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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에 화학물질 쌓이면 당뇨병 위험 증가

경북대 의대 이덕희 교수 인터뷰

현재 2억 명 가까운 사람들이 앓고 있고 2030년엔 환자수가 2배가 된다는 당뇨병은 21세기 지구촌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만성퇴행성질환 중 하나다. 그러나 잘못된 식습관이나 운동부족만으로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당뇨병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경북대 의대 이덕희 교수는 분해가 잘 되지 않는 화학물질의 체내축적이 당뇨병 만연의 원인일 가능성을 보고해 주목받고 있다.

“10여 년 전 우연한 발견이 제 연구 주제뿐 아니라 인생관도 바꿔놓았습니다.”
4월 초인데도 낮 기온이 24℃까지 올라간 대구는 봄 햇살이 벌써 덥게 느껴졌다. 고풍스런 ㅁ자 구조의 경북대 의대 건물 안에 들어서자 시멘트 건물 특유의 찬 기운이 오히려 상쾌했다. ‘예방의학교실’이라는 푯말이 걸려 있는 4층 복도의 414호 문을 열자 마치 온실인 듯 큼직한 화분에 담긴 식물들이 실내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연두색 줄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이덕희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 관심을 보인 기자가 다소 의외라는 듯 처음에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 지 망설였다. 이럴 땐 자신의 지나온 길을 들려달라고 부탁하는 게 효과가 있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게 1989년이니 벌써 20년이 됐군요. 의대를 다니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 제 성격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공의로 예방의학이란 분야를 택하게 됐죠.”

건강검진 자료에서 뜻밖의 패턴 발견
예방의학은 거시적인 시각에서 질병의 원인이나 보건정책, 질병과 환경의 문제 등을 폭넓게 다루는 분야다. 당시만 해도 예방의학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경북대 병원과 의대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친 이 교수는 1993년 부산 고신대에 전임강사로 부임해 역학자(疫學者)로서 무난한 경력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2000년 어느 날, 한 대기업체에서 수년에 걸친 직원들의 건강관리 자료를 분석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상한 패턴이 보였습니다. 근로자들 대부분이 정상 GGT 수치를 보였는데 이 범위 내에서 GGT 수치가 조금이라도 높은 사람은 수년 뒤 당뇨병에 걸릴 위험성이 크다는 결과였죠.”

GGT는 감마-글루타밀트랜스퍼라제라는 효소의 약자로 술을 마시거나 간에 문제가 생기면 GGT 수치가 높아져 건강검진의 지표로 이용된다. 그런데 정상범위안의 GGT 수치 편차가 뜻밖에도 만성대사질환인 당뇨병 발병 여부를 예측했던 것.

“의대에서 공부할 때 비만 때문에 당뇨가 생긴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요. 그런데 자료를 보니 뚱뚱해도 GGT 수치가 아주 낮은 사람들은 나중에 당뇨병에 거의 안 걸리는 거예요.”

현대 의학의 한 패러다임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발견을 했다고 생각한 이 교수는 그 내용을 논문으로 작성해 유명 의학저널인 ‘란셋’(Lancet)에 보냈다. 그러나 논문을 검토한 전문가들의 코멘트는 싸늘했다. 이 연구로 현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당신이 분석한 한국의 역학자료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믿을만한 것이냐며 게재불가를 통보했던 것. 그 뒤 지명도가 있는 다른 저널에 논문을 제출했지만 번번이 비슷한 사유로 게재를 거부당했다. 결국 이 교수팀의 논문은 2003년 당뇨병 전문지인 ‘당뇨’(Diabetologia)에 실렸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렇다면 당신들이 믿는다는 당신들의 자료로 똑같은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 때 마침 미국 미네소타대 보건대의 역학 권위자인 데이비드 제이콥스 교수를 알게 돼 공동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이 교수와 제이콥스 교수는 관상동맥질환에 관한 역학자료인 카디아(CARDIA)자료를 분석해 유사한 결과를 얻었다. 그 뒤 다른 자료들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지만 이 교수는 이런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도대체 왜 GGT 수치의 정상범위 내 편차가 당뇨병 발병을 예측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GGT에 대한 광범위한 문헌을 섭렵하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한 관련 연구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GGT는 단순히 간의 건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체내 산화 스트레스에 대한 지표일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에 이르렀죠.”

