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아 ’ 얘기를 들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경제위기는 나 몰라라 하고 외유를 떠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반면 지친 일상 속에서 짬을 내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에 마음까지 푸근해지는 것 같다. 누구나 경험해봤을 이런 현상들이 왜 생기는 걸까. 최근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이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로또의 달인? 한 장에 같은 번호 다섯 번 적어 모두 1등 44억’
3월 9일자 동아일보에 난 기사제목이다. 보통사람은 숫자 6개 가운데 3개를 맞추는 5등을 하기도 힘든데 같은 숫자들을 다섯 번이나 적어 1등에 5중으로 당첨됐다니 꼭 만우절 기사같다. 호기심에서 기사를 읽다 보면 어느새 ‘누구는 이렇게 운도 좋은데…’라고 혀를 차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남이 잘 되는 걸 보고 진정으로 기뻐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자신이 아는 사람일 경우에는 감정이 더욱 복잡미묘해진다. 대입에 연달아 실패해 재수삼수하는 조카를 보며 ‘이번엔 꼭 좋은 데 들어가야 할텐데…’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게임을 하고 있는 자녀에게 “인터넷을 끊든지 해야지, 공부는 언제 할래?”라고 신경질을 부리고 머리가 아프다며 자리에 눕는 다.
학창시절 애인도 없이 다니던 친구가 안 돼 보여 “너 같이 괜찮은 녀석이 왜 여자가 없을까?”라며 안 타까워하다가도 수년 뒤 청첩장을 받고 찾아간 결혼 식장에서 내 여친보다 훨씬 예쁜 신부를 발견하면 자 신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나온다. “자식, 좋겠다….” 뷔페에서 잔뜩 먹을 생각이었지만 웬일인지 속도 안 좋고 밥맛도 없다.
고통과 쾌락의 신경회로
육체적이나 사회적인 고통을 느낄 때 공통적으로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있다(빨간 반점). 육체적이나 사회적인 쾌락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다(파란 반점). 심리적인 경험에서도 생생한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이유다.
불공평한 대우, 열등한 비교를 당할 때 자선을 할 때, 남의 불행을 고소해 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같다. 활성화되는 뇌 부위도 같다.
너의 고통이 나의기쁨?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옛 속담은 이런 인 간의 옹졸한 마음을 한 문장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남이 잘 되는 걸 보고 느끼는 ‘고통’이 단지 비 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일본 국립방사과학연구 소 타카하시 히데히코 박사팀은 남의 성공을 질시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회로가 진짜 신체적 통증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회로와 동일하다고 ‘사이언스’ 2월 13 일자에 발표했다.
그렇다면 왜 뇌는 이처럼 서로 거리가 먼 사건을 같 은 회로에서 처리하게 됐을까. 신체적인 고통이나 쾌 락 같은 구체적인 경험을 해석하는 뇌의 회로는 오래 전에 진화했다. 고통과 쾌락은 생존과 직결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굶주리고 목마를 때 고통스러 워야 우리는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 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이 잘 되는 일에 대한 정보가 왜 통증 회로에서 처리될까? 같은 종의 생물들은 제한된 먹 이와 짝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성공한 타인 은 자신보다 강력한 경쟁자인 셈이다. 따라서 주위 사람이 성공한다는 건 상대적으로 자신의 실패확률 이 높다는 뜻이고 결국 자신의 생존 또는 자기 유전자 의 확산에 불리할 가능성이 크다.
연구자들은 같은 맥락에서 남이 실패하는 걸 볼 때 느끼는 ‘고소함’은 맛있는 식사를 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보상 부위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밝 혀냈다. 결국 우리는 석가나 예수 같은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남의 성공에 배 아파하고 남의 실패에 고소 해하게끔 만들어진 셈이다.
