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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과학교육의 새길 닦는다

초등과학정보센터를 찾아서

아이들과 과학교육에 대한 사랑만으로 누구도 추켜주지 않는 일을 11년째 묵묵히 해오고 있는 국민학교 교사들이 있다. 과학하는 방법을 제대로 일깨워주는 스승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긴 여름해가 떨어져 어스름이 깔릴 무렵인 저녁 8시, 밥짓는 냄새와 일과를 마치고 모인 식구들의 이야기 소리로 두런거리는 홍제동 주택가 골목길을 더듬어 올라가 새로 지은 3층짜리 건물앞에 섰다.

「초등과학정보센터(ICES) 어린이 과학교육연구소 꼬마과학실험실(KISEC)」 조금은 거창해보이는 문패로 목적지임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지하층으로부터 여러사람들의 열띤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수요일은 초등과학정보센터의 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생활 속에서 과학의 소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은 여름과학캠프에서 식물채집 전에 설명하는 모습


과학하는 방법터득이 중요

"자, 이번엔 '석회수에 숨을 불어넣으면 왜 흐려질까'란 질문을 검토해 봅시다." 느닷없이 끼어든 불청객엔 아랑곳없이 의자에 둘러앉은 10여명의 참석자들은 국민학교 6학년1학기 '우리의 몸' 단원 학습을 마친 뒤 아이들이 던진 질문들을 차례로 훑어보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왜 색깔구분도 쉽지않은 석회수를 실험재료로 선택했을까요."

"그건 제 경험으로 보면 석회수 대신 BTB용액과 사이다를 쓰니까 아이들에게 설명하기가 훨씬 좋더군요 사이다를 BTB용액에 부어넣으면 숨을 불어넣을 때와 똑같이 노랗게 색이 변하죠. 그럼 아이들은 '아, 사이다에 있는 기체가 우리 날숨속에 있는 것과 같구나'하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돼요.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말고 알코올램프를 한번 사용해보세요. 연소시에 생기는 기체를 모아 BTB 용액에 연결하면 역시 이산화탄소 때문에 노랗게 변해요. 여기서 아이들 생각은 한발 더 내딛게 되는 겁니다. '아, 인간의 호흡은 숨쉬는 것만이 아니라 불이 타는 것처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구나.' "

설명자가 '안타깝게도 우리 교과서에 설정된 실험만 갖고는 국민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들도 호흡을 그저 숨쉬는 것 이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하자 귀를 모으고 있던 참석자들은 저마다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늦은 시각 이곳에 모인 10여명의 참석자들은 모두 현직 국민학교 선생님들. 근무지가 홍제동 사무실과 가까운 사람도 있지만 멀리 광명시나 강남에서 두시간 남짓 걸리는 길을 마다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연령층도 제각각이라 갓 부임한 20대부터 교직경력 30년을 눈 앞에 둔 50대 선생님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모인 회원수가 현재 전국에 걸쳐 2백명을 헤아린다.

이 국민학교 교사들의 모임이 '초등과학정보센터'라는 이름을 갖게된 것은 1년밖에 안됐지만 시작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모임을 가졌을 때만해도 성원은 현재의 대표인 박종규씨(47·예일국교 교사)를 비롯, 겨우 네사람에 불과했고 그 성격도 대학교수 등 전문가를 초빙해 충분치못한 과학지식을 보충해나가는 '사랑방공부'에 가까웠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학교 교사들이 가르치는데 가장 애를 먹는 과목은 아마 '자연'일 것이다. 교육대학에서 과학과목을 전공한 사람들은 좀 더 많은 내용을 배울 수 있다고 하지만 전 과목을 섭렵하는 교육과정상 깊이 있는 지식을 갖기는 어렵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질문은 쏟아지고, 대답은 궁하고…. 교단에서 더해지는 이런 목마름을 풀기위해 뜻맞는 사람들끼리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박종규씨는 출범당시를 회상한다.

그러나 교사들 사이에 시나브로 모임이 알려지면서 날로 세미나에 참여하는 성원 수가 늘어났고 그 관심사도 '개개인의 공부'차원에서 각자가 생활현장으로 공유하고 있는 국민학교의 과학교육을'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로 보다 목적의식적으로 변해갔다.

그렇다고 이들이 주어진 교과서를 비판없이 받아들여 효율적인 수업기술을 개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교에서의 자연교육이 과학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기 보다는 단편적인 과학지식주입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가 이들 사이에 공감대로 형성됐다.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개념들에 주눅 들면서 호기심 많던 아이들조차 과학자체에 흥미를 잃게되는 부정적인 현실을 누구나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속에서 과학교육의 소재를 찾고 낱낱의 지식이나 개념을 전달하기보다는 과학하는 방법을 일깨워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들이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어린이과학캠프 개최였다. 82년에 처음 연 방학 중 과학캠프는 국내최초의 과학목적 캠프이기도 했다.

