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대발명들이 왜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 원인과 대책을 알아본다.
발명계에는 '백삼당'(百三當)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1백가지가 발명되면 세개 정도가 상품화된다는 말이다. 그만큼 발명품이 생활에 실용화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말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와는 사뭇 다른 조사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최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 우리나라 개인 및 법인(기업)의 발명품에 대해서 설문조사한 결과, 8백18건 중 34.7%에 해당하는 2백84건이 독자적 또는 다른 특허와 공동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발명품의 활용률은 26.4%, 법인은 45.7%로 법인보다 개인의 발명품이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특허(실용신안 포함)를 출원해 등록증을 받은 발명품을 대상으로 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백삼당'은 '십삼당'으로 고쳐져야겠지만, 대부분의 발명가들은 아이디어단계를 거쳐 발명 특허출원 등록 상품화에 이르는 길에서 기가막힌 아이디어나 발명품들이 빛을 보지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는데 동의한다.
80평생 백열전등 축음기 등을 비롯 2천7백여건의 발명을 해 과학기술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에디슨은 "발명은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통해 발명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이 명언은 발명품 자체의 개발이 어렵다는 뜻인 것처럼 보이지만, 발명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기까지의 전과정의 어려움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발명품의 사장은 발명가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대단한 손실이다. 현대사희에서 산업발전의 초석으로서 '특허의 상품화'는 필수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국제발명전에서 입상한 우리의 발명품이 외국으로 흘러가 다른 모습으로 상품화돼, 우리가 로열티를 물고 구입해야 한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89년 처음으로 10만건 돌파
우리나라는.산업재산권(공업소유권) 출원 건수가 지난해에 처음으로 10만건을 넘어섰다(표1). 이미 몇년 전에 1백만건을 넘어선 일본과 비교하면 아직도 매우 적은 수치이지만, 정부수립 이후 40여년 동안 꾸준한 증가를 보여 이룩한 결과이므로 의미있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표1)89년 산업재산권 출원 현황](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005/S199005N017_img_01.jpg)
산업재산권이라 하면 특허 실용신안 의장 상표를 모두 포함한다. 특허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거나 또는 새로운 제법을 개발하는 것이고 실용신안은 기존에 있는 물건을 개량해서 편리하게 만든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전화기를 새로 발명했으면 특허이고 수화기와 송화기를 합쳐 하나로 만들었으면 실용신안이다. 우리나라나 일본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특허와 실용신안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밖에도 물품의 외관의 형상이나 색채를 새롭게 디자인한 의장, 특정 회사의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이나 포장 등에 사용하는 상호나 마크인 상표가 산업재산권에 포함되지만 일반적으로 발명이라 하면 특허나 실용신안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산업재산권 중 발명(특허와 실용신안)이 차지하는 비율은 40%를 조금 웃도는 4만5천여건. 이중에서 1만7천여건이 외국 출원이다.
특히 기술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는 특허에서는 외국 출원이 70% 가까이 된다. 또한 국내 출원 발명건수 중 반도체나 컴퓨터 등 첨단기술과 식품 의약품 등 대기업 관련제품이 60~70%를 차지하므로 순수한 국내 개인발명 출원건수는 1만여건 내외. 이중에서 등록증이 발부되는 명실상부한 발명특허(실용신안 포함)는 30% 정도이므로 매년 3천건 정도의 새로운 발명품이 탄생한다고 보면 된다.
이들중 얼마만한 제품이 상품화돼,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일반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일까. 앞에서도 밝혔지만 '백삼당'인가, 아니면 '십삼당'인가 하는 논의는 정확한 통계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특허의 상품화'의 현주소를 살펴보는게 현명하다.
지난 84년 소음과 열을 없앤 '브러시 없는 직류모터'를 개발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중소기업 이원전기는 지난해말 자금압박을 받아 부도를 냈다. 회전자와 고정자를 바꿔 역회전력을 없애고 기계손상의 원인인 브러시를 떼내고도 전기효율을 10~20% 높인 이 모터는,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에는 물론 각종 공작기계 자동차 등 모터가 사용되는 전산업분야에 사용될 수 있어 개발효과가 매우 큰 발명품.