신체적 반응과 심리적 반응이 서로 얽혀있음을 보 인 또 다른 연구가 2월 27일자 ‘사이언스’에 실렸다. 바퀴벌레를 봤을 때 느끼는 불쾌함이나 불공평함에 대한 반감 같은 감정의 뿌리도 결국 쓴 맛이나 고약 한 냄새를 접했을 때 우리 몸이 보이는 생리반응과 같 다는 것. 연구자들은 이런 상황일 때 나오는 찡그린 얼굴 표정, 즉 들린 윗입술과 주름 잡힌 코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근육인 윗입술올림근의 근전도를 다양 한 상황에서 측정했다. 그 결과 쓴 액체를 마셨을 때 보이는 패턴이 불결한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거나 불 공평한 제안을 받았을 때(공짜로 생긴 돈을 9(상대 방):1(나)로 분배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캐나다 토론토대 심리학과 아담 앤 더슨 교수팀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심리적인 역겨움 의 기원이 불쾌한 맛이 나는 음식을 접했을 때 보이는 생리적 반응에 있다고 주장했다. 윗입술올림근의 움 직임은 외부의 물질을 더 이상 입에 넣지 않거나 냄새 를 맡지 않으려는 방어동작이다. 따라서 바퀴벌레를 보거나 부도덕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는 이런 움직임 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우리도 모르게 이 런 표정이 나오는 것은 역시 생리적인 역겨움을 처리 하는 뇌 씁역과 심리적 또는 도덕적인 역겨움을 처리 하는 뇌 씁역이 겹치기 때문이다.
몸을 씻으면 마음까지 깨끗해진다?
이처럼 생리적인 반응과 심리적인 반응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은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2006년 9월 8일자 ‘사이언스’에 실린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보자.
한 심리학과의 연구실에서 사람들이 설문지를 작 성하고 있다. 설문지를 제출하면 감사의 선물로 비누 와 초콜릿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가져간다. 설문지는 두 종류로 하나는 비도덕적인 일을 한 경험을 회상케 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즐거운 일을 회상케 하는 내용이다. 과연 설문지의 내용이 선물 선택에 씁향을 자신의 성을 방문해 침소에 든 국왕 던컨을 칼로 찔러 미쳤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회상한 사 멸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 레이디 맥베스가 손을 씻 람들의 67%가 비누를 택한 반면 즐거운 행동을 회상 으며 죄를 떨쳐버리려는 다음의 장면이 나온다. 한 사람은 33%만이 비누를 택했다.
한편 손을 씻는 행위가 죄의식을 덜어주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피험자들에게 비윤리적인 과거 경험을 회상하게 했다. 그 뒤 한 그룹만 손을 씻게 했다. 그리 고 연구 일정이 촉박한 대학원생을 위해 돈을 받지 않 고 피험자로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 결 과 손을 씻지 않은 그룹의 74%가 돕겠다고 대답한 반면 손을 씻은 사람들은 41%만이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연구를 진행한 캐나다와 미국의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에 ‘맥베스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인 ‘맥베스’는 부인과 공모해 자신의 성을 방문해 침소에 든 국왕 던컨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스코틀랜드 무장 맥베스의 파멸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 레이디 맥베스가 손을 씻으며 죄를 떨쳐버리려는 다음의 장면이 나온다.
즉 떳떳치 못한 과거를 회상한 사람들은 레이디 맥 베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기억을 씻어내기 위해 비누 를 택했고 일단 손을 씻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죄의식 에서도 벗어나 무료 봉사로 속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됐던 것. 연구자들은 기독교의 세례의식이나 힌 두교의 목욕의식도 맥베스 효과로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신체적 깨끗함과 도덕적 깨끗함은 묀 접히 연관돼 있다”며 “도덕적 순수함이 훼손되면 신 체적인 청결에 대한 욕구가 활성화되는데 이런 행동 이 도덕적 감정의 동요를 달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손 을 씻는 것만으로도 상당부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일이 윤리적 행동을 하는데 도움이 될지 역설적으로 비윤 리적 행위를 더 쉽게 하게 할지는 아직 모른다”며 “신 체적 청결이 행동에 미치는 씁향을 밝히는 추가 연구 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의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걸까? 저 보오, 손을 마냥 닦고 계시는데.
시녀 늘 저러십니다. 저렇게 손을 씻으시는데, 15분 동안이나 계속 저러실 때도 있어요.
맥베스 부인 아직도 여기 흔적이 있네.
시의 들어봐, 말을 하시잖아! 하시는 말씀을 적어두어야겠소. 확실히 기억해 두기 위해서.
맥베스 부인 사라져 버려라, 저주받은 얼룩이여! 사라져 버려, 제발!
-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5막 1장.
(이태주 옮김, 범우사)
따뜻한 차마시면 마음도 따뜻해져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 “걔는 얼굴은 예쁜데 너무 쌀쌀맞아서 정이 안간단 말이야.”