이런 연결고리에서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이 교수는 2005년 가을 어느 날, 머릿속이 순간 번쩍했다. GGT는 외부이물질 대사에 매우 중요한 글루타치온 대사에 필수적인 효소이므로 GGT 수치는 다양한 외부이물질에 대한 노출정도를 알려주는 지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 이 교수는 체내에 축적되면서 당뇨병 같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팝스(POPs)란 용어를 발견하고 아주 흥분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유형의 물질이 이미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며 팝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으니까요.”
POPs란 ‘잔류성 유기 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ollutants)의 약자로 DDT 같은 농약이나 다이옥신, 고엽제 같이 분해가 잘 되지 않으면서 동식물에 축적돼 생리활성을 교란하거나 독성을 나타내는 물질이다. 팝스의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선진국들은 1970~1980년대부터 제조와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팝스가 진짜 당뇨병의 원인이라면 뚱뚱해도 팝스 수치가 낮은 사람은 당뇨병에 잘 안 걸릴 것입니다.”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혈액 내 팝스 수치를 분석하려던 이 교수는 얼마 못가 좌절하고 말았다. 이런 물질의 잔류량은 피코그램(피코는 10-12을 뜻함) 수준이기 때문에 시료도 많이 필요할뿐더러(혈액 100ml) 시료 하나당 분석비용이 200만 원이라는 분석기관의 대답 때문이었다.
“이런 연구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으려면 최소한 수백 명의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저희 연구비 규모로는 어림없었죠.”

비만 덜한 아시아에서 당뇨 급증
그런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어느 날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홈페이지를 보다가 ‘바이오 모니터링 자료’라는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를 발견한 것. 여기에는 미국인 가운데 무작위로 혈액 시료를 채취해 혈액 내 팝스가 얼마나 남아있는가를 분석한 결과와 함께 그 사람의 각종 건강정보가 시시콜콜 기록돼 있었다.
“이런 자료가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CDC에 메일을 보내 논문에 자료를 이용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바로 ‘Of course!’란 답이 오더군요.”

데이터를 분석하자 가설과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팝스 농도가 낮으면 비만이더라도 당뇨에 걸리지 않았고 팝스 농도가 높아질수록 당뇨에 걸릴 확률도 올라갔다. 논문을 쓸 때까지 1주일 동안 이 교수는 잠도 오지 않았다. 구름에 떠 있는 기분으로 ‘란셋’에 논문을 보낸 이 교수는 그러나 바로 현실의 차가운 벽에 부딪쳤다. 팝스가 당뇨의 원인이라는 건 무리한 주장이라는 게재거부 메일을 받았던 것. 결국 이 논문은 2006년 당뇨분야 저널인 ‘당뇨관리’(Diabetes Care)에 발표됐다.

“이 과정을 겪으며 연구자들이 자기 패러다임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연구에는 거부감이 매우 심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논문이 발표된 바로 다음날 이 교수는 저명한 역학 전문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대의 미구엘 포르타 교수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논문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주위 연구자들에게도 읽어보라고 했다는 것. 또 이 교수팀의 논문에 대한 ‘코멘트’(해설논문)를 ‘란셋’에 보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정말 얼마 뒤 ‘란셋’에 포르타 교수의 코멘트가 실렸다.

“유명 저널에 논문이 실리려면 내용보다는 누가 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아무튼 이 코멘트 덕분에 저희 연구가 주목받기 시작했죠.”
그 뒤 이 교수팀은 미네소타대 제이콥스 교수팀과 함께 관련된 연구를 계속 진행했고 팝스가 당뇨뿐 아니라 여러 질환의 발생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지난해 초 ‘란셋’에 이 교수팀의 연구에 대한 코멘트가 또 한 번 실렸고 영국의 유명 과학주간지인 ‘뉴사이언티스트’도 9월 13일자에 이 교수의 연구결과를 다룬 4쪽 분량의 기사를 실었다.