이 모터는 국내 특허는 물론 미국 스페인의 특허를 받았고 일본 프랑스 영국에서도 출원 공개중이다. 87년 우수발명품전시회에서 대통령표창과 88년에 동탑산업훈장을 받았지만 실질적인 연구개발비 지원을 제대로 받지못해 자금난에 봉착, 부도를 내고 만 것이다.
불행중 다행으로 지난 1월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전기가, 세탁기 진공청소기 고속절단기 굴착기용 모터 기술료로 1억원의 계약금과 대당 2% 로열티를 주기로 하고 특허권을 양도받아 갔다. 또한 미국의 한 자동차회사에서 계약금 2백50만달러와 대당 2.5%의 로열티를 주기로 하고 전기자동차용 모터기술도 가져갔다.
이원전기의 경우 스스로 발명품을 상품화 하려다 실패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로열티를 받아 어느정도 보상이 됐긴 했지만, 스스로 사업화하려다 진 25억여원의 빚이 있고 또한 일부 기술은 해외로 흘러나가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쌍날개선풍기. 개발된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상품화가 안됐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005/S199005N017_img_02.jpg)
국내 대기업의 냉대
제자리에서 3백60° 회전해 아무리 좁은 공간이라도 빠져나올 수 있는 자동차 전환 장치에 관한 얘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85년 이 장치를 개발, 국내를 비롯 7개국 특허를 획득한 김세웅씨의 경우 국내 자동차업계의 냉대속에 일본에다 기술을 팔 수밖에 없었다. 가네자와타이어와 계약을 해 계약금 1억엔을 받았고, 제품이 나오는 경우 대당 1천3백엔을 받기로 했다.
88년에는 박광종씨가 똑같은 장치를 다른 방식으로 개발해, 지난해 뉴욕 국제발명전에서 금상을 받았지만 국내 기업의 냉대를 받기는 마찬가지. 결국 박씨는 이에 관심을 가진 재미교포가 운영하는 회사에 이 기술을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 대형생산라인을 작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도만 돼도 발명품이 완전히 사장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런대로 괜찮다고 할 수 있다. 아예 발명품 자체가 사장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전브레이크로 국제발명전에서 입상한 바 있는 강병국씨는 제품의 상품화에도 실패하고 기업과의 로열티 협상에도 성공치 못해 아무런 성과를 보지 못했다.
김병국씨는 3백60° 모든 방향에서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를 개발하고 금형까지 제작했으나 자금부족 등으로 고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 20여년 동안 발명에 몰두해온 최모씨는 자동상수도급수기를 제품화하기 위해 공장을 세우다 실패, 유리가게를 얻어 근근히 생활하고 있는 형편. 또한 10여종류의 특허를 갖고 있는 강명수씨도 아파트적재식 항아리를 개발 상품화하려다 실패, 영업용택시를 운전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특허법의 맹점 때문에 곤란을 겪은 경우도 있다. 우원명씨는 압력밥솥을 개발했으나 유사품 기업들이 이의를 제기해 법정싸움을 벌였다. 7년후에 승소했지만, 그동안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나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말그대로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스위스 미국 서독 등에서 개최되는 국제발명전에서 입상한 사람들이 1백50여명이나 된다. 이들이야말로 우리나라 발명계를 대표하고 있는 선두 발명가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친목모임인 국제발명메달리스트회에서 사무국장을 하고 있는 홍성모씨는 "입상작품 중 상품화되는 것은 약 반정도" 라고 말했다.
50%가 상품화되긴 했지만 이 가운데서 기업을 세워 성공하거나 적정수준의 로열티를 받고 있는 것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자체 평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발명가그룹에서 이 정도의 성공률이라고 한다면, 다른 발명가들의 상황은 쉽게 짐작이 간다. 물론 대기업 내에서 사원들의 업무와 관련된 직무발명은 활용률이 높은 편이지만, 개인발명의 경우 여러가지 장애에 부딪쳐 상품화 내지 기업화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10년은 투자해야
'특허의 상품화' 또는 '발명의 기업화'가 쉽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지적된다.