물이나 방바닥 같은 사물의 온도를 표현하는 ‘따뜻하다’ ‘차갑다’라는 말은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를 나타낼 때도 즐겨 쓰 인다. 사실 이런 말들을 빼면 성격 묘사가 제대로 안 된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공감하며 상대방에게 유 익할 뿐더러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는’ 같은 번거로운 수식이 ‘따뜻한’이라는 한 단어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혼용은 우리말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한자를 봐도 ‘溫情’(온정), ‘冷血漢’(냉혈한) 같은 말이 있고 영어에도 ‘warm friend’(친한 친구), ‘as cold as a fish’(매우 냉정한) 같은 숙어가 있다. 결국 인류는 물리적 온도를 표현하는 용어를 정서 영역에서 차용해 쓰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언어학자나 심리학자들은 감정 표현에 이런 용어를 쓰는 건 ‘비유적’인 맥락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따뜻함이나 차가움 같은 실제 감각이 이를 표현하는 용어가 혼용되는 정서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콜로라도대 경영대 로렌스 윌리엄스 교수팀은 물리적으로 따뜻한 경험을 한사람이 마음도 따뜻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10월 24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피험자들이 심리테스트를 받기 위해 4층에 있는 테스트룸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노트와 커피잔을 든 안내자가 다가가 “이름과 시간을 쓰게 잔을 좀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한 그룹은 따뜻한 커피가 들어 있는 잔을 받았고 다른 그룹은 아이스커피가 들어있는 잔을 받았다. 물론 피험자들은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들고 있던 커피가 테스트와 관련돼 있다는 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피험자들은 ‘인물 A’에 대한 기술을 읽고 10가지 항목에 대한 평가를 했다. 인물 A는 지적이고 일처리를 잘 하며 성실하고 결단력이 있고 노련하고 주도면 밀하다고 묘사돼 있다. 흥미롭게도 잠깐이나마 따뜻한 커피잔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아이스커피잔을 들었던 피험자에 비해 인물 A에 대해 더 관대하고 세심한 즉 따뜻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자들은 “뇌에서 물리적인 온도와 사람 사이의 신뢰 같은 심리적 따뜻함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뇌섬엽이 바로 그 부위”라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이번 결과가 ‘어릴 때 온기를 느끼는 신체 접촉이 정상적인 정서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는 기존의 관찰도 잘 설명한다고 덧붙였다.
즉 철사로 만든 어미와 헝겊으로 만든 어미 사이에 어린 새끼 원숭이를 두면 새끼는 온기가 느껴지는 헝겊 어미(뒤에 백열등이 있다)에 다가가 몸을 기댄다.
흥미로운 사실은 철사 어미에게만 젖병을 매달아 두어도 새끼는 젖을 먹을 때를 빼고는 헝겊 어미를 떠나지 않았던 것.
1958년 이 연구를 발표한 저명한 심리학자 해리 할 로우는 따뜻한 헝겊 어미가 있는 환경에서 자란 새끼 는 커서도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사회성 발달을 보인 반면 철사 어미만 있는 곳에서 자란 경우는 심각한 장 애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기록한 바 있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점차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가 는 자신을 문득 발견했다면 시간을 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자. 두 손과 입술에서 전해오는 온기가 마 음까지 덥힐 테니까.
범죄 줄이려면 환경미화 신경 써야
개인의 청결이 행동의 도덕성에 어떤 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청결한 주변 환경은 긍정적인 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그로닝엔대 케스 카이저 교수팀은 자전거보관소의 환경을 달리한 뒤 자전거에 전단지를 붙여놓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다. 벽에 낙서가 잔뜩 있는 경우 3분의 2가 넘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가져갈 때 전단지를 떼서 아무데나 버렸다. 반면 벽이 깨끗한 경우는 3분의 1만 이런 행동을 보씀다. 이런 경향은 다른 상황에서도 나타났다. 우체통 입구에 끼어 있는 봉투에 5유로 지폐가 붙어 있는 걸 볼 경우 주위가 깨끗할 때는 13 %만이 슬쩍 집어간 반면 주변에 쓰레기가 널려 있을 때는 23 %가 자기 주머니에 챙겼다. 주변의 소리도 도덕적인 행동에 씁향을 줬다. 폭죽소리로 어수선할 경우 자전거 주인의 80 %가 전단지를 떼어내 아무 데나 버렸지만 조용한 환경에서는 절반 정도만 그랬다. 결국 개인에 따라 일관성을 보인다고 생각하는 도덕성이나 윤리의식도 사소한 환경변화에 크게 씁향을 받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지난해 12 월 8일자 ‘사이언스 ’에 실린 논문에서 “단지 낙서가 있을 뿐인데도 쓰레기를 버리거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의 비율이 2배 이상 늘어났다 ”며 “이 결과는 정책입안자나 경찰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고 설명했다. 초기 혼란을 감지하고 이를 제거하는 노력이 무질서와 탈법행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또의 달인? 한 장에 같은 번호 다섯 번 적어 모두 1등 44억’
3월 9일자 동아일보에 난 기사제목이다. 보통사람은 숫자 6개 가운데 3개를 맞추는 5등을 하기도 힘든데 같은 숫자들을 다섯 번이나 적어 1등에 5중으로 당첨됐다니 꼭 만우절 기사같다. 호기심에서 기사를 읽다 보면 어느새 ‘누구는 이렇게 운도 좋은데…’라고 혀를 차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남이 잘 되는 걸 보고 진정으로 기뻐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자신이 아는 사람일 경우에는 감정이 더욱 복잡미묘해진다. 대입에 연달아 실패해 재수삼수하는 조카를 보며 ‘이번엔 꼭 좋은 데 들어가야 할텐데…’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게임을 하고 있는 자녀에게 “인터넷을 끊든지 해야지, 공부는 언제 할래?”라고 신경질을 부리고 머리가 아프다며 자리에 눕는 다.
