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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피부 발명한 화장품 글로벌기업 로레알

과학으로 승부한다

 

로레알의 연구원이 후보물질을 고속으로 검색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물질의 생물학적 활성성분의 효능을 알 수 있다.


봄 냄새 물씬 풍기는 세느강을 건너 파리 북부의 교외에 있는 글로벌 화장품기업 로레알의 연구소로 향하면서 기자는 내심 불안했다. “하필이면 지금 이런 일이….” 이틀 전부터 프랑스에서는 공공 과학연구소 기관장과 간부 2천여명이 ‘과학자 홀대’ 에 항의하며 집단 사퇴를 하고 시위까지 벌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막상 모발과 피부 연구의 총본산인 로레알의 샤를 즈비악 연구소에 들어서자 수백명의 과학자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이 곳은 80년대에 로레알의 3대 회장이었던 화학자 출신의 즈비악 회장의 이름을 딴 이 회사의 핵심 연구소다.

1-2층은 모발, 3층은 피부연구실이다. 몇 년 전 세계 최초로 인공피부를 만든 곳도 바로 여기다. 인공피부가 나오면서 유럽에서는 동물을 이용한 화장품 실험이 사라지고 있다. 동물보호론자의 비판 때문이겠지 생각했지만 막상 가보니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인공피부는 피부 연구와 화장품 개발을 혁신시켰다. 사람의 세포를 배양해 대량 생산되는 인공피부는 96개의 유리접시가 있는 선반에 얹혀지고 로봇은 이를 이용해 실험을 한다. 로봇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인공피부로 화장품 후보물질의 효능과 안전성을 고속으로 평가하고, 착색과 노화 등 피부 조직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있다.

동물실험을 규제하는 유럽에서는 로레알의 인공피부 재생기술인 ‘에피스킨’이 동물실험 대체기술로 인정을 받고 있다. 리용에 인공피부세포 제조공장까지 만들었다.

1907년 프랑스 화학자인 유젠 슈엘러가 파리의 한 실험실에서 염색약을 만들면서 창업한 이 회사는 랑콤, 로레알 파리, 비오템, 헬레나 루빈스타인, 랄프 로렌 같은 유명 화장품 브랜드로 최근 19년 동안 연속해서 두자리 숫자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로레알은 지난해 19조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 중 3%인 6천억원을 연구에 투자했다. 화장품 회사 가운데 이처럼 많은 돈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회사는 드물다. 전세계에 연구소만 14개에 달하며 2천9백여명의 연구원들이 개발해 세계 각국에 등록한 특허가 2만5천개에 이른다. 주로 화장품 물질 특허다.

로레알은 피부노화, 탈모, 피부 잡티를 방지하는 미래의 제품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화장품을 과학으로 승화시킨 기업으로 유명하다. 머리카락의 손상을 막는 세라마이드R, 자외선 차단제 멕소릴, 나노벡터를 이용한 나노화장품이 여기서 처음 나왔다. 특히 천연 세라마이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세라마이드 R이란 물질은 샴푸에 넣어 머리카락의 손상을 막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온천수 속의 플랑크톤에서 추출한 활성성분은 태양빛에 의한 세포면역체계의 손상을 막아준다. 이 성분은 특허를 받은 로레알의 자외선 차단제인 멕소릴에 첨가돼 피부보호기능을 향상시켰다.

요즘 이 회사는 피부에 대기만해도 수분 함유도를 10분의 1초만에 측정해 건성, 지성 여부를 분석해줘 소비자가 자신의 피부 특성에 맞는 화장품을 고르도록 도와주는 ‘스킨칩’ 을 최첨단 생체인식센서기술을 이용해 개발 중이다. 또한 피부의 노화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인종별 3D 피부 노화모델’ 도 만들었다.
 

각 인종의 모발과 피부를 연구하는 로레알 시카고연구소.