자신이 발명한 가로수보호막을 제작판매 하고 있는 박인호씨는 "요즘은 과거처럼 단일 발명품이 나오기 힘들다. 전화기 한대만에도 1백건 이상의 발명특허가 있기 때문에 부품 하나를 발명했다고 해서 금방 상품화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발명품을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특허가 나왔다고 만족하지 말고 제품개량에 지속적으로 매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명계의 신화가 되다시피한 목동 조셉의 가시철망처럼 한번의 아이디어로 벼락부자가 되는 경우는 요즘은 불가능하다는 얘기. 또한 하나의 발명품을 개발하면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지속적으로 계속해야 완벽한 제품이 탄생된다는 의미다.
박인호씨의 경우 '수목 중에서 가장 불행한 가로수'를 보호할 방법을 구상하다 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가로수보호막을 발명했고(80년) 요즘은 가로수 토양의 산성화를 방지하기 위해 '살충제를 혼합한 고형유기물제조법'을 개발해냈다. 한분야에 계속 몰두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인조과일에 관련된 산업재산권만 1백여건을 갖고 있는 홍성모씨도 10여년 동안 인조과일 하나에만 집중적으로 매달려 어느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 88년에는 새로운 과채류의 제조방법(과일 금형의 접속부분을 없애고 세포수준까지 표현)을 개발해 88년 서독 국제발명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심장 달린 구두'(구두 내부를 항상 건조하게 해줌)를 개발중이다.
국제발명전에서 30회 이상 입상한 경력을 바탕으로 '발명품·신기술 용역 서비스센터'인 일원산업기술연구소를 운영중인 원인호씨는 발명인들에게 색다른 충고를 하고 있다.
"발명가는 자기가 창조한 제품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돈을 대는 자본가와 그 물건을 쓰는 수요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발명가는 생리상 자신의 분신이다시피한 발명품을 귀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제품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제조공정을 경제적으로 한다든가 소비자들을 생각해 조금 다른 특징을 덧붙이다보면 전혀 다른 제품이 나올 수도 있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그렸는데 상품이 되다 보면 강아지가 돼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얘기다. 이럴 때일수록 발명가는 새로운 제품에 전력투구해야됨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만 최고'라는 생각에 젖어 불행한 결과를 맞는다는 지적이다.
또한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현대사회는 소비자의 요구가 워낙 다양해 시장점유율은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과대망상에 젖어 로열티를 협상할 때 과도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는 것.
기존 메이커들이 모험을 하지 않으려는 속성도 발명가들을 안타깝게 하는 요인. 기업측은 제품의 아이디어성보다는 상품화됐을 때 얼마나 팔릴수 있느냐는 시장성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로열티를 주고 이미 시장시험을 거친 외국제품을 사서 쓰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국내의 대발명품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쉽게 덤비지 않고 신중을 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개인발명가들의 발명품을 악용하는 사례도 간혹 있다. 발명가들을 불러 제품에 대한 설명을 다듣고 기다려보라고 해놓고, 발명품의 특징을 흡수한 개량품을 만들어버리는 경우.
다년간 발명가들을 접촉해온 홍재일 변리사는 "개인발명가들이 직접 자신의 발명품을 사업화하려 했을 때 처음 부딪치는 벽은 완제품의 대량생산기술이다"고 말했다.
「모험」자본이 아니라「안전」자본
자동차 1대에 관련되는 발명특허가 약6백건이나 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컵이나 양말 구두 우유병 등도 언뜻보기에 매우 단순한 제품인 것 같지만 여러가지 발명특허가 복합돼 있다. 보통 발명은 이중에 특정부분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인데 제품으로 생산하다보면 주변기술이 부족해 상품이 조잡스러울 가능성이 많다. 예를들어 습기가 안차는 구두를 만든다고 할 때도 원래의 구두제조기술(가죽 굽 등을 포함)을 개인발명가가 확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렵게 제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판매능력을 포함한 영업력이 부족해 고전하는 경우도 많다. 기술수준이 조금 낮더라도 경영능력이 뛰어나면 성공하는 확률이 더욱 높다고 한다. 즉 과거에는 발명과 부(富)가 직결된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발명하는 것과 기업화해 돈을 버는 것과는 조금 차원이 다른 얘기가 돼버린 것이다.