학창시절 애인도 없이 다니던 친구가 안 돼 보여 “너 같이 괜찮은 녀석이 왜 여자가 없을까?”라며 안 타까워하다가도 수년 뒤 청첩장을 받고 찾아간 결혼 식장에서 내 여친보다 훨씬 예쁜 신부를 발견하면 자 신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나온다. “자식, 좋겠다….” 뷔페에서 잔뜩 먹을 생각이었지만 웬일인지 속도 안 좋고 밥맛도 없다.
고통과 쾌락의 신경회로
육체적이나 사회적인 고통을 느낄 때 공통적으로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있다(빨간 반점). 육체적이나 사회적인 쾌락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다(파란 반점). 심리적인 경험에서도 생생한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이유다.
불공평한 대우, 열등한 비교를 당할 때 자선을 할 때, 남의 불행을 고소해 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같다. 활성화되는 뇌 부위도 같다.
너의 고통이 나의기쁨?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옛 속담은 이런 인 간의 옹졸한 마음을 한 문장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남이 잘 되는 걸 보고 느끼는 ‘고통’이 단지 비 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일본 국립방사과학연구 소 타카하시 히데히코 박사팀은 남의 성공을 질시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회로가 진짜 신체적 통증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회로와 동일하다고 ‘사이언스’ 2월 13 일자에 발표했다.
그렇다면 왜 뇌는 이처럼 서로 거리가 먼 사건을 같 은 회로에서 처리하게 됐을까. 신체적인 고통이나 쾌 락 같은 구체적인 경험을 해석하는 뇌의 회로는 오래 전에 진화했다. 고통과 쾌락은 생존과 직결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굶주리고 목마를 때 고통스러 워야 우리는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 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이 잘 되는 일에 대한 정보가 왜 통증 회로에서 처리될까? 같은 종의 생물들은 제한된 먹 이와 짝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성공한 타인 은 자신보다 강력한 경쟁자인 셈이다. 따라서 주위 사람이 성공한다는 건 상대적으로 자신의 실패확률 이 높다는 뜻이고 결국 자신의 생존 또는 자기 유전자 의 확산에 불리할 가능성이 크다.
연구자들은 같은 맥락에서 남이 실패하는 걸 볼 때 느끼는 ‘고소함’은 맛있는 식사를 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보상 부위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밝 혀냈다. 결국 우리는 석가나 예수 같은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남의 성공에 배 아파하고 남의 실패에 고소 해하게끔 만들어진 셈이다.
신체적 반응과 심리적 반응이 서로 얽혀있음을 보 인 또 다른 연구가 2월 27일자 ‘사이언스’에 실렸다. 바퀴벌레를 봤을 때 느끼는 불쾌함이나 불공평함에 대한 반감 같은 감정의 뿌리도 결국 쓴 맛이나 고약 한 냄새를 접했을 때 우리 몸이 보이는 생리반응과 같 다는 것. 연구자들은 이런 상황일 때 나오는 찡그린 얼굴 표정, 즉 들린 윗입술과 주름 잡힌 코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근육인 윗입술올림근의 근전도를 다양 한 상황에서 측정했다. 그 결과 쓴 액체를 마셨을 때 보이는 패턴이 불결한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거나 불 공평한 제안을 받았을 때(공짜로 생긴 돈을 9(상대 방):1(나)로 분배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캐나다 토론토대 심리학과 아담 앤 더슨 교수팀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심리적인 역겨움 의 기원이 불쾌한 맛이 나는 음식을 접했을 때 보이는 생리적 반응에 있다고 주장했다. 윗입술올림근의 움 직임은 외부의 물질을 더 이상 입에 넣지 않거나 냄새 를 맡지 않으려는 방어동작이다. 따라서 바퀴벌레를 보거나 부도덕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는 이런 움직임 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우리도 모르게 이 런 표정이 나오는 것은 역시 생리적인 역겨움을 처리 하는 뇌 씁역과 심리적 또는 도덕적인 역겨움을 처리 하는 뇌 씁역이 겹치기 때문이다.
