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자현미경연구부 오상호 박사는 크기 효과의 원인을 알아내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게재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께 500nm(나노미터, 1nm=10-9m)의 알루미늄 결정은 힘을 가할 때마다 선 모양으로 불규칙하게 배열된 구조가 움직인다. 이것은 마치 강한 지진파가 전달될 때 지층이 뒤틀리거나 끊어지는 모양과 유사하다.
그는 이 실험을 하기 위해 두께 500nm의 알루미늄 결정 속 미세구조를 일일이 관찰해야 했다. 하지만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재료 두께의 한계는 100nm. 내부를 들여다보기에는 알루미늄 결정이 너무 두껍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오 박사는 어떻게 알루미늄 결정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을까. 전자현미경연구부를 이끌고 있는 권희석 박사는 “높이 14.5m, 무게 340t 의 초고전압 투과전자현미경(High Voltage Electron Microscope, 이하 HVEM)이 해답”이라고 소개했다.
원자도 구분 가능한 해상도
전자현미경은 빛을 이용하는 광학현미경과 달리 전자를 이용해 시료를 관찰한다. 전자총으로 시료에 전자이온빔을 쏴 튕겨져 나오는 2차 전자 신호로 영상을 얻는 주사전자현미경과 전자가 시료를 투과해 형광판에 영상을 만드는 투과전자현미경이 있다.
전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도 시료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전자가 빛보다 파장이 짧고 전자렌즈가 전자기장을 이용해 전자이온빔을 흩어지지 않게 한 줄기로 모으는 덕분에 세포 핵 속의 미세 구조까지도 볼 수 있을 만큼 해상도가 높다.


무엇보다도 HVEM만이 가진 중요한 장점은 시료의 입체 구조를 관찰하는 ‘틸팅 기능’과 극저온에서 시료를 관찰하는 ‘급속 동결 장치’다. HVEM은 시료를 여러 각도에서 찍어 3차원 구조를 분석한다. 3차원 구조를 분석하는 기기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CT는 환자가 가만히 누워 있으면 환자 주위를 360° 촬영해 환부의 3차원 영상을 얻는다. 하지만 모래알보다 작은 시료를 관찰하려고 340t이나 나가는 HVEM을 회전시키기는 불가능하다. 권 박사는 “장비 대신 시료를 회전시켜 3차원 구조를 알아낸다”고 말했다.

HVEM은 시료를 변형해야 하는 일반 전자현미경의 한계를 액체 질소(-196℃)나 액체 헬륨(-268℃)을 이용한 동결 전자현미경 기술로 해결했다. 일반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할 때는 시료의 수분을 없애기 위해 60~80℃로 처리한다. 하지만 건포도가 싱싱한 포도알과 전혀 다른 모양이듯 이런 과정을 거치면 시료의 구조가 바뀐다. HVEM은 이런 과정을 없애고 시료를 꽁꽁 얼린 뒤 수 ㎛로 얇게 썰어 시료를 거의 변형시키지 않고도 내부를 훤히 들여다본다.
HVEM이 설치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네이처’를 비롯한 저명한 학술지에 HVEM을 이용한 연구 결과가 해마다 실리고 있다. 2007년 연세대 천진우 교수팀과 공동으로 연구해 ‘네이처 메디슨’에 게재했던 기능성 나노입자 개발도 HVEM을 이용한 결과다. 이 연구로 몸속에서 스스로 암세포 위치를 추적하고 결합하는 초고감도 망간나노입자 ‘메이오’가 탄생했다.
권 박사는 “HVEM과 자기공명영상(MRI)장비나 핵자기공명(NMR)장비 같은 다양한 장비들을 조합해 크게는 개체에서 작게는 세포와 그 안의 생체 물질, 나아가 원자 수준까지 볼 수 있는 융합 분석기기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포나 원자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는 없을까.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초고전압 투과 전자현미경은 시료를 시소처럼 움직이면서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뒤 컴퓨터로 합성해 3차원 구조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