발명가들은 공통적으로 "흔히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이라고 말해지는 자본이 개인발명가에겐 너무 거리가 멀다"고 말하고 있다. 상공부의 공업기반기술개발자금, 과기처의 특정연구개발비, 한국기술개발의 기술개발자금 등 국내신기술개발자에게 주어지는 각종 기금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실제로 이들 자금을 빌려쓰는 발명가는 매우 드물다.
박인호씨는 "모험자본의 본래 성격은 100% 확실치 않아도 가능성만 있다면 투자를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안전한 것만 선택하려 한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모험자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볼 때, 발명가는 자신의 기술을 양도하는 대신에 전문기업으로부터 일정수준의 연구개발비와 로열티를 받고, 기업은 이를 받아들여 기업화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풍토조성이 제대로 정착돼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제도적으로 이를 운영할 기구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발명특허협회가 구성돼있으나 아직 이런 일을 해내기는 역부족.
일본은 발명학회 등 사단법인이 만들어져 가능성이 있는 발명은 특허출원단계에서부터 경영 및 자본과의 이상적인 결합을 도와주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도 발명인을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돼 있어 발명에 대한 권리는 어떠한 상황에도 지켜준다.
발명이 씨앗이라면 자본은 비옥한 토지이며 이를 가꾸어주는 농부는 전문경영인에 비유될 수 있다. 이들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져야 훌륭한 상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느 장소에서든지 짧은 시간에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1분텐트'를 개발해 수출하고 있는 김순태씨의 사례는 바람직스러운 예라 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인 S물산이 지정하는 업체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S물산을 통해서 수출하면서 한달 평균 2천만원 정도 로열티를 받고 있는 김씨는 새로운 발명에 몰두, 최근에 개최된 제18회 제네바국제발명전에서 '코일회전용 발전기'로 금상을 수상했다.
발명가들이 유아독존(唯我獨尊)식 사고방식을 버리고, 특허를 존중해주는 사회적풍토가 조성되고, 자본 및 경영과의 올바른 결합을 유도해줄 수 있는 제도적 기구가 마련된다면 '백삼당'이니 '십삼당'이니 하는 말이 발명계에서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다.
발명계에는 '백삼당'(百三當)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1백가지가 발명되면 세개 정도가 상품화된다는 말이다. 그만큼 발명품이 생활에 실용화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말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와는 사뭇 다른 조사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최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 우리나라 개인 및 법인(기업)의 발명품에 대해서 설문조사한 결과, 8백18건 중 34.7%에 해당하는 2백84건이 독자적 또는 다른 특허와 공동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발명품의 활용률은 26.4%, 법인은 45.7%로 법인보다 개인의 발명품이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특허(실용신안 포함)를 출원해 등록증을 받은 발명품을 대상으로 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백삼당'은 '십삼당'으로 고쳐져야겠지만, 대부분의 발명가들은 아이디어단계를 거쳐 발명 특허출원 등록 상품화에 이르는 길에서 기가막힌 아이디어나 발명품들이 빛을 보지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는데 동의한다.
80평생 백열전등 축음기 등을 비롯 2천7백여건의 발명을 해 과학기술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에디슨은 "발명은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통해 발명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이 명언은 발명품 자체의 개발이 어렵다는 뜻인 것처럼 보이지만, 발명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기까지의 전과정의 어려움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발명품의 사장은 발명가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대단한 손실이다. 현대사희에서 산업발전의 초석으로서 '특허의 상품화'는 필수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국제발명전에서 입상한 우리의 발명품이 외국으로 흘러가 다른 모습으로 상품화돼, 우리가 로열티를 물고 구입해야 한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89년 처음으로 10만건 돌파
우리나라는.산업재산권(공업소유권) 출원 건수가 지난해에 처음으로 10만건을 넘어섰다(표1). 이미 몇년 전에 1백만건을 넘어선 일본과 비교하면 아직도 매우 적은 수치이지만, 정부수립 이후 40여년 동안 꾸준한 증가를 보여 이룩한 결과이므로 의미있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표1)89년 산업재산권 출원 현황](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005/S199005N017_img_01.jpg)
산업재산권이라 하면 특허 실용신안 의장 상표를 모두 포함한다. 특허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거나 또는 새로운 제법을 개발하는 것이고 실용신안은 기존에 있는 물건을 개량해서 편리하게 만든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전화기를 새로 발명했으면 특허이고 수화기와 송화기를 합쳐 하나로 만들었으면 실용신안이다. 우리나라나 일본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특허와 실용신안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밖에도 물품의 외관의 형상이나 색채를 새롭게 디자인한 의장, 특정 회사의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이나 포장 등에 사용하는 상호나 마크인 상표가 산업재산권에 포함되지만 일반적으로 발명이라 하면 특허나 실용신안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산업재산권 중 발명(특허와 실용신안)이 차지하는 비율은 40%를 조금 웃도는 4만5천여건. 이중에서 1만7천여건이 외국 출원이다.