1백40개국에 진출한 로레알은 인종과 개인에 맞는 화장품을 개발하는 현지화 정책을 펴, 지난해 말 시카고에 인종에 따른 피부와 모발의 편차를 연구하기 위한 연구소도 열었다. 이 연구소의 빅토리아 홀로웨이 소장은 “인종별 모발 연구를 통해 머리카락은 모낭세포에서 형성될 때부터 이미 유전자에 모양과 색깔이 프로그램돼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인은 머리카락의 맨바깥 큐티클층이 백인과 흑인보다 많아 강한 직선형이다. 아시아인은 머리카락이 8개의 큐티클층을 갖고 있어 강하고 직선이지만, 흑인은 2개층에 불과해 머리카락이 잘 부스러지고 손상된다. 유럽인은 중간 정도인 6층이다.

“로레알의 성장 엔진은 연구개발입니다.” 로레알 본사 그룹홍보담당자인 레미 시몽은 “연구비와 연구원의 3분의 1을 피부와 모발에 대한 기초연구에 투입함으로써 투명하고 깨끗한 피부와 머릿결을 만드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요즘 로레알은 대머리 예방과 치료를 위해 유전자와 줄기세포 연구에도 손을 대고 있다. 사람은 머리카락 생산기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피의 머리카락 생산공장인 모낭세포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18개의 아미노산을 원료로 케라틴 단백질을 합성한다. 이것이 하루 0.3-0.5mm 자라는 머리카락이다.

두피에 있는 10만개가 넘는 모낭세포에서 한해에 만들어내는 머리카락은 16km나 된다. 10만개의 머리카락은 12t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 머리카락은 길게는 14년 동안 5m나 자란 경우도 있지만 대개 모발의 평균수명은 남자가 2-4년, 여자가 4-6년이다. 보통 사람은 하루 평균 50개의 머리카락이 빠진다.

그런데도 대머리가 되지 않는 이유는 건강한 사람의 경우 성장 단계의 모발이 70%, 퇴화 단계가 30%이기 때문이다. 이 수치가 역전되는 현상이 곧 대머리다. 동물이 대머리가 되지 않는 것은 계절마다 털이 한꺼번에 빠지는 털갈이를 하기 때문이다.

대머리는 왜 생기는 것일까? 이 연구소의 파트리샤 피노 박사는 “대머리는 머리카락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기 때문에 생기는 유전적 현상” 이라며 “최소한 17개의 유전자가 대머리와의 연관성이 밝혀졌지만 아직 어느 유전자가 가장 중요한 원인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고 말한다. 앞으로는 대머리를 예방하고 젊었을 때의 머리카락 색깔을 되찾아주는 화장품과 의약품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피노 박사는 “1만3천명에 대해 방대한 모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람은 대머리가 되기 오래 전부터 모낭세포가 약화돼 머리카락 굵기가 얇아지고 머리카락 밑둥이 오렌지색으로 변하는 징후를 보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며 “따라서 대머리는 치료보다 예방이 효과적” 이라고 말한다.

로레알 연구팀은 모낭세포의 위와 아래 부분에서 줄기세포 저수지도 발견했다. 이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두피에서 사라져버린 머리카락 생산공장 즉 모낭세포를 재생할 수 있을지 모른다.

로레알은 연구원의 55%가 여성이면서 세계 여성에게 상품을 팔아 성공한 기업답게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세계 여성과학자상을 수여하고 있다. ‘로레알-유네스코 세계 여성과학자상’ 은 더 많은 여성이 과학자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98년부터 매년 5개 대륙에서 탁월한 업적을 낸 여성 과학자를 한명씩 선정해 10만 달러를 주는 상이다.

국내에서는 과학기술연구원 유명희 프로테오믹스연구단장이 제1회 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유 박사는 “로레알의 여성과학자상 제정은 기업의 성공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고 말했다.
 

올해 3월 파리에서 열린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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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신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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