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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 진화는 다윈의 진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광물은 돌연변이를 일으키지도 않고 생명체처럼 자손을 낳거나 경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광물의 종류와 상대적인 양 모두 45억 년이 넘는 지구 역사 속에서 극적으로 변해왔음을 발견했다.





과학의 진보는 보통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되면서 이뤄지지만 때로는 새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큰 걸음을 내딛기도 한다. 2006년 12월 6일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팀을 이끌고 있는 친구이자 동료인 이론 생물학자 헤럴드 모로비츠가 내게 던진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놀라운 질문이 내 삶을 바꿨다. 우린 소파에 앉아 보르도 와인을 음미하면서 종종 그랬던 것처럼 생명의 기원을 이끈 화학에 대해 상념에 잠겼다. 문득 헤럴드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시생대 때도 점토광물 이 있었을까?"


 

시생대(Archean) :
38억 5000만~25억 년 전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시생대 초기
(38억 5000만~36억 년 전)에 첫 생명체가 나타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점토광물(clay minerals) :
주로 규산염광물이 풍화돼 극히 미세한 광물 입자로 된 흙 형태의 광물이다. 카올리나이트, 벤토나이트, 일라이트 등이 있다. 점토광물은 생물의 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입자 표면에 달라붙어서 농축돼 있는 유기화합물이 서로 반응해 생체분자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난 헤럴드의 질문이 지닌 뜻을 바로 깨달았다. 생명은 약 40억 년 전에 시작한 시생대에 나타난 걸로 보이는데, 생명의 기원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들이 유기분자를 농축시켜 배열할 수 있는 점토광물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시생대에 점토광물이 없었다면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런 이론들은 치명적인 결함을 안게 된다.

 


사실 이 단순한 질문에 내 정신이 번쩍 든 진짜 이유는 과거 지구 표면의 광물 종류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습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암시 때문이다. 광물학자로서 35년을 보냈지만 이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1735년 칼 린네가 그의 위대한 분류체계를 다룬 저서 ‘자연의 체계’에 광물계를 설정한 뒤 지구의 광물학은 자연의 고정된, 정적인 측면을 다뤄왔다. 수세기동안 광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광물 견본의 이름과 화학조성, 결정형태를 외우고 색상과 경도, 투명도, 자성 같은 변치 않는 물리적 특성을 익혔다. 하지만 시간이란 측면은 고려하지 않았다. 어느 자연사박물관을 가도 멋진 광물 견본의 라벨에는 광물의 이름과 화학식, 결정 시스템과 수집 장소가 적혀있을 뿐 그 광물이 얼마나 오래됐고 어느 지질시대에 생겨났는지 알려주는 곳은 없다. 더군다나 지구의 과거 광물 종류가 현재와 달랐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다.

헤럴드 모로비츠의 질문은 엉뚱해 보이지만 실은 통찰력이 있었다. 우리 같은 전문가가 지구의 광물들이 오랜 지질학적 시간에 걸쳐 놀라운 방식으로 진화해왔다는 그 명백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게 놀랍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를 흘끗 보더라도 진화는 명백히 일어났다. 이 질문이 함축하는 바에 매료돼 나는 며칠 간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새로운 광물학의 틀, 즉 ‘광물 진화’(mineral evolution)를 구상했다.

 


광물 10여 가지에서 시작

지구 광물의 풍부함은 우리 태양계가 생기지도 않은 수십억 년 전 컴컴한 우주 공간에서 시작했다. 정의에 따르면 광물은 고체이므로 빛을 내는 기체 덩어리인 별에는 광물이 있을 수 없다. 별이 죽으면서 초신성으로 폭발할 때, 별의 기체 성분이 팽창하다 식으며 응축돼 처음으로 ‘원(原)-광물’(ur-minerals) 십여 가지가 생겨났다. 가장 흔한 원소가 서로 결합해 우주먼지라는 작은 결정을 이뤘는데 순수한 탄소인 다이아몬드, 알루미늄산화물과 티타늄산화물, 보석 같이 반짝이는 규산마그네슘 등이 만들어졌다. 이 먼지가 행성과 위성을 이루는 기본재료다.



광물 진화에서 핵심 질문은 이 초기 광물 10여 가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 지구에서 볼 수 있는 4300가지가 넘는 광물을 만들었느냐 하는 점이다. 지구의 화학적 풍요로움은 이 원시 먼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때의 원소 대부분은 극단적으로 희박해 수ppb(10억 분의 1) 수준이었다. 아주 효율적인 몇몇 농축 메커니즘을 빼면, 여러 화학 원소가 모여 어떤 광물을 형성할 가능성은 무시할 정도로 작다. 광물 진화 스토리는 다양한 물리, 화학, 생물학 과정을 거쳐 원소가 선택되고 농축된 45억 년 동안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를 10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1단계 (~45억 6000만 년 전)

