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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인 줄 알면서도 귀신을 보는 이유

귀신의 재구성

“대낮에 친구들과 길을 걷다가 앞에서 형체가 없는 검은 그림자가 걸어가는 광경을 목격한 뒤 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6월 6일 개봉한 공포영화 ‘메신저: 죽은 자들의 경고’를 만든 옥사이드 팽 천과 대니 팽 형제 감독의 말이다.

이들은 머리카락까지 쭈뼛댈 정도로 오싹했던 공포를 영화의 주인공인 제스가 죽은 자들의 실체를 처음으로 느끼는 장면에 반영했다. 그러나 자신이 귀신을 봤던 경험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는 팽 형제 감독의 말은 본의 아니게도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거짓인 줄 알면서도 귀신을 보는 이유


뇌 측두엽으로 얼굴 본다

하늘 높이 두둥실 떠있는 뭉게구름이 양이나 우주선처럼 보일 때가 있다. 어떤 땐 나무 무늬나 벽지에 스민 빗자국에서 악마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불길한 징조라며 부적을 써 붙이거나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무늬를 보고 특정한 형체를 떠올리는 현상은 단순한 착시일 뿐이다. 영화 ‘메신저’의 팽 형제 감독도 검은색 그림자를 귀신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착시를 만들어낸 범인은 인간의 뇌다. 뇌는 눈을 통해 들어오는 사물의 정보가 불완전하더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사물을 온전히 인식하려는 보정능력이 있다. 이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컵의 일부만 봤을 때 위험물이라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귀신의 몸 중에서도 주로 얼굴을 본다. 뇌가 얼굴에 더 많은 신경을 쓰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인류는 눈앞의 대상이 사람인지 아닌지, 낯선 대상인지 아닌지, 나를 해칠 것인지 아닌지를 신속하게 판단해야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런 판단을 하는데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대상이 바로 상대방의 얼굴이다.

현재 약간의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대뇌 피질 아래쪽의 ‘퓨지폼 얼굴 부위’(Fusiform Face Area)가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위에 이상이 생기면 얼굴만으로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

얼굴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모양을 보면 뇌의 내측두엽에서 바로 반응이 일어난다. 그런데 측두엽에 문제가 있는 간질 환자는 특이하게도 환상을 보거나 환청을 듣는 경우가 많아 이럴 때 귀신을 봤다고 느낀다.

소설 ‘죄와 벌’로 유명한 러시아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측두엽 간질 환자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의 세밀한 묘사와 직관적인 이야기 구조는 그가 초자연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 환각에 빠지거나 영적인 체험을 한 사람은 뇌의 측두엽에서 발생하는 뇌파에 변화가 생긴다.

얼마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면어’도 뇌의 장난으로 인한 소동이었다. 뇌의 내측두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분명히 물고기 얼굴이라고 알고 있어도 그 얼굴을 사람 얼굴로 볼 수 있다.

물고기가 사람의 얼굴(노란 원)을 한 것처럼 보여 화제가 된‘인면어’. 하지만 이는 뇌의 측두엽이 활성화 돼 생긴 착시일 뿐이다.



안구의 ‘자동운동’이 도깨비불 만들어

그렇다면 착시로 보게 된 귀신이 움직이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보통 귀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밤중에 홀로 숲 속에서 어렴풋하게 움직이는 형체를 본 경우가 많다.

숲은 미술가가 인간이나 사물을 표현할 때 쓰는 직선, 세모, 네모, 동그라미처럼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그런 어두컴컴한 공간을 공포심을 갖고 귀신의 전형적인 모습과 비슷한 특정 패턴을 의식하며 쳐다본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뇌는 실제로 숲 속에 무엇이 있는 양 상황을 재구성한다. 실제 그 형상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무언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흔히 ‘도깨비불’이라 불리는 현상도 이 때문에 발생한다.

간단한 실험으로 어두컴컴한 곳에서 움직이는 도깨비불을 증명해보일 수 있다. 외부 빛을 차단해 깜깜한 방에서 책상에 다른 전등은 모두 끈 채 조그만 불빛 하나를 희미하게 켜놓자. 책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희미한 빛이어야 한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그 불빛을 응시하자.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작은 불빛이 마치 공중에 뜬 채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실제 불빛이 움직인 것은 아니다. 그 움직임은 안구가 불규칙하게 운동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이런 안구의 ‘자동운동’이 귀신 같은 가짜 영상을 움직이게 한다.

자동운동은 실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의 정보에 민감하다. 원이 여러개 겹쳐진 ‘회전하는 뱀’(사진은 www.ritsumei.ac.jp/~akitaoka/rotsnakee.html 참고) 사진을 놓고 한 사람에게 “왼쪽 원만 돌고 오른쪽 원은 멈춘 것 같지 않나요?”라고 물으면 상대방은 처음에는 모든 원이 다른 방향으로 도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더라도 왼쪽 원만 돈다고 말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서 무엇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누가 먼저 말한다면 옆에 있던 친구도 움직이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귀신이 움직이는 것을 똑똑히 봤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영국 허트퍼드셔대 심리학과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는 특정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귀신을 느끼는 이유가 환경조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그는 귀신이 출몰하기로 유명한 지역을 조사한 결과 공통적으로 조명이 어둡고 공간이 비교적 좁으며, 자기장의 변화가 심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의 연구는 자기장의 변화가 뇌에 전기적 자극의 변화를 일으켜 어떤 공간에 들어갔을 때 이상한 느낌을 받고, 귀신을 볼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한 셈이다.

물체의 선명도도 착시에 영향을 준다. 지난 5월 12일 미국 신경상관학회는 올해의 착시 현상을 선정했다. 미국 버크넬대 심리학과 아더 사피로 교수는 같은 물체라도 색이 선명할 땐 움직임이 없다가 색이 흐릿해지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제시해 3위에 올랐다. 그가 발견한 착시자극원리를 이용하면 어두운 숲 속에서 나뭇가지에 찰싹 붙은 비닐봉지가 바람에 흩날려 귀신처럼 보이는 현상의 비밀을 풀 수 있다.

영화 '메신저'에는 초등학교 졸업사진에 귀신의 형상이 찍힌 것처럼 나타난다(파란 원). 하지만 이는 뇌가 만들어낸 착시다.

‘공포실화’는 생존 위한 진화의 산물

결론적으로 어떤 사람이 귀신을 봤다는 ‘공포 실화’는 뇌의 장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귀신 착시가 그저 그릇된 오류인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귀신 얼굴을 보는 것은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상대의 얼굴을 재빨리 인식하기 위한 진화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신은 실제로 있든 없든 상당한 공포를 주는 자극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공포 자극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인간의 반응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어두운 숲 속같이 위험한 곳을 지날 때 실제 귀신을 보지 않더라도 갑자기 무엇이 움직이면 부리나케 그 곳을 벗어난다.

비록 귀신을 보는 것이 상당 부분 헛된 망상이나 착시 때문이라 해도 인간이 숲에서 수렵하고 채집하던 때부터 자기 생존에 아주 유용했던 정보처리 방식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뇌는 진화를 거듭하더라도 이와 같은 인지행동 패턴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과학에서 귀신의 존재를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이 귀신을 포기하지 못한 이유이며, 현재 우리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고, 후손이 포기하지 못할 이유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폐교에서 귀신체험을 하고 있다. 좁고 긴 통로에 서서 빛의 변화를 주면 귀신이 나타난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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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남석 교양소설 작가
  • 진행

    임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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