 축은 ‘소닉붐’(sonic boom) 감소다. 극초음속기처럼 엄청난 속도에 욕심을 내기보다 마하 1.5 내외의 속도에서 조용한 비행을 실현하는 게 목표다. 음속을 돌파할 때 나타나는 폭음인 소닉붐은 사람과 동물에게 큰 고통을 안긴다. 미국 등에 있는 각국 항공기 제조사는 소닉붐을 대폭 줄인 비행기를 수 년 내에 실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소닉붐을 줄이려고 동체의 형태를 바꾸는 등 2003년 콩코드 퇴역 이후 대가 끊긴 초음속기 시대를 잇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압축기와 터빈 없는 램제트 엔진
터보제트 엔진은 공기를 압축해 연료와 섞어 연소시킨 뒤 만든 가스로 터빈을 돌린다. 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비행기를 추진시킨다. 생산한 에너지의 많은 부분이 정작 비행기를 날리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실용화된 유일한 초음속 여객기였던 콩코드가 터보제트 엔진을 달고 있다. 승객 100명을 태우고 마하 2로 비행할 수 있었다. 현존하는 제트 엔진 대부분이 이 같은 터보제트 엔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터보제트 엔진의 근본 문제는 바로 이런 구조에서 시작된다. 비행 속도가 마하 3에 가까워지면 굳이 압축기로 공기를 압축하지 않아도 충분히 고압 상태가 되지만 터보제트 엔진의 구조는 그 같은 초고속 상황을 감안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압축기와 압축기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터빈이 비행기의 가속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는 얘기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정인석 교수는 “압축기와 터빈을 엔진에 설치하려면 많은 부품이 필요하다”며 “극초음속 비행을 위해서는 적합하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터보제트 엔진의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나온 대안이 램제트 엔진이다. 램제트 엔진은 초음속 상태로 날아드는 공기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공기 덕에 굳이 압축기가 필요 없다. 당연히 압축기를 돌리기 위한 터빈도 존재하지 않는다. 엔진에서 생산하는 에너지가 압축기나 터빈에서 소모되지 않고 비행 속도를 올리는 데 집중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엔진에서 연소 작용을 제대로 일으키기 위해서는 엔진 내부로 들어오는 공기 속도를 초음속에서 아음속(음속보다 약간 느린 속도)으로 낮춰야 한다. 공기가 너무 빨리 흐르면 미처 연소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기가 엔진 뒤로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램제트 엔진으로 속도를 무한정 높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론상 마하 15 가능한 스크램제트 엔진
과학기술자들이 주목하는 스크램제트 엔진은 램제트 엔진과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지만 몸체 안으로 흘러드는 공기의 흐름을 초음속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다르다. 스크램제트 엔진은 렘제트 엔진의 한계 속도인 마하 6은 물론 이론적으로 마하 15 속도도 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연구 붐이 일고 있다.
엄청난 속도 때문에 스크램제트 엔진을 로켓 엔진과 비견하기도 한다. 두 엔진의 가장 큰 차이는 연료를 태우기 위한 산화제를 기체 내부에 갖고 있느냐다. 로켓 엔진은 산화제를 내부에 갖고 있지만 스크램제트 엔진은 대기 중에서 산소를 흡입한다. 로켓보다 몸체 안에 더 많은 적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까지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처럼 대단한 효과가 기대되는 스크램제트 엔진이 아직까지 실용화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엔진 내부를 초음속으로 흐르는 공기 가운데에서 연소 작용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스크램제트 엔진의 연소를 강풍 가운데에서 성냥을 켜는 데에 비유한다. 서울대 정인석 교수는 “초음속 상태에서 엔진으로 들어오는 공기에 직각 방향으로 연료를 분사하는 방법 등이 논의되고 있다”며 “개발 국가 모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의 진행 상황을 비밀에 붙일 만큼 스크램제트 엔진 실용화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스크램제트 엔진은 속도 ‘0’에서 연소를 시작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보통 비행기처럼 활주로에 멈춘 상태에서 서서히 가속해 속도를 높일 수 없다는 얘기다. 엔진 앞에서 날아드는 공기가 초음속 상태여야만 연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다른 항공기에 업혀서 비행을 시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은 스크램제트 엔진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역시 이유는 엄청난 속도가 가진 매력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04년 스크램제트 엔진을 단 X-43이라는 극초음속 비행기를 마하 9까지 가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고도 12km까지 B-52 폭격기에 실려 올라간 뒤 방출된 X-43은 비행을 돕는 보조 부스터와 기체에 장착된 스크램제트 엔진의 힘으로 고도 33.5km까지 상승했다. 스크램제트 엔진 작동 시간은 10여 초 정도였다.