팝스 농도가 낮을 경우 비만 여부는 당뇨병 발병과 별 관계가 없다. 그러나 농도가 높을수록 비만과 당뇨병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팝스는 매우 강한 지용성 물질이기 때문에 일단 체내로 들어가면 배출이 잘 되지 않고 대부분 지방세포에 축적되는데 비만일수록 지방세포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축적된 팝스가 지속적으로 혈액으로 나와 여러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팝스 사용이 금지된 지 20여 년이 지난 선진국에서 왜 당뇨병이 줄어들지 않는 걸까. 또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만 문제가 적은 아시아에서 왜 당뇨병이 급증세일까.

“팝스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잘 분해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생태계에 여전히 축적돼 있죠. 그런데 팝스는 자체 독성보다는 환경호르몬 같은 작용을 해 당뇨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환경호르몬은 농도가 아주 높을 때보다 적절하게 낮을 때 더 위험할 수 있어요.”

현재 연구자들 대부분은 아시아인의 유전적 특성과 생활습관의 급격한 서구화가 당뇨병 급증의 주된 이유로 보고 있으나 이 교수는 아시아 지역이 여전히 팝스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만드는 공장이 이 지역으로 많이 이전돼 있는데다 DDT, 린단 같은 독한 농약 사용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의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팝스의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먹는 식품의 상당부분이 중국이나 다른 개도국에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오죠.”
이 교수의 연구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언론에서도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아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내심 놀랐다고. 아무튼 지금처럼 공산품을 더 팔겠다고 외국 농산품을 무분별하게 수입했다가는 나중에 그 몇 배 되는 비용이 당뇨병 같은 만성퇴행성질환 치료비로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팝스를 연구하면서 이 교수 집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다. 먼저 식탁에 육류가 올라오는 빈도가 줄었다. 팝스는 육류의 지방에 가장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 되도록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 야채와 과일을 구한다. 이 과정에서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비우는 철학을 배워야 할 때
사실 이 교수는 팝스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현대 의학의 주류와는 다른 입장에 있다. 사람들은 임신을 하면 당연히 철분을 섭취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또 삶의 ‘활력’을 주는 비타민을 섭취하는 게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 모든 것이 거대 제약회사들이 만들어놓은 ‘환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교수팀은 이런 영양제의 장기복용이 오히려 몸에 안 좋을 수 있다는 데이터 분석 결과를 담은 논문을 발표해 주류 의학계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우리는 자꾸 인체에 무엇인가를 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필요하게 체내로 들어와 축적된 것들을 비움으로써 몸의 건강을 찾는 방법도 함께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지방세포에 축적된 팝스도 식습관 개선이나 운동처럼 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몸 밖으로 배출할 수 있다. 몸의 독소를 빼준다는 방법들도 어떤 면에선 일리가 있다. 아무튼 수백만 년 진화의 세월에서도 우리 몸이 전혀 겪어보지 못한 낯선 상황, 즉 팝스 같은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은 비록 개별 물질의 농도는 극히 낮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연구가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가면서 의학은 물론 환경, 생태, 영양 등 여러 분야의 논문을 셀 수없이 섭렵했다는 이 교수는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많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오늘날 당뇨병을 비롯한 만성퇴행성질환의 만연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시작한 석유화학문명의 필연적 귀결이란 생각이 듭니다. 현대의학이 큰 진보를 한 것 같지만 이런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게 막는 데 급급할 뿐 사실상 속수무책이죠.”

현재 이 교수팀과 제이콥스 교수팀은 팝스와 다양한 만성퇴행성질환의 관계를 좀 더 엄밀하게 밝힌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또 팝스 외에 다른 극미량 화학물질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는 체내에 축적된 팝스를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할 계획이다. ‘과식과 운동부족이 당뇨병의 원인’이라는 단순한 도식 아래 가려진 이면의 ‘우울한’ 진실을 봐 버린 이 교수의 눈빛은 연구를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팝스 농도와 당뇨병 발생률
체내 잔류성 유기 오염물질(POPs) 수치가 낮으면(G1) 비만이더라도 당뇨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팝스 수치가 올라갈수록(G2~G5) 당뇨도 급증하는데 이런 경향은 비만일수록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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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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