특히 기술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는 특허에서는 외국 출원이 70% 가까이 된다. 또한 국내 출원 발명건수 중 반도체나 컴퓨터 등 첨단기술과 식품 의약품 등 대기업 관련제품이 60~70%를 차지하므로 순수한 국내 개인발명 출원건수는 1만여건 내외. 이중에서 등록증이 발부되는 명실상부한 발명특허(실용신안 포함)는 30% 정도이므로 매년 3천건 정도의 새로운 발명품이 탄생한다고 보면 된다.
이들중 얼마만한 제품이 상품화돼,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일반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일까. 앞에서도 밝혔지만 '백삼당'인가, 아니면 '십삼당'인가 하는 논의는 정확한 통계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특허의 상품화'의 현주소를 살펴보는게 현명하다.
지난 84년 소음과 열을 없앤 '브러시 없는 직류모터'를 개발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중소기업 이원전기는 지난해말 자금압박을 받아 부도를 냈다. 회전자와 고정자를 바꿔 역회전력을 없애고 기계손상의 원인인 브러시를 떼내고도 전기효율을 10~20% 높인 이 모터는,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에는 물론 각종 공작기계 자동차 등 모터가 사용되는 전산업분야에 사용될 수 있어 개발효과가 매우 큰 발명품.
이 모터는 국내 특허는 물론 미국 스페인의 특허를 받았고 일본 프랑스 영국에서도 출원 공개중이다. 87년 우수발명품전시회에서 대통령표창과 88년에 동탑산업훈장을 받았지만 실질적인 연구개발비 지원을 제대로 받지못해 자금난에 봉착, 부도를 내고 만 것이다.
불행중 다행으로 지난 1월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전기가, 세탁기 진공청소기 고속절단기 굴착기용 모터 기술료로 1억원의 계약금과 대당 2% 로열티를 주기로 하고 특허권을 양도받아 갔다. 또한 미국의 한 자동차회사에서 계약금 2백50만달러와 대당 2.5%의 로열티를 주기로 하고 전기자동차용 모터기술도 가져갔다.
이원전기의 경우 스스로 발명품을 상품화 하려다 실패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로열티를 받아 어느정도 보상이 됐긴 했지만, 스스로 사업화하려다 진 25억여원의 빚이 있고 또한 일부 기술은 해외로 흘러나가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쌍날개선풍기. 개발된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상품화가 안됐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005/S199005N017_img_02.jpg)
국내 대기업의 냉대
제자리에서 3백60° 회전해 아무리 좁은 공간이라도 빠져나올 수 있는 자동차 전환 장치에 관한 얘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85년 이 장치를 개발, 국내를 비롯 7개국 특허를 획득한 김세웅씨의 경우 국내 자동차업계의 냉대속에 일본에다 기술을 팔 수밖에 없었다. 가네자와타이어와 계약을 해 계약금 1억엔을 받았고, 제품이 나오는 경우 대당 1천3백엔을 받기로 했다.
88년에는 박광종씨가 똑같은 장치를 다른 방식으로 개발해, 지난해 뉴욕 국제발명전에서 금상을 받았지만 국내 기업의 냉대를 받기는 마찬가지. 결국 박씨는 이에 관심을 가진 재미교포가 운영하는 회사에 이 기술을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 대형생산라인을 작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도만 돼도 발명품이 완전히 사장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런대로 괜찮다고 할 수 있다. 아예 발명품 자체가 사장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전브레이크로 국제발명전에서 입상한 바 있는 강병국씨는 제품의 상품화에도 실패하고 기업과의 로열티 협상에도 성공치 못해 아무런 성과를 보지 못했다.
