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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키 유전자, 비만 유전자 찾았다!


남자가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많은 여자들이 키 큰 남자를 선호한다. 얼굴이야 성형수술이라도 할 수 있지만 키를 늘리기는 어렵다. 그런데 아들의 말처럼 지난 수십 년 사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키가 훌쩍 컸다. 남자고등학생(3학년)의 경우 1980년대 168cm에서 2006년에는 174cm로 6cm나 커졌다. 20년 사이에 유전자가 바뀌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결국 식습관 같은 생활패턴의 변화가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들은 환경요인에 따른 결과를 유전 탓으로 돌리는 논리적 모순에 빠진 게 아닐까.

“물론 환경이나 생활습관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유전이 키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죠.”

질병관리본부 유전체센터 형질연구팀 조윤신 박사의 설명이다. 실제로 어릴 때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키는 확실히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으며 그 유전율은 0.8이나 된다. 유전율이 1이면 어떤 특징이 100% 유전적 요인에 따른 결과이고 0이면 유전과 전혀 무관하다는 뜻이다. 사실 키뿐만 아니라 비만 경향이나 당뇨병 같은 각종 질병에 걸릴 가능성, 심지어 성격까지도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이런 특징들을 좌우하는지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2003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결된 이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30억 염기쌍이나 되는 인간 유전체의 DNA염기서열이 규명되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이 정보를 이용해 ‘키 유전자’ ‘당뇨병 유전자’ 등 신체 특성이나 질병에 관련된 유전자 사냥에 본격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차이에서 패턴을 찾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사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데이터를 모아보니 개인마다 염기서열이 다른 부분이 꽤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이런 부분을 단일염기다형성(SNP)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밝혀진 SNP는 1000만 곳이 넘는다. 게놈 크기가 30억 개이므로 대략 염기 300개 당 하나 꼴이다. 결국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한 SNP를 지니고 있다. 임의로 두 사람을 선택해 게놈을 비교할 경우 SNP자리 가운데 평균 700만 개의 염기가 같고 300만 개가 다르다. 너와 내가 다른 건 0.1%의 차이에서 비롯된 셈이다.

SNP는 생기는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 조절 부위에 있는 SNP는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고 인트론 에 있는 SNP는 mRNA 성숙과정에 영향을 준다. 그 결과 만들어지는 단백질 양이 달라진다. 한편 엑손 에 SNP가 생기면 아미노산이 바뀌면서 단백질 활성이 변한다. 결국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양이나 활성의 차이에 따라 어떤 특성이나 질병이 나타나는 경향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런데 1000만 곳이나 되는 SNP에서 키 같은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후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수년 전 개발된 전장유전체연관분석법(Genome-Wide Association Study, 이하 GWAS)이라는 방법으로 유전자 후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인을 대상으로 키뿐만 아니라 BMI , 혈압, 골강도 등 여러 특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전자 후보를 처음으로 찾아 유전학 분야의 권위 있는 저널인 ‘네이처 제네틱스’ 5월호에 논문을 발표한 형질연구팀 이종영 팀장의 설명이다. 같은 팀의 조윤신 박사는 이 논문의 주저자다. GWAS는 많은 사람들에게 얻은 SNP 데이터와 특징 데이터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관계가 있는 SNP를 발굴하는 과정이다. 조 박사는 키를 예로 들어 이 ‘최신 유전자 사냥법’을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는 성인 1만 여 명이 피험자로 참여했다. 연구자들은 이들의 키를 쟀고 SNP분석용 유전체를 채취했다. 유전체는 DNA분해효소를 처리해 수백 염기 크기로 잘게 잘랐다. 그 뒤 SNP 50만 개로 구성된 DNA칩에 시료를 반응시켰다. SNP가 일어나는 자리는 전체 게놈 상에 1000만 곳이 넘지만 이들 중 50만 개를 대표로 선택한 것. 게놈 상에서 서로 가까운 자리에 있는 SNP는 유전체 재조합이 일어날 때 한 묶음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찾아낸 여러 개의 키 관련 SNP 가운데 특별히 4개는 검증실험을 통해 재현성을 확인했습니다. 찾아낸 SNP 중에는 서구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와 일치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4곳 가운데 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SNP는 6번 염색체에 있는데 HMGA1 유전자와 가까이 있다. 이곳의 SNP가 GG형(부모로부터 모두 구아닌(G)을 받은 경우)이면 AA형(부모 둘 다 아데닌(A))보다 키가 평균 2.1cm가량 더 컸다. 지난해 서구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서도 이 부분의 SNP가 비슷한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걸로 나왔다. 이 밖에 ZBTB38(AA형이 GG형보다 평균 1.5cm 더 큼), PLAG1(AA형이 GG형보다 평균 0.3cm 더 큼), EFEMP1(GG형이 AA형보다 평균 0.6cm 더 큼) 같은 유전자 부근에 있는 SNP도 서구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와 일치하는 자리다.































키 유전자 하나만을 보면 키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유전자들의 영향이 합쳐졌을 때는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예를 들어 앞의 4가지 유전자 가운데 키가 큰 쪽 SNP만을 가진 사람은 키가 작은 쪽 SNP를 가진 사람보다 그 영향력을 단순히 합쳤을 경우 평균 4.5cm(=2.1+1.5+0.3+0.6)나 더 크다. 이렇게 되면 키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정말 그럴까.

“재미있는 생각이군요. 사실 대충 그런 결과가 나옵니다. 다음 논문에 쓸 데이터라 구체적인 수치를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요.”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조 박사가 이 시점에서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실제로 서구인을 대상으로 키 유전자 후보 20개를 찾은 지난해 연구결과를 보면 키가 큰 쪽 SNP를 많이 가진 그룹이 적게 가진 그룹보다 평균 키가 6cm 정도 큼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SNP와 관련된 유전자들이 도대체 어떤 작용을 하기에 이처럼 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이렇게 밝혀진 유전자 후보들의 기능은 아직 대부분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희 연구결과는 개별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연구주제일 수 있습니다.”

이종영 박사의 설명이다. 키 관련 유전자의 경우만 봐도 HMGA1이 세포분열을 조절하는 유전자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사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끝난 뒤 수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유전자의 산물인 단백질은 그 기능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떤 특성에 연관된 유전자들을 찾는 GWAS 같은 연구는 포스트게놈프로젝트로 모든 단백질의 기능을 규명하려는 프로테움(단백체)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200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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