몸을 씻으면 마음까지 깨끗해진다?
이처럼 생리적인 반응과 심리적인 반응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은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2006년 9월 8일자 ‘사이언스’에 실린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보자.
한 심리학과의 연구실에서 사람들이 설문지를 작 성하고 있다. 설문지를 제출하면 감사의 선물로 비누 와 초콜릿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가져간다. 설문지는 두 종류로 하나는 비도덕적인 일을 한 경험을 회상케 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즐거운 일을 회상케 하는 내용이다. 과연 설문지의 내용이 선물 선택에 씁향을 자신의 성을 방문해 침소에 든 국왕 던컨을 칼로 찔러 미쳤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회상한 사 멸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 레이디 맥베스가 손을 씻 람들의 67%가 비누를 택한 반면 즐거운 행동을 회상 으며 죄를 떨쳐버리려는 다음의 장면이 나온다. 한 사람은 33%만이 비누를 택했다.
한편 손을 씻는 행위가 죄의식을 덜어주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피험자들에게 비윤리적인 과거 경험을 회상하게 했다. 그 뒤 한 그룹만 손을 씻게 했다. 그리 고 연구 일정이 촉박한 대학원생을 위해 돈을 받지 않 고 피험자로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 결 과 손을 씻지 않은 그룹의 74%가 돕겠다고 대답한 반면 손을 씻은 사람들은 41%만이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연구를 진행한 캐나다와 미국의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에 ‘맥베스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인 ‘맥베스’는 부인과 공모해 자신의 성을 방문해 침소에 든 국왕 던컨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스코틀랜드 무장 맥베스의 파멸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 레이디 맥베스가 손을 씻으며 죄를 떨쳐버리려는 다음의 장면이 나온다.
즉 떳떳치 못한 과거를 회상한 사람들은 레이디 맥 베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기억을 씻어내기 위해 비누 를 택했고 일단 손을 씻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죄의식 에서도 벗어나 무료 봉사로 속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됐던 것. 연구자들은 기독교의 세례의식이나 힌 두교의 목욕의식도 맥베스 효과로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신체적 깨끗함과 도덕적 깨끗함은 묀 접히 연관돼 있다”며 “도덕적 순수함이 훼손되면 신 체적인 청결에 대한 욕구가 활성화되는데 이런 행동 이 도덕적 감정의 동요를 달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손 을 씻는 것만으로도 상당부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일이 윤리적 행동을 하는데 도움이 될지 역설적으로 비윤 리적 행위를 더 쉽게 하게 할지는 아직 모른다”며 “신 체적 청결이 행동에 미치는 씁향을 밝히는 추가 연구 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의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걸까? 저 보오, 손을 마냥 닦고 계시는데.
시녀 늘 저러십니다. 저렇게 손을 씻으시는데, 15분 동안이나 계속 저러실 때도 있어요.
맥베스 부인 아직도 여기 흔적이 있네.
시의 들어봐, 말을 하시잖아! 하시는 말씀을 적어두어야겠소. 확실히 기억해 두기 위해서.
맥베스 부인 사라져 버려라, 저주받은 얼룩이여! 사라져 버려, 제발!
-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5막 1장.
(이태주 옮김, 범우사)
따뜻한 차마시면 마음도 따뜻해져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 “걔는 얼굴은 예쁜데 너무 쌀쌀맞아서 정이 안간단 말이야.”