김병국씨는 3백60° 모든 방향에서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를 개발하고 금형까지 제작했으나 자금부족 등으로 고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 20여년 동안 발명에 몰두해온 최모씨는 자동상수도급수기를 제품화하기 위해 공장을 세우다 실패, 유리가게를 얻어 근근히 생활하고 있는 형편. 또한 10여종류의 특허를 갖고 있는 강명수씨도 아파트적재식 항아리를 개발 상품화하려다 실패, 영업용택시를 운전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특허법의 맹점 때문에 곤란을 겪은 경우도 있다. 우원명씨는 압력밥솥을 개발했으나 유사품 기업들이 이의를 제기해 법정싸움을 벌였다. 7년후에 승소했지만, 그동안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나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말그대로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스위스 미국 서독 등에서 개최되는 국제발명전에서 입상한 사람들이 1백50여명이나 된다. 이들이야말로 우리나라 발명계를 대표하고 있는 선두 발명가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친목모임인 국제발명메달리스트회에서 사무국장을 하고 있는 홍성모씨는 "입상작품 중 상품화되는 것은 약 반정도" 라고 말했다.
50%가 상품화되긴 했지만 이 가운데서 기업을 세워 성공하거나 적정수준의 로열티를 받고 있는 것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자체 평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발명가그룹에서 이 정도의 성공률이라고 한다면, 다른 발명가들의 상황은 쉽게 짐작이 간다. 물론 대기업 내에서 사원들의 업무와 관련된 직무발명은 활용률이 높은 편이지만, 개인발명의 경우 여러가지 장애에 부딪쳐 상품화 내지 기업화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10년은 투자해야
'특허의 상품화' 또는 '발명의 기업화'가 쉽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지적된다.
자신이 발명한 가로수보호막을 제작판매 하고 있는 박인호씨는 "요즘은 과거처럼 단일 발명품이 나오기 힘들다. 전화기 한대만에도 1백건 이상의 발명특허가 있기 때문에 부품 하나를 발명했다고 해서 금방 상품화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발명품을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특허가 나왔다고 만족하지 말고 제품개량에 지속적으로 매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명계의 신화가 되다시피한 목동 조셉의 가시철망처럼 한번의 아이디어로 벼락부자가 되는 경우는 요즘은 불가능하다는 얘기. 또한 하나의 발명품을 개발하면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지속적으로 계속해야 완벽한 제품이 탄생된다는 의미다.
박인호씨의 경우 '수목 중에서 가장 불행한 가로수'를 보호할 방법을 구상하다 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가로수보호막을 발명했고(80년) 요즘은 가로수 토양의 산성화를 방지하기 위해 '살충제를 혼합한 고형유기물제조법'을 개발해냈다. 한분야에 계속 몰두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인조과일에 관련된 산업재산권만 1백여건을 갖고 있는 홍성모씨도 10여년 동안 인조과일 하나에만 집중적으로 매달려 어느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 88년에는 새로운 과채류의 제조방법(과일 금형의 접속부분을 없애고 세포수준까지 표현)을 개발해 88년 서독 국제발명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심장 달린 구두'(구두 내부를 항상 건조하게 해줌)를 개발중이다.
국제발명전에서 30회 이상 입상한 경력을 바탕으로 '발명품·신기술 용역 서비스센터'인 일원산업기술연구소를 운영중인 원인호씨는 발명인들에게 색다른 충고를 하고 있다.
"발명가는 자기가 창조한 제품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돈을 대는 자본가와 그 물건을 쓰는 수요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발명가는 생리상 자신의 분신이다시피한 발명품을 귀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제품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제조공정을 경제적으로 한다든가 소비자들을 생각해 조금 다른 특징을 덧붙이다보면 전혀 다른 제품이 나올 수도 있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그렸는데 상품이 되다 보면 강아지가 돼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얘기다. 이럴 때일수록 발명가는 새로운 제품에 전력투구해야됨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만 최고'라는 생각에 젖어 불행한 결과를 맞는다는 지적이다.