태양의 열기로 만들어진 초기 운석


태양계는 45억 년 이전에 엄청난 양의 성간 먼지와 기체가 중력 때문에 평편한 원반 같은 성운으로 모이면서 태어났다. 물질 대부분이 중심 질량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태양이 됐을 것이다. 내부의 엄청난 열과 압력은 태양의 핵융합반응을 일으켰고 원반모양의 짙은 먼지층을 뚫고 열기가 퍼져나갔다. 그 결과 먼지가 녹아 수많은 미세한 액체방울이 됐고 다시 고체화되면서 작은 구형의 ‘콘드룰’(chondrules)이 되거나 뭉쳐져 가장 초기의 운석인 ‘콘드라이트’(chondrites)가 만들어졌다. 대략 60가지 내화성(耐火性) 광물로 이뤄진 운석 물질이 광물 진화의 출발점인 셈이다.



2단계 (45억 6000만~45억 5000만 년 전)

 


지구 내부구조 형성되며 원소 재배치돼

이 작은 물체들(운석)이 중력으로 뭉쳐 미(微)행성체가 생겨났는데 큰 것들은 지름이 수백 km에 이르렀다. 운석을 이루는 광물은 내부의 열 때문에 녹아 섞이거나 다른 천체와 충돌하면서 250여 가지로 다양해졌다. 이러한 증거는 오지의 사막이나 남극의 얼음벌판에 떨어진 수많은 운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행성 형성의 초기 단계에서도 화학 원소의 분리와 농축은 중요한 과정이었다. 지구 내부는 밀도가 다른 여러 층으로 급속히 분화됐다. 철과 니켈이 풍부한 금속은 가라앉아 핵을 형성했고 그 위를 규산마그네슘으로 이뤄진 두꺼운 맨틀이 차지했다. 가장 바깥의 얇은 껍질(지각)은 고밀도 광물로 이뤄진 맨틀과 핵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여러 원소들로 이뤄졌다.

그 결과 지구의 표면 근처 환경은 희귀원소가 상대적으로 농축될 수 있었다. 가벼운 원소로는 리튬과 베릴륨, 붕소가 있고 귀금속으로는 구리, 은, 금이 있다. 방사능원소인 우라늄과 토륨도 있고 그 밖에 수십 가지가 있다.

 


3단계 (45억 5000만~40억 년 전)


물이 만들어낸 점토광물 등장



행성 분화라는 중요한 단계를 지난 지구와 다른 지구형 행성(수성, 금성, 화성)의 광물 진화는 바위가 녹고 굳는 순환과 관련된 화학적 과정을 겪었다. 40억 년보다 더 오래된 시기에 상대적으로 고농도인 방사능원소가 내는 내부 열로 바위가 부분적으로 녹고 현무암 마그마가 형성됐는데, 이는 모든 지구형 행성에서 발견된다. 그 뒤 현무암이 부분적으로 다시 녹으면서 원소가 추가로 분리돼 새로운 광물이 생겨났다.

수성과 달에는 모두 350가지의 광물이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건조한 세계, 즉 원소를 농축하고 좀 더 풍부한 미네랄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과 다른 휘발성 물질이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이 있는 행성은 새로운 광물을 만드는 또 다른 과정을 겪었다. 바위가 뜨거운 물과 만나면 새로운 수성 광물이 형성된다. 판상인 운모, 침상인 각섬석, 아주 미세한 입자인 다양한 점토가 이렇게 생겼다. 광물이 풍부한 물이 증발하면 그 자리에 소금과 황산염, 질산염, 붕산염 등이 남았다. 또 물이 있는 행성 표면이 0℃ 밑으로 내려가면 물(H2O)의 거칠고 투명한 광물 형태, 즉 얼음이 나타난다. 화성처럼 물이 있는 작은 행성의 표면 주위에는 약 500가지의 광물이 있다.



4단계 (40억~35억 년 전)

바위가 녹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 반복


물이 있는 행성이나 위성에서 관찰할 수 있는 광물 500여 가지는 지각에 상대적으로 풍부한 원소 20여 가지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다음의 광물 진화는 지각에 1ppm(100만 분의 1) 보다도 낮은 농도로 있는 원소들이 상당히 농축돼야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극단적인 농축과정은 바위와 유체 사이의 상호작용이 수차례 반복돼야만 일어날 수 있다. 희귀 원소들이 종종 액체상으로 분리돼 모이기 때문이다. 지구(그리고 아마 금성도)에서 현무암과 퇴적층이 다시 녹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화강암이 만들어졌고 새로운 광물 500여 가지가 추가됐다. 여기에는 리튬과 베릴륨, 붕소, 세슘, 나이오븀 등 희귀원소가 들어 있는 광물도 있다.