최근 X-43은 달 유인 우주탐사 계획에 정책 우선 순위가 쏠리면서 NASA의 후속 연구가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미국 공군 등이 이 엔진에 관심을 갖고 있어 향후 연구 방향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민간 상용화 시점은 20년 이후가 거론되지만 군용으로는 이보다 빨리 선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크램제트 엔진을 활용한 비행기나 미사일이 나오면 군사력을 지금보다 훨씬 빨리 전 세계에 전개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소닉붐 감소가 상용화의 핵심
초음속기 연구 개발의 또 다른 흐름은 소닉붐을 줄이는 것이다. 각 업체들이 상용화의 마지막 관문으로 보고 도전 중인 과제다. 유일한 민항 초음속기였던 콩코드가 2003년 퇴역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통제할 수 없는 소닉붐이었다. 콩코드는 소닉붐으로 인해 사람과 동물이 사는 지상이 아닌 대서양 횡단 노선에서만 운용됐다.
소닉붐은 비행기가 초속 340m인 음속을 돌파하는 순간 생기는 현상이다. 풍선 안에 있던 제트기가 풍선(소리 벽)을 찢고 앞으로 나오면서 생기는 ‘뻥’ 소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행기는 날아갈 때 주변 공기를 밀어낸다. 이때 생긴 압력을 전달하는 파동은 음속으로 퍼진다. 만약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하면 주변으로 퍼지던 파동이 뭉쳐 V자 모양을 만드는 데 이게 소닉붐이다. 잔잔한 호수 위에서 물결을 만들며 항해하던 배가 갑자기 속도를 내 물결 위에 올라타면 뱃머리와 꼬리 부위에 V자 형태의 새 물결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보통 고도 6100m에서는 14.3kg/m2, 1만 2200m에서는 4.4kg/m2의 압력이 지상에 가해진다. 4.4kg/m2의 경우 멀리서 들리는 천둥 소리 정도이지만 14.3kg/m2는 가까이서 친 천둥 소리와 비슷하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소닉붐의 위력이 17.6kg/m2을 넘으면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는 바다에서 요트를 타던 관광객들이 콩코드의 소닉붐에 크게 놀라는 30초 짜리 영상이 올라와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민간 항공기 제조사들은 이 같은 문제를 비행기의 형태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소닉붐은 기수, 날개, 기체 후방 등 다른 곳보다 튀어나온 부분에서 형성되는데 이 부위에 다른 비행기에 없는 구조물을 붙여 충격파를 상쇄하는 것이다. 미국 SAI사가 만들고 있는 15인승 내외의 사업용 비행기인 ‘QSST’가 대표적이다.
2500만 달러(약 305억 원)를 들여 개발 중인 QSST는 마하 1.8로 운항할 예정이다. SAI사는 이 비행기의 수평 꼬리 날개를 크게 확장하는 대신 주날개는 기존 비행기의 꼬리 날개와 비슷할 정도로 축소했다. 소닉붐을 만드는 공기의 압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수직 꼬리 날개도 V자 형으로 만들고 기수도 넓게 제작했다. SAI사 측은 소닉붐이 콩코드의 10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형 항공기서 개발 방향 ‘턴’… 콩코드 후속작 나오나
이처럼 새 초음속 비행기가 향후 몇 년 사이 모습을 나타낼 예정이지만 일반 여행객의 관심은 조금 달라 보인다. 콩코드에 필적할 만한 속도를 내는 데다 소닉붐까지 줄이는 초음속기라도 10여 명 남짓 타는 자가용이라면 일반인에게는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100인승 항공기였던 콩코드의 뒤를 이를 초음속기가 나올 수 있느냐에 대중의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이 같은 요구에 특히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2009년 중점 육성할 과학기술 분야에 초음속기 개발을 천명했을 만큼 의지가 강하다. 실제 미국의 NASA 격인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2005년 10월 호주에서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 비행 실험에 성공했다. 전장 11.5m, 주날개 폭 4.7m인 이 비행기는 실제 초음속 여객기를 만들기 위한 데이터를 일본 기술진에 제공했다.
일본은 콩코드의 3배인 300명의 승객을 태우고 마하 2로 비행할 수 있는 중형 여객기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콩코드 개발 경험이 있는 프랑스와 공동 연구를 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콩코드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콩코드의 4분의 1로 줄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이 가운데 보잉사와 함께 세계 항공기 제조업계를 이끄는 유럽 에어버스사가 앞으로의 비행기 개발 방향을 ‘덩치’에서 ‘속도’로 바꿀 방침을 내비친 점은 주목된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인 르몽드는 2003년 “5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우는 세계 최대 여객기 A-380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에어버스사가 초음속 비행기 개발에 뛰어들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A-380이 지난해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가면서 이 같은 에어버스의 계획이 실행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콩코드는 퇴역 뒤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기체에 있던 다양한 부품이 애호가들의 손에서 애지중지 관리되고 있다. 유일한 초음속 여객기로 30여 년 동안 홀로 하늘을 지켰던 노병에 대한 추억이라는 해석이 많다. 2003년 콩코드의 퇴역 비행은 영국과 프랑스의 큰 이슈가 됐을 정도였다. 지구촌을 한 묶음으로 엮을 새로운 끈인 ‘네오 콩코드’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