또한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현대사회는 소비자의 요구가 워낙 다양해 시장점유율은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과대망상에 젖어 로열티를 협상할 때 과도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는 것.
기존 메이커들이 모험을 하지 않으려는 속성도 발명가들을 안타깝게 하는 요인. 기업측은 제품의 아이디어성보다는 상품화됐을 때 얼마나 팔릴수 있느냐는 시장성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로열티를 주고 이미 시장시험을 거친 외국제품을 사서 쓰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국내의 대발명품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쉽게 덤비지 않고 신중을 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개인발명가들의 발명품을 악용하는 사례도 간혹 있다. 발명가들을 불러 제품에 대한 설명을 다듣고 기다려보라고 해놓고, 발명품의 특징을 흡수한 개량품을 만들어버리는 경우.
다년간 발명가들을 접촉해온 홍재일 변리사는 "개인발명가들이 직접 자신의 발명품을 사업화하려 했을 때 처음 부딪치는 벽은 완제품의 대량생산기술이다"고 말했다.
「모험」자본이 아니라「안전」자본
자동차 1대에 관련되는 발명특허가 약6백건이나 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컵이나 양말 구두 우유병 등도 언뜻보기에 매우 단순한 제품인 것 같지만 여러가지 발명특허가 복합돼 있다. 보통 발명은 이중에 특정부분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인데 제품으로 생산하다보면 주변기술이 부족해 상품이 조잡스러울 가능성이 많다. 예를들어 습기가 안차는 구두를 만든다고 할 때도 원래의 구두제조기술(가죽 굽 등을 포함)을 개인발명가가 확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렵게 제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판매능력을 포함한 영업력이 부족해 고전하는 경우도 많다. 기술수준이 조금 낮더라도 경영능력이 뛰어나면 성공하는 확률이 더욱 높다고 한다. 즉 과거에는 발명과 부(富)가 직결된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발명하는 것과 기업화해 돈을 버는 것과는 조금 차원이 다른 얘기가 돼버린 것이다.
발명가들은 공통적으로 "흔히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이라고 말해지는 자본이 개인발명가에겐 너무 거리가 멀다"고 말하고 있다. 상공부의 공업기반기술개발자금, 과기처의 특정연구개발비, 한국기술개발의 기술개발자금 등 국내신기술개발자에게 주어지는 각종 기금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실제로 이들 자금을 빌려쓰는 발명가는 매우 드물다.
박인호씨는 "모험자본의 본래 성격은 100% 확실치 않아도 가능성만 있다면 투자를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안전한 것만 선택하려 한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모험자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볼 때, 발명가는 자신의 기술을 양도하는 대신에 전문기업으로부터 일정수준의 연구개발비와 로열티를 받고, 기업은 이를 받아들여 기업화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풍토조성이 제대로 정착돼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제도적으로 이를 운영할 기구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발명특허협회가 구성돼있으나 아직 이런 일을 해내기는 역부족.
일본은 발명학회 등 사단법인이 만들어져 가능성이 있는 발명은 특허출원단계에서부터 경영 및 자본과의 이상적인 결합을 도와주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도 발명인을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돼 있어 발명에 대한 권리는 어떠한 상황에도 지켜준다.
발명이 씨앗이라면 자본은 비옥한 토지이며 이를 가꾸어주는 농부는 전문경영인에 비유될 수 있다. 이들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져야 훌륭한 상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느 장소에서든지 짧은 시간에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1분텐트'를 개발해 수출하고 있는 김순태씨의 사례는 바람직스러운 예라 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인 S물산이 지정하는 업체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S물산을 통해서 수출하면서 한달 평균 2천만원 정도 로열티를 받고 있는 김씨는 새로운 발명에 몰두, 최근에 개최된 제18회 제네바국제발명전에서 '코일회전용 발전기'로 금상을 수상했다.
발명가들이 유아독존(唯我獨尊)식 사고방식을 버리고, 특허를 존중해주는 사회적풍토가 조성되고, 자본 및 경영과의 올바른 결합을 유도해줄 수 있는 제도적 기구가 마련된다면 '백삼당'이니 '십삼당'이니 하는 말이 발명계에서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다.