 


5단계 (~30억 년 전)

지각 판이 움직이며 500여 종 생겨


지구의 경우 판구조의 움직임에 따른 대규모 지각변동의 결과로 새로운 광물 500여 가지가 추가됐을 것이다. 지각판이 지구의 뜨거운 내부로 들어가 일부가 녹고 금과 은, 구리 등 금속이 풍부한 엄청난 규모의 광석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지구의 표면 근처의 광물 다양성은 약 30억 년 전 1500가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새로운 광물 형성 과정을 제외하면, 1500종의 광물은 행성이 보유할 수 있는 최대치다. 지구에서 다음 단계는 생명체가 넘겨받았다.



6단계 (39억~25억 년 전)

생물의 영향 아직 미미


지구 표면 광물상에 영향을 준 생물학적 과정은 약 38억 년 전 생명이 처음 나타난 뒤 곧 시작됐다. 이 당시 대기와 해양 화학이 변하면서 철을 함유한 광물이 지구 표면의 넓은 영역을 덮고 있었다. 호상철광층은 가장 오래된 퇴적암 유형으로 오늘날 경제성이 있는 주요 철광석이다. 호상철광층의 기원은 아직 잘 모르지만, 철을 산화하는 미생물이 형성에 관여한 걸로 보인다. 세포 생물체가 탄산염과 황산염, 심지어 화강암의 성질과 분포에 영향을 줬을지라도, 산소가 없던 이 시기 지구 표면의 광물 조성이 바뀌는 데 미생물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미미했을 것이다.

 


7단계 (25억~19억 년 전)

 

새로운 광물 쏟아져 나와


지구의 광물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굉장한 산화 사건’(Great Oxidation Event, 22~20억 년 전)이다. 이때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들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산소를 대기로 뿜어댔다. 지구 표면 주위 환경이 이렇게 급격히 바뀌기 이전에는 대기에 노출된 바위가 서서히 풍화됐다. 그러나 부식성이 강한 기체인 산소는 광물 대부분을 공격했고 변화시켜 종종 새로운 ‘산화된’ 형태를 만들었다. 광물 진화 스토리의 가장 놀라운 결과는 알려진 광물의 3분의 2가 산소와 물이 기존의 광물을 변화시켜 생겨난 종류들이라는 점이다.



8단계 (19억~10억 년 전)

10억 년 동안의 숨 고르기


약 19억 년 전부터 10억 년 동안은 지구의 광물 진화에서 상대적으로 정체기였다. 약 18억 5000만 년 전 호상철광층 생성이 갑자기 멈췄는데 이는 아마도 미생물의 활동으로 해양의 화학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광물 형성 과정은 이미 진화가 끝났고, 대기와 해양의 화학은 새로운 양식의 광물화를 유발하기에는 변화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9단계 (10억~5억 4200만 년 전)



지구가 통째로 꽁꽁 얼기도 해



이 시기에 지구의 기후와 대기 조성이 큰 변화를 겪었음을 가리키는 증거들이 많다. 대략 7억 5000만 년 전에서 5억 4000만 년 전 사이에 2~4번 ‘눈덩이지구’(snowball Earth)가 존재했다. 눈덩이지구 시나리오에 따르면 대륙들이 적도 근처에 모일 때 빙하주기에 들어간다. 극지에 눈이 덮이면 햇빛을 반사해 결국 지구 전체가 얼음으로 덮인다. 그러나 화산활동으로 이산화탄소가 분출해 대기 중 농도가 올라가면 온실효과로 다시 따뜻해져 얼음을 녹인다. 이런 주기가 반복되는 동안 광합성 미생물의 활동으로 대기 중 산소의 함량이 2%에서 15%로 증가했다.

 


10단계 (5억 5000만 년 전~현재)

 



식물 등장으로 풍화 빨라져

생명체는 또 다른 방식으로 광물을 만들었다. 약 5억 5000만 년 전 무척추동물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탄산염이나 규산염, 인산염으로 된 골격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그 결과 지구 표면은 독특한 바이오광물로 이뤄진 두터운 퇴적층이 쌓이며 변모했다. 그리고 4억 년 전 식물이 처음 육지를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표면의 바위가 깨져 점토 광물과 흙이 생겨나는 과정이 급속히 진행됐다. 40억 년 전 바위투성이 황무지였던 대륙은 우리가 안식처라고 부르는 초록의 풍요로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생물과 영향 주고받아

우리는 광물의 종류와 상대적인 양 모두 45억 년이 넘는 지구 역사 속에서 극적으로 변해왔음을 발견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지구 광물의 풍부함은 명백한 생명의 징표다. 지구의 지질권(geosphere)은 생물권(biosphere)과 함께 진화해왔다. 생명의 기원과 관련한 점토 광물의 역할에 대한 헤럴드 모로비츠의 도발적인 질문 덕분에 우리는 지금 광물이 생명체를 생기게 했을 뿐 아니라 생명체도 광물을 생기게 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다른 행성이나 위성에서 관찰된 광물 종류는 생물체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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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로버트 M. 헤이즌 미국 카네기연구소 지구물리실험실 연구원 · 번역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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