별자리관측 화석채집 식물관찰 등의 프로그램으로 자연의 생생한 모습을 확인하는 이 과학캠프를 거치고 나면 아이들의 과학에 대한 열의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특히 처음엔 교장등 책임자들이 '공연한 일을 한다'며 캠프를 못마땅해했지만 나중에는 교육구청에서 오히려 과학캠프진행요령을 물어올 만큼 인식이 달라졌다.
 

회원들의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 최근 모임을 만들었다.


대안의 교육 위해 늘 새로운 시도

90년들어 모임은 일대변화를 맞는다. 초등 과학정보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내용도 크게 변화시킨 것이다. 정보센터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이유를 대표 박종규씨는 "누구든 자신이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털어놓고 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성공적인 수업경험이나 풀기 어려웠던 문제, 알고있는 새로운 과학지식 등 한사람 한사람이 갖고있는 정보가 모여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큰 정보체가 된다는 것이다.

초등과학정보센터가 새로 시작한 일 중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과학의 오솔길' 발간이다. '오솔길'은 초등과학정보센터의 소식지 역할도 하지만 그보다는 과학문화에서 소외된 산간벽지 아이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90년 9월 이후 매달 10여페이지 분량으로 제작되는 이 책자에는 '세계의 자연 교과서 탐방' '과학자를 찾아서' 생활 속의 과학상식 등이 실려있고 현재 5천여부를 산간벽지나 섬마을의 5개학급이하 학교에 보내고 있다. 다행히도 올해부터는 과학기술진흥재단에서 매달 85만원씩의 인쇄료를 지원받게 돼 그동안 호주머니를 털어 '오솔길'을 찍어온 회원들의 부담이 조금은 덜어졌다.

과학의 오솔길 뿐만 아니라 직접 벽지의 어린이들을 찾아가 과학캠프를 열어주기도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지난 5월 민통선지역의 정연국민학교에서 '과학잔치'를 열었는데 앞으로 과학잔치를 원하는 오지의 학교는 어디든 찾아갈 계획이다.

특히 정보센터의 한 연구모임인 '어린이과학교육연구소'는 요즘 슈퍼마켓 사이언스(supermarket science)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에서 개발된 이 과학용품은 말 그대로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이쑤시개 빨대 비누 휴지 등을 이용해 과학원리를 증명하는 실험기구다. 이들은 올해 초 원래의 미국 모델을 응용해 15가지 실험을 할 수 있는 '꼬마과학실험상자'를 만들었다. 이 외에 학부모들의 자녀 과학교육 상담도 이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다.
 

다양한 회원수련회를 통해 허물없는 대화의 장을 만든다. 사진은 별자리를 관측하는 회원들


교사자질 높이는 각종 모임 열어

회원들이 학교업무를 마치고 모여드는 매일 저녁시간이면 정보센터의 조그만 지하 사무실은 왁자지껄하다. 교과서를 분석하고 수업기술을 연구하는 수요과학세미나외에도 일어학습 환경문제연구모임 컴퓨터강습 사고력개발연구팀 과학놀이개발팀 등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요일을 달리해 모임을 갖기 때문이다.

출석을 기록하는 사람도 없고 회원에게 부가되는 강제의무도 없다. 스스로 과학교육에 관심과 열의를 갖고 있는 국민학교 교사라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의 활동이 교사연수처럼 이력으로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운영경비도 매번 모이는 회원들이 일인당 2천원씩 내는 회비와 회원들이 낸 책의 인지대나 강연료 등으로 빠듯하게 충당하고 있다. 요긴하게 쓰던 컴퓨터 몇 대도 대여기한이 만료돼 빌려주었던 대우측에서 회수해 갔고 팩시밀리나 복사기 한대만 장만했으면 싶지만 현재 재정 형편으론 엄두를 낼 수 없어 독지가만 기다리고 있다.

회원들은 초등과학정보센터를 '학교보다 더 편안한 곳'으로 느낄만큼 끈끈한 동료애와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뭉쳐있지만 이 모임에 참여하는 교사들에게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느끼고 익힌대로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에게 개념전달보다는 과학하는 마음을 길러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시험과 성적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에 아이들에게 '시험지에 쓸 때는 이렇게 써라'라는 식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다." 회원 강재승씨(은혜국교)의 얘기는 교육현실과의 괴리를 좁혀보려는 교사들의 고충을 잘 드러낸다.

많은 과학기술전문가들은 우리 국민의 과학인식정도를 '국민학교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바로 그 국민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쳐야하는 교사들의 책임은 그래서 더 무겁고 힘겹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에게 몇 개의 과학용어를 외우게 하기보다는 자연을 탐구하는 눈을 갖게 하려는 초등과학정보센터의 교사들. 이들의 열의와 노력은 우리 과학기술의 미래를 살찌울 귀한 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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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정은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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