물이나 방바닥 같은 사물의 온도를 표현하는 ‘따뜻하다’ ‘차갑다’라는 말은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를 나타낼 때도 즐겨 쓰 인다. 사실 이런 말들을 빼면 성격 묘사가 제대로 안 된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공감하며 상대방에게 유 익할 뿐더러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는’ 같은 번거로운 수식이 ‘따뜻한’이라는 한 단어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혼용은 우리말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한자를 봐도 ‘溫情’(온정), ‘冷血漢’(냉혈한) 같은 말이 있고 영어에도 ‘warm friend’(친한 친구), ‘as cold as a fish’(매우 냉정한) 같은 숙어가 있다. 결국 인류는 물리적 온도를 표현하는 용어를 정서 영역에서 차용해 쓰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언어학자나 심리학자들은 감정 표현에 이런 용어를 쓰는 건 ‘비유적’인 맥락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따뜻함이나 차가움 같은 실제 감각이 이를 표현하는 용어가 혼용되는 정서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콜로라도대 경영대 로렌스 윌리엄스 교수팀은 물리적으로 따뜻한 경험을 한사람이 마음도 따뜻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10월 24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피험자들이 심리테스트를 받기 위해 4층에 있는 테스트룸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노트와 커피잔을 든 안내자가 다가가 “이름과 시간을 쓰게 잔을 좀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한 그룹은 따뜻한 커피가 들어 있는 잔을 받았고 다른 그룹은 아이스커피가 들어있는 잔을 받았다. 물론 피험자들은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들고 있던 커피가 테스트와 관련돼 있다는 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피험자들은 ‘인물 A’에 대한 기술을 읽고 10가지 항목에 대한 평가를 했다. 인물 A는 지적이고 일처리를 잘 하며 성실하고 결단력이 있고 노련하고 주도면 밀하다고 묘사돼 있다. 흥미롭게도 잠깐이나마 따뜻한 커피잔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아이스커피잔을 들었던 피험자에 비해 인물 A에 대해 더 관대하고 세심한 즉 따뜻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자들은 “뇌에서 물리적인 온도와 사람 사이의 신뢰 같은 심리적 따뜻함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뇌섬엽이 바로 그 부위”라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이번 결과가 ‘어릴 때 온기를 느끼는 신체 접촉이 정상적인 정서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는 기존의 관찰도 잘 설명한다고 덧붙였다.
즉 철사로 만든 어미와 헝겊으로 만든 어미 사이에 어린 새끼 원숭이를 두면 새끼는 온기가 느껴지는 헝겊 어미(뒤에 백열등이 있다)에 다가가 몸을 기댄다.
흥미로운 사실은 철사 어미에게만 젖병을 매달아 두어도 새끼는 젖을 먹을 때를 빼고는 헝겊 어미를 떠나지 않았던 것.
1958년 이 연구를 발표한 저명한 심리학자 해리 할 로우는 따뜻한 헝겊 어미가 있는 환경에서 자란 새끼 는 커서도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사회성 발달을 보인 반면 철사 어미만 있는 곳에서 자란 경우는 심각한 장 애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기록한 바 있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점차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가 는 자신을 문득 발견했다면 시간을 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자. 두 손과 입술에서 전해오는 온기가 마 음까지 덥힐 테니까.
범죄 줄이려면 환경미화 신경 써야
개인의 청결이 행동의 도덕성에 어떤 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청결한 주변 환경은 긍정적인 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그로닝엔대 케스 카이저 교수팀은 자전거보관소의 환경을 달리한 뒤 자전거에 전단지를 붙여놓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다. 벽에 낙서가 잔뜩 있는 경우 3분의 2가 넘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가져갈 때 전단지를 떼서 아무데나 버렸다. 반면 벽이 깨끗한 경우는 3분의 1만 이런 행동을 보씀다. 이런 경향은 다른 상황에서도 나타났다. 우체통 입구에 끼어 있는 봉투에 5유로 지폐가 붙어 있는 걸 볼 경우 주위가 깨끗할 때는 13 %만이 슬쩍 집어간 반면 주변에 쓰레기가 널려 있을 때는 23 %가 자기 주머니에 챙겼다. 주변의 소리도 도덕적인 행동에 씁향을 줬다. 폭죽소리로 어수선할 경우 자전거 주인의 80 %가 전단지를 떼어내 아무 데나 버렸지만 조용한 환경에서는 절반 정도만 그랬다. 결국 개인에 따라 일관성을 보인다고 생각하는 도덕성이나 윤리의식도 사소한 환경변화에 크게 씁향을 받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지난해 12 월 8일자 ‘사이언스 ’에 실린 논문에서 “단지 낙서가 있을 뿐인데도 쓰레기를 버리거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의 비율이 2배 이상 늘어났다 ”며 “이 결과는 정책입안자나 경찰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고 설명했다. 초기 혼란을 감지하고 이를 제거하는 노력이 무질서